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뭘 그딴 걸 가지고 징계씩이나…” 역시 국회의원들의 ‘동료애’는 남달랐다.
‘성추행’ 국회의원을 구하기 위한 여야 국회의원들의 ‘구출작전’이 눈물 겹다. ‘최연희 일병 구하기’ 작전에는 한나라당 의원만이 아니라, 열린우리당 의원도 나섰다.
의사 출신의 한나라당 의원은 ‘급성 알콜 중독에 의한 변별력 상실’이라고 진단하며 의원직 사퇴가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열린우리당 의원은 ‘봄의 유혹’이라는 시를 인용하며 성추행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지나치다며 “노출을 즐기는 여성에 대해 남성들의 반응조차 용납할 수 없다면 이는 ‘가치관의 독점’”이라고 한탄했다.
윤리특위, ‘아니나 다를까’ 파행 출발
2일 열린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위원회 구성과 심사절차를 문제삼아 본격 논의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파행으로 끝이 났다. 김원웅 윤리특위 위원장은 1일 언론 인터뷰에서 “여야가 겉으로는 ‘제명하라’고 하면서도 윤리특위에 낸 제소안은 제명과는 거리가 먼 윤리심사만 해달라는 가벼운 안건“이라며 “윤리특위에서는 경고도 내리지 못한다”고 말한 바 있다.
노 의원은 1일 CBS 인터뷰에서 “최연희 의원에 대해 국회 윤리특위가 어떤 징계도 내리지 못하게 된 것은 법적인 미비도 문제지만, 의원들 의지가 더욱 문제”라며 “얘기해봐야 안 되는 국회의원들에게 동료 의원들을 징계하라고 요구하기보다, 국민들이 직접 의원직을 박탈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국회 윤리특위가 성추행 국회의원에 대한 심사와 징계를 미적거리는 것과 대조적으로 동료의원들로부터 잇따라 “취중 성추행은 이해하고 아량을 베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정의화 “훌륭한 의원을 알콜중독에 따른 부적절한 행위로 죽일 수 없다”
의사 출신의 한나라당 정의화 의원은 지난 28일 홈페이지에 최 의원이 ‘급성 알콜중독’이라고 진단을 내리고 이로 인한 변별력 상실로 인해 ‘부적절한 행위’가 벌어진 만큼 “최연희 의원도 후진적이며 악성적인 술 문화의 희생양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누리꾼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홈페이지에서 이 주장을 삭제했으나 1일 다시 비슷한 내용의 글을 올려 “한사람의 훌륭한 사람을 급성 알콜 중독으로 인한 변별력 상실로 인한 부적절한 행위로 인해 죽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의원직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최 의원에 대해 “여론재판에 떠밀려가기보다 이성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며 “의원직 사퇴 요구는 지역구 유권자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최 의원에 대한 정 의원의 애정과 신뢰는 각별했다. 정 의원은 “사랑하는 최연희 의원께서 절망에 빠져 신체에 위협적인 질병이 생길까 걱정한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정의화 의원에 이어 한광원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 2일 ‘최연희 일병 구하기’ 작전에 가세했다.
한광원 “봄은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유혹의 손길을 뻗친다” 시 인용뒤
“노출을 즐기는 여성에 대해 남성들의 반응조차 용납할 수 없다면…” 한탄
한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봄은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유혹의 손길을 뻗친다”는 신석정 시인의 ‘봄의 유혹’이라는 시를 인용해 이번 사안에 대한 “에로스적 사랑이라는 기본적 본능을 무력하게 하는, 성추행에 대한 무조건적 비판”이 안타깝다는 주장을 펼쳤다.
한 의원은 글에서 “‘성추행’이나 ‘성희롱’에 관한 우리의 인식이 그 어떤 명확한 함의를 찾지 못한 채 군중심리를 타고 행위자의 인권과 소명을 무시하며 무조건적인 비판만을 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며 성추행 의원에 대한 여론의 질타를 비판했다.
한 의원은 또 “명백한 ‘성폭력’의 범주를 제외하고, 사소한 말 한마디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이 분위기는 어쩌면 인간의 에로스적 사랑의 욕구, 다시 말해서 아름다운 이성을 보았을 때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는 기본적인 본능 자체를 무력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한다”며 밝혔다. 당사자를 비롯해 동료의원 다수와 국민들 대다수가 용납 못할 ‘국회의원 성추행 사안’이라고 보는 사안에 대해 한 의원은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사건 또한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사건 당사자에 소명의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고 평가했다.
한 의원은 “아름다운 꽃을 보면 누구나 그 향기에 취하고 싶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고 싶은 것이 자연의 순리이자 세상의 섭리”라며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노출을 하고 그것을 즐기는 여성에 대해 남성들의 그 어떠한 반응조차 용납할 수 없다면 이는 ‘가치관의 독점’”이라고 말했다.
제1야당 사무총장에 의해 자행된 ‘성추행’에 피해당사자가 강력 항의하고, 가해당사자가 잘못을 시인한 상황에서 한 국회의원은 “노출 을 즐기는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그 어떠한 반응조차 용납할 수 없다면…”이라는 한탄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한광원 의원은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인천광역시 시의원을 거쳐 17대 총선에서 인천 중·동·옹진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시의원을 거쳐 국회의원에 당선된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혀왔다. 인천에서 태어나 50년간을 인천에서 살아온 ‘토박이’다.
