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전에도 비슷한 글을 쓴적이 있긴 합니다.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좀 뜬금 없지만 철학이란게 뭔가에 대해서 좀 이야기해 봅니다.
철학은 다른 학문과 근본적으로 다른 큰 특징이 있습니다.
무엇을 탐구하는지가 모호하다는 거죠.
이를테면 수학은 수를 다루는 학문입니다.
생물학은 생물을, 물리학은 물리현상의 법칙을 다루고, 지질학은 땅의 성질을 다룹니다.
사회학은 사회 현상을, 경제학은 경제활동의 원리를 연구하며 문학은 글을 연마합니다.
거의 모든 학문이 무엇을 연구하는지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철학은 그게 분명하지 않죠.
이름부터가 단지 '지혜의 학문'을 뜻합니다. 영문으로도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일 뿐입니다.
분야도 지나칠 정도로 폭넓습니다.
철학은 과학 철학, 사회 철학, 수리 철학, 언어 철학, 정치 철학, 종교 철학, 예술철학(미학), 형이상학, 윤리학, 논리학을 포괄하며
이것들이 철학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이는 것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제각각인 영역을 다루고 있습니다.
게다가 과학, 사회학, 수학, 언어학, 정치학, 종교학 등이 이미 있는데도 다시 철학이라는 이름을 붙여 다른 학문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얼핏 통일성도 일관성도 없고, 비합리적으로도 보이는 이런 분류에는 분명히 기준이 있습니다.
사실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철학이라는 학문의 이름에도 그것이 다루고 있는 대상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철학은 말 그대로 '지혜', 즉 생각하는 방식을 다루고 있는 겁니다.
과학을 탐구함에 있어서 합리적인 생각의 방식, 수리적 사고의 방식,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방법,
그리고 합리적인 사고 그 자체에 대한 방식을 다루는 학문이 철학인 것입니다.
요컨데 철학은 일종의 메타-학문입니다.
메타란 대상에 대해서 초월적인 성격을 뜻하며, 조금 다르게 설명하면 '~에 대하여'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를들어 영화의 관객은 영화 밖의 관찰자로 영화 속 인물에 대해 초월적인 성격을 지닙니다.
요즘 방영중인 드라마 W에서 만화속 인물인 강철에 대해 만화작가 오상무는 메타적 존재입니다.
오상무작가가 강철이란 인물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만화W세계의 밖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오상무작가가 존재하는 곳 역시 드라마 속입니다. 드라마의 시청자는 오상무 작가에 대해서 메타적인 존재입니다.
드라마W세상 속에 만화W의 세상이 존재합니다. 이런 것을 액자식 구성이라고 부르죠.
학문과 철학의 관계도 이와 비슷합니다.사실은 학문 자체가 메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 현상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과학은 개념상 초월적 입장에서 자연현상의 원리와 구조를 연구합니다. (과학=메타-자연)
그리고 철학은 초월적 입장에서 과학이 어떻게 자연현상을 이해하는지를 연구합니다. (과학철학=메타-과학=메타-메타-자연)
여기서 개념상 초월적 입장이라는 것이 참 어려운 부분입니다.
철학을 하는 것도 인간이고, 과학을 하는 것도 인간인데 인간은 자연현상의 일부여서
일부인 동시에 초월적인, 일견 모순적인 입장에 있기 때문입니다.
철학과 윤리학의 근간에 존재철학이 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이야기 뿐만 아니라, 고대로부터 인간이란 대체 무엇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지 물어왔습니다.
그 결론이 무엇이든 간에, 결국 철학은 인간에 대해서 묻는 것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즉 철학은 고찰의 대상인 나(인간)과 고찰의 주체이자 관찰자로서 메타적 존재인 나를 구분하는 것에서 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이 제3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사고를 합리적 이성의 근간인 자아라고 정의하기도 합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절대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로 다시 돌아가면,
'절대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조금 변형하면 '불변의 진리는 없다'라고도 쓸 수 있을 겁니다.저는 전에 '불변의 진리'의 파라독스에 대해서 글을 쓴적이 있습니다.
http://todayhumor.com/?phil_12244 글 내용을 대충 요약 정리하면,
'불변의 진리는 없다'라는 문장 자체가 하나의 진리라고 할 때, 이것은 재귀적인 문장구조로
좀더 단순화하면 '이 문장은 거짓이다'와 동일한 논리구조를 지닙니다.
'이 문장은 거짓이다'라는 문장은 모순입니다. 참은 아니지만, 거짓도 아닙니다.
'이 문장은 거짓이다'가 참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이 문장은 참이다'라는 명제가 참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문장은 참이다'가 거짓이어도 성립한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의 논리구조인 '불변의 진리는 없다'는 문장이 자기 자신을 판단대상에 포함하면 모순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변의 진리는 있다'가 참이 되는 것이 아닌 겁니다.
이 문제는 '진리'와 '메타-진리'의 혼동에서 발생합니다.
즉 '불변의 진리가 없다'는 문장에 스스로를 판단대상에 포함시키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불변의 진리가 없다'는 말은 맥락에 따라서 스스로를 판단 대상에 포함시켜서는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앞서 작성된 절대란 없다는 글은 윤리학, 또는 윤리적 명제에 있어서 절대라는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이었고,
여기서 '절대란 없다'는 절대적일수 없으므로 절대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