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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제주도 서귀포시 천지연폭포 진입도로변에서는 시멘트 보도블럭을 삼나무 널빤지로 교체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미 시내 인도 11㎞가 나뭇길로 바뀌었다. 나무인도는 충격을 흡수해 걷기가 한결 부드러울 뿐더러 여름철 열기를 막아주고 빗물을 머금어 땅에 습기를 제공한다. 이끼 낀 널 사이로 풀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관광도시 이미지 높이기”
왕복 4차선 이상 도로에는 중앙분리대를 설치해 워싱턴야자수와 잔디를 심었다. 사고를 막고 녹지를 늘리기 위해서다. 먼나무, 담팔수나무 등 난대림으로 이뤄진 가로수 약 2만그루에는 일일이 고유번호를 부여해 전산관리한다.
천지연폭포 상류 계곡의 변신은 놀랍다. 몇년 전만 해도 비닐하우스와 버려진 공장 터로 어수선하던 서홍동 일대를 180억원을 들여 수생식물 관찰원 등이 들어선 걸매생태공원으로 조성하는 사업이 마무리 단계다. 천지연 계곡 위에 위태롭게 들어서 있던 호텔과 건물 97동을 사들여 허물고 그 자리에 공원을 만들었다. 지난해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계곡 상류의 솜반천에는 은어와 참게가 돌아왔다.
서귀포시가 생태도시 만들기에 나섰다. 지난해에는 스스로 ‘생태도시’라고 선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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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주 서귀포 시장은 그 목적이 “관광도시로서의 이미지를 더욱 높이는 것”임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 29~30일 서귀포시가 한겨레신문사, 환경운동연합과 함께 ‘생태도시 국제포럼을 주최한 주된 이유도 시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생태도시로 만들려는 데 있었다.
서귀포시는 인구 8만의 작은 도시이지만 하수처리율 91%, 빗물과 오수 분리율 74% 등 환경기초시설이 전국 평균을 훨씬 웃돈다. 무엇보다 자연여건이 빼어나다. 유네스코는 2002년 한라산을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하면서 핵심구역에 공원 밖의 서귀포시내를 가로지르는 효돈천과 해안의 범섬·문섬·섶섬 등 3개 섬을 포함시켰다. 특히 한라산 정상에서 바다에 이르기까지 20㎞ 길이의 효돈천은 고산초원부터 침엽수, 낙엽수, 상록난대림에 이르는 생물다양성의 보고다. 또 호근동 하논 일대는 5만~7만6천년 전에 형성된 바닥면적 약 7만평의 국내 최대 분화구로서 이곳 습지에 쌓인 이탄층은 ‘생태학적 타임캡슐’로 주목된다. 시는 하논 일대 17만여평을 생태숲으로 복원할 계획이다.
이번 국제포럼에 참석한 생태도시 전문가들은 이런 서귀포시의 빼어난 자연조건과 지자체의 노력을 평가하면서도 미래 세대까지 고려한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든다는 점에서 부족한 점들을 지적했다. 무엇보다 자동차가 시원스레 달릴 수 있도록 뚫어놓은 도로가 도마에 올랐다. 생태도시 이론의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 에코시티 빌더의 리처드 레지스터는 “보행자가 아닌 자동차를 기반으로 해서 생태도시는 결코 만들 수 없다”고 말했다. 걸매생태공원을 둘러본 브루스 푸리듀 오스트레일리아 제임스쿡대학 교수는 “인위적 시설이 너무 많고 잔디를 깎아 새나 곤충의 서식지로 부적합한 것 같다”며 “야생동물이 아닌 사람 위주로 만들어졌다”고 꼬집었다.
“인위적 시설 많다” 비판도
양병이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친환경적인 사업을 한 두가지 도시정책에 반영하고 생태도시라고 내세우는 사례가 있다”며 “시민들도 물리적인 환경과 시설을 갖추는데 그치지 말고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삶의 방식을 생태적으로 바꾸는 의식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특히 생태적 이념과 요소가 풍부한 한국의 전통도시관을 서구의 생태도시 개념에 접목시키자는 제안을 해 눈길을 끌었다.
