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분은 웃대에서 꽤 유명하신 분이지요
한때는 이분글 읽으려고 웃대에 기웃거리기도 했었습니다 ㅎㅎ
이 글은 중간으로 갈 수록 시간이 섞여있습니다
다 읽어보신후 다시 시간배열에 맞게 읽어보심 복선의 재미를 느낄 수 있으실꺼라구 글쓴분이 써주셨어요
길지만 정말 재미있습니다
오랫만에 봐서 저도 넘 즐겁게 봤네요 ㅎㅎ
요즘 일교차가 큽니다
감기조심하시구요
"하아...오랜만이네."
석양이 지는 노을 사이로, 아니 노을 사이를 가로지르는 바다 사이로 한 남성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은 채 바다의 향취를 한껏 느끼려는 듯
가슴을 내밀며 온몸으로 호흡하고 있었다.
"경철이 이제야 왔나?"
푸근한 목소리. 따스한 군 고구마를 연상시키는 구수한 목소리가 바다 가득히
메아리치자 눈을 감고있던 사내가 활짝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 곳에는 허리가
반쯤 굽으신 할머니께서 함박웃음을 짓고 계셨다. 할머니의 손에는 커다란 집게가
들려있었고, 그 집게는 연신 남자를 향해 위아래로 손짓하고 있었다.
"할매~ 나 방금 도착했디. 조개구이 다 됐나?"
"다 되서 얼른 오라 안카나. 경철이 니도 얼른 와서 무라. 빨리 무야 안맛있겠나."
경철이라고 불린 사내는 할머니를 향해 걸어갔고, 할머니는 그런 경철을 따스한 눈
으로 바라보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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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철은 도시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도시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서울대생
엘리트이다. 하지만 어렸을 때 시골에 살았느냐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그는 도시
변두리에서 태어났고, 도시 변두리에서 자랐으며, 도시에서 대학교를 다니고있는
도시 학생이다. 그렇기에 고향의 바다 내음은 경철에게 낯설면서도 포근한 그 무언가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는지도 모른다.
경철이 와 있는 곳은 친 할머니가 계신 부산 근처 한 어촌 마을. 워낙 한적하고 도시와는
동떨어진 전통적인 어촌마을이었지만 몇몇 도시의 부호들이 별장이나 호텔을 지어서
관광지로 육성한 이후로 매년 꾸준히 관광객이 늘고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경철의
할머니 댁 옆 쪽에 지어진 큰 건물도 그런 별장 중 하나였는데, 보통 마을에서 고기를
잡거나 장사를 하기에 너무 늙어버린 사람들이 그 집을 드나들며 집안일을 돕고 있다.
별장에 사는 주인은 황순영이라는 소설가라고 하는데, 이 마을에 들어선 이후로 한번도
그 모습을 제대로 본 사람이 없다고 할 만큼 열정적인 소설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 곳에 온 이후로 한편의 작품도 써내지 않았다는 것은 의외지만 말이다.
그의 별장의 앞 쪽으로는 동해바다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별장이란 것이 으레 그렇듯
황순영의 별장에서는, 아니 황순영의 별장에 속한 절벽테라스 위에서는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바다의 내음은 말할 것도 없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황순영의 별장은 관광객들
에게 선호도 1순위를 놓치지 않을 만큼 인기가 있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일반인에게는
자신의 별장을 개방하지 않는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그의 별장을 드나드는 유일한
일반인들은 그의 집안일을 도와주는 마을의 노파들뿐인지도 모른다. 그의 별장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각계 각층에서 내로라하는 사교계 인사들이다. 그들이 그 안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별장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7박 8일간 그의 별장에서 나오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황순영을 '바다의 괴짜'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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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진짜 여기는 인터넷만 잘되면 지상 낙원일텐데.."
경철은 5분 째 같은 화면을 맴돌고있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크게 한숨을 쉬고는 의자를
뒤로 뉘였다. 그의 양 미간에 흩뿌려진 잔주름들이 그의 짜증 상태를 암시해주고 있었다.
그는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려는 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의 귀에서는 컴퓨터 본체가
돌아가는 소리가 윙윙 울렸고, 그의 얼굴에는 달빛이 조용히 비추고 있었다. 그의 코에는
철썩거리는 바다의 향기가 머물러있었다. 멍하니 하늘을 응시하던 그의 눈에는 창문 사이로
보이는 황순영의 별장이 어려있었다. 별장의 불은 하루종일 켜져있었다. 경철은 조용히 일어나
창문을 열고 별장을 바라보았다. 한 눈에 보기에도 별장의 완성도는 최고였다.
바다를 한껏 맛볼 수 있음은 물론이고, 테라스와 창문의 위치는 따스한 태양과 차가운 달빛을 받기에
안성마춤이었다.
"하아....나도 저런 별장에서 며칠만 살아보고 싶.."
"경철아~니 거 있나?"
"와 부르노?"
"니 잠깐만 저 별장 좀 다녀올래?"
"지금?"
"오늘 옆집 사는 할매가 당번인데 몸이 좀 아프다 카데. 대신 가봐야안하겠나."
"그마 내가 가께. 준비좀 하고."
