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제 왔는가? 어서 들어오게."
"네. 여기가 박사님께서 말씀하신 그 연구실인가요?"
"그렇다네. 아늑하지?"
"창문도 하나없이 밀폐된 곳을 아늑하다고 표현한다면 이 곳은 심할 정도로 아늑하네요."
"아무래도 개인 비용으로 연구하다보니 티비에서 나오는 것처럼 멋지게 장식할수가 없어서 그렇다네."
"그것 참 불안한 소리군요."
"아 물론 조건을 완수할 시 주겠다던 금액 천만원은 줄 수 있으니 걱정말게나."
"글쎄요..뭐 일단 믿어보죠.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요. 그냥 박사님이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이 연구소를 나가기만 하면 되는거죠?"
"그렇지. 간단한 일 아닌가?"
"간단하죠. 자 그러면 시작해볼까요?"
"그리 서두르지 않아도 되네.껄껄."
박사라고 불리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짐작조차 되지않는 누우런색 가운을 입은 노인은
연구실 한켠에 마련되어있던 조그마한 훈증기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청년은 그러한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시선을 부담스럽게 느꼈는지
노인이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아, 신경쓰지말게. 아까부터 허브향이 좀 강하게 나는걸 느꼈나 혹시?"
청년은 노인의 말을 듣고는 코를 킁킁대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처음에는 청년의 표정이
잠시 찌푸려지는 듯 했으나, 노인이 재차 허브향에 대해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네. 향기가 나는 것도 같네요."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인은 껄껄대며 웃더니 훈증기를 끄고는 청년의 앞에 놓여있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청년은 조심스럽게 노인의 앞 쪽에 자리잡았다.
"자,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그러세요."
"흐음..보자..뭐부터 이야기를 해야할까..."
노인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무언가를 생각하려고 애쓰는 듯 양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한 노인을
바라보던 청년은 '안그래도 주름이 많은 노인이 고생하는군.'이라고 생각하며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한 청년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인은 가뭄이 든 논처럼 갈라진 이마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끄응~하는 신음소리를 몇번 낸 뒤에 손바닥을 가볍게 탁! 치고는 청년을 바라보며 웃음지었다.
"그래. 이 이야기부터 하는게 적당하겠군. 자네 아마존이란 걸 아나?"
청년이 기가 차다는 듯 노인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박사님. 저도 어엿한 대학생입니다. 하물며 어린 꼬마들도 다 아는 아마존을 모를까봐요."
노인은 그런 청년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 그의 두 눈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말을 이었다.
"그래그래. 이건 그 아마존에 사는 원주민에 대한 이야기일세."
"시작하시죠."
노인은 꽤나 긴 이야기를 시작할 것처럼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를 빠뜨렸는지
책상을 살짝 퉁!치고서는 청년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이구야 내 정신좀 봐. 물어볼 걸 깜박했구만. 자네. 자네는 자네가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가?
그저 세상살이에 찌들어서 남들이 말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으며, 사색따위는 일주일마다 시행하는
분리수거통에 함께 가져다버린 자네의 친구들과는 다르게 말일세."
청년은 '이봐 난 대학생이라고. 날 무시하는거야?'라고 생각하며 노인을 흘겨보았지만, 그러한 청년을
아랑곳하지않고 웃음짓고 있는 노인이 괘씸하다는 듯이 툭 내뱉었다.
"전 이래뵈도 서울에서 이름난 대학교에 다니는, 그것도 수석으로 입학한 대학생입니다. 최소한 하루하루를
생각없이 사는 도시인들보다는 훨씬 이성적이라고 자부하죠."
청년의 대답이 끝나자, 노인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허옇게 새어버린 자신의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껄껄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한번 긴 숨을 들이마셨다.
"역시~ 내가 제대로 찾았구만 그래. 그러면 이야기를 시작하지. 아마존에 대해 아냐고는 아까 물었지?"
"네."
"이 이야기는 아마존의 한 원주민들에 관한 이야기라네."
"그것도 말씀하셨습니다."
