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결혼게시판에 그런 글을 쓴적이 있어요 집안일도 내가 다하고 육아도 내가 다하는데 남편이 항상 말을 너무 예쁘게 해줘서 힘들지 않고 행복하다고 잘난척 그런 글을 감히 씨부린 적이 있어요
댓글중에 저렇게 다해주고 말로 받으면서 나는 건강해 나는 행복해 하다가 어느순간 힘들다는걸 깨달을지도 모른다고 그 댓글 찾아읽고 펑펑 울었어요 역시 나는 멍청이였어
저는 정신이 그리 건강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병원치료가 필요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자존감이 몹시 낮았고 애정결핍이 심했죠 진짜 이상한 남자만 만나다가 정신차리고 나를 가꾸고 열심히 살며 내가 나를 최고로 사랑하고 행복해진 시기에 남편을 만났어요
저보다 11살이나 많았지만 선하고 카리스마있고 다정하고 생각도 깨어있고 무엇보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 좋았어요 제가 대학중퇴라 학벌에 컴플렉스가 있거든요 제가 못다한 학업을 이어갈수 있게 용기를 줬어요 그러다 아이가 생겨 급하게 결혼했지만 결혼하고 나서도 공부는 계속 할 수 있다며
행복했어요 아 내가 이렇게 나를 사랑하니 건강하고 올곧은 사람을 만나 사랑받는구나
연애시절 딸기가 먹고 싶다고 하면 딸기를 사서 남편집으로 가서 저는 방에 앉혀두고 딸기를 씻어 꼭지를 하나하나 따서 접시에 담아와 포크로 하나씩 먹여주던 남편이었어요
결혼 후 딸기를 사서 씻어 꼭지를 하나하나 따서 접시에 담아 거실에서 티비를 보는 남편에게 가져가면 남편은 입을 딱 벌렸어요 먹여주는 건 제가 되었죠 그래도 너무 행복했어요 위에 썼다시피 남편은 말이 너무 다정하거든요 저는 말로 너무너무 사랑받았거든요
최근 저는 돌아기 육아에 지쳐있었고 남편 역시 새로 사업을 시작하며 몸과 마음이 몹시 고단했어요 남편은 아기를 예뻐하고 잘 놀아주었지만 언제부턴가 아기 똥기저귀 갈아주기를 싫어했어요
그...씨...똥기저귀 때문에...그깟 똥기저귀...
퇴근 후 제가 차려주는 밥 먹고 제가 설거지하는 동안 아기와 놀아주고 제가 설거지 다하고 오자 아기 똥싼거 같다며 기저귀 갈아주래요 여보가 좀 갈아주셔 요새 영 갈아준적 없잖아 아...나...너무 피곤해...여보가 좀 갈아주면 안될까? 마음이 쎄했어요 뭐지? 언제부터였지? 남편의 다정한 말이 더이상 마음에 들어오지 않게 된게?
뭘까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다하고 가끔 남편이 생색내며 도와주고 남편이 열심히 아기를 이뻐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함께" 육아하고 있다고 되도않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게 대체 언제부터였지?
