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박형준 기자]
▲ 저주에 가까운 혹평에 시달리는 <다세포 소녀>
ⓒ2006 영화세상
네티즌 선정 최악의 영화의 독보적인 존재는 단연 <긴급조치 19호>였다. 그리고 그 뒤를 <클레멘타인>과 <주글래 살래> <제니 주노> 등이 따르는 패턴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아성(?)을 뒤흔들만 하다는 평가를 듣는 영화가 나타났다. 바로 <다세포 소녀>다.
포털사이트 평점게시판을 한번 가보자. 13일 현재 <다세포 소녀>의 네티즌 평균 평점은 10점 만점에 2.00 이다. 독보적인 존재라던 <긴급조치 19호>조차 넘보지 못했던 '1점대 평점'을 기록하던 때도 있었다. 네티즌들은 "새로운 전설이 탄생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다.
이렇듯 네티즌들의 일치한 혹평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초 중인 <다세포 소녀>, 뭐가 문제였을까?
주연 배우의 말 한마디에 무너지다
"비싼 레스토랑에서 밥 먹고 계산할 때 할인카드 내미는 남자가 분위기를 깬다."
영화 홍보를 위해 TV 쇼프로그램에 출연한 주연 여배우가 '최악의 홍보'를 하고 말았다. 마침 '된장녀 논쟁'이 거센 지금 '정치적으로' 해서는 안될 말을 한 것이다. 인터넷에서의 여론 주도 연령층은 10대~20대 남성들이고, '된장녀'라는 단어는 그들의 눈에 곱게 보이지 않던 일부 여성들로부터 비롯된 단어다.
김옥빈의 한마디는 옳고 그름을 떠나 그들에게 명분을 제공하는 꼴이 됐고, 포털 사이트는 더 많은 네티즌을 자 사이트로 끌어들이기 위해 일부 언론의 관련 기사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킨다.
덕분에 <다세포 소녀>는 개봉도 하기 전에 포털 사이트의 영화 코너에서 악평에 시달리게 된다. 바로 이런 식으로.
"엇? <다세포 소녀> 볼 때, 할인카드 사용하려고 했는데 안되겠네요."
"<다세포 소녀> 볼 때 할인카드 쓰면, 김옥빈한테 한대 맞습니다."
그렇다면 개봉 이후의 반응은 어떨까? 앞서 이야기했듯이 한때는 넘볼 수 없는 영역이라던 1점대 평점을 기록했다는 사실, 그리고 네티즌들의 이와 같은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김옥빈이 할인카드 쓰는 남자보는 것보다 더 기분나쁜 영화"
"할인카드로 평점깎자"
"나는 할인카드를 쓰고 봤다. 그래도 돈 아깝다"
일명 '선동렬급 방어율'로 통하던 2점대 초반의 평점은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다.
▲ 평점 코너에서 혹평하는 네티즌들
ⓒ2006 네이버 화면 캡쳐
'논스톱스러운' 캐스팅에 대한 아쉬움
대학생들의 가벼운 에피소드를 다뤘던 시트콤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났던 단점은 출연배우들의 연기력 부족이었다. 연예기획사 측이 시트콤을 '신인배우 홍보의 장'으로 활용하면서, 국어책 읽기에 가까운 대사 처리 실력을 보이던 일부 배우들도 꾸준히 출연했다.
<다세포 소녀>는 김옥빈과 베테랑 조연 배우들, 이켠이나 김별 등의 알려진 연예인들을 제외하고는 연기경력이 부족한 '신인배우'들을 캐스팅한다. 물론 영화의 신선함을 부각시킨다는 의도는 좋았다. 하지만 이 배우들이 한편으로는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함으로써, 설익은 연기에 머무르고 말았다. 어떤 배우는 '꽃미남스러워서' 캐스팅한 것 같았지만 일부 관객은 "느끼해서 지켜보기 겁난다"는 반응도 보인다.
이재용 감독은 일부 관객들이 말하는 그 '느끼함'을 풍자를 위해 활용하지만, '풍자'라는 고도의 수사법에 부응하기에는 아쉽게도 연기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들을 캐스팅한 이 감독보다는 부족한 연기력을 가진 신인배우들에게 더 많은 아쉬움을 느낀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두드리는 신인배우들은 포털 사이트에 시시콜콜한 노출을 하는데에 집중하기보다, 보다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평론가와 네티즌의 '관점의 차이'
평론가들의 반응은 호평에 가깝다. 그들은 <다세포 소녀>를 '실험'으로 규정했고 "한국영화의 영역 확장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점을 평가했다. 이 감독의 용기와 새로운 시도를 호평하는 것이다.
평론가들이 지적하는 아쉬움은 대체로 "더 멀리 나갈 수 있었다"는 것. 하지만 이재용 감독이나 영화제작사 측은 19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을 때의 흥행에 따른 불리함을 먼저 생각한 것 같다. 더 멀리 나가기 위해 필요했을 법한 연출은 제외했고 '논스톱스러운' 설정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결말이 다소 흐지부지하다는 단점이 남았고 '말하려다 만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원작은 어른들의 고정관념에 대한 공격 외에도 "그저 신나게 웃고 즐기라"는 의미도 강한 만화였다. 하지만 영화는 비판의 영역을 원작보다 확대한 경향이 엿보인다. 그런 의도였다면, 사회의 부조리를 독특하면서도 적나라하게 찌르는 방식을 지향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다.
물론 이재용 감독은 '할 수 있는 선'에서 독특한 요소를 추가시키는 모험을 선보였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다세포 소녀>를 오락 영화로 받아들인 대중 관객들을 자극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을 듣는다. 어설프려면 아예 어설프게, 적나라하려면 아예 적나라해야 특정 마니아들의 지지라도 얻을 수 있다.
영화도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너무 많은 것을 단번에 얻으려다 보면 이렇게 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주연배우의 말 한마디에 영화까지 곱지 않게 바라보던 네티즌들이다.
<다세포 소녀>에서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반응
<다세포 소녀>를 통해 또다른 현상을 볼 수 있다. 영화에 대해 혹평한 일부 네티즌들이 호평한 평론가까지 공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세상'에서 주된 공격을 당하는 이들 중 하나는 평론가들이다. 네티즌이 바라보는 평론가는 "뭔가 있어보이는 영화는 무조건 호평하는 존재"이며, "잘난척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한"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대중을 무시하는 존재"라는 것. 네티즌은 그들이 재미를 느끼지 못한 영화를 평론가들이 호평했다는 자체에서 다시 한번 안좋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평론가들도 겸허히 수용해야 할 부분이 있다. 평론을 쓰면서 대중들도 쉽고 편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미덕을 빼놓는 일부 평론가들도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영화든 평론이든, 대중과 함께 감상을 나누고 고민을 나누어야 의미가 깊어진다. 그러다 보니 필자 스스로도 좋은 영화의 기준을 "좋은 느낌을 많은 대중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영화"로 잡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대중'은 장점과 단점을 극단적으로 끌어안고 있는 존재들이다. 집단적인 폭력을 재미삼아 휘두른다는 단점도 있지만, 주류 언론이 다루지 못하는 민감한 이야기들을 꺼리낌없이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들이 영화를 바라볼 때 역시 마찬가지다.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았다는 점이 그들이 이따금씩 무시당하는 계기도 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경우도 많다. 평론가들이 대중과의 괴리를 좁히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그들은 "잘난 척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한 존재"라는 대중의 저주에 시달릴 것이다.
/박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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