"껄껄. 그렇구만. 내가 요즘 노망이 드는지 기억이 깜박깜박하다네. 그 부족은 말일세. 지금까지 한번도
문명의 이기를 접해보지 못한, 그야말로 '원시인'과 다름없는 미개한 민족이었다네. 왜 만화책에서 보면
나오는, 원숭이를 닮았고 옷가지 한올 걸치지않은 그런 '원시인'말일세."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같은?"
"그렇지. 거의 그 수준이었지. 그러던 어느날 말일세. 그 원주민들에게 한 무리의 '현대인'들이 찾아갔다네.
'현대인'들은 아직도 선사시대를 벗어나지못한 그들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지."
말을 마친 노인은 마치 반응을 기대한다는 듯이 청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그 눈빛이 심히 부담스러웠는지
청년은 아~하는 탄성을 살짝 내뱉었다. 노인은 그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살짝 미소지은 후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 원주민들에게 문명의 이기를 전해주었지. 말하는 법부터 시작해서 도구를 쓰는 법, 불을 사용하는
법, 옷을 만들어서 입는 법까지 말일세. 그들을 완벽하게 '사회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인거지."
"이유는 뭐죠?"
"생각해보게. 21세기와 공존하는 선사시대. 그들에게는 충분히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나?"
"...확실히 그렇군요."
"껄껄. 내가 어디까지 말했지? 아아~ 그렇군. 그렇게 몇 십년이 지나자 그들은 금새 '현대인'들처럼
옷을 입고, 말을 하고, 사회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더군. 그들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거지.
그런데 이 도중에 '현대인'들은 엄청난 사실을 발견하고 말았던거야."
노인은 말을 멈추고는 갑자기 콜록콜록~!대며 주머니에 들어있던 마스크를 꺼내서 쓰기 시작했다.
청년이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자, 노인은 그제서야 "천식이 심해서."라고 말했다. 청년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고, 노인은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 엄청난 사실이 뭐라고 생각하나?"
"...글쎄요..잘 모르겠습니다."
"이봐. 자네는 아까 자네가 이성적이라고 하지 않았나? 내가 보기엔 그저 천만원에 눈이 멀어서 노인봉사에
참여한 대학생들과 다를바가 없다고 보여지는군."
가벼운 노인의 도발에 청년은 노인을 째려본 뒤에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잠시 뒤에
청년은 노인을 향해 득의만연한 미소를 띄우며 물었다.
"아무래도 원주민들이 '현대인'들을 처음 보았을 때 느낀 무언가를 말한 것 같은데요?"
청년의 대답에 노인은 예상 외라는 듯이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고는, 금새 콜록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역시 내가 사람을 잘 본 것같구만! 바로 그걸세!! 원주민들이 말한 대답은 실로 충격적인 것이었지.
그때까지 인간의 오감과 이성, 그리고 뇌의 인식을 최고로 여기고있었던 그들에게 말일세."
"그들이 뭐라고 했죠?"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더군. '당신들이 처음 말을 타고 우리에게 왔을 때, 우리는 당신들이 네 발이 달린
신인 줄 알았다. 그리고 당신들이 '주머니'라고 부르는 곳에서 시가를 꺼냈을 때, 우리는 당신들이 살을
갈라서 뼈를 꺼내 씹는 줄 알았다.' 라고 말이지!!!"
"...그게 무슨 말이죠?"
"생각해보게! 그들은 생전 처음 '말을 탄 사람'을 본거지. 그들은 말과 사람을 구별할 수 없었어. 분명
우리와 같은 시신경을 가지고 같은 뇌로 판단을 하는 그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말과 사람을 구별할 수
없었던거야! 그뿐만이 아니지! 그들은 '옷'이란 것도 몰랐던 걸세! 그렇기때문에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행위가 마치 살을 갈라 그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것처럼 보였던 거지! 무슨 말인지 알겠나?"
"...정보에 따라 뇌의 정보처리가 달라진다는 건가요?"
"비슷하다네. 정확히 말하면 '시각정보와 그에 따른 뇌의 기능은 다분히 후천적이다!'라는 것이지.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뭔지 아나?"
