좋은 책은 좋은 친구와도 같다는 생피에르의 명언이 있습니다.
여러분 누구나 책게에 들리셔서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줄거리] 닭여왕이 다스리는 남쪽 숲, 날짐승 왕국에서 여름 강을 건너던 어린 새들이 불어난 수위에 휩쓸려 죽는
참사가 일어난다. 이에 새끼를 잃은 어미새들과 닭여왕의 행태에 불만을 가졌던 새들의 요구로 청문회가 개최되지만
진상규명은 뒷전으로 닭여왕은 자신의 잘못을 떠넘기기에만 급급하고 회의는 방향을 잃는다.
펭귄: (뒤뚱뒤뚱 무대 위를 이리저리 걸으며) 그러나 부모새들은 여왕의 말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주장을 포기하지도 않았고요. 여름강에서 3일 밤낮을 꼬박 샜음에도 지치지도 않고 맞서 싸웠습니다.
강물에 휩쓸려 죽은 자식들에 대한 열렬한 책임감을 가지고 말입니다.
(어두웠던 무대가 점차 밝아지고 부모 새 대표인 청둥오리가 닭여왕이 있는 연단에 올라서려 하지만 까치들에게
제지 당하고 바닥에 내팽겨 쳐진다.)
청둥오리: (몸을 털고 일어서며) 여왕님! 내려오셔서 친근하게 이야기 해주십시오. 여기서는 여왕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답니다.
개똥지빠귀: 어디 감히! 이분은 오골계 대왕님의 따님으로 숲속 나라의 최고 통수권자라는 말입니다! 일개 날짐승과
깃털이 섞여서는 안되오.
청둥오리: 정 그러시다면 받아들이지요(부리를 갈으며) 여왕님! 제가 얼핏 들은 바로는 개구리들이 물새들과 거래를 하고
새끼들을 구하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데 그게 사실입니까?
닭여왕: 그것은 한낱 헛소리일 뿐입니다. 나라의 녹을 먹고 사는 물새들이 감히 개구리와 손을 잡다니요?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청둥오리: 하지만 물새들은 저희 자식들을 단 한마리도 구하지 못했지 않습니까?
(청둥 오리의 말에 부모 새들이, 맞는 말입니다! 옳소!하고 청둥오리를 거든다.)
닭여왕: 그 점이라면 저도 심히 통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물새대장에게 책임을 물어 해임시키고 물새구호단을 폐지시키지 않았습니까?
청둥오리: 단지 구호단에서 구호청으로 바뀌었지 않습니까? 물새대장을 회의장에 불러주십시오! 개구리들과 어떤 거래가 있었는지
저희들이 직접 묻고 싶습니다.
닭여왕: 그것은 제가 이미 물어본 문제이고 물새대장은 해임되고 나서 먼 숲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나중에 돌아오면 다시 문책할 터이니
날짐승 여러분은 저를 믿고 너무 염려치 마십시요. 알 한번 낳아보지 못했지만 부모새들의 비통한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 별안간 개똥지빠귀가 올라와 닭여왕에게 무언가 속삭이고서는 다시 연단 아래로 내려간다.)
닭여왕: 여러분 좋은 소식이 있답니다. (보라색으로 물들인 날개쭉지를 푸드덕 거리며) 부모새들을 위해 여러분이 사는 나무에 수액을 놓고
같은 나무에 사는 어린 새들이 떠나면 둥지 재료로 쓰일 황금나뭇가지 하나를 주기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러자 도와주러온 다른 새들이 화난 듯이 날개를 휘젓고 부모새들을 향해 욕설 비슷한 신경질스러운 소리로 울고선 자리를 떠나버린다.
놀란 청둥오리는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기만 하다가 닭여왕에게 소리친다.)
청둥오리: 이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저희들은 그런 요구를 하지도 바라지도 않습니다. 단지 우리 아기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싶다고요!
개똥지빠귀: 예의없는 작태는 이쯤에서 그만두게. 이미 숲속 권력자들 회의에서 특별히 통과된 내용이니까.