그제서야 갑자기 뭔가가 보였어요 신생아시절 남편 퇴근하기만 기다린다는 수많은 글을 보며 나는 남편없이 다 해냈어 난 대단해 뿌듯해 남편이 야근하거나 출장가면 비슷한 시기에 애낳은 내친구는 세상이 끝나는 기분이었다는데 전 너무 신났어요 편해서ㅋㅋㅋㅋㅋㅋㅋㅋ 남편이 있으나 없으나 어차피 육아는 내차진데 남편몫의 챙김이 줄어드니 편할수밖에요
이게 정상인가?? 애가 이제 돌인데 남편이 없으면 편한게?? 육아는 함께하는거라고 함께하고 있다고 굳게 믿었는데 도대체 어느 포인트에서...ㅋㅋ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애써 자위했어요 아냐 안이상해 난 충분히 사랑받고 있어 저것봐 남편도 아이를 저렇게 예뻐하잖아 기저귀도 밥도 목욕도 옷입히기도 따라다니며 흘리는거 줍기도 재우기도 전부 내가 하지만 남편이 아이를 예뻐하잖아 그리고 나한테 다정하게 말해주잖아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항상 고생한다고
그때부터 조금씩 남편에게 잔소리가 시작됐어요 여보 기저귀좀 갈아줘 여보 애기 목욕도 시켜봐 여보 우리 함께 육아하고 있잖아 그렇지? 여보 왜 대답이 없어? 여보 왜 그렇게 한숨 쉬고 울상을 지어? 나 막 미안한 마음이 들잖아 마치 육아는 오롯이 내일인데 여보한테 자꾸 부탁하는 거 같잖아 그런거 아니잖아 여보 우리 함께 키우는 거잖아 애초에 낳지 않겠다고 울며불며 떼쓰는 나에게 좋은 일이라며 꽃다발 쥐어주며 아기낳고 행복하게 살자며 꼭 안아준 사람 당신이었잖아
마지막까지 믿었는데 내남편이 그럴리 없어 결혼하더니 남편이 변했어요 그런 흔한 이야기들 나는 아닐줄알았는데 아니어야 하는데 나는 결혼해서 더 행복해진 여자여야 하는데 내가 나를 사랑하려 죽어라 노력해야했던 공허하지만 미치도록 자유로웠던 미혼시절보다 훨씬훨씬더 행복해야 하는데
어젯밤에 울면서 말했어요 나는 함께 육아하는 기분을 원해 여보 밖에서 일하느라 힘든거 알아 그래도 집에와서 밥먹을 힘 있잖아 씻을 기운 있잖아 아기 똥묻은 엉덩이 씻어주는게 한시간이 걸려 두시간이 걸려 오분도 안걸리잖아 여보 내가 집안일 안시키잖아 안도와달라고 하잖아 왜 아기 예뻐하는건 잘하면서 똥기저귀 갈아주는건 싫어해 그거 내가 할일 부탁하는거 아니잖아 우리 같이 할일이잖아
남편이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어요 너 힘든거 아니까 나도 많이 도와주려고 하잖아 주말에 요리도 해주고 아기데리고 나들이도 가고 가끔 설거지도 해주잖아 나한테 힘든거 부탁하면 내가 안해주는거 아니잖아
아니야 여보 요리 설거지 가끔 해주는거 너무 고마운데 그런거 안해줘도 돼 집안일은 내가할게 육아를 같이 해야지 여보
그리고 남편이 한말에 저는 이사람이 제가 알던 그사람이 맞나 의심했네요
아기목욕은...엄마가 시키는 거 아니야? 아기는 엄마가 키우는 거잖아 솔직히 내주변에 나만큼 잘 도와주는 사람 없다 남자들은 아무것도 안하는 집도 많은데
하 하하하 아니 이게 무슨소리야 내가 지금 뭘들은거야
나는 걱정했어 연애할때 남편이 나를 너무 이뻐해서 아기도 날 이뻐했던 것처럼 너무너무 이뻐할까봐 내가 한번 안아볼 틈도 없을까봐 도대체 뭘?
우리남편 항상 하는 말이 여자도 사회생활을 해야한다고 집에만 있으면 발전이 없다며 공부든 자기계발이든 회사를 다니든 뭐든 해보라고 그런 여보가 너무 든든하고 고맙고 그랬어 아 근데 뭘하든지 일단 육아는 엄마인 내가 하는 거였네? 여보는 도와주고?
아 그러면 혹시 내가 일 다시 시작하면 집안일은 반반하는 거냐는 내말에 남편은 또 한숨을 푹 쉬며 내가 말했잖아 사업 자리잡힐때까지 한 오년은 죽었다 생각해야 한다고 여러번 말했잖아 그랬다 여러번 들었던 그말 아니 그게 진짜로 여보는 죽었다고 생각하라는 말이었어??ㅋㅋㅋㅋ 아니 난 또ㅋㅋㅋㅋ 그만큼 힘들겠지만 열심히 해보겠다는 말인줄 알았지 진짜로 남편은 죽었다 생각하고 육아도 집안일도 니가 다하라는 뜻인줄 내가 미처 몰랐네 시발 이런 눈치없는 년 대가리가 돌은년
아니 뭐 이런걸 주워다 결혼을 했지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진짜 미쳤었구나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걸 또 좋다고 끌어안고 다하고 있었어ㅋㅋㅋㅋ 상냥한 말과 다정한 포옹에 내 모든 몸의 고단함을 보상받으며 나는 건강해 나는 행복해 ...