"..."
"바로 '학습'일세. 그들에게 '주머니'라는 것을 인지시키는 '학습'을 통해 뇌의 기능을 조정할 수 있다는
거지."
"확실히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청년을 바라보던 노인이 별안간 몸을 청년 쪽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자네는 우리에겐 몇가지 감각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예..?"
"아니지. 정확히 말하면 몇가지의 감각루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게 무슨.."
"허허..방금 전 이야기로 자네는 '시각'이라는 감각의 부조리를 느끼지않았나? 우리가 보는 시각이라는 것이
다분히 주관적인 걸 내가 증명해주지 않았나? 그렇다면, 우리의 감각은 어느정도까지 '객관성'을 지킬 수
있냐를 묻는 걸세. 어떻게 생각하는가?"
"...글쎄요..."
"이런...아직 이야기가 더 필요한가보군. 자 그러면 이번엔 '후각'에 대해 말해보겠네. 미국의 어느 대학교에서
실제로 실험한 일이지. 그들은 지나가던 시민 200명에게 시큼한 암모니아 향이 물씬 풍기는 종이를 내밀고는
'이 종이에서 허브향이 나지 않나요?'라고 물었다네. 그러자 그들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아나?"
"...허브향이 난다고 했나보군요."
"껄껄. 바로 그걸세! 그들은 분명 처음 그 종이를 받아들자마자 진동하는 시큼한 냄새에 미간을 잔뜩
찌푸렸음에도 불구하고, 허브향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금새 수긍하고는 그 냄새를 음미했다더군!!!
잠시 후에 종이를 건네준 사람이 그들에게 '사실은 이 종이엔 아무런 향기도 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들은 그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종이에 코를 쳐박고는 킁킁을 연발했지. 그 뒤에 이렇게 말했다네."
노인은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마스크를 고쳐쓰고는 말을 이었다.
"'아..정말 아무 냄새도 나지 않네요.' 라고 말이지!!! 푸하하!! 웃기지 않은가?!"
"..."
"하지만 더 웃긴 것은 바로 지금일세. 실험자는 피 실험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지.
'사실 지금 종이에서는 강한 암모니아 향이 나고 있습니다. 이 향을 지속적으로 맡게 되면 두통과 어지러움,
더 나아가서는 구토증상이 일어나게 되죠. 당신들은 지금 어떠십니까?' 라고.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 것같나?"
"....."
"아까까지! 바로 방금까지 종이에 코를 쳐박고 킁킁거리던 그 위인들이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고 두통을
호소하며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더군!! 방금전까지 깔깔대며 웃던 그 사람들이 말이야!!!"
"....그리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군요."
"껄껄. 왜지?"
"...당신은 이로써 나에게 시각과 후각에 대한 신뢰를 파괴한 것 아닙니까?"
"호오..뭐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 자 그러면 다시한번 묻겠네. 자네는 자네의 오감을 어느정도까지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100퍼센트 입니다."
청년에 대답에 노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마스크를 고쳐썼다. 그리고는 물었다.
"..왜지?"
"저의 이성적인 뇌가 말하는군요. 제가 21년간 살아오면서 믿었던 정의를 고작 몇분간의 낭설로 뒤집을수는
없다구요."
"껄껄..역시 이성적이구만..이렇게 이성적인 자네에게 '플라시보 효과'를 설명하는 것은 모독이겠지?"
"...제가 플라시보 효과를 모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실거라 믿죠."
"껄껄! 자!! 그러면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겠네."
"...아직 오감을 모두 부정하지 않았는데도..?"
"뭔가 착각하나본데..내 목적은 그게 아닐세. 남들이 시각으로 밥을 해먹든 죽을 쒀먹든 내 알바 아니지."
청년은 기분이 나쁘다는 듯 노인을 바라보았고, 노인은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가 며칠 전에 연구하고 있던 '미확인 기체 X'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네. 사실 지금 이 대화의 진짜 목적도
그 기체와 깊은 관련이 있다네. 아주 우연이었지. 난 그저 산소와 수소의 융합과정을 연구하던 중이었거든.
