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0살부터 미친듯이 (말 그대로 미친듯이) 여드름이 얼굴 전체에 났어요.
등이랑 가슴은 안보이니 나도 신경도 안써요.
근데 얼굴은 진짜 빈 틈 하나 없이 어쩜 그렇게 빼곡하게 나는지..
얼굴이 그냥 멍게였어요.
보통은 턱에 많이 난다 이마에 많이 난다 이런 특징이 있는데, 저는 없어요.
왜냐면 그냥 얼굴에 안나는 구석이 없거든요 ㅎㅎㅎ
전 그 동안 제 얼굴 색이 어떤지 본 적이 없어요.
어쩜 그렇게 한결같은지, 어쩌다 여드름이 줄어든 적이 없거든요.
아직까지 제가 실제로 본 사람 중에는 저만큼 여드름이 나는 사람을 본 적도 없구요.
뭐 나름의 민간요법은 다 해봤죠.
근데 뭐.. ㅋㅋ
그러다가 수능치고 본격적으로 병원을 다녔어요.
여드름 치료계에 비싸다는 건 다 해봤어요.
너무너무 고통스럽고 죽고싶었어요.
딱 두 달동안 진짜 온갖걸 해봤는데 그냥 똑같았어요.
그러니 병원에서 약을 먹어보자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치료를 병행하면서 약을 먹었죠.
정확히 3주 걸리더라구요. 얼굴 전체의 모든 여드름이 사라지는 게.
신입생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자신감있게 밝은 옷을 사입고 사람들 앞에서도 얼굴을 숙이지 않을 수 있었어요.
생에 처음으로 외모에 자신감을 가졌고, 과에서 제일 예쁜 애라는 말을 들어보고, 모든 게 기적같고 너무 행복했어요.
병원에서는 그랬어요, 그동안의 치료가 효과를 본 거라고.
약은 약간의 도움일 뿐이니 일정 기간 있다가 끊고 치료는 계속 하자고.
그렇게 몇 달 후, 약을 끊었어요.
물론 치료는 계속 했죠.
근데 약을 끊고 채 한 달이 안되어서 다시 여드름이 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얼굴 전체에 미세하게 볼록볼록한 느낌이 생겨요.
그다음에 피부 표면 전체가 딱딱해지면서, 마치 식용유를 바른 것처럼 끈적거릴만큼 기름기가 돌아요.
얼굴이 끈적거린다는 느낌이 오고나면, 그 다음은 딱 1주일이면 완벽히 약먹기 전 상태로 원상복귀 되죠.
왜 이렇게 정확하게 과정을 기억하냐면요, 언제나 똑같아요. ㅎㅎㅎ
약을 끊어보려는 시도를 정말 많이 했어요.
1년에 한 번 정도는, 마치 연례행사처럼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봐요.
양의, 한의, 대학병원, 개인병원, 인터넷의 속설들, 천연화장품, 관리실 등등등
진짜 제가 들어본 모든 방법은 다 해봤어요.
과장 안보태고, 제 피부에 들인 돈 다 합치면 조그만 아파트 살 수 있을정도예요.
근데요, 어떤 방법도 조금의 도움도 안됐어요.
한 번 시작아면 짧으면 두세달, 길면 6개월까지 약 안먹고 버티면서 계속 차도를 봐요.
근데 일단 여드름이 나기 시작하면 그냥 얼굴을 들고 살지를 못하겠어요.
약 때문에 죽기 전에, 스트레스로 자살할 것 같아서 그만 둔 적이 많아요.
그러다 2년전부터는 그냥 포기했어요.
그 때는 한방대학병원에서 교수님 특진으로 6개월간 치료했을 때인데요,
매주 두 번 온 몸에 침을 100대 넘게 맞고 바르는 거 먹는 거 등등 월 200 가까이? 들 때였어요.
그걸 딱 6개월했는데, 교수님이 제 얼굴을 보면서 그러는거예요.
진짜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왜 안낫지?"
그 날 부로 딱 그만뒀어요.
그 교수님 처음 뵐 때 그러셨거든요.
검사해보니까 그간의 모든 노력에도 차도가 없는 이유를 아시겠다고, 딱 3개월만 해보라고.
3개월도 참았고 4개월도 참았는데, 그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은 도저히 못참겠더라구요.
난 할 걸 다 했는데, 안 낫는 건 니가 이상한거다. 이런 느낌이었거든요.
뭐 여기만 그런 건 아니예요, 다른 선생님들도 다들 그랬어요.
참 특이한 케이스다, 보통은 차도라도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효과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말요.
이제 10년째 먹고 있는데요, 이상하게 그냥 다 포기하니 마음이 편해요.
다행히 결혼 생각도 없고 애기는 별로 안좋아해서..
어떤 선생님은, 제일 무서운 점은 정확한 부작용을 알지 못하는 거라고 하더라구요.
뭐.. 제가 부작용을 알게 되면 그 선생님께 알려드리죠 ㅎㅎ
요즘은 하루에 한 알씩 보통 두어달 먹다가 상태 좀 좋으면 2,3주 끊고, 이상한 느낌이 나면 다시 먹고 그래요.
어쩌면 이 약때문에 내 삶에 지장이 생길 지도 모르는데..
가끔은 이 약때문에 빨리 죽지 않을까 엄청 무서워요.
근데 도저히 자신이 없어요.
또 여드름이 뒤덮힌채로 집 밖에 나갈 자신도 없고, 사람들을 만날 자신은 더더욱 없어요.
고작 외모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거, 스스로가 진짜 멍청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도 자신이 없어요..
왠만한 커뮤니티에서도 로아큐탄 10년씩 먹은 사람은 본 적이 없네요.
혹시 2,3년 드시고 덜덜 하시는 분 있으면 나같은 인간도 있으니 힘 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