'한번쯤 가보고 싶었는데 잘됐다.'싶은 경철. 행여 할머니께서 마음이 바뀌실까 부리나케
준비를 끝내고 별장을 향해 뛰어갔다. 그의 눈 앞에는 황순영씨의 별장이 웅장한 타워펠리스처럼
그 위용을 자랑하고있었고, 그러한 대 저택이 마치 자신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는 것같아
왠지모르게 기쁜 경철이었다.
그의 빠른 달음박질은 그를 금새 별장에 다다르게 만들었다.
『띵동』
금단의 성벽을 넘은 듯한, 고요를 깨버리는 초인종 소리. 아무 인기척도 들리지 않는다.
그는 다시금 초인종을 누르기위해 손가락을 가져갔다. 그때 그의 눈 앞에 들어온 메모.
『지금은 부재중입니다. 문은 열려있으니 들어가셔서 일 보세요.』
"호오..이게 시골의 인심이라는건가. 도둑 들 걱정은 하나도 안하나보네.."
경철은 혀를 내두르면서 문을 열고 별장 안으로 향했다. 별장 안은 오히려 바다보다
알싸한 바다내음이 진동하고 있었다. 그는 바다의 향기를 한껏 음미하면서 신발을 벗고
거실로 향했다. 명불허전이었다. 그는 가장 먼저 거실에 놓여있는 소파에 조심스럽게
앉아보았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대학교에서, 친구 하숙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던 소파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그는 '역시 돈이 있어야해 사람은.'이라고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소파 앞 쪽 테이블에 다리를 올려놓았다. 마치 금새 옆에서 지배인이 수발을 들어줄 것 같은
기분이었다.동철은 그 기분을 만끽하려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발을 까딱거리며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를 연주하고있었다. 그는 잠시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젔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없는
집에서 인기척을 느낄 리가 없었기에 기분탓이려니 가볍게 무시했다.
오산이었다.
"누구세요?"
".....에?!"
황급히 돌아본 그 곳에는 10살이 조금 안되어보이는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아이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문득 부끄러워진 동철은
금새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로 벌떡 일어섰다.
"아..그..그러니까..빨..빨래를 가지고 가려고!"
"오빠가 오늘 당번이에요?"
"응. 원래는 할머니가 오셔야되는데 아프시다고 하셨거든."
"헤..그렇구나..그래서 그런건가? 신기하네.."
"응? 뭐가?"
"아니에요. 얼른 일 보세요."
여자아이는 경철을 향해 고개를 살짝 기울여보이고는 자기의 방으로 보이는 곳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생각보다 영악해보이는 아이였다. 경철은 자신의 두 볼을 찰싹 때려서 부끄러움을
가라앉힌 후에 빨래를 가지러 베란다를 향해 걸어갔다.
베란다는 차가운 밤공기가 빨래를 온통 휘감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이 집 주인은 애들이 있는데 문을 열어두고 간거야?'
생각이 그 곳에 미치자 경철은 혀를 끌끌 차며 황순영이라고 하는 사람의 보안 의식이
터무니 없이 약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확실히 이 집은 아무도
없다는 듯 불도 꺼져있고, 보일러조차 켜지 않았는지 온통 차가운 바깥바람 뿐이었다.
'딸이 아닌건가?'라고 생각하던 경철은 이내 자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휘젓고는 빨래를 집어들었다.
"어?!"
생각하지도 못한 묵직한 느낌에 그는 빨래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빨래통과 빨래 사이로 왠 꼬마남자아이가 후다닥 뛰어나갔다.
"뭐야?!"
달려나가던 꼬마아이가 멈춰섰다. 꼬마아이가 경철을 바라보았다. 무섭도록 차가운
눈동자라고 경철은 생각했다.
"누구세요?"
"아..이 형은 오늘 빨래를 가지러.."
"내가 신기하지 않아요?"
"뭐가?"
"그냥요."
"빨래 통에 들어가는 장난은 원래 너정도 나이엔 다 하는거야."
"...."
"바깥은 추우니까 얼른 들어가."
경철은 대수롭지않다는 듯 빨래를 챙겨 넣은 후에 빨래통을 집어들고 베란다를 나섰다.
그가 베란다를 나설 때까지 남자아이는 그를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었고, 그런 탓에 그는
베란다 문을 열어놓은 채로 거실로 나왔다.
"나는 이제 가볼게. 왠만하면 불이나 보일러 정도는 켜놓는 게 좋아. 감기걸리잖아. 그럼 이만!"
경철은 방 문 앞에서 자신을 빼꼼히 바라보는 여자아이와 베란다 문 앞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남자아이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끝낸 뒤 문을 닫고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언덕을 내려가는 그의 뒤로 별장 창문이 어둡게 빛을 가리고 있었다. 빛을 내뿜는 네 개의
눈마저 집어 삼킬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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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 좀 이상하다 안하요. 그 뭐라 카던데..미스..미스테기? 미수테리? 뭐 그런거
쓰는 작가라카데요."
"으음..뭐랄까..그 별장 근처에서만 유달리 바다냄새가 강하다랄까요..? 아, 제가 바다 냄새에
약간 거부반응이 있거든요. 그래서 회도 못먹어요, 하하."
"그기다 떠억 하니 별장을 지어놨으미 돈이라도 벌어야칼낀데 당췌 숙박을 안내준다카이."