그런데 무슨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압에 사소한 문제가 생겼고, 그 바람에 물로 결합해야했던 두 원소는
지금까지 전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기체로 합성되어버렸다네. 그게 바로 '미확인 기체 X'지."
말을 마친 노인은 한 숨을 돌리려는 듯 크게 심호흡을 했고, 청년은 이야기의 주제를 전혀 알 수 없다는
듯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이 미확인 기체 X는 물보다 분자가 더 크다네. 촘촘한 천 조각조차 통과하지 못하지.
하지만 그럼에도 눈에 보이지않아. 거기다가 자신보다 밀도가 낮은 공기 중에 떠다니지.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네.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어. 그래. 설명하자면 '21세기의 원시인'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네.
지금까지 내가 알던 모든 지식과 상충하는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 자네도 이해하겠는가?"
"확실히 당황스러운 상황이군요."
"거기다가 말일세. 이 '미확인 기체 X'는 심각한 유독물질이었어. 토끼를 이용한 실험에서 난 그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지. 난 이 기체가 유해한지 무해한지를 밝혀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렇기에 실험을
준비했다네. 커다란 수조를 준비했지. 그리고는 그 안에 토끼를 넣고 그 위를 커다란 거즈로 덮었다네.
그리고는 '미확인 기체 X'를 투입했지. 결과는 경악 그 자체였다네."
노인은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는 듯 고개를 강하게 휘저었고, 그런 노인의 모습은 청년으로 하여금
'미확인 기체 X'의 위험성을 경각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기체를 들이마시고 얼마 지나지않아 그 토끼는 온 몸의 실핏줄이 빨갛게 돋아나기 시작했다네. 핏줄은
살을 뚫고 나올 것처럼 부풀어올랐고, 입에서는 침을 질질질 흘리기 시작했지. 그러더니 갑자기 수조를 향해
미친듯이 몸을 부딛쳐오더군. 마치 모든 감각이 사라졌다는 듯 말일세. 결국 그 토끼는 머리의 반쪽이
부서진 후에야 입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네.."
청년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겁을 집어먹었으리라.
"난 무서웠다네. 내가 발견한 이 기체가 얼마나 강한 살상력을 지녔을지 말일세...그런데 말이야.."
노인이 갑자기 몸을 청년 쪽으로 기울이면서 낮게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궁금하더란 말이지. 만약...만약 저 토끼가 사람이었다면...?"
노인의 광기어린 눈을 바라보던 청년은 몸을 움츠리고는 노인을 째려보기 시작했다. 쳥년은 주위를 두리번
거린 뒤에 노인을 향해 소리쳤다.
"당..당신 설마?!"
청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청년은 자신의 신변을 지킬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앉아있던 의자를 집어들었다. 노인은 웃고 있었다.
"만약..만약 거기에 사람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사람도 그렇게 될까? 온 몸의 핏줄을 벌겋게 드러낸 채, 벽에 머리를 찧어서 곤죽을 만들까?"
노인은 청년을 향해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청년은 의자를 휘두르며 벽에 등을 기댄채로 소리쳤다.
"나..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설마 '미확인 기체 X'를 투입하려는 건가?! 나한테 손끝하나 댔다간
무사하지 못할 줄 알아! 경찰에 신고하겠어!!"
노인은 껄껄껄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끅끅..'미확인 기체 X'에는 말이야. 특유의 향기가 있어. 뭐랄까..약간 역한..? 그래서 눈치채지 못하게
그 기체를 투입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지..쥐도새도 모르게 공기중에 퍼뜨려도 냄새때문에 알아챌테니."
"...무..무슨..."
"자네...허브 향을 맡았나..?"
"뭐...?"
"이 방에서 허브 향을 맡았냔 말일세...껄껄.."
"...?!"
노인은 어깨를 들썩거리며 청년을 향해 말했다.
