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돌이는 제가 2년전부터 지켜봐오던 아이입니다.
동네 서열 1위로 영역을 지키기 위해
평생 싸움을 해왔기 때문에
얼굴은 항상 상처 투성이로 부어 있었고
딱지가 없는 날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언젠가 저 놈이 서열에서 밀릴 때가 되면 데려와야겠다
라고 항상 생각해 왔습니다.
서열 1위의 삶은 적당히 꼬봉(일본어 죄송..)
노릇 하는 녀석보다 더 고달픕니다.
이제 막 엄마 품을 벗어난 혈기 왕성한 수컷들로부터
항상 도전을 받아야 하고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할 경우
그 끝은 비참한 죽음 밖에 없습니다.
지난 겨울 양돌이가 갑자기 보이지 않았습니다...
추측하기로는 4~5살
길냥이로는 꽤 오래 산 편이고
한살 두살 젊은 수컷을 이기기에는 늙은 편이지요.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 때 양돌이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얼굴에 더 많은 상처와 심하게 뜯겨 목덜미가 너덜너덜해져
힘겹게 다시 자신의 영역으로 말입니다.
이제 그만해야 할 때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양돌이를 잡아서 병원으로 갔습니다.
상처가 나고 딱지가 앉고 그 위에 다시 상처가 생기는 과정을 끝없이 반복했던지라
양돌이의 피부는 기형적으로 두꺼워져 있어서
목 부위 상처를 당길 피부가 모질라 힘들게 수술을 끝냈습니다.
얼굴에 곰팡이 피부병까지 있어서
곰팡이 피부병이 완치가 되면 퇴원하기로 했습니다.
퇴원 이틀전, 몇년 묵은 때를 벗기기 위해
목욕 스케줄을 잡고 가벼운 진정제를 놓았습니다.
진정제를 놓은 김에 몇가지 추가 혈액 검사를 했는데
FIV (고양이 면역 결핍 바이러스)
즉 고양이 에이즈 양성 반응이 떴습니다.
수의사 의견으로는 전염된지 약 6개월 전후라고 합니다.
아마도 겨울동안 빼앗긴 영역을 되찾기 위해
필사의 싸움을 하는 동안 전염되었겠지요.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과거를 후회하는 말자
이게 저의 신념입니다.
하지만 6개월이 너무나 아쉽습니다.
6개월만 미리 서둘렀더라면...
길에서 험하고 험한 생활을 한 이 아이에게
과거를 추억으로 회상하며 지낼 수 있는 평생을 줄 수 있었는데...
그저 아쉽고 아쉽습니다.
예전에는 (사람이든 고양이든) 에이즈는 같이 붙어 있기만 해도
전염된다는 인식이 잘못된 병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혈액의 직접적인 접촉으로
감염된다는 좀 더 정확한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게다가 FIV는 인간이나 개에게 전염되지 않습니다.
오직 고양이가 고양이에게만 옮기는 것이며
심지어 혈액이 직접적으로 접촉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타액으로도 전염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래서 양돌이는 고양이가 있는 곳에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때믄에 양돌이는 제가 키울 목적으로 데려왔지만
양돌이는 우리집으로 올 수가 없습니다.)
FIV는 매우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에 향후 몇년간 양돌이는 무증상으로 지낼겁니다.
이제 양돌이가 편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가장 좋은 방법은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분이 양돌이만 외동으로 키워주시는 겁니다.
양돌이는 개들보다 애교가 넘치는 친구입니다.
(그래서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람과 항상 같이 있을려고 합니다.
영상에 대화 내용이 녹음되어 있는데
떠나는 님 다리를 붙잡아서라도
같이 있을려고 하는 정도이죠.
마치 강아지들처럼 안기고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를 키워보고 싶으신 분
안 계실까요?
저도 압니다.
4~5살 어리지 않은 나이에 병까지 있는 못생긴 고양이가
새로운 주인을 만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는 것
하지만 제로에 가깝지만 제로는 아닐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로또 맞을 확률이 번개 맞을 확률의 1/10이라던데
일주일에 몇명씩 로또에 당첨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도 소수점 이하의 확률이지만 그 확률에 기대해보자 합니다.
강아지보다 더 강아지 같은 덩치 큰 노랑둥이에 관심 있으신 분 안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