청동오리: 통과라니요? (아연질색한 표정으로) 혹시 도도새들도 참가했답니까?
개똥지빠귀: 모든 새들이 참가한 회의였네
청둥오리: 그럼 도도새들이 찬성표를 던졌다는 말입니까?
(개똥지빠귀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부모새들 낙담한다. 무대가 다시 어두워 지고 펭귄이 조명을 받으며
걸어나온다.)
펭귄: 결국 여름강 사건을 공론화 시키겠다며 당선된 도도새들은 부모새를 버렸습니다. 이제 누가 부모새들을 도울까요?
다른 새들이 있던 객석을 돌아보지만 몇 마리 채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나마도 군소리 없이 침묵하고 있군요.
(무대 구석에서 까치들이 모포에 싸인 시체를 들고 나온다. 그리고 맨앞에 있는 덩치 큰 까치가 소리친다.)
까치대장: (큰 목소리로) 숲속 새들은 모두 들으시오! 여름 강에 댐을 만든 비버를 잡았답니다!
(나무에 앉아있던 딱따구리들 나무를 두드린다. 하지만 하나같이 똑같은 소리이다)
청둥오리: 부실댐을 지어 우리새끼들을 죽인 놈이 잡혔다고요? (흥분한 목소리로) 어디 그 놈 얼굴 한번 봅시다!
(까치대장이 자랑스러운 얼굴로 모포를 열어젖힌다. 그러나 안에 보이는 것은 비버가 아닌 썩어문드러진 수달의
시체이다.)
청둥오리: (기가 막힌 표정으로) 이건 바닷가에 살던 수달 할아범 시체가 아닙니까?
까치대장: 그렇게 보일수도 있겠지만 이건 분명 비버의 시체입니다. 바다로 도망쳤다가 익사해서 그렇게 보이는 거요.
청둥오리: 하지만 왠 비버 꼬리가 이렇게 쥐꼬리처럼 얄랑한 겁니까? 이건 수달입니다.
까치대장: 의심은 가져도 좋지만 작작 하시오. 느티나무 올빼미 박사들도 이게 비버가 맞다고 하는데..... 무식한 것도 정도가 있지.....
청둥오리: 지금 나를 못 배운 짐승이라고 폄하하는 겁니까?! 이건 어딜보나 분명히 수달시체라고요! 억지 좀 작작 부리시오!
(둘이 옥신각신 말싸움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 무시하고 닭여왕이 말을 한다.)
닭여왕: 여러분 드디어 어린 새들을 죽이게 한 범인인 수달의 시체가 나왔습니다.
(닭여왕의 말에 잠깐 좌중이 숙연해지고 다시 개똥지빠귀가 황망하게 올라가 닭여왕의 귓전에 몇마디 속삭이고 다시 내려간다.)
닭여왕: 제가 방금 뭐라 그랬습니까? 제말은.... 비버의 시체가 나왔습니다.
(다시 새들이 쨱쨱 시끄럽게 싸운다. 이때 이 모든일을 객석에서 관망하고 있던 펭귄 다시 무대 앞으로 나온다.)
펭귄: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르는 광경입니다. 숲 속 여기저기서 닭여왕을 비웃는 소리가 들리지만 아무도
다시 회의장으로 돌아오지는 않는군요. 아마 다들 제 할일을 하고있을겁니다. 먹이를 사냥하고 둥지를 만들고 하는 일들이지요.
지네들끼리도 부조리한 일임은 알지만 나서지 않는건 오골계 대왕 시절에 받았던 핍박 덕분일겁니다. (들고 있던 새들의 역사책을
펼치며) 여기 보면....... 오골계왕의 독재에 항의를 하던 새들이 20분만에 목이 잘려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군요. 밤에 사냥금지를
내려서 부엉이들이 굶어죽었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이처럼 늙은 새들은 왕국에 부리를 잘못 놀리면 큰 대가를 치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혈기왕성한 어린 새들에게 예전과 같은 참극을 겪지 않게 하려고 하겠지요. 허나 어린새들은 태양보다도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 어린 새들의 정의감도 막을 수 없습니다. 마침 저기 누군가 걸어나오네요.
