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시대를 통찰한 좋은 기사가 있어 남깁니다.
여성을 증오하는 언어가 인터넷을 뒤덮었습니다. 끔찍한 여성 혐오 범죄인 강남역 살인 사건은 뜬금없이 남녀의 성 대결을 촉발했습니다. 커뮤니티 '메갈리아'를 둘러싼 인터넷상의 논란은 올해 가장 중요한 이슈 가운데 하나로 커졌습니다. 다양한 관점이 있습니다만, 최근 온라인상에서 여성 혐오가 선을 넘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온라인상의 여성 혐오는 일베로 상징되는 '극우 꼴통' 남성에 국한하지도 않습니다. 평소 입으로는 양성 평등을 외치던, 진보연하던 남성까지도 여성 혐오 대열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정의당에서는 몇몇 당원을 중심으로 'Men don’t need a princess(남성은 공주를 원하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인쇄한 티셔츠를 만들어 메갈리아에 대항하자는 주장이 나올 지경입니다.
도대체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요? 사회학을 공부하는 오찬호 박사의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동양북스 펴냄)는 적절한 시기에 한국 남성의 뒤틀린 내면과 그런 내면을 낳은 한국 사회의 구조를 관찰한 책입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개마고원 펴냄), <진격의 대학교>(문학동네 펴냄) 등 내는 책마다 큰 주목을 받은 오 박사가 이번에는 남성에게 메스를 들이댑니다.
이 책에서 오찬호 박사는 한국 남성이 군대를 거치며 몸에 새긴 가부장제를 폭로하고, 여성 인권이 신장되는 현실을 견디지 못하는 그들의 마초성을 고발합니다. 왜 "한국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남자로 산다는 것"이 "무서운 일"인지를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지르는지도 모른 채 불평등한 구조를 재생산하는 남성에게 자각을 촉구합니다.
<프레시안>과 <시사통>이 공동 제작하는 ‘독서통’은 1일 서교동 <시사통> 스튜디오에서 오찬호 박사를 모시고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를 본격적으로 살펴봤습니다.
남성 독자 여러분, 화난다고 무조건 욕부터 하지 말고, 한번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시면 어떨까요?
한국의 권위적 남성성은 어디서 왔을까
김종배 : 독서통 시간입니다. 이번 주는 어떤 책이죠?
강양구 : 참으로 시의 적절하게 나온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가 오늘 이야기할 책입니다. 제목부터 눈에 들어왔습니다만, 저자 이름을 확인하고서 바로 꼽았어요. 사회학을 공부한 오찬호 박사가 저자인데, 이 분의 전작이 화제였었죠.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진격의 대학교>가 모두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는 여성 혐오 논란의 한가운데에서 저자가 낸 새 책입니다.
김종배 : 부제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카리스마, 대한민국 남자 분석서"로군요. 벌써부터 발가벗겨지는 기분입니다. 저자 오찬호 박사를 모셨습니다.
오찬호 : 안녕하십니까.
김종배 : 총평부터 들어가 보죠. 이 책을 쓰신 이유가 뭡니까?
오찬호 : 같은 자본주의 사회인데도 (북유럽처럼) 좀 더 평등한 사회가 있고, 우리나라처럼 좀 더 불평등한 사회가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생물학적 차이를 비롯한 남녀 차이는 어느 사회에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다른 사회에 비해서 이 차이에 기반을 둔 차별이 굉장히 심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심한 남녀 차별을 낳은 이유를 찾아봐야겠죠. 이 책은 바로 그 이유를 찾아보려는 나름의 시도입니다.
강양구 : '한국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책이라고 정리하면 되겠군요.
오찬호 : 네.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압축 경제 성장 과정에서 특정한 형태의 남성성이 경제 성장의 동력처럼 취급되었어요. 그리고 이런 남성성이 스테레오 타입이 되면서 사회가 권장하는 형태로 굳었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이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잘못된 점을 개선할 기회도 갖지 못했습니다.
한국 사회가 권장하는 남성성을 가질수록, 그러니까 남성일수록 좋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고, 이 과정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약해지면서 지금과 같은 남녀 차별이 고착화되었죠.
김종배 : 본격적으로 책 얘기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만 짚겠습니다. 책에서는 아예 언급을 안 하셨습니다만, 한국 남성의 가부장적인 모습이 유교 문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는 곧바로 이런 반론이 가능하죠. 유교의 본고장인 중국 남성은 한국 남성만큼 가부장적이지 않은데 그건 어떻게 설명한 건가, 이런 식으로요. 어떤 의견이십니까?