"흐음...제가 한번 부모님대신 집안일을 도와주러 갔었는데요. 거의 하루종일 있었는데도
저 집 주인 얼굴을 한번도 못봤어요. 뭐가 그리 바쁜지.."
"나 저번에 저기서 연예인 봤어요! 막 되게 지친 표정으로 들어갔다가 한 일주일 뒤에
가더라구요. 막 재미있는 영화를 본 사람처럼 싱글벙글이던데요? 마약한 것 같았어요,하하."
"이건 비밀인데..왜 드라마에 요즘 잘나오는 연예인 있잖아요? 그 사람하고 저 집
마누라하고 둘이 절벽에 잇는걸 내가 봤어요. 정말이라니까? 그렇다고 기사는 내지 말아요."
"부부 금슬은 잘 모르겠어요. 금슬은 고사하고 얼굴 코빼기조차 보이질 않으니..
서로 얼굴도 모른 채 결혼했다는 소문도 파다하다니까요."
"애? 애가 있다고 카는기를 내가 들은 거같기도 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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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도 가끔 경철은 황순영의 별장을 찾아갔고, 그 때마다 아이들은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처음엔 남자아이 쪽에서 많이 경계하는 듯 보였지만, 그가 항상 웃는 얼굴로
그들을 대하자 결국에는 남자아이 쪽에서 먼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늘도 내가 왔다!"
"오빠!!"
"형!!"
"잘들 지냈어? 오늘도 아버지 안계시고?"
"네. 아마 이번에는 한 달 정도 못오실거에요."
"저런...너희들도 참 외롭겠다."
"괜찮아요. 우리는 이 비디오를 보고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거든요."
"또 비디오 이야기하네! 오빠는 그거 안본다~"
경철은 여자아이가 들고있던 비디오를 빼앗아서 서랍에 집어넣고는 여자아이에게 말했다.
"내가 너희하고는 친하지만 너희 아빠하고는 한번도 못봤어. 이거 아빠꺼 맞지?
함부로 만지고 그러는 거 아니야."
"...."
시무룩해지는 아이들. 몇번째 같은 상황에 약간 의구심이 드는 경철이었지만 원래
저나이때는 자신의 의견이 묵살되면 토라지는 법이라 가벼이 넘기고 있었다.
"오늘은 뭐하고 놀까? 총싸움?"
여자아이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반면 남자아이 쪽은 천국.
"아니면...인형놀이?"
여자아이의 표정이 한껏 부풀어오른다. 반면 남자아이 쪽은 지옥.
"그러면 인형하고 총싸움하는 걸로 결!정!"
"또?!"
"또?!"
이번엔 두 아이 모두 정색.
'놀아주는 것도 감사히 여겨. 내 나이가 벌써 21살인데 인형놀이나 하고 앉아있구만.'
목 끝까지 기어오르는 불평을 삼킨 채 경철은 인형을 가지러 방으로 들어갔고, 그런 경철을
바라보던 아이들은 경철이 서랍에 넣어 둔 비디오를 조용히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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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연예인 K씨 실종. 관계 당국 수사에 돌입.
-실종된 연예인 K씨 유서 발견. 자살로 수사 잠정 종결.
-유명 연예인 B씨 실종. 지인들 실종 선고.
-유명 연예인 B씨 유서 발견. 자살로 혹인. 실종 선고 취소.
-인기 절정의 가수 C군 20일 째 연락 두절. 방송가에 실종괴담 만연.
-C군의 유서가 컴퓨터에서 발견.
-모 드라마로 인기 절정을 달리던 연예인 Y씨 실종.
-연예인들 연쇄 실종에 관계 당국 수사에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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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향수병이라고 알고 있나, 자네?"
"들어는 봤습니다."
"원래 향수병이라는 것 자체가 이런 조그마한 마을에서 꽤나 잘 발생하지. 더군다나
요즘엔 도시와 시골의 분위기가 너무 다르거든. 특히 이 마을은 자신만의 색채가 너무
뚜렷해서 타지에 나가 향수병을 앓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
"네..."
"자네는 보아하니 이 곳 사람이 아니구만?"
"네. 할머니 댁에 여행을 왔거든요."
"그랬구만..할머니가 이 곳 사람이었구만..그래서 바다 내음이 몸에 남아있는 거였어.."
"제 몸에요..?"
"그래..그 녀석도 그랬지..그래서 속고 말았어.."
"네...?"
"향수병을 치료하는 데에 가장 좋은 게 뭔 줄 아나?"
"글..글쎄요.."
"그 마을의 향기야."
"..."
"바다 내음..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치료제란 말이야."
"아...하긴 마음이 편해지긴 해요. 이 곳의 냄새를 맡으면."
"근데 말이야..이 향수병이라는 것이 골치가 꽤나 아픈데,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거야.
특히 이 곳처럼 다른 마을과 교류가 없고 자신만의 색채가 뚜렷한 마을 사람들은 더더욱 그렇지."
"네.."
"바다 내음은 결국 그저 진통제에 지나지않아. 역치만 더욱 자극할 뿐이지.."
"진통제라면..나중에는 듣지 않겠네요..?"
