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발매된 페어리 펜서 F ADF를 네 시간 정도 해봤습니다.
제작사는 컴파일 하트로 초차원 게임 넵튠 시리즈로 유명하고 PS4로는 오메가 퀸텟으로 처음 접한 PS4 유저들도 있을겁니다. 한국에서는 CFK사가 컴파일 하트의 모든 게임을 한국어화하여 판매하고 있구요.
컴파일하트의 라인업 중 갈라파고스 RPG 시리즈라 하여 세간의 기준따위는 무시하고 자기네가 만들고 싶은 거 만드는 RPG 시리즈가 있습니다. 앞서 말한 오메가 퀸텟이 이 시리즈의 2번이고 PS3로 나온 페어리 펜서 F가 1번입니다. ADF는 페펜F를 보강하여 PS4로 옮긴 이식작 겸 완전판이며 갈라파고스 RPG 3번이구요.
작성자는 페펜F를 해본 적이 없어서 ADF로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팡이라는 소년히 어떤 마을 중앙에 박혀 있는 퓨리(=신들이 사용했던 무기들) 하나를 우연히 뽑고, 퓨리에 깃든 요성(=요정이라 보시면 됩니다) 아린과 함께 퓨리를 모으는 이야기입니다.
아직 네 시간밖에 안 해서 초반부라고는 해도, 솔직히 스토리나 스토리텔링이 좋다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스토리도 빈약하고 스토리텔링이나 연출도 빈약해서 플레이어가 스토리를 느낄 수가 없으니까요. 덕분에 던전에 진입하여 보스를 잡으러 가는 동안 긴장감이 조금도 고조되지 않고, 보스를 잡아도 '내가 이야기를 조금 더 진전시켰다.'라는 느낌이 1g도 들지 않습니다.
마을에서 다음 퓨리의 정보를 얻는다 -> 그 던전으로 가서 대화 이벤트 몇 개 보고 던전을 진행한다 -> 보스를 잡고 퓨리를 얻는다. 이 삼단계에다가 대화 이벤트가 조금 붙는 정도가 지금까지 게임 전개의 전부. 게임의 구성 자체가 굳이 스토리가 밀도 있어야 할 구성이 아니라지만, 그러면 몰입도라도 높이지...
거점이 되는 마을에서의 정비가 RPG로서 재밌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마을의 생동감이 이렇게까지 떨어지는 RPG는 처음 봤어요. 그나마 대화창 일러가 좀 크게 뜨는 정보상 소녀를 제외하면 나머지 캐릭터는 그냥 자판기로 대체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정도. 이렇게 재미 없는 대화를 new 마크가 떴다는 이유만으로 찾아서 읽고 있는 제가 불쌍합니다.
전투 시스템은 넵튠의 그것과 거의 같습니다. (제가 넵튠을 조금만 해보고 팔아서...) 근데 전 이 게임에서 평타 기술이 왜 이렇게 다양하게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위력 차이도 별로 안 나고 말이죠. 그냥 무기타입별로 평타/띄우기/추적만 있으면 충분하지 않나 싶을 정도.
다행히 전투 밸런스는 나쁘지 않아서 아직까진 보통 난이도로 메인스토리든 사이드스토리(=메인스토리가 아닌 퓨리 모으기)든 막히는 일은 없습니다. 스킬/마법의 SP 소모량이 크지만 다행히 회복템을 구하기 쉬워서 각자 하기 나름이고요.
퀘스트는 최악입니다. 모든 퀘스트가 특정 몹 N마리 격파나 특정 아이템 N개 가져오기밖에 없어요. 퀘스트에서 어떤 사이드 스토리도 느낄 수 없고, 보람도 없습니다. 일단 저는 모든 퀘스트를 해결은 하고 있지만 이건 트로피가 있을까봐 하고 있는 거지 재밌어서 하는 게 아니에요.
그래픽은 저자본 게임임을 감안하면 만족스럽습니다. 전투 중에 보여주는 캐릭터들의 공격 모션은 오히려 칭찬하고 싶고요. 오메가 퀸텟도 공격 모션의 만화 같은 화려함 때문에 좋아했으니까요. 스킬 사용 시 애니메이션처럼 멋지게 공격 모션을 잡아주는 게 볼 때마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입니다. 제가 이 게임을 계속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
맘에 안 드는 점만 엄청 적어놓긴 했습니다만, 공격 애니메이션이 주는 쾌감이 생각보다 좋고, 예쁜 캐릭터들이 시덥잖은 대화 나누는 것도 좋아해서 아직은 즐겁게 하고는 있습니다. 여캐가 많은 게임이고, 애초에 제가 이 작품에 기대한 재미가 딱 그런 거였으니까요. 일본 만화 같은 2D 캐릭터가 등장하는 턴제 RPG. 캐릭터들의 캐릭터로서의 매력은 게임을 진행하면서 더욱 느낄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그런데 이게 RPG로서의 즐거움이 크냐, 추천할만 하냐 하면... 절레절레.
저는 갈라파고스 RPG라는 브랜드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게임 산업이 블록버스터화 되면서 제작사의 개성이 들어가면서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나기 어려워졌으니까요. 그렇지만 웃음기가 과해서 만든 사람의 진지함이 안 느껴지는 작품만 나온다면 기대를 철회해야 할지도요.
PS4로 턴제가 하고 싶으면 다른 건 몰라도 얘는 답이 아닐 겁니다. 레알. 차라리 디스가이아5나 디비니티 같은 걸 하세요.
아래는 스샷 몇 개.
맘에 안 드는 점 하나.
세이브 데이터의 이미지가 그냥 로고입니다. 요즘에 진행 상황 캡쳐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텐데;;
맘에 안 드는 점 둘.
게임 시스템의 설명이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화면인데, '의'가 두 번이나 사용된 게 거슬려요!
대화 진행 화면은 깔끔합니다. 그리고 오프 숄더의 저 여캐가 현재로선 가장 마음에 드는 여캐네요. 악당인 게 문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