지난해부터 의원칼럼을 통해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판하는 글이나, 맥아더 동상 문제 등을 주제로 삼았다가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다’는 당내 평가를 들어왔다. 한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2일 글을 올렸다가 누리꾼들의 비난이 잇따르자 이날 오후 이 글을 자진 삭제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아래는 한 의원이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봄의 유혹
파란 하늘에 흰 구름 가벼이 떠가고 / 가뜬한 남풍이 무엇을 찾어내일 듯이 / 강 너머 푸른 언덕을 더듬어 갑니다.
언뜻언뜻 숲새로 먼 못물이 희고 / 푸른 빛 연기처럼 떠도는 저 들에서는 / 종달새가 오늘도 / 푸른 하늘의 먼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시내물이 나직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고 / 아지랑이 영창 건너 먼 산이 고요합니다. / (중략)
임이여 무척 명랑한 봄날이외다. / 이런 날 당신은 따뜻한 햇볕이 되어 / 저 푸른 하늘에 / 고요히 잠들어 보고 싶지 않습니까?
- 신석정 ‘봄의 유혹’ 중에서...
푸릇한 싹이 보이지는 않지만 따뜻한 봄기운이 느껴진다면 내가 좀 감성적인 탓일까. ‘삼한사온’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매섭고 날카로웠던 겨울이 천천히 내 옆을 스치듯 지나간다. 봄비에 얼었던 눈이 녹는다는 우수(雨水)가 지나고 겨우내 숨죽였던 친구들이 큰 숨을 내쉬는 경칩(驚蟄)이 가까워온다.
봄은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유혹의 손길을 뻗친다. 왠지 모를 설레임으로, 때로는 견딜 수 없는 그리움으로, 고독한 남자의 외로움으로, 또 때로는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눈꺼풀의 무게로 말이다.
소복히 쌓이는 봄내음의 그리움속에 앞을 따르지 못한 찬바람이 남아, 떠나가는 겨울의 아쉬움을 달래는 것일까? 내가 머무르는 이곳은 아직 차갑고 시끄럽다. 봄바람의 따뜻한 온기를 한가로이 기다릴 여유도 없이 찾아온 불청객 때문이리라.
연이은 성폭행과 성추행. 가족들과 한가로이 앉아 9시 뉴스를 보는 일이, 모닝커피를 마시며 조간신문을 보는 일이, 보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안 볼 수도 없는 계륵처럼 변해간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 사회에서 ‘성추행’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 직장동료에게 가벼운 농담한마디를 던지거나, 힘내라며 손을 내밀기도 어려운 이 사회적 분위기는 또 언제부터였을까. 물론 어린아이를 성폭행하거나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만 여겨 행동으로 옮겼다면 응당 그 죄과를 받아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며칠 전 있었던 한 동료의원의 행동은 분명 적절치 못한 것이었고, 어떤 이유에서든 용서받기 힘든 행동이다. 국민을 대신하여 나라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의 신분으로 그러한 행위를 했다는 점은 더더욱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과거 한나라당 의원들의 술자리 추태에 비추어 볼 때 어쩌면 이번 일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라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의원 개인의 문책이 아닌 한나라당 전체의 뿌리 깊은 반성과 자각이 필요하리라 본다.
그러나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성추행’이나 ‘성희롱’에 관한 우리의 인식이 그 어떤 명확한 함의를 찾지 못한 채 다소 감정적인 군중심리의 파고를 타고 행위자의 인권과 소명을 무시하며 무조건적인 비판만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사건 또한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사건 당사자에 소명의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명백한 ‘성폭력’의 범주를 제외하고, 사소한 말 한마디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이 분위기는 어쩌면 인간의 에로스적 사랑의 욕구, 다시 말해서 아름다운 이성을 보았을 때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는 기본적인 본능 자체를 무력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한다.
아름다운 꽃을 보면 누구나 그 향기에 취하고 싶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고 싶은 것이 자연의 순리이자 세상의 섭리이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노출을 하고 그것을 즐기는 여성에 대해 남성들의 그 어떠한 반응조차 용납할 수 없다면 이는 ‘가치관의 독점’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본능적인 표현의 자유조차 용납하지 않는 사회라면 어떤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겠는가.
봄이 다가온다. 새 풀 옷을 입은 봄처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파릇한 새싹들과 형형색색의 꽃잎들을 구경할라치면, 어디에서 그 향기를 맡았는지 나비와 벌들이 날아와 시선을 어지럽히고, 아름다운 봄처녀의 모습에 뭇 남자들의 가슴이 뛰는, 그 느낌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지고 여유로워지는 봄이 온다. 이렇게 우리 모두 좀 여유로운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봄이 오는 길목에 지나가는 겨울이 아쉬움을 달래듯 따뜻한 눈을 뿌린다. 봄바람에 살랑이는 봄처녀의 매력에, 그 뿌리칠 수 없는 봄의 유혹에, 머릿속 가득한 번뇌를 잠시 내려놓고 마음껏 빠져보고 싶은 날이다.
아직 쌀쌀한 기온이지만 봄을 기다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곱게 자란 푸른 잔디를 벗 삼아 파란하늘 가벼이 떠가는 흰 구름을 보며 푸른빛이 연기처럼 떠도는 들판을 한가로이 거니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2006년 3월 2일 국회의원 한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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