"그래..그들은 더더욱 강한 자극, 강한 내음, 강한 향수에 끌리게 되는거지..그건
나로서는 어쩔수가 없어..난 의사가 아니니까."
"소설은 그만두신 거에요?"
"하아..소설이라..내가 쓴 소설은 읽어 봤나?"
"네. 해(海)라던가, 폐선의 살인사건 이라던가 하는 건 대학교 다닐때 많이 읽어봤죠."
"혹시 두 소설의 공통점은 못느꼈나?"
"으음........"
"바다...라는거야. 배경이 바다..."
"아?!"
"그래..난 내 소설로 향수병을 앓고있는 사람들을 치유해주고 싶었어. 하지만 소설로는
불가능하단 것을 알게 되었지."
"어째서..?"
"하아...바다 소설을 쓰는 나부터가 이미 마을로 돌아와버리지 않았나?"
"그렇군요.."
"그래서 나는 새로운 형태의 치유제를 개발하려고 했던거야.. 그게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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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경찰들은 뭘 하고 있는거야?!"
TV를 보던 경철이 별안간 버럭 소리를 질렀다. 대학을 다니면서 한때 경찰을 동경하기도 했던
그로써는 지금의 무력한 경찰들의 모습을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일주일 간격으로
벌어지는 유명 연예인들의 실종사건. 이틀 뒤에 발견되는 유서. 우연이라고하기에는
너무나도 똑같았고, 그렇기에 인위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마치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고, 자신들은 아무런 대처 방법이 없다는 듯 혀를 내두르며
자살에만 매달린 채 유구무언이었다.
"도대체 뭣들하고 있는거야. 이건 뻔히 눈에 보이는 조작이잖아. 왜들 굼뜬거지?!"
그는 양 미간을 구겨버리기라도 할 듯이 찌푸리고는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지그시
가져다 대었다. 그러다가 문득 뭔가 결심했는지 가방에 넣어두었던 조그마한 수첩을 들고선
TV앞으로 돌아와 앉았다. 그는 뉴스 자막으로 흘러가는 실종 연예인들의 이름을 차례대로
자신의 수첩에 받아적기 시작했다. 자신 나름대로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려는 노력임이
분명했다. 그의 손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몇 분간의 노력 끝에 그는 모든 연예인들의
이름을 받아적을 수 있었고, 그 작업이 끝남과 동시에 그는 컴퓨터로 달려갔다.
"한 명씩 검색해보자. 나이부터 시작해서 고향, 심지어는 키와 몸무게, 취미까지 샅샅이
조사해야해."
그의 손은 바쁘게 움직였고, 그에 못지않게 눈 역시 빠른 속도로 굴러가고 있었다. 그의
방은 온통 키보드를 치는 소리로 요동쳤고, 작열하는 모니터의 불빛만이 그의 눈을 비추고있을
뿐이었다.
몇 시간쯤 검색을 했을까. 순간 그의 손이 멈추고, 그의 눈은 사시나무 떨듯 떨려오기 시작했다.
"이..이건..."
그는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며 모니터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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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황순영씨 가족이요? 저번에 기사에 실종되었다고 뜬 적이 있는 거 같은데 아닌가요?"
"다 같이 실종 되었던 걸로 아는데.. 나중에 황순영씨가 구조되었다는 기사는 본 것 같아요."
"실종기사난거 봤는데 황순영씨가 살아있는 거 보면 나중에 가족들도 같이 구조 되었겠죠. 아마?"
"황순영씨 고향이 이 곳이라는 말은 들었어요. 가족들은 잘 모르겠는데.."
"부인되는 사람은 서울에서 만났고, 두 자식들도 거기서 낳은 걸로 알고 있어요."
"도시에서 소설을 쓰다가 향수병에 걸려서 한동안 우울증을 앓았다고 하던데.."
"글쎄요..황순영씨가 여기 온 이후로 부인 모습은 본 적 없는 것 같아요."
"딸하고 아들이요? 글쎄요..매일 불이 켜져있는 것 보면 혼자사는 건 아니겠죠 뭐."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황순영씨한테? 그러고보니 요즘 마을에 경찰들이 자꾸
들락날락거리던데..."
"저번에 해양 구조대에서 시체 한더미를 건져올렸다는 소문도 돌고.. 역시 사람이 많아지니까
흉흉한 소문도 늘어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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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철의 손에는 지금까지 실종되었던 연예인들의 성별, 나이, 직업, 고향, 키, 몸무게,
취미가 적혀있었다. 워낙 꼼꼼한 성격의 경철이라 피해자들의 모든 신상은 일렬로
정렬되어있었다. 경철의 손과 눈은 한 곳에 꽂힌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는 수첩에
나열되어있는 그들의 목록을 조용히 뇌까리기 시작했다.
"K씨. 부산. B씨. 부산. C군. 부산. M양. 부산. H씨. 부산. D군. 부산. J씨. 부산. T양. 부산....."
그의 눈은 시종일관 그들의 고향에 집중되어 있었다. 실종된 연예인들은 하나같이 부산태생의
연예인이었다. 경철은 생각했다.
'그들의 고향은 이 곳이다.'
딱 한사람..Y씨를 제외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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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오늘은 계셨네요?"
"누구지?"
