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제 5년이 다 돼어가는군요.
뇌출혈로 쓰러지고 몸의 거동이 불편하게 된 시간이,,
하루종일 TV만을 벗삼아,
커다란 침대위에 덩거러니 홀로 누워있은 시간이,,
많이 힘드신줄 압니다.
마음대로 움직여 지지 않는 팔이나 다리 그리고 온몸의 뼈들이..
관심을 잘 가져주지 않는 이 큰 아들이 원망스럽기도 하겠지요.
괜시리 할아버지 옆에 잘 안가려는,
손주놈들도 그리 이쁘게 보이지는 않을겁니다.
아침으로 밤으로 기도원에 열심인 어머니에게도,,,
한번씩 생각나서 전화를 하는 큰딸과 작은딸에게도 그렇게 화를 내시니..
아버지, 원망스럽습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가 원망스럽습니다.
왜 그리 마음의 여유가 없으신지요.
왜 그리 육신의 부자연스러움을 부러 정신적 압박으로 바꾸려고 애쓰는지요.
당신의 말 한마디면 아무리 피곤한 몸이라도 벌떡 일으켜 움직이시는
어머니에게 어찌 그리 매멸찬 말들을 던지실수 있으신지요.
살기 힘들어 볼멘소리하는 아들 딸도 없지 않습니까.
드시고 싶으신 것, 하고 싶으신 것,
무엇이던지 해주고 따라주려는 평생지기에게 어찌 그리 무정하고 매몰찬지..
아버지.. 10여년전 20여년전을 생각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온가족이 겪어내지
않았습니까. 등록금을 제때 제때 내지못해 고생한 큰누이.
스스로의 레슨으로 집을 꾸려나갔고, 시집을 갔지 않습니까.
또, 큰누이가 비운 공백을 작은누이가 한동안 메웠지요.
혼기를 놓친 딸이 축복받는 결혼을 못하고 동거부터 시작했을때의
아픔을 어느정도는 알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역시 아버지가 옥에 계실때부터, 그리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좋아하던 음악도, 그림도, 모두 포기하고 그냥 그냥 평범한 직장인으로
다니고 있지 않습니까. 단지 돈이라는 썩어 문드러질 이유 때문에..
아버지.. 아버지의 30대는 화려했습니다.
그리고 40대는 더 화려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없었습니다.
언젠가 저에게 말씀하셨지요. 너는 내 아들 같지가 않다고..
너의 눈빛은 아버지를 보는 눈빛이 아니라고 말이지요.
아버지, 원망스럽습니다.
저도 다른집의 자식처럼 부모님이 시켜주시는 교육비로 학교를 다니고,
한푼의 빚도없이 Zero에서 시작한 생활을 하고 싶었습니다.
집이 없어 매달 40만원씩의 월세금을 주면서, 그것을 벌기위해 대학교
1학년때부터 한 과외는,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버지가 인정하기
싫어하는 아들의 생활이지 않습니까.
아버지, 원망은 있지만 미움은 없습니다.
말이 없고 무뚝뚝한 큰 아들이지만 당신에게서 난 자식입니다.
원망은 있지만 기쁨으로 바꿀 여력이 많은 사람입니다.
아버지의 환한 웃음을 언젠가는 보겠지요.
웃어만 주시고 얼굴 찌푸리지만 않으면, 이 아들 기쁘겠습니다.
친척들 사이에 둘러쌓여 위트와 유머로서 좌중을 휘어잡던,
40대 시절의 아버지를 보고싶습니다.
어머니에게 살뜰한 말 한마디 던져주면 고맙겠습니다.
한번씩 걸려오는 딸들에게 축복의 말 한마디 던져주면 고맙겠습니다.
비록 거동이 불편하고 온 몸이 쑤시고 아프지만,
그것이 마음의 평화를 다스리는데 더 좋은 약이라 생각됩니다.
아버지..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은혜는 평생을 갚아도 모자랍니다.
무어라고 지껄이고 고함을 쳐도, 이 못난 아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한 집에서 모시고 살며 같이 자고 같이 먹을겁니다. 그럴 겁니다.
창밖에 뿌리는 비가 유리창을 깰듯 후려치는군요.
비오는 날이면 더욱더 몸이 쑤시다구요. 어째, 오늘도 우울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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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생전, 아버지를 원망하며 썼던 글이,
오늘 문득 내 낡은 노트북의 하드디스크에서 우연히 튀어나옵니다...
낯선 이국땅에서 몇일의 휴일을 가족과 보내며... 잊어버렸건만...
당신 살아계실 적 따뜻한 말 한번 제대로 못해 주고 그렇게 가시고서..
.... 눈물이 나서 미치겠습니다.....
아버지....
ps. 아버지는 1 여년전 2004년 12월의 마지막날 급성 폐결핵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학창시절때의 사진입니다.. 낡은 잔영의 50년도 더 된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