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이나 외국으로 출장을 갈 때 시차, 음식, 잠자리, 그리고 스케줄에 맞게 내가 움직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보다 더 큰 고민은
1일 1똥 (물론 왕성한 장운동을 할 때는 2똥 또는 3똥도..) 생활을 실천하는 나의 취향에 맞는 화장실이 있을까 하는 것이다.
나의 화장실 취향은 일단 좌변기여야 하고(앉아 쏴 자세를 취하고 해결해야 하는 변기의 경우 자칫 너무 힘을 주다 보면 다리에 쥐가나 주저앉아
버리는 대형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 , 휴지가 1/3 정도 차 있는 휴지통 (일정량의 들어있는 휴지의 양을 보면 그만큼 다른 사람들도 편하게
이용했다는 확신이 선다.)과 심장이 약할 거 같아서 악어나 사마귀 같은 무서운 동물이나 곤충이 나오지 않는 정도이다.
앞으로 소개하는 내가 경험한 국가들의 화장실에서 호텔은 제외했다. (호텔은 다들 깨끗했기 때문에 긴박한 순간에 찾았던 화장실이다.)
가장 먼저 여행했던 태국 방콕
야시장을 구경하다 친구들과 함께 극장식 술집에서 뱀 쇼를 봤다. 동물원에서 본 아나콘다만 한 뱀을 목도리처럼 걸친 아저씨는 마치 내가 한겨울
목도리를 자유자재로 꼬듯이 뱀을 배배꼬며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온몸으로 뱀을 두르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니 내 안의 황갈색
아나콘다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렇다 뱀 쇼를 보다 신호가 온 것이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우리가 뱀쇼를 보고 있는 극장식 술집은 내부가
깔끔하기에 화장실도 당연히 깔끔하다 생각을 했다. 나는 직원에게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을 물어봤다.
"다블유 씨 훼어?" 전 세계 어느 국가에서 통할 거라 믿은 나의 콩글리쉬를 직원이 못 알아듣는다. 그리고 그는 내게
"뭐라꾸?"
"화장실 어디에요?"
"쩌기 나가서 건물 옆"
'짜식.. 한국어 잘하네! 그런데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급했다.
건물 밖으로 나갔을 때 작은 임시로 지은 건물 같은 게 딱 봐도 화장실 같았다. 그리고 그 건물 앞에 인상 좋은 할머니 한 분이 부채질하며 앉아
있었다. '하필이면 냄새나는 화장실 앞에 왜 앉아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취향이려니 하며 화장실을 들어가려는 데 그 할머니가 내게
손을 내민다. '뭐야.. 똥 쌀 때 힘내라고 하이파이브라도 해주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말했다.
"화짱실 쩐 원..."
속으로 '무슨 화장실 이용하는 데 돈을 받아. 참았다가 호텔 가서 편하게 무상급똥을 즐겨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 안의 뱀은 어서 빨리
세상에 똬리를 틀고 싶어 안달이었다. 결국, 나는 천원을 지불하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을 열었을 때 80년대 학교에서 보던 '쭈그려 앉아 쏴' 변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참아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한국 땅도 아닌 4시간
거리의 태국에서 조국 대한민국의 망신을 시키는 실수를 할 수 없고, 천 원이나 내고 입장했는데 이국적인 분위기의 화장실을 즐겨야지 하며 간만에 '쭈그려 앉아 쏴' 자세를 취했다. 전등이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조금이나마 어둠을 밝히려 핸드폰을 켰는데 화장실에는 도마뱀
두 마리가 내게 "멀리서 여기까지 와서 고생이 많네! 힘내!" 라고 응원을.. 아니 화장실에 도마뱀이 왜 있는 건데. 태국식 정통 인테리어인가 하고
넘어가려 했지만 자꾸 신경이 쓰였다. 결국, 그날 난 도마뱀 두 마리 그리고 내 안의 아나콘다와 함께 화장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다음 여행한 국가는 필리핀
가이드가 끌고 간 어느 이름 모를 식당, 정체불명의 음식을 시킨 뒤 두리번거리고 있는 나를 아시안 프린스같이 멋진 콧수염을 기르고 눈에 화장을
한 사장님이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왜 도대체 식당 벽에 느끼한 자신의 사진으로 도배해 놨는지 의문이 들었다.
정체불명의 음식을 맛보는 순간 '아.. 사장이 느끼하게 생겨서 그런지 음식도 덩달아 느끼하구나!'를 느꼈다.
손님이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영어를 잘하게 생겨서 그런지 느끼한 사장님은 우리 쪽 테이블로 와서 계속 뭐라 말을 걸었다.
그러면서 유독 나를 느끼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내게 '내 콧수염을 한 번 만져봐.'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나는 미국 텍사스식 영어를 배운 사람이라 느끼한 사장의 느끼한 필리핀식 영어는 당최 알아듣기 힘들었다. 가이드는 이럴 때 나를 지켜
줄 것이지 밖으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화장실로 일단 피신하자.' 였다.
"보스.. 플리즈 다블유 씨 훼어?
다행히 영어를 쓰는 국가라서 그런지 느끼한 사장은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화장실 방향을 안내했다.
'어우.. 사람도 느끼하고, 음식도 느끼해서 죽을 뻔 했네.' 라고 생각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화장실을 문을 여는 순간 좌변기임을 확인하고
'있는 힘껏 힘을 줘도 다리에 쥐는 일어나지 않겠군.' 하며 안심할 찰나 변기에 커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싸라고..
벽에 매달려서? 점프하면서? 아니면 물구나무서서? 결국 나는 도자기 재질로 추정되는 변기 위에 발을 올리고 양팔을 쭉 뻗어 벽에 지탱하고
자세를 취했다. 항문에 힘을 집중해도 부족할 판에 힘이 양팔과 두 다리 그리고 항문에 분산돼서 집중되니 제대로 큰일을 제대로 치를 수가 없었다.
원하던 목표 달성을 하지 못한 채 밖으로 나오다 보니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한숨같은 방귀만 피식거리고 나온 나는 드디어 나타난 가이드에게
짜증을 냈다.
"화장실 변기에 커버가 없어요. 도대체 어떻게 싸라고.. 저 변기위에서 팔 벌리고 쭈그려 앉아 있다가 힘만 빠져서 나왔어요."
가이드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필리핀은 화장실에 커버 있는 데가 그리 많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럼 어떻게 싸요? 그냥 변기 위에서??"
"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보통 약간 일어선 상태에서 변기에 엉덩이를 걸치지 않고 다리 힘으로 버티고 싸는 편이에요."
"그럼 거의 다리 안 아프세요?
"저도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운동도 되고 좋은데요."
역시 화장실은 한국이 최고라는 생각을 하며 조국 대한민국의 변기 커버가 있는 화장실을 그리워했다.
그리고 계속 느끼한 사장님은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에는 중국과 일본으로 떠납니다. 휘리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