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금부터 이야기할 내용은 올해에 생겼던 제 실화입니다..
어떻게 이야기를 써야할지 몰라서 이야기가 뒤죽박죽이겠지만 그래도 한번쯤 읽어주셨음 합니다..
저는 19살의 중국/심양에 유학와 있는 학생입니다..
제가 중국에 유학온지도 벌써 3년반이 되었습니다..
제가 중국으로 유학을 오게 된 이유는 사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갈때 연합고시를 쳐서
그 시험에 합격해야 올라갈수 있었습니다..(제가 살던곳은 울산이며 실업계보다 인문계쪽으로
가려는 학생들이 많아서 어쩔수 없이 시험을 봐야 했습니다..)
사실 저는 한국에 있을때 공부는 지지리도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지고 한국에서 일년 꿇고 동생들과 함께 공부를 한다고 생각을
하니 조금 껄끄럽더군요 그래서 중국으로 오게 된것입니다..
제가 중국으로 오기전 할머니와 약속을 한가지 했었습니다..
공부 빨리 끝마치고 하루라도 빨리 들어와서 제가 할머니를 모시고 살겠다고 말이지요...
서론이 길었습니다.. 본론을 이야기 하지요..
저는 중국에서 공부를 하고 방학때마다 한국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가끔씩 중국에서 한국에 계신 할머니와 통화도 합니다..
평소에도 너무나 건강해 보였던 할머니..
올해 겨울방학때 중국으로 들어오기전 한번 뵈었던것이..
마지막이 될줄은.. 꿈에도 몰랐었습니다..
평소 할머니와 통화할때는 (할머니와 저의 통화내용을 씁니다.참고로 제이름은 이재준입니다)
할머니:준아~ 어데고~
저 :할무이요~ 잘 지내시지요~
할머니:그래~ 언제오노~
저 :곧 갈낌더~ 여기 공부 빨리 끝내고 곧 들어갈낌더~
할머니:그래그래~ 거기 밥 먹을만 하나~
저 :에이~ 사람사는데가 다 똑같지요~ 다 묵을만 하고 다 편심더~
할머니:준아~ 보고잡다~ 언능 오그라~
저 :예~ 할머니~ 여기 공부 퍼뜩 끝내고 어여 할무이한테 갈께요~ 그래서 지가 할무이
모시야죠~
할머니:그래그래~ 퍼뜩 끝내고 빨리 들어오그래이~ 할무이 보고잡다~
저 : 예~예~ 몸 편찮으신데 없지예~
할머니:(우시면서)그래그래~ 나는 개않다~ 밥도 많이 묵고~ 개않다~
저 :예~예~ 밥도 많이 묵으시고~ 자~꾸 걸으시야죠~ 할매 저 장가가는건 보고 가시야지요~
할머니:그래그래 니 장가는건 보고 가야제~
저 :예~예~ 그럼 할메요~ 통화비 많이 나오겠심더~ 끊지요~
할머니:그래그래~ 퍼뜩 오그라이~
저 :예~예~ 그럼 쉬시소~
이렇게 할머니와의 통화가 시작되서 끝이 납니다..
저희 할머니께서 치매끼가 좀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언제 뵜는지 언제 이야기 했는지 잘 까먹습니다..
이번에 들어올때까지만 해도 건강하시던 할머니였는데..
어느날 제가 친구집에서 잠을 잔날..
새벽에 잠시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 꿈에 할머니께서 나오신것입니다..
할머니께서 창문밖에서 절 쳐다보고 계시던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침..
저의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고..
저는 아침먹는중에 전화를 받고..
어머니가 할머니 돌아가셨다는 말을 하셨을때...
저는 중국온지 3년만에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직 할머니와 한 약속도 못지켰는데..
공부 빨리 끝내고 돌아가서 할머니와 같이 살겠다던 그약속..
지금까지 할머니께..
단 한번도 사랑한다는말.. 존경한다는말.. 좋아한다는말..
그 간단한 말한마디도 못해드렸는데..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지금에야 후회를 하고 후회를 합니다..
저 그날 정말 죽고싶은 마음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할머니께서돌아가신날 아침에 귀국을 해야했는데
저희 학교에서 그만 제 여권을 잃어버린것입니다..
그래서 여권분실신고하고..
그에 대한 절차를 밟을것 같으면 거의 1주일은 걸린다는 것입니다..
할머니 임종때도 같이 못해드렸는데...
이제는 영정에 서는것조차도..
그 차가운 땅으로 하관하시는것조차도 볼수 없을꺼라니..
정말 그때 서럽게 울었습니다..
밥도 못먹구요...
그런데 다음날 영사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때 제 상황이 매우 특별한 경우라 단 하루만에 임시여권이 나왔다고요..
그래서 그날 오전비행기로 귀국을 했고 다행이도 할머니 영정앞에 설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할머니 영정과 할머니가 땅으로 하관하시는것까진 보게 되었지만
저는 지금도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할머니 살아계실때 사랑한다는말 한마디 못해드린것이
지금도 제 가슴에 빠지지 않는 못처럼 꽃혀있습니다..
제가 이런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저는 이번일로 한가지를 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분들! 분명히 여러분께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실겁니다..
물론 이미 세상을 떠나신분들도 계시겠지요..
그럼 아버지 어머니가 계실겁니다..
혹시 아버지 어머니도 안계신분들..
그럼 자신에게 도움을 주시는 분들께 딱! 한마디만 하십시요..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존경한다고..
지금 안하시고 나중으로 미루신다면 언젠간 언젠간 정말정말 후회하실껍니다..
어린놈이 싸가지가 없다고 욕하셔도 됩니다..
돌을 던지셔두 되구요..
하지만 나중에 후회 하시는것보단 낫질 않습니까...
저희 어머니께서 그러시더군요..
저희 아버지께 "그래 계실때 잘해드리지.. 이렇게 가신뒤에 잘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계실때 잘 해드리지..."언젠가 여러분들께 이런일이 일어날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에 하십시요..
나중에 나중에 저처럼 후회하시지 마시구요...
이야기 내용이 꽤 많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분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다른 재미있는 글도 많은데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글이 뒤죽박죽이 되었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제가 아는말이 한가지 있습니다..
이성과의 사랑은 처음에는 가족의 사랑보다 강하지만.. 
마지막에는 가족의 사랑보다도 못한것이 이성과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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