"실험자는 암모니아 향이 첨가된 종이를 보고 얼굴을 찌푸리던 피 실험자에게 이렇게 말했지.
'그 종이에서는 허브 향이 날거에요.'라고..."
노인은 껄껄 웃으며 청년에게 보여주었던 훈증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청년은 왠지 자신의 몸에 존재하는
모든 실핏줄들이 돋아나오고 있는 느낌이 드는것 같다고 생각했다. 훈증기에 도착한 노인은 훈증기 위에서 타고있던
무언가를 청년에게 흔들어보여주었다. 그 곳에 '허브'는 없었다. 그저 초록색 종이가 아무 이유없이 타고있었다.
"자...그러면 여기서 문제."
노인은 이미 눈이 뻐얼겋게 충혈되어있는 청년에게로 다가갔다. 청년은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등을 대고있는 벽을 바라보았다. '저 벽을 뚫어야해..그래야 살아..근데 어떻게..?'라고 청년은
생각했다.
"실험자는."
노인이 청년을 향해 한걸음 다가섰다. 청년의 눈은 버얼겋게 충혈되었고, 몸의 실핏줄은 터질듯 부풀었다.
"그 다음에."
노인이 청년을 향해 한걸음 다가섰다. 청년의 머릿 속은 온통 '벽을 뚫자. 어떻게?'로 가득찼다.
"뭐라고."
노인은 청년의 코 앞에 다가섰다. 청년의 머릿 속은 온통 '어떻게?'로 가득찼다. 노인은 청년의 귀에
속삭였다.
"말했을 까요."
노인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청년의 귓가를 자극했다.
이성적인 청년은 떠올렸다.
머리가 반쯤 뭉개진 토끼의 모습을.
'그 토끼는 왜 그렇게 되었지?'라고 이성적인 청년은 되물었다.
'벽에 박았으니까. 쿵!쿵!'이라고 청년의 이성적인 뇌가 대답했다.
'왜 그랬을까?"라고 이성적인 청년은 물었다.
'벽을 뚫으려고.'라고 이성적인 그의 뇌가 속삭였다.
아니, 노인이 속삭였다?
순간이었다. 청년이 갑자기 자신의 뒤쪽 벽에 머리를 박았다. 쿵!
"사실 이 종이에서는 암모니아 향이 나고 있죠! 어지러움과 두통, 구토가 날겁니다!!! 크하핫!!!"
노인의 웃음소리가 연구소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청년은 멈추지않고 벽에 머리를 박아대고 있었다.
"미확인 기체 X를 마시면 핏줄이 나오고, 눈이 충혈되고 감각이 없어진 채 벽에 머리를 쿵!쿵!쿵!!!"
노인이 소리쳤고, 지지않으려는 듯 청년역시 벽에 머리를 쿵!쿵!박기 시작했다. 이내 청년의 머리는 곤죽이 되었고,
입이었을거라고 추정되는 자리에서 피를 한움큼 토한 뒤에 몸을 부르르 떨며 바닥에 힘없이 나뒹굴었다.
그때까지도 노인의 웃음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몇 분의 시간이 흐르자 노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청년의 몸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목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죽은 것을 확인한 노인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노인은 마스크를 벗었다.
크게 숨을 들이켰다. 아주 크게. 마치 주위의 모든 공기를 집어삼킬 듯이.
노인은 쓰러져있는 청년의 시체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연구소 한켠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차트에
무언가를 휘갈겨 썼다. 노인은 청년의 시체에 휘발유를 붓고는 이내 연구소 구석구석에도 휘발유를 붓기시작했다.
"이렇게 태워버릴 건데 좋은 연구소를 구할 필요가 없지 않겠어?"
노인은 이미 머리가 곤죽이 되어버린 청년을 향해 이죽거리며 속삭였다. 노인은 연구소 문앞에 섰다.
휘발유를 온통 뒤집어 쓴 채로 누워있는 청년을 향해 조용히 뇌까렸다.
"멍청아. '미확인 기체 X'같은게 어딨냐."
노인은 연구소의 문을 닫았다.
출처
웃대 - hero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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