"아~ 옆 집에서 조개구이 장사하시는 할머니댁 손자에요. 제가 대신 잠시동안만 가사일을
도와드리는 중이거든요."
"그렇군."
말을 마친 황순영씨는 자신의 방문을 닫은 채 다시금 일에 열중하는 듯 보였고, 괴짜
소설가라는 사실 이외에는 경철도 그에게 별 관심이 없었기에 경철 나름대로의 일을 시작했다.
이따금 그는 아이들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아이들은 자는지, 학교에 갔는지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왠지모르게 아쉬워지는 경철이었다. 아이들의 떠들썩함이 없는
적막이 부담스러웠는지 황순영씨의 작업실을 향해 경철이 나지막하게 외쳤다.
"요즘에는 왜 소설을 안쓰세요?"
묵묵 무답.
"되게 열심히 하시는 것 같아요. 거의 매주 모습도 안보이시고, 계실 땐 매일같이
불을 켜고 철야작업 하시고. 대단하세요."
묵묵 무답. 슬슬 짜증이 나는 경철.
"아, 그런데 여기 사는 꼬마아이들 아저씨 아이들 맞죠?"
순간 황순영씨의 작업실에서 들리던 소음이 멈추었다. 경철은 대수롭지않다는 듯 넘기고는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아이들이 있는데도 문을 열어놓고, 보일러는 꺼놓고..너무 무관심한거 아니세요?"
방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경철은 '이제야 대화가 가능하겠군.'이라고 생각하며
허리를 펴고 황순영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렇게 무관심하시니까 애들이.."
"너 지금 뭐라고 했어?"
그를 바라보는 황순영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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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병 鄕愁病 명사
발음〔향수뼝〕
[명사]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시름을 병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비슷한 말 : 망향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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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자살...실종.....고향....고향...."
경철은 무언가를 음미하려는 듯 몇 분째 같은 단어를 뇌까리며 머리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분명..분명 뭔가 연관이 있어. 이 곳에..."
그는 가만히 창문을 바라보았다. 눈 앞에는 거대한 바다와 철썩이는 파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굽어보는 '황순영씨의 별장'이 있었다.
"별장...연예인...부산...?"
불현듯 떠오르는 주위 분들의 말씀.
-그러고 보니께 요즘 경찰들이 많이 지나댕기기는 허더만.
-저기 별장은 장사 안하는거 같던데? 연예인들 전용이란 소리를 들었어.
-요즘 새로 들어오는 주민들 대부분이 그리움을 못이겨서 돌아오는 거라고 하더라.
경철은 별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벌떡 일어섰다. 더이상 경철의 눈에는 바다도,
철썩이는 파도도, 차갑게 빛나는 달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오로지 꺼지지않는
'황순영씨 별장의 창문'만이 비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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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뭔데요?"
"그건 바로 '바다 내음'이야."
"바다...내음?"
"그래. 바다내음. 이 마을의 가장 큰 특징인 바다의 냄새를 담은 캡슐."
"아..그래서 이 집에 이렇게 바다냄새가 심했던거군요.."
"이것만 있으면 더이상 우리 바다에 시체가 떠오르는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
"하지만 이 '바다내음'이 지금의 참사를 가지고 오고 말았어..몸의 작용을 둔화시켜버린거야..내 바다내음이..."
"그게 무슨.."
"잘들어 학생. 사람의 몸에는 스스로 고통에 견디고, 맞설 수 있는 힘이 있어. 마치
자연이 스스로 자신을 정화하는 것처럼..하지만 이 '바다 내음'은 그런 능력의 역치를
무너뜨려버린거야..영양크림을 너무 바르게 되면 피부가 스스로 재생하는 힘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말이야..."
"아.."
"결국 사람들은 '바다내음'에 의지하게 되고, 그럴 수록 외로움은 더 커지게 되는거지..
그러다가 결국은 '바다 그 자체'를 원하게 되는거야. 중독되는거지 바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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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들아! 꼬마들아!"
경철은 별장의 문을 박차고 들어감과 동시에 아이들을 불러댔다. 눈을 파르르 떨며
입술을 깨물고 안절부절하는 그와는 달리, 그의 외침을 듣고 나타난 아이들의 모습은
놀라울정도로 침착했다. 그들은 마치 이 사태를 예견하고 있었다는 듯 한손에는
비디오를 들고 있었다.
"그..그 비디오. 무슨 내용이 담겨있는거야?"
"볼래요?"
여자아이가 생글생글 웃으며 VR에 비디오를 가져다대었다.
"....틀어봐."
남자아이가 씩 웃었다. 여자아이는 비디오를 재생시켰다.
정적.
비디오 특유의 파열음과 흩날리는 화면조정만이 별장을 비추고있었다.
#
"너 지금 뭐라고 했어?"
황순영씨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경철은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네..? 아이들..."
"아이들이라니? 너.. 내 아이들을 봤어?!"
황순영씨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경철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네? 네.."
"어디서?! 어디서 봤다는거야?!"
"당연히 여기서 봤죠."
"뭐...?"
"이 집에서요."
순간 경철을 옥죄고있던 황순영씨의 멱살잡이가 스르르 풀렸다. 경철은 크게 한숨을 쉬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런 경철을 보며 황순영씨는 침착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헛소리하지마. 여기서는 내 아이들을 볼 수 없어."