오찬호 : 유교 문화 같은 전통에서 유래한 변수도 사회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겠죠. 하지만 이는 한국 남성을 설명하는 (결정적이지 않은)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왜 그런 가부장적인 남성성이 (중국과 달리) 압축 성장기에 전형적인 남성성으로 권장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폭력적 남성 미화하는 군대
강양구 : 이제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를 해보죠. 이 책을 보면, 한국의 남성성을 만드는 중요한 관문으로 군대를 꼽았어요. 왜 군대가 문제입니까?
오찬호 : 군대 제도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군대는 굉장히 특수한 사회 집단입니다. 그래서 군대에서만 통용되는 독특한 사고방식이 그 안에서는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걸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문제는 그 '군대 사고방식'이 군대를 나온 후에도, 군대 밖의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한다는 겁니다. 한국 사회가 군인 습성을 체화한 사람을 원하니까요.
김종배 : 대기업이 신입사원을 데리고 군사 훈련과 같은 극기 훈련을 시키거나, 청소년을 해병대 체험캠프에 보내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그 연장선상에 놓인 일이죠.
오찬호 : 맞습니다. 물론 군대에서 배운 게 어떤 사람에게는 긍정적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군대에서 나침반으로 길 찾는 법을 배운 걸 써먹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부정적인 효과도 큽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문제를 남에게 알리지 말라'는 군대의 폐쇄성이 내부 고발자를 나쁘게 보는 사고방식으로 이어지고, 군대 밖 사회에 영향을 줍니다.
강양구 : 이 대목에서 이런 의문도 듭니다. 한국 남자들이 군대를 정말 싫어하잖아요. 어떻게든 입대를 피해 보려고 노력하는 남자도 많고요. 그런데 그렇게 싫어하는 군대를 타인, 예를 들어 여자가 욕하면 이를 바득바득 갑니다. 이런 모순된 반응은 어디서 유래한 걸까요? 오찬호 : 한국 사회에서 군대는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이나 '성장하는 과정'으로 미화됩니다. 군 생활 자체는 아주 부정적인 기억이죠. 그런데 군대를 나와서 사회에 진출하면, 군대 사고방식이 유효하게 작동한다는 걸 체감합니다. 당장 대학생이 후배를 고문하는 황당한 일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그러니 군대의 기억을 미화합니다. 따라서 지금의 자신을 만든 군대를 부정하면, 자기 존재 자체가 부정된다고 여기죠.
김종배 : 이런 의문도 있습니다. 사회에 뿌리내린 군대 문화 가운데 대표적인 게 회사의 상명하복 문화입니다. 그런데 상명하복 문화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오찬호 : 사회학에서 '오십 보 백 보'는 거기서 거기가 아닙니다. 오십 보와 백 보는 두 배 차이죠. 당연히 기업 집단이 갖는 특유의 상명하복 문화가 있습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유럽이든 마찬가지죠. 그런데 부당한 일이 발생했을 때, 그 상명하복 문화를 극복하고 "아니오"라고 반응할 수 있는지는 나라마다 다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상명하복 문화가 깨질 수 있다면, 그야말로 민주적인 사회겠죠. 부당한 일이 발생했을 때, 상사와 부하의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관계에서 잘잘못을 따져보는 문화가 존재하는 곳과 우리나라처럼 모든 경우에 상명하복이 적용되는 곳은 분명히 다릅니다. 한국의 상명하복 문화를 특수한 상황으로 봐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죠.
사람마다 약간은 다르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남자들은 '폭력을 참아가면서', '수치심을 느끼면서' 남성이 되어간다. 그래서 한국에서 말하는 '진짜 남자'는 폭력에 둔감하다. 둔감하다는 것은 쌍방향이다. 폭력을 당해도 당하는 줄 모르고, 저질러도 그게 자꾸만 폭력이 아니라 한다. (…) 이렇게 사회화된 남자들은 성인이 된 후 대학에, 군대에, 직장에 모인다. 태초에는 평범했던 남자들이 한국 사회 안에서, '한국의 문화'라는 이름으로 둔갑한 비상식적인 폭력들을 자연스레 접하고 그 안에서 호흡하다 보니, 어느새 파도가 되듯 '어떤 남자'로 변해, 자신이 '당했던' 폭력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행사하게 된다. (115쪽)
한국 사회 자체가 남녀 차별 구조
김종배 : 이제 본격적으로 핵심 주제로 들어가 봅시다. 당장 우리가 이야기한 회사 문화를 두고 '나는 그렇게 가부장적이지 않다' '나는 마초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남성이 많을 거예요.
강양구 : 여성 혐오 논란을 놓고도 '나는 다른 남자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을 거예요. 이와 관련해서 책에서 인상적인 일화를 하나 언급하셨죠?
오찬호 : 한국 남성은 기본적으로 성 차별 구조에서 자유롭지 않아요. 저부터가 그렇습니다. 제가 양성 평등을 지향하면서 살아가려고 해도 현실은 어떻습니까? 한국 사회에서는 아내보다 남성인 제가 돈을 버는 데 집중하는 게 유리합니다. 경제적인 부분을 저한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아내를 비롯한 다른 가족 구성원은 돈 벌어오는 제 눈치를 볼 수밖에 없죠. 한국 사회의 대다수 가정이 이렇습니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기울기 자체가 평등하지 않습니다.
