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언제부터였는가를 생각하기에는 그 아무래도 좋다는, 이젠 제대로 된 표정도 잊은듯한 표정이 너무나 오래되었었다. 물론 아무렇게나 굴어도 되는 이였다. 연습을 빙자해 이겨먹어보겠다고 달겨드는 디이를 지리한 표정으로 가볍게 꺾어내는 것이 그였다. 사실 이변을 눈치채는 것이 너무도 늦었다. 언제나 바쁘던 그가 이렇게 오래, 우리의 훈련장을 벗어나지 않았을 때 우리가 눈치를 먼저 챘어야 했다. 그 놈의, 빌어먹을 성장의 기회랍시고 눈치도 없이 덤벼든 우리가. ..아니, 그것을 묵인한 내가, 몹시도 멍청했다.
끼니를 거르고, 술을 양껏 마시고, 다음날 동도 트지 않은 새벽부터 구보를 하고, 눈 밑이 검게 꺼지도록 잠도 자지 않고, 그런, 뼈만 남은 몸으로 견습생들을 훈련시킨다. 밀레시안의 경이를 안다. 비단 외모를, 나아가 성별을 그리도 쉬이 바꾸어대는 그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가 던바튼 근처에서 공간을 찢고 튀어나왔을 때 그는 혈혈단신으로 싸우고 있었다. 멍청해보일만큼 우직한 이였다. 그가 영웅이었다. 그런 부상을 입고도 그는, 제 몸의 안위조차 걱정하지 않은 채로 우리 앞을 가로섰고, 사도가 휘두른 팔을 온몸으로 막아섰다. 독하고, 또 미운 소리일지 모르나 기사단이 알아야할 것 중 하나는 밀레시안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영생한다. 대지 아래서 안식하는 일 없이 세계에 선다. 모리안의 가호를 받던 자, 이제는 신의 힘을 거머쥔 자, 그런 이를 지키기보다는, 그를 앞세워 목숨을 부지하라고. 소수파이긴 하나, 그들은 죽지 않으니 그래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게다가 다수파도 직접적으로 그런 발언을 하지 않을 뿐, 교단 아래 선 그에게 은근히 그런 기대를 품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가, 타인을 지키는 방패를 익혔을 때, 그랬다.
신의 이름 아래, 굳건한 방패이기를. 신의 이름 아래, 벼려진 검날이기를.
비단 우리뿐 아니라, 어느 누가 그것을 바라지 않았나. 모든 투아하 데 다난은, 그래. 몹시 영악했던 것이다.
우리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않던 그이기에, 눈 한빈 깜빡일 사이에 온 에린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우리 눈 앞에서 사라져버린 그를 우리는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비통한, 처참한, 아니 그것보다 더한 권태로 으스러진 그의 입술매로 가느다란 뱀처럼 흘러나온 딱 한마디로 그는, 우리 눈앞에서. 양 눈을 가리고서야 겨우야 웃음지은 그는, 그 한마디으로 우리를 무너뜨리고는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