황순영씨의 얼굴은 안심했다기 보다는 허탈하다는 표정에 가까웠다. 경철은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무슨 소리에요?"
"일 다했으면 어서 나가봐."
언제 그랬냐는 듯 황순영씨는 자기방에 틀어박혀버렸고, 경철은 우두커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경철의 목에는 황순영씨의 손 모양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
지지직...지지직.....
카메라의 화면에는 어두컴컴하고 습기가 가득할 것만 같은 공장의 지하실이 비춰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유명연예인 Y씨, 황순영씨,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서 있다. 주변 경관과
그들의 모습은 마치 의도된 촬영이라는 듯 디테일하게 보여지고 있다.
"뭐..? 네녀석의 고향이 부산이 아니라고?"
"그래요. 조만간 말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나한테 왜 접촉한거야? 내 '바다내음'은 어떻게 된거고?"
"아~ 그거요? 제 친구들한테 팔았어요. "
"뭐...? 그걸 팔았다고..? 돌았군..누구한테 팔았어?"
"그렇게 정색하지말아요. 서로 잘해보겠다고 한건데 왜그래요? 당신한테도 지분을 나눠 줄
생각이었어요. 아마 조금 있으면 국내 약국에서 시판될 거에요."
"미친놈...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기나 해? 사람들을 죽일 작정이야..?"
"그게 무슨 소리에요?"
"닥쳐, 너랑은 이제 끝이야..미친새끼...난 이 일에서 손을 떼겠어."
"아쉽네요. 지분을 나눠주려고 했는데.."
"그런거 너나 가져, 개새끼야."
"아. 그리고 한 개 더 받을 게 있어요."
"뭐?"
황순영씨의 옆에 서있던, 시종일관 굳은 표정이었던 그의 아내가 Y씨의 옆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당신...뭐하는거야?"
"미안해요. 매일 일 핑계로 몇 주간 집을 비울때 저를 채워준 분은 당신이 아니라 이 분이에요."
"하핫. 미안하게 되었어요. 바다 내음에 대해 상의를 하러 간다는게 그만 부인과
몸으로 상담해버렸네요."
"너...너 개자식..."
"나한테 너무 뭐라고하지말아요. 비린내 따위에 정신팔아서 아내마저 빼앗긴건 당신 탓이니까."
"...여..여보. 아이들은 어떡할건데.."
"언제부터 그렇게 신경썼다고 그래요? 그거 알아요? 쟤네는 이미 당신보다 이 사람을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뭐...?"
황순영씨의 부인이 손짓하자 두 아이들이 Y씨의 옆으로 걸어간다. 그리고는 Y씨의 손을 꼬옥 잡는다.
"하..하하..."
허탈한 웃음을 짓는 황순영씨. 그의 눈은 마치 무언가를 고민하듯 파르르 떨려온다.
그러나 이내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듯 멍하니 Y씨를 바라본다. 순간 황순영씨가 카메라와
눈을 마주친 듯 느껴지지만 이내 그는 아내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바다 내음에 대해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겠어."
"그 것 참 고마운 소리군요."
"하지만 내 아내에 대한 지분은 요구해야겠는데 말이야."
"푸하하...대단하네요! 좋아요! 당신 아내의 몸값으로 얼마를 요구할건가요? 아니면 뭔데요?"
황순영씨와 카메라가 다시금 눈을 마주친 듯 했지만 황순영씨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자신의
아래로 내린다. 그는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무언가가 반짝거린 듯 하다.
"뭔데요? 원하는게?"
"...."
황순영씨가 Y씨에게 걸어간다. Y씨는 약간 긴장한 듯 황순영씨 아내의 손을 꽉 잡는다.
황순영씨는 둘의 맞잡은 손을 지그시 바라보고는 Y씨에게 말한다.
"여기 있는 사람 모두의 목숨."
이내 화면에는 Y씨의 피로 추정되는 붉은 액체들이 난자한다. 카메라는 인위적으로
앵글이 바닥을 향하고 곧 종료버튼을 눌렀는지 지지직거리는 것을 반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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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이야..어느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더라고.."
"그게 뭔데요?"
"정말..정말 그들은 '바다 내음'에 중독된 걸까? 혹시 다른 무언가에 끌린 것은 아닐까?"
"...."
"나는, 향수병을 고쳐야할 의무가 있는 나는 다시금 나에게 바다내음을 받아가는 사람들과
이 마을에서 자살한 사람들의 모든 목록을 대조해보았지. 그 결과 새로운 공통점을 찾아내었다."
"....."
"그들에게는 죽은 가족들이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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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지...? 응?"
비디오가 끝나고, 테입이 모두 돌아가서 자동으로 되감기가 되고있는 순간에도 경철은
티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연신 '이게 뭐지?'를 반복하며 아이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만 아까까지 아이들이 '있었던'자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커다란 거실. 은은한 달빛이 작열하는 테라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넋을 잃은 채
어깨를 축 늘어뜨린 경철만이 멍하니 티비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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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그는 황순영씨의 별장으로 뛰어들어갔다.
"누구세요?"
황순영씨가 졸린 눈을 비비며 문을 열자마자 경철은 그에게 달려들었다. 경철의 두 주먹은
황순영씨의 고개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돌려놓았고, 바닥에는 황순영씨의 피가 흥건하게 고였다.