강양구 : 한국 사회는 남성이 가부정적으로 살도록 강요한다는 말씀이죠?
오찬호 : 네, 그 구조 안에서 개인마다 폭력의 수위를 줄일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근본적으로 한국 사회의 모든 남자는 가부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다른 패널이 '당신이 가정에서 매우 권위적인 모양이다' '요즘 한국의 남녀 관계는 평등하다'고 비판하시더군요. 착각이죠. '경단녀'라는 표현은 있어도 '경단남'이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경력 단절은 여성에게 일어나는 게 사실이죠. 이런 사회를 도대체 어떻게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나요?
예를 하나 더 들어 보죠. 지금은 방학, 또 휴가 기간이라 어린이집도 쉽니다. 학원도 쉽니다. 저는 이 방송 녹음을 위해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집에 아이 둘이 있어요. 누군가는 어린이집에 안 가는 아이 곁에 있어야 합니다. 당연히 그 책임은 엄마의 몫이죠. 저는 미안함만 갖고 나오는 겁니다.
가사 분담 좋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아빠, 엄마 둘 가운데 하나가 일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 순간 수많은 여성이 (남성 대신) 경력을 포기합니다. '요즘 어떤 남편이 아내를 팹니까?' 이런 얘기는 중요하지 않아요. 남자인지 여성인지에 따라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다른데, 이걸 어찌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나요?
물론 어떤 남성의 말이나 행동이 가부장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회가 가부장적이라면, 그도 가부장적인 구조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김종배 : 요즘 제 주위를 보면, 요일을 정해서 특정 요일에는 남성이 육아를 전담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남성이 육아 휴직을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찬호 : 과거보다 좀 더 나은 유의미한 변화죠. 하지만, 남성 전체로 볼 때는 아직 아주 미흡합니다. 전체 남성 가운데 육아 휴직을 쓰는 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될까요? 여전히 대다수 남성은 육아 휴직을 쓸 생각도 하지 않거나, 혹은 그런 마음이 있더라도 조직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아직 한국 사회는 여성이 가족을 위해서 일방적으로 희생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가정에서부터 차별의식 내면화한 한국 남성
김종배 : 사회적 육아가 이뤄진다면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만약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는다면, 경력 단절 문제는 성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 문제 아닐까요?
오찬호 : 100% 공감합니다. 지금의 남녀 차별 논쟁을 그렇게 생산적인 방향으로 흐르도록 하자는 겁니다. 이런 연결이 이뤄지지 않으니 (남녀 관계를 논하는) 일상에서는 어그러진 개인의 모습만 두드러집니다.
강양구 : 사회가 그렇게 흘러가기 위해서라도 시민의 양성 평등 의식이 고양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최근의 메갈리아를 둘러싼 논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대다수 남성은 자신은 여성 혐오와는 관련이 없는 억울한 자라는 인식이 있는 듯합니다. '나는 아닌데…'라는 거죠. 앞에서도 구조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를 했습니다만.
오찬호 : 제가 서울 강동구에 사는데, 몇 달 전 멧돼지 일곱 마리가 나타났어요. 아침 산책하다 그 가운데 한 마리를 봤어요. 저한테 달려오더라고요. 얼마나 놀랐겠어요?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죠. 그 뒤로는 청설모 한 마리만 봐도 깜짝 놀라게 되더군요. 이걸 두고 "전체 동물이 다 그런 것 아닌데 왜 그리 호들갑이냐"고 할 수 있을까요?
여성 혐오 분위기 속에서 소수 남성의 극단적인 폭력 행위 때문에 수많은 여성이 평범한 남성에게도 일상적인 공포심을 가진다는 걸 인지해야죠. 한국 남성은 "나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지 말라"고 대꾸하기 전에, 한국 여성이 남성 일반에 공포심을 갖게 된 계기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성찰해봐야 한다는 겁니다.
기왕 얘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양성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이 지금 우리 사회를 "남자가 살기 좋은 사회"라고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여자가 너무 살기 힘든 사회",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배제되는 사회"라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남자도 살기 힘들지만, 여자는 더 살기 힘들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양성 평등을 얘기한다고 해서,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안고 있는 여러 사회 문제를 외면하자는 게 아니에요. 그건 그것대로 또 해결해야죠.
김종배 : 대체로 30대가 넘어가면서 결혼하면, 대개의 남성이 입에 달고 사는 이야기가 "내가 밖에서 얼마나 고생하는 줄 아느냐"입니다. 그런데, 20대 남성은 사회적 위치가 다릅니다. 특히 대학생이라면 아직 사회생활에서 오는 남녀 차별을 몸으로 체득하지도 않았죠. 어떻습니까? 교육 현장에서 접한 20대의 성 차별 의식은 기성세대보다 조금 덜합니까?
