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 때 굉장히 똑똑했대요.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는데 혼자 한글을 떼고 버스 창 너머의 간판을 술술 읽고 다녔대요.
이 때부터일지도 몰라요, 제 인생이 박살나기 시작한 건.
전 가부장적인 집안의 첫째입니다.
부모님은, 개도 주인을 보면 꼬리를 흔드는데 너희는 뭐냐고 혼을 냈어요.
자기 집에서 밥을 먹고 자고 하는 동안은 개처럼 아양이라도 떨랬어요.
부모자식관계는...갑과 을이래요.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는 제 성적에 집착했어요.
전교 일등을 하길 원했대요.
전과목 평균 93점을 맞고 왜 95점을 못 넘냐며 혼쭐이 나고 울면서 집 밖에서 친구에게 전화했어요.
친구는 80점을 맞았다고 성적이 올랐다며 엄마에게 양껏 칭찬을 듣고 맛난 저녁을 먹었대요.
그 때부터 전 엄마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린 나는 학교 교과서보다는 책을 좋아했어요. 국어시간엔 늘 다음 지문까지 읽어 오곤 했어요.
내가 좋아서 하던 공부가 점점 하기 싫어졌어요.
중학교 시절, 내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시절은, 특목고 열풍이 불었어요.
엄마는 절 특목고에 보내고 싶어했어요.
매일 밤 열 두시까지 학원에 다녔고, 매일같이 옆 학교 전교 1등과 비교당했습니다.
너는 왜 그렇게 못하냐, 엉덩이가 왜 이렇게 가볍냐, 공부를 하긴 하는 거냐... 칭찬이라고는 한 마디도 듣지 못했던 시절이었네요.
하루는, 비교 제발 하지 말라고 울면서 부탁했어요.
그건 비교가 아니라 너의 발전을 위한 거래요.
또 하루는, 그렇게 비교만 할 거면 날 버리고 그 앨 데려와서 키우라고 울며 소리질렀어요.
그랬더니, 자기도 마음같아선 그러고 싶다고. 너는 왜 그렇게 못 하냐고, 화를 못 참고 소리를 지르며 울어요.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이 시절의 난 내가 인간쓰레기인 줄 알았어요.
누가 뒤에서 웃기만 해도 날 조롱하는 줄만 알았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못 생기고 뚱뚱한 줄 알았어요. (165에 55키로였어요. 엄만 매일 살쪘다고 작작 먹으랬지만)
90점짜리 성적표를 받아들고 망했다고 한창 우울해 있으니
나의 먼 친구가 쟤는 공부도 잘 하면서 매일 못한다고 지랄이냐고 멀리서 그래요.
하지만 이건 못 한 거에요. 가지고 가면 욕과 함께 맞는 점수잖아요.
매질은 당연하달까..있었어요.
교양 있는 어머니를 자처했던 엄마는, 보이는 부위에 멍이 들게 하진 않았어요.
책으로 머리를 때리고, 발로 걷어 차고, 휴대폰을 부수고, 뺨을 치고...마음에 상철 입히고.
으레 청소년 드라마를 보면, 사춘기의 주인공이 부모님과 싸우다 부모님이 뺨을 한 대 치면, 한껏 상처받은 얼굴로 집을 나가잖아요.
주인공이 집에 돌아오면 부모님은 맛있는 식사와 함께 그 땐 내가 미안했어, 하고 사과를 건네죠.
하지만 전 양쪽 뺨을 번갈아가며 몇 대씩 맞을 동안, 뛰쳐나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보지도 못 했어요.
이 때부터였을 거에요, 거짓말이 늘기 시작한 건.
괜찮아, 열심히 하고 있어. 나 공부 중이야.
사실대로 말하면, 손이 날아오니까.
엄마의 말에 네, 네. 엄마 말이 다 맞아요. 내가 틀렸어요. 하고 대답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에요.
반항할 마음조차 들지 않았어요. 꿈틀거리면 더 세게 내 마음이 밟혔으니까.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매일같이 이름 모를 하루에 열 시간을 공부한다던 동갑내기 엄마 친구 딸과 비교를 당했고,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머리를 맞고, 뺨을 맞고. 자존심을 긁히고.
노는 모습만 보면 지잡대(부모님의 표현을 빌립니다)나 가려고 저러나 보다, 하고 핀잔과 조롱을 당했어요.
난, 차라리 나를 포기해 주길 바랬어요.
나에 대해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아 주길 바랬어요.
욕을 하면서 왜 기대를 하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대학을 잘 가니, 자기 덕분에 대학을 잘 간 거래요.
대학 진학 후에 나는 넌지시 질문했어요. 나 어릴 때 참 많이 맞았지, 하고.
그랬더니 공부를 안 해서 때렸대요. 공부를 안 하면 맞는 게 당연하대요...
하지만 난 또 무어라 반박하지 못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2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손을 무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어요.
불안하면 손을 무는 버릇이 생긴다는 건 참으로 맞는 말이에요.
난 엄마아빠와 있으면 불안하니까, 두려우니까.
그랬더니 엄마가 내 손을 보고 너는 정신병 있냐? 불안하냐? 나이먹고 아직도 이러고 있으니 원...이래요.
누구 때문에 내 마음이 병신이 되었는지, 소리라도 지르며 되묻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요.
두려우니까..
어린 시절, 내 쓰레기같았던 학창시절.
패배주의, 낮은 자존감과 갈 곳 없는 외로움에 하염없이 허덕이던 나의 사춘기는,
엄마의 '너는 정말 컴플렉스 덩어리다' 라는 한 마디로 줄여져요.
집에서 도망가고 나만의 인생을 시작하고 싶은데, 이건 또 두렵고 무서워요....저도 이제 패배자가 되어 버렸나봐요.
길고, 어찌 보면 우울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한 마디 위로가 듣고 싶어 글을 써내렸어요.
위로 한 마디만 건네 주시면 안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