"당신..당신 무슨 짓을 한거야! 사람을 죽였어?!"
황순영씨는 언제나 그렇듯 말이 없었다.
"죽였냐고!"
"그래. 내 손으로 죽였지. 내 아내와 딸, 그리고 아들을."
경철의 손이 멎었다. 허탈했다. 직접 들으니 할 말이 없었다. 왜 죽였냐고 물을 수 없었다.
자신이라도 죽였을테니. 자백하라고 말할 수도, 그렇다고 용서해 줄 수도 없었다. 자신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었으니까. 흐르는 피와 체념한 듯 보이는 황순영씨의 얼굴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던 경철은 누워있는 황순영씨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시선은 멍하니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황순영씨가 일어났다. 그의 옆에 앉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비디오를...보았나?"
"...."
"내 딸이 보여줬겠지..? 아니면 아들 쪽인가..."
"...그들은 죽었어요."
"내손에 죽었지. 하지만 여기 있다네.."
"그게 무슨..."
"자네도 보았잖은가. 내 딸과 아들이 살아서 이 곳에 숨쉬는 모습을.."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아니. 충분히 말이 돼. 이 '바다내음'이 있다면.."
"바다...내음?"
"그래..내가 매일 작업을 반복하는 이 '바다내음' 말일세."
황순영씨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조그마한 캡슐을 꺼내서 경철에게 보여주었다. 그 곳에서는
평소 느끼던 알싸한 바다의 향기보다 몇백배는 강한 내음이 풍겨오고 있었다. 바다 내음에
취해있던 경철이 문득 정신을 차리고 황순영씨를 바라보자, 그가 나직하게 물어왔다.
"혹시 향수병이라고 알고 있나, 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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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토닌 [serotonin]
혈관뿐만 아니라, 자궁·기관지 등의 민무늬근[平滑筋]도 수축시키는 작용이 있다.
화학구조는 5-히드록시트라이프타민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뇌신경계에도 많은데, 뇌조직의 세로토닌은 뇌에서 만들어지며,
지나치게 많으면 뇌기능을 자극하고, 부족하면 침정작용(沈靜作用)을 일으킨다.
도파민 [dopamine]
호르몬이나 신경전달물질로서 중요한 노르에피네프린과 에피네프린 합성체의 전구물질(前驅物質)이다.
동식물에 존재하는 아미노산의 하나이며 뇌신경 세포의 흥분 전달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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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의 바다에는 보통의 바다와는 다른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네."
"특별한..무언가?"
"자네..마리화나, 필로폰, 본드 같은 걸 뭐라고 하는 줄 아나?"
"환각제..말인가요?"
"그래, 환각제..이 마을의 바다 내음은 일종의 환각제라네. 체 내의 세로토닌과 도파민에
작용하여 환각을 일으키지."
"..."
"그런데 말이야. 이 '바다내음'은 정확하게 말하면 '그리운 것'에 대한 환각만을 일으켜.
신경에도 전혀 손상을 끼치지 않지."
"...그럴수가 있나요..?"
"물론 없지. 하지만 이 마을에선 실제로 일어나고 있어. 자네도 보았잖은가..
내 딸과 아들의 망령을..."
"하지만...그렇게 따지면 저는 그 아이들을 그리워하지 않았으니 보이지 않아야하는게
정상 아닌가요?"
"자네는 이 지역 사람이 아니야. 그러므로 '토착 향수병'에 반응할 신경전달물질을
가지고있지 않지. 하지만 바다의 냄새가 자네의 몸에 남아있기 때문에 남들의 강한 향수반응을
인지할 수 있었던 거야.."
"...."
"난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 내 모든걸 바쳤다네....내 가족까지도 내 손으로....하지만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아마 며칠 뒤면 '바다내음'은 국내에 시판될거야. 음료가 되었건,
약이 되었건 말일세..보통 사람들은 그저 향긋함만 얻고 말겠지만...이 마을 사람들에겐
그것은 마약으로 작용할걸세..그리고는 결국 내가 약을 주었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바다에서 자살을 하고 말겠지..나의 별장을 드나들었던 그 연예인들처럼 말일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건가요.."
"없어. 없을거야. 우린 힘이 없으니까...하아...아니지. 있다고 해도 그것을 실행시킬
의지가 없다네, 지금의 나에겐..사실 나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거든.."
황순영씨는 조용히 일어서서 테라스를 향해 걸어갔다. 경철은 그런 황순영씨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차가운 달빛은 황순영씨의 얼굴을 타고 테라스의 바닥을 따라
유유히 흘렀다. 그런 황순원씨의 뒤로는 짙은 바다내음이 맴돌고 있었다.
"나에게도 내 아들과 딸이 보이기 시작한건 거의 한 달정도 되어가는군..이제 나도 힘들어..
보이는데 만질 수 없고, 느껴지는데 교감할 수 없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지.."
황순영씨는 슬퍼보이는 얼굴로 경철을 향해 손짓했다. 경철은 조용히 일어서서
황순영씨의 옆에 섰다.
"보이는가..? 바다 속에서 손짓하는 내 딸과 아들의 모습이..."