오찬호 : '사회화'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본인이 직접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간접 경험을 수없이 하면서 사람의 인지 구조가 달라집니다. 그런 점에서 20대 남성도 기성세대와 다르지 않아요. 이 대목에서 부모 자식 관계가 중요합니다. 젊은 남성은 아버지의 행동을 간접 경험하면서 자라기 마련이죠.
'가족을 위한 헌신'으로 포장되어 가부장적인 사고방식과 문제 행동마저도 정당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란 젊은 남성은 그런 아버지의 잘못된 사고방식과 문제 행동을 그대로 체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폭력을 정당화하는 헌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바로 이런 폭력을 정당화합니다.
예전에는 성장기 가정이나 학교에서 사회화한 나쁜 행동을 대학 생활을 하면서 깰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대학은 그렇지 않아요. 이제 대학의 목적은 기업이 좋아하는 사람 만드는 게 전부죠. 그래서 병영 캠프를 가는 고등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한국 남성은 비틀린 남성성을 성찰할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합니다.
한국 남성은 예부터 여성을 혐오했다
김종배 : 여성 혐오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해서 뜨겁습니다. 이런 현상의 배경을 어떻게 보십니까?
오찬호 : 상사에게 일 못한다고 지적 받았어요. 남자 상사라면 '저 인간 왜 저래?'하고 반응할 일을, 여성 상사에게 당한다면 당하는 남자의 분노가 커집니다. 이런 현상이 바로 여성 혐오입니다. 그렇다면, 여성 혐오가 왜 새삼 이렇게 공론화되고 있을까요? 예전에는 여성 혐오가 없었을까요?
예전에는 남성이 여성 위에 군림했기 때문에, 굳이 여성 혐오를 드러낼 이유가 없었습니다. 예전에 직장에서 여성은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문서 정리하고, 커피 타오는 일이 여성의 몫이었죠. 그 때 남성은 여성을 혐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길 수 있었죠. 어차피 남성은 여성 위에 있으니까요.
강양구 : 지금 여성 혐오가 이렇게 두드러지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불안정성이 커지는 가운데, 여성의 지위가 예전보다 오르면서 생긴 현상일 수도 있겠어요.
오찬호 : 네, 맞습니다. 옛날 남성이 요즘 남성보다 도덕적으로 뛰어나서 당시에 여성 혐오가 없었던 게 아닙니다. 일상에서 남성이 여성 위에 군림하고 있었기에, 굳이 혐오를 드러낼 이유가 없었을 뿐이죠. (물론 그 때도 수많은 성폭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자인 줄 알았던 여성 일부가 자신과 동급, 혹은 위에 존재할 때 혐오를 드러내게 된 것이죠.
여자가 운전을 못할 때 종종, 아니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김 여사' 이미지는 남자들의 대표적인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 우리가 던질 질문은 단 하나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여성의 운전 실력이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낮으니' 그런 식의 조롱과 멸시가 타당하단 말인가? 운전을 '짜증나게 하는 사람'을 그렇게 대해도 된다는 말인가? (…) 이 사회는 '사상자가 발생하는' 그 끔찍한 사건을 목격하면서도 그런 경우 운전자의 대부분이 남자라는 객관적 사실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건 운전자가 '남자라서가'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이 운전을 잘못한 경우라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주차를 이상하게 한' 차량의 운전자가 '여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이라는 종의 문제로 치부된다. (133쪽)
강양구 : 이런 대목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미국이나 유럽에서 여권이 향상되기 시작한 때가 1960년대부터입니다. 당시는 경제 전체가 성장하는 시기였죠. 남성도 살 만하고, 여성도 덩달아 사회 진출이 활발했습니다. 파이가 커지는 때였죠. 그런데 지금의 한국 사회는 파이가 줄어드는 때잖아요. 바로 이때에 여권이 향상되면서 이런 갈등이 더 증폭되는 건 아닐까요?
오찬호 : 그렇게 볼 수 있죠. 하지만 여권 향상을 과대평가하는 건 곤란합니다. 많은 사람이 전자(여성 지위 향상)를 보고 후자(여성 배려 정책)에 관해 '역차별'이라고 합니다. 왜 평등해졌는데 여성만 배려하느냐고 말이죠.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의 양성 평등 수준은 턱없이 낮습니다. 좀 더 많은 여성 배려 정책이 필요하죠.
남성이여, 자기 검열부터
김종배 : 최근의 논란을 보면 남성 대 여성의 성 대결 양상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런 대립 구도가 바람직하다고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고 봅니다. 어디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까요?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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