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게시판에서 대구에 사는 농부가 고양이를 불태운 사건에 대한 글이 올라와... 약간의 논쟁이 불거졌었습니다.
논쟁 중에 제 의견은 비추를 받았고요.
"생명을 존중하는 나라라면 저 농부는 사형 받을 것이다"라는 취지의 댓글을 단 게 원인이었는데
처음에 화형시킨 사건 자체를 크게 받아들여 충격을 받고 이건 생명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생각해서 순간적으로 그렇게 댓글을 달았습니다. 한 발 떨어져서 생각하니 사형은 과했네요.
근데 제가 충격을 받은 건 고양이를 화형시킨 농부에 대해 두둔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는 겁니다. 대개는 "고양이를 죽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방법이 잘못됐을 뿐이다"부터 시작해서, 심하게는 "화형시켜도 어쩔 수 없지 않느냐"라는 댓글을 단 사람들까지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 글을 씁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생명을 경시하는 사상이 퍼져있었는지.
사건 개요를 보자면...
<고양이가 먼저 농부가 운영하는 목축장에 들어와서 닭들을 잡아가서 먹었고, 농부가 화가 나서 고양이를 포획해 불태웠다>입니다.
농부의 말이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봅시다(물론 농부의 일방적 허위진술일 여지도 있습니다).
충분히 농부의 입장이 이해가 갑니다. 농부한테는 그게 재산의 일부이고, 닭들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생명이 빼앗긴 것이니까요.
사람에 따라서 당황할 수도 있는 일이라 봅니다. 상심이 크겠죠.
하지만 화형이 정말 최선이었을까요.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요.
화형은 생명이 겪을 수 있는 고통 중에 최고의 고통입니다. 영문도 모르고 잡혀서 죽은 고양이는 무슨 죄일까요. 그저 먹고 살기 위해 활동한 죄밖에 없는데요.
먹고 살기 위해 생존 활동을 하고 악의도 없는 동물이 그렇게 죽어야 한다면...
역사상 수많은 가축들을 좁은 곳에 가두고 살상하고 먹어온 우리 인간들은 얼마나 많이 고통스럽게 죽어야 할까요.
사람은 지구상 어떤 동물들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동물들을 사육하고 잡아먹어왔는데요.
자기 재산 뺏어가는 저 동물 나쁘다, 저 동물 잡자라는 것도 철저히 인간 기준의 사고 아닌가요.
애초에 지구는 모두의 것인데 그곳에 일방적으로 구역을 만들고 너 땅 내 땅 만들고 동물들을 몰아낸 게 누구인데요.
최대한 덜 고통스럽고 그나마 인도적인 방법으로(죽이는 것 자체가 인도적이지는 않지만) 보내줬다면 아마 욕을 덜 얻어 먹었을 것 같네요.
이건 최소한의 상식의 문제이고 기본적인 인간성의 문제입니다.
여기에 더해 죽이는 것 자체 또한 문제라고 봅니다.
사람은 지능이 있고 그 지능을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과 그들과의 공존을 위해 쓸 수 있는 생명입니다. 그런 잠재력과 축복을 충분히 잘 활용하지 못하고 이기적인 곳에 쓴다면 얼마나 슬픈 일일까요.
그 지능을 평시에 다른 생명들을 위해 아니 하루만이라도 다른 생명들을 위해 써본다면... 충분히 여타 생명들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나옵니다. 만물의 영장으로서 과하고 넘치게 지구상 가장 많은 특혜를 받아온 생명으로서 최소한 그 노력은 해야지요. 책임감이고요.
고양이가 울타리를 넘어와 가축을 잡았다면... 다음번엔 울타리를 좀 더 튼튼하고 견고하게 만들어 출입을 막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다른 동물들을 공동 양육하여 방어하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일부 발췌 : 동물들을 어울려 살게 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몇해에 걸쳐 동물들을 함께 살도록 실험해보고 나서 서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방목장에서 돼지 똥으로 생겨난 지렁이를 닭이 잡아먹고, 닭은 돼지 몸의 기생충을 잡아준다. 돼지는 여우나 족제비가 닭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아준단다.