여러분 저 어떡하죠?ㅋㅋㅋㅋ 남편 주위엔 남자는 아무것도 안하는 집이 많대요ㅋㅋ 그게 바로 우리 엄마아빠여서 내가 그꼴은 못보고 살줄 알았어 엄마처럼 안살줄 알았지 그동안 나 자기최면 오졌네 진짜
내친구들은 다 내또래랑 결혼해서 너무 당연한듯이 육아를 함께하고 있는데 나는 보고들은게 그런거밖에 없어서 내남편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는줄 알았지 와 뭐야 남편은 보고들은게 애는 엄마가 키우는거라 와이프 도와주는 착한 남편 뿌듯뿌듯 이러고 있었을거 아냐 난 내가 기특하다고 남편은 자기가 기특하다고 별로세대차이 이런거 못느꼈었는데 삼십대와 사십대의 차이인가요????
진짜 소름인건 남편의 그말이 자기도 알지만 인정하기 싫어서 뻔뻔하게 내미는 그런게 아니라 정말 진지하게 진심이라는거 너는 왜이렇게 철이없어~~하는듯한 그 한심한 표정 그리고 남편의 마인드를 이제야 깨달은 내가 더 소름
그동안 한번씩 쎄함을 느꼈을때 예를 들면 항상 밥먹고 난뒤 반찬뚜껑은 닫아주던 남편이 어느날부터 안닫아줬을때 여보~왜 요즘은 반찬뚜껑 안닫아줘~? 묻는 내게 씩 웃으며 이래서 하다가 안해주면 오히려 욕먹는다니까~ 처음부터 안해줘야해~ 그말을 들었을때 같이 처웃지말고 밥통으로 대갈통을 처버렸어야지 이 모지리야
하하하하하하하하 어젯밤 말문이 막혀 줄줄 울기만 하다가 마지막엔 아 그런가?? 내가 이상한가?? 여보가 일때문에 너무 힘드니까 육아도 집안일도 내가 해야하는건가?? 멍때리다가 오유 네이트판 그런것좀 그만보고 차라리 경제뉴스를 읽으라고 세상 굴러가는 것좀 알라고 다정하게 설교하는 당신에게 홀린듯이 응응 고개를 끄덕이고 아침에 눈뜨자마자 화가 너무 나서 미칠거같은데 참음
하루종일 혼란과 멘붕과 싸우다가 남편에게 온 카톡 "이렇게 한번씩 대화로 풀어나가면서 잘 헤쳐나가자 나도 육아에 열심히 참여하도록 노력할게'
아 결국 인정했어요 저도 육아는 엄마몫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랑 결혼했네요. 나는 남편의 공주도 뭣도 아니었고 그냥 주인님이 다정하게 대해주는 시녀였나봐
저 이제 어떡할까요 오늘 남편 퇴근하고 밥차려서 먹이고 그옆에서 아이 유아식 양 좀 많이 해서 아이 먹이며 같이 주워먹고 아이 다먹고 흘린거 닦고 아이 대충 씻기고 남편 밥먹은거 치우고 설거지 하는동안 남편은 아이 책 몇권 읽어주고 누워서 핸드폰 보고 설거지 다하고 아이 제대로 머리감기고 목욕시키고 나오니 남편이 소파에서 잠들었네요 여보 들어가서 편하게 자 했어요 어젯밤에 저랑 싸우느라 잠 부족했을 거거든요 오늘 운전하면서 졸음운전 안했을까 걱정했어요
저 이제 어떻게 할까요 그냥 이렇게 살면 되나요 막상 남편보니 내마음은 미칠거같은데 남편 별로 밉지는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