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쓰는 것이 맞는 걸까, 하다가 나름대로 제 자신에 대한 고민이 들어 있으므로 고민 게시판에 씁니다.
방금 전, 저녁 6시 조금 넘은 시각에 7호선 철산역에서 시비가 붙었습니다.
만원 지하철에서 내려서 정신을 추스르고 계단 쪽으로 향하는데, 어떤 노인 한 사람이(별로 존칭 써 주고 싶지 않습니다) 담배를 척 꺼내서 피우기 시작하더군요.
잠깐 얘기가 딴 곳으로 새겠습니다만, 저는 지하철에서의 흡연은 통상적인 금연구역에서의 흡연과 경우를 달리하여 처벌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화재 발생시의 위험도가 확실히 다르다고 생각해요.
보자마자 딴 생각 할 겨를도 없이, 다가가서 “여기서 담배 피시면 안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으므로 공손한 어조는 아니었겠지요. 돌아온 답변은 뭐 예상대로 네가 뭔데 참견이냐 네가 경찰이냐 어쩌구 하면서 되려 화를 내더군요.
순간적으로 피가 솟아서, “당신 하는 짓이 그럼 잘한 짓이냐? 여기 담배펴도 되는 데냐고?”라고 하니 이제는 욕이 막 터져나오기 시작하더군요. 여기서 제가 옷 잡고 공익한테 끌고 가려고 했습니다. 나중에 머리 식고 경찰분 말 들어보니, 이것이 폭행일 수 있다더라고요.
일단 제 행동에 대한 반성은 뒤에 쓰기로 하고, 경과를 계속 말씀드리면 저항하며 공익 있는데 가지 않으려고 하기에 “그럼 내가 공익 데려올테니 거기 있으라!” 라고 하고 공익 부르러 올라갔습니다. 공익 데리고 내려오니,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아요. 좀 찾아보니 엘리베이터 탔더군요. 끌어내려고 실랑이를 했는데 거기서 얼굴 세 대를 맞았습니다. 그 쪽은 옷 단추가 떨어지고요. 해당 과정은 공익이 다 보았지요.
그 시점에서는 제가 맞은 것 만으로 시비를 가리기 충분하다고 생각하여, 경찰을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그 와중에 그 노인은 핸드폰을 나 때문에 잃어버렸다며 핸드폰을 찾아내라, 옷이 수입산 비싼 것이니 옷값을 물어내라, 별별 요구를 다 하더군요. 옷값 물어줄테니, 폭행 배상 하시라고 하고 경찰 기다렸습니다.
곧 경찰이 두 분 오셨고, 각각의 사정을 한 분씩 나누어 청취하셨습니다. 오신 두 분, 정말 차분하고 합리적이시더군요. 흥분한 와중에도 쏙쏙 와 닿게 설명하고 설득하시는데 솔직히 감명받았습니다. 얽힌 사안을 넷으로 깔끔하게 나누시더군요.
먼저 핸드폰. 자기 번호라고 불러준 핸드폰 번호는 대전 어딘가에 사는 여자분 핸드폰과 통화가 되더군요. 뭐 사실관계는 솔직히 모르겠으니 제 관점에서의 판단은 보류하겠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승강이할 때 잃어버렸다는데, 그 때 핸드폰 들고 있지 않은 것은 우리 젊은 공익 친구가 증언을 해 주었지요. 경찰분의 판단은, 핸드폰은 이 분과는 상관이 없는 별개의 건이다. 우리가 분실신고를 해 주겠다. 그걸 여기서 언급하지 말아라, 끝.
다음은 흡연. 흡연은 노인이 인정을 하였으므로(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입니다), 이 부분은 우리가 노인에게 딱지를 뗄 수 있다. 라고 정리하였습니다.
다음이 폭행. 노인이 저를 때린 것이야 공익 청년의 증언이 있으므로 더 언급할 필요가 없고요, 아까 말씀드린대로 제가 실랑이하면서 멱살을 잡거나 옷을 잡아 끈 것 또한 폭행으로 볼 수 있으며, 자력구제로서 개인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의 범주를 넘어섰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냥 공익을 부르거나 경찰에 신고하는 것으로 제 의무는 다한 것이다, 라고 설명해주시더군요.
마지막, 옷 수선비를 달라는 부분. 옷 수선비를 얼마를 달라는거냐고 물어보니 딱지값을 제가 물어주면 옷 수선비를 안 받겠다고 하네요. 이 시점에서는 이 노인이 벌금을 10만원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경찰이 3만원이라고 하자, 딱지값 3만원과 옷 수선비 2만원을 달라고 하더군요. 경찰분은 딱지를 내 권한으로 안 뗄테니 옷 수선비도 안 받는 것으로 하라고 했으나, 고집을 피웁니다. 그럼 나도 내 얼굴 때린 것 없던 일로 해줄 수 없으니 지구대로 가자고 결정했습니다. 쌍방 폭행으로 처리할 각오를 했었지요. 뭐 저도 일정 부분 처벌을 받겠습니다만 전 적어도 주먹질을 하진 않았으니까요.
경찰서 가자고 하니, 조금씩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안 가고 처리하고 싶다는 것이죠. 여기서 강행할까 했으나, 노인이 불쌍해서가 아니고 경찰분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추운데 이게 왠 고생이신지. 딱 한 마디 귓속말로 했습니다.
“저 노인 신원조회 해서 아무런 이상 없으면 2만원 주고 합의하겠습니다”
조회해보니 별 이상 없는 것으로 나와서, 2만원 주고 보냈습니다. 경찰분과 반대 방향으로 계단 올라오면서, 너무 나서신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이렇게 저지해주시는 분 없다는 말을 들었네요. 다들 방관하기만 한다고. 고생하셨다고 인사드리고 집으로 들어와 글 씁니다.
제 잘못, 분명합니다. 한 개인에게 허용된 범주를 넘어서는 과도한 행동을 했지요. 변명의 여지도 없고요. 저는 히어로가 아니며 자력구제의 허용 범위에 대해서는, 솔직히 요즘 회의가 들기 시작합니다만, 엄격한 쪽이 낫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인정은 해도 반성은 안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비판, 비난, 질책은 기꺼이 받아 들이겠습니다. 제 나이가 올해 45세군요. 이 성격이 고쳐질리도 없고 적어도 이 건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구 참사에 대한 기억은 제 안에서 아직도 너무나 생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오늘 있었던 일을 길게 기록한 까닭은, 여러분들이 제 편을 들어주길 바랬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 자신에게 다짐하기 위함입니다.
그 시시비비의 와중에 제 머리를 스쳐간 생각이 있습니다. '이 노인이 만약 노인이 아니고, 건장한 덩치의 조폭같은 남자라 하더라도 나는 똑같이 저지하고 나섰을 것인가?'
솔직히 바로 “그렇다!”라는 대답을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이것은 혹시 어줍잖은 허세는 아니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지요. 물론 그 시점에서는 속된 말로 눈이 돌아갔으니 그런거 따지고 시비붙지는 않았다는 것은 제 자신이 알고 있습니다만, 문제는 앞으로도 솔직히 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다 익명이 아닌 글로 씁니다. 다짐을 하기 위해서.
설사 폭력의 무서움에 벌벌 떨 지라도, 다시 한 번 저지하겠습니다. 그냥 보아 넘기지 않겠습니다.
이제는 살아온 인생보다 남은 인생이 더 짧아져버리기 시작하는 나이로서, 더 이상 내가 쉬운 방향으로만 살지는 않겠습니다.
추운 저녁입니다, 건강 조심하시기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