경철은 그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 곳에는 출렁거리는 바다와 투명하게
비추는 달빛이 있었고, 자신이 항상 즐겁게 놀아주던 아이들이 황순영씨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하아...난 실패한거야. 난 그저 그들이 바다내음에 끌려서, 그저 그 내음에 중독되버려서
바다로 돌아간 거라고 생각했지...하지만 그게 아니었어..인간은 그것보다는 훨씬 강하면서도
더욱 나약한 존재였거든.."
경철은 말없이 황순영씨를 바라보았다. 황순영씨와 그의 아들딸을 비춰주는 달빛은
유난히도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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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씨의 시체는 황순영씨 별장의 바닥에서 발견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황순영씨의 시체
바로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경철이 모든 사건의 정황을 묻어두고 그와함께 '바다내음'의
모든 일지와 캡슐을 불태운 뒤 서울로 떠난 다음날, 그는 바다가 아닌 자신의 별장에서
목을 매달고 자살했다. 자식을 제 손으로 죽인 죄책감은 그가 바다에 빠지도록 허락해주지
않았으리라..그럼에도 그는 테라스가 보이는 거실에서 목을 매달았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바다내음'은 시판되기 시작했다. 물론 황순영씨의 걱정대로는 아니었다.
'바다내음'은 사실 보통 사람들이 맡기에는 역한 '비린내'에 불과할 뿐이었고, 그렇기에
음료수의 형태로 향이 첨가되어 판매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그 역한
비린내때문에 곧 판매가 종료되었다.』
경철은 마지막 방점을 찍은 뒤에 수첩을 조용히 닫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고 그간 일들과 황순영씨의 모습, 그리고 향긋한 바다내음을 조용히 떠올리고 있었다.
포근한 조류처럼 흘러가던 그의 기억은 비로소 비디오의 내용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비겁하게 웃어대던 Y씨의 모습, 굳은 표정으로 슬픔을 삼키던 황순영씨의 모습, 무표정으로
(심지어는 정말 Y씨를 사랑했었는지조차 느껴지지 않던)황순영씨의 아내, 그리고 그녀를
따라가던 귀여운 꼬마들..그 모든 모습을 녹화한 카메라..
그는 디테일하게 찍혀서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던 그날의 비디오를 하나하나씩 곱씹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한가지 이상한 점이 떠올랐는지 그의 뇌는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상할
정도로 떨려오는 동공. 뇌의 끝부분을 간지럽히는 미묘한 기억.
"그 살인 사건은...우발적인게 아니었던건가..?"
경철의 눈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우발적이었다면 카메라에 찍히지 않았을거야..아니, 찍을 무언가가 준비되지도 않았겠지.."
경철의 뇌리에는 비디오에서 보았던 황순영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황순영씨가
카메라를 쳐다보던 찰나의 순간과 자신을 바라보던 황순영씨의 마지막 눈빛이 오버랩되었다.
"그의 가족이 찍은 건 아닐거야."
경철의 코에서 왠지 바다 내음이 풍겨오는 것 같았다.
"카메라엔 딸과 아들, Y씨, 황순영씨, 그리고 그의 부인까지 모두 찍혀 있었으니까.."
경철은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두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방금까지
적어내려갔던 수첩의 일지를 과격하게 펼치기 시작했다.
"하지만...누군가가 죽는 모습은 카메라에 찍히지 않았어..앵글이 의도적으로
내려갔었으니까...의도적으로.."
그는 머리가 아픈듯 두손으로 머리를 싸쥐었다.
"Y씨는 시체가 발견되었어. 아이들은 그 원귀를 내가 직접 보았고...아내는....아내는...?"
그는 초조한 낯빛으로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 카메라는 누가 찍은거야..?"
경철의 코 끝에서, 그의 주위에서, 아니 어쩌면 그가 다녀간 부산의 그 곳에서 알싸한
바다의 내음이 흘러오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바다내음'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 같다.
[EPILOGE]
부산의 한 어촌. 이 곳에는 특별한 전통의식이 있다. 마을의 구성원 중 누군가가 죽거나
실종되면 죽은 사람의 유골, 혹은 생전 물품과 산 사람의 머리카락 등 신체 일부를
함께 태운 뒤에 그 재를 바다에 뿌리는 것이 바로 그 것이다. 그렇게 하면 죽은 사람이
항상 바다에 머물면서 가족들을 지켜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몇 백년 혹은 몇 천년간
이루어져 온 이 전통 의식은 이 마을의 전통적인 장례풍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과학자는 수 백년간 지속되어 온 전통으로 인해 '인간의 부속물'을 머금은 바닷물이
조차가 작은 동해안의 특성과 연안류가 심하고 만입부가 석호의 형상을 띄고 있는
이 마을의 해안 구조상 '인간의 부속물'성분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바닷물에 흡수되어,
그 결과 이 마을 바다의 내음이 사람으로 하여금 짙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심지어는
환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지만, 학계에서는 실례가 없고 억측에
불과하다며 이를 묵살하고 말았다.
현재 부산의 그 어촌은 그러한 전통 방식을 버린 지 오래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바다를
그리워하며 자신의 혈육을 그리는 어르신들이나 주민들이 많이 남아있다.
출처
웃대 - hero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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