아니 그 전에 기본으로 돌아가서... 고양이가 계속 오고 닭을 잡아간다는 건 그 만큼 자연에 먹을 게 없고 허기져서 그런 거니까... 집에서 먹고 남은 음식들이라도 조금씩 나눠주었으면 어땠을까요. 동냥한다 생각하고요.
근래 들어 방역 강도가 매우 세서 곤충들은 거의 절멸되다시피 한 데 덕분에 곤충이 주식 중 하나인 고양이 등 여타 작고날랜 짐승들은 먹을 게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동물들은 북한, 아프리카보다 더한 기아를 일상으로 겪고 있는 셈이죠(물론 북한,아프리카의 기아와 내전도 항시 관심을 갖고 도와야죠).
인간의 편의를 위해 방역을 하고 그 방역으로 곤충들이 절멸하고 그 곤충을 먹고사는 짐승들이 굶주림에 허덕이는 상황.. 그래서 굶주림을 못견뎌 그들 기준에서 지극히 본능적으로 사냥을 하는데 그 사냥마저 눈꼴사납게 보고 죽여야 했을까요. 지구가 인간만을 위한 곳인가요.
그 짐승들을 위해 마음 좀 나눠주었으면 어땠을까요.
고양이를 어떻게 포획한 이후도 방법이 많습니다. 동물보호소에 보낸다든가, 입양을 보낸다든가 하는 방법들이요. 정말 죽여야 했을까요. 죽여야만 분이 풀리고 문제가 해결됐을까요.
인간은 역사적으로 많은 생명들을 죽여왔고, 죽이고 있습니다. 속죄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평시에 동물에 대한 행위가 평시는 물론 유사 시에도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된다고 말하고 싶네요. 중일 전쟁 때 일본군 말단 병사들이 지시받았던 내용이 바로 그겁니다.
2003년 11월 17일 도쿄 고등 재판소 법정에서 곤도 이치라는 83세의 옛 일본군이 행한 증언.
: "우리들은 교육을 통해 중국인은 인간 이하의 인종이라고 세뇌당하여, 중국인을 죽이는 것은 돼지나 닭을 죽이는 것과 같으므로 특별히 죄가 되지 않으며 천황을 위하고 일본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941년9월경 산시 성 북부 항일 근거지로 소탕 작전을 벌이러 갔습니다. 일반적으로 팔로군이 있다는 정보가 들어와서 한 마을로 진격하면 팔로군은 피신합니다. 그러면 그 마을에 들어가 돈과 물자, 의류 등을 약탈하고 숨어 있는 여성을 찾아 몇몇 병사들이 강간을 하는 것입니다. 강간이나 윤간 후에는 죽이는 것이 통례였습니다. 1943년 봄, 산시 성과 허베이 성 사이에 있는 산지에서 소탕 작전을 벌였습니다. 마을의 집들을 부수고 농민들이 살 수 없게 하여 넓은 지역을 무인 지대로 만들었습니다. 부순 집의 벽돌을 이용하여 중국인 남자를 시켜 수십 개의 토치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공사가 끝나면 그 중국인들은 반드시 죽였습니다. ...생략..."
평시에 동물에게 가했던 행동들은 평시와 유사 시에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거죠.
생명을 죽이는 일은 최소화되고, 그 방법도 인도적이어야 합니다. 그게 생명을 위하는 길이고, 사람도 위하는 길입니다.
원글에서 농부는 벌금 20만원을 선고받았다고 합니다. 생명을 잔인하게 죽인 것 치고는 솔직히 너무 솜방망이 판결이다 싶습니다.
과한 판결도 안되지만.. 현재의 사법 판결은 전체적으로 너무 무릅니다. 징역형은 받아야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다양한 의견 중 하나라 받아들여주시길).