환경단체들은 생태도시를 만든다면서 골프장이나 호텔 등이 포함된 대규모 관광단지를 건설하는데 의문을 표시했다. 김경훈 서귀포환경의 제21협의회 부의장은 “서귀포 생태도시 조성은 이제 시작단계”라며 “시를 이루는 46개 마을을 저마다 특성 있게 생태마을로 만들고 생태관광지 조성도 기존 취락지에 숙박시설과 안내센터 등을 설치해 지역주민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상주 서귀포시장
“환경보전 위해서도 돈벌이 해야”
강상주 서귀포시장은 지난해 생태도시 선언을 하기에는 4년 이상 준비가 필요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국제포럼을 연 이유는 그 동안의 성과를 평가하고 어떤 철학을 가져야 하는지 전문가로부터 조언을 듣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가 추구하는 서귀포의 미래상은 외국의 어느 도시와 비슷할까. 강 시장은 “일본 하코네 습지, 독일 분화구 도시, 미국 산타바바라 생태관광도시 등 분야별로 벤치마킹했다”고 밝혔다.
그의 수첩은 외국에 여행했을 때마다 현장에서 보고 느낀 기록들로 빼곡하다. 가로수의 생존률을 높이기 위해 공기관을 설치한 것이나 제주산 화산암을 깎아 다리 난간을 만든 것 등은 그가 내놓은 아이디어다.
그의 가장 큰 고민은 “먹고 사는 문제”다. 곧 생태도시와 경제발전을 양립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교육과 일자리가 뒷받침되지 않는 생태도시는 공허하다. 해마다 800명이 서귀포를 떠난다. 그래서 나온 방안이 중문관광단지와 비슷한 제 2의 대규모 관광단지를 짓는 것이다. “생태관광을 위한 단지가 아닌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다른 곳의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서도 돈벌이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국제포럼차 서귀포 온 켄워시 교수
“서귀포 도로정책 재고해야”
이번 국제포럼 참가자인 오스트레일리아 머독대 제프리 켄워시 교수는 후자 쪽에 손을 들었다. 그는 ‘지속가능한 도시개발을 위한 10가지 핵심요인’이란 주제발표에서 대중교통과 고밀도개발, 도심 활성화 등을 통해 생태도시를 이룩하려는 움직임이 세계적으로 활발하다고 소개했다.
저밀도 개발은 무엇보다 자동차 의존이 심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고밀도 개발이라도 미국의 시카고, 덴버,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처럼 도로와 주차장이 도시를 차지하도록 내버려두면 곤란하다고 그는 지적했다. 도심까지 철도를 이용해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역 근처에 쇼핑센터, 영화관 등 편의시설을 집중 배치하는 것이 핵심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퍼스, 캐나다 뱅쿠버의 팔스 크릭 같은 도시는 이렇게 만들었다.
그는 “넓은 도로와 위험한 교차로를 위주로 짜인 서귀포의 도로정책은 재고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수준 높은 생활을 유지하는데 꼭 자동차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많은 도시들이 보여주고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독일 뉘른베르크에서는 도심의 차로를 보행로로 바꾼 뒤 교통수요의 71%가 아예 사라졌다. 도로를 없애면 교통도 없어진다.
생태도시에 필요한 식량은 도시 자체와 인접지역에서 생산해야 한다. 헬싱키에서는 도심에서 적지 않은 양의 꽃과 채소를 생산한다. 차량통행 속도를 줄이기 위해 도로를 구불구불하게 만들고 그 자투리 땅을 밭으로 만든 곳도 있다.
생태도시는 환경적 측면뿐 아니라 경제적·사회적·문화적으로도 지속가능해야 한다. 고용·수입·교육·주거·여가활동·경관·공동체의식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그는 이를 위해 생태도시의 미래를 정하는 계획을 소수 행정가의 손에 맡기지 말고 모든 시민이 토론해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도시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낳는 것은 논쟁과 결정”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서귀포/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mail protected] 사진 이종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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