타조: 잠자코 듣고 있자니 화가 치밀어 더이상은 못있겠습니다. 당신들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백성을 농락해도 정도가 있지 않습니까?
개똥지빠귀: (어이없어하며) 말하는 모양새하고는......너는 뭐야?
타조: 나는 날짐승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입니다. 그러나 나도 한 나라의 어엿한 국조(國鳥)이니 한마디 해야겠소.
(개똥지빠귀의 제지를 밀치며 닭여왕이 서있는 연단에 가까이 다가간다.)
타조: 닭여왕님. 그만 백성들을 기만하는 행위를 멈추시고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닭여왕: (당황해하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저에게는 아무 책임도 없습니다.
타조: 숲속 최고 통수권자이시니 당연히 숲속 일에 모든 책임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강건너 아래에 원숭이 숲에서 가져온 신문을 보면
(신문지를 닭여왕을 향해 흔드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자리에 없으셨다면서요?
(부모새들을 비롯한 좌중들 웅성거린다. 개똥지빠귀, 타조가 들고 있는 신문을 뺐으려 들지만 닿지 않는다.)
개똥지빠귀: (신문 뺐는 것을 포기하고)이.....이건 엄연한 여왕님 사생활 침해요! 원숭이들에게 본 때를 보여줘야 합니다!
타조: 그럼 이게 사실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로군요..... 오호라.... 이래도 책임이 없다 회피하실 겁니까? 당신이 그래왔듯이
여왕님도 왕자리에서 내려오십시오!
개똥지빠귀: 무엄하기도 짝이 없지. 어디 일개 날짐승이 왕자리를 이래라 저래라 한답니까?
타조: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럼 오골계 왕처럼 숲속을 홀로 지배하며 죽을 때까지 할 셈이었습니까?
(타조에 말에 울분한 부모새들 한 목소리로 암탉 타도를 외친다. 무참히 날아오는 계란에 닭여왕, 연단 아래로 숨어버리고 까치들이
막으려 하지만 벅차다. 이때 뒤에 숨어있던 개똥지빠귀 기막힌 묘책을 생각해내고선 새들에게 고한다.)
개똥지빠귀: 날짐승 여러분 저 놈은 북쪽 농장에서 내려온 들짐승입니다!!! 당장 내란 선동죄로 체포해야 하오!
타조: (황당한 표정으로) 무슨 엉뚱한 소리요? 보다시피 나는 엄연한 조류오!
개똥지빠귀: 그럼 새라는 증거를 대보시오! 당신은 날지도 못하지 않습니까? (자신감을 얻은 목소리로) 부모새 여러분! 여러분은 들짐승한테
속고 있는 겁니다! 저 날지 못하는 짐승이 북쪽 돼지의 지령을 받고 국론을 분열시키고 나라를 파탄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숲속의 최고 권력자인 닭여왕님을 모욕하는 일도 서슴치 않고요. 저 놈이 나쁜놈이요. 저놈을 잡아야 합니다!
청둥오리: (아연질색해져서)타조님 그게 사실입니까?
타조: 이건 미친 소리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다 연단에 앉아있는 날개를 달은 쥐를 가르키며) 나보다 저것이 더 들짐승 아닙니까? 날지도 못하면서
새처럼 날개를 달고 여기저기 숲속에 수로를 뚫어놔서 나무 뿌리들을 썩게 만들었지 않습니까? 나를 잡아가려든 숲을 파괴한 저 놈도
함께 잡으시오!
(타조를 잡으려 다가오던 까치들이 타조의 말에 쥐를 쳐다보자 쥐가 말한다.)
쥐: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까치들은 쥐의 말에 타조를 잡으려 날아간다. 타조는 까치에게 쪼이면서 다급하게 무대 저편으로 도망친다. 까치도 따라 함께 사라진다.)
「날짐승 회의록」
본글은 현 정치 상황과 세월호 참사와 전혀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물론 믿으면 골룸입니다.
우리는 전혀 잊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