마지막으로 제가 현재의 생명관, 동물관을 가지는 데 많은 영향을 준 책의 구절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판단은 보시는 여러분들이 하시고 저는 제시만 하겠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다> 116~117p
(깊고 무거운 목소리)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니라... '선한 삶을 살고 싶다'는 것과 같이, 선한 행동을 유발시킨 그 동기가, 자신이 갈 곳을 결정하게 됩니다... 생명의 파괴는 가장 무서운 테러행동입니다... 하느님이 원하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것... 보존하는 것입니다... 질서 속에서의 죽음이 아닌 것은 범죄요, 죄악입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못된' 곤충들을 굳이, 일부러 죽이려 하지 마십시오... 모든 생명체는 그 나름대로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으며, 그 존재이유가 소멸된 이후라야, 그 이유가 말소된 이후라야 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살이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한 벌레조차도 마음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지고 있는 생명이, 본질적인 존재인 그 생명이 개체적 삶의 존재이유를 충분히 구현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어느 것도 손을 대서는 안 됩니다... (어둡고 슬픈 어조로) 지금, 물질문명의 환경파괴는 이러한 생명의 질서를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과정이며,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환경파괴를 막는 방법은... 지금의 환경운동 방법은 잘못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더 좋은 환경에 살고자 하기 때문에 환경파괴를 막고자 하는 움직임을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환경보호는 생명에 대한 경외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환경이 파괴됨으로써 일어나는 개체적 삶들의 무수한 파괴... 그러한 파괴들을 막으려는 열망이 있을 때에 진정한 환경보호가 이루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누리려고, 더 안전한 삶을 누리려고 좋은 환경을 찾고 좋은 환경을 만들려고 하지만, 이것은 극히 이기적인 행동입니다... 환경보호를 떠나서 생명존중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각 개체가 가지고 있는 생명의 존중과,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침범하지 않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생명의 질서 가운데 내가 순종하고 그 법칙으로 살아나간다는 것입니다... 그 삶이 이루어질 때 인류가 살게 됩니다... 도라는 것, 진리라는 것은 바로 이 사실을 알 때 첫걸음을 떼게 됩니다... '사랑'이란 단어가 보이고, '존경'이라는 단어가 보입니다... 그리고 샤머니즘적, 무속적 상징들... 진리에 대한 출발은 바로 생명에 대한 존경과 존중에서 시작됩니다... 관계의 단절과 파괴, 이것은 각 개체적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오는 일례입니다... 관계의 단절은 그 개체적 삶을 존중할 때만 비로소 회복됩니다... 이상입니다.
<나는 환생을 믿지 않았다> 194~195p , 252~253p
캐서린이 다시 입을 열었을 때에는, 시인 스승의 목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그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어 감격스러웠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자연은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동물들은 조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인간은 그것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파괴합니다. 조화가 없고, 하는 일에 계획이 없습니다. 자연은 다릅니다. 자연은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자연은 에너지이고 생명이며...... 부활입니다. 인간은 그저 파괴합니다. 그들은 자연을 파괴합니다. 인간들은 다른 인간을 파괴합니다. 그들은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게 될 것입니다."
불길한 예언이었다. 항구적인 혼돈과 불안으로 가득 찬 세상, 나는 그날이 곧 오지 않기를 바랐다.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일어날 것입니다. 자연은 살아남습니다. 식물은 살아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남지 못합니다."
"그 멸망을 막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모든 것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 중략 ......
"...... 오늘날 균형과 조화가 무시되고 있지만, 이것들은 지혜의 기반입니다. 모든 것이 과도하게 행해지고 있습니다. 과식으로 몸이 불어납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자신의 뒤를 돌아보거나 남의 모습을 둘러볼 여유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지나치게 천박합니다. 지나치게 마시고, 지나치게 흡연을 하고, 지나치게 흥청대고(또는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지나치게 속빈 말을 하고, 지나치게 걱정을 합니다. 흑백논리가 판을 칩니다. 전부 아니면 전무입니다. 이것은 자연의 방식이 아닙니다.
자연에는 균형이 있습니다. 동물들의 파괴는 지극히 소규모 입니다. 생태계에는 대량 살상이란 없습니다. 식물은 소비되고 다시 자라납니다. 자양분의 샘은 마르기 전에 보충됩니다. 꽃이 구경거리가 되고 열매가 먹히지만, 뿌리는 남아 있습니다.
인류는 균형을 실천하기는커녕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탐욕과 야심이 인류의 안내자였고, 공포가 인류의 조타수였습니다. 계속 이렇게 나아가면 인류는 마침내 스스로를 파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은 살아남습니다. 적어도 식물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
몇 년만에 처음으로 글을 써보네요. 글이 다소 두서가 없더라도 이해해주시고 좋게 바라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