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4시. 알람이 울리기전 딸아이의 목마름소리에 잠에서 깼다. 가볍게 목을 축인 후 가래떡과 사과 몇 조각만 입에 넣은 후 곧바로 딸아이를 씻겼다.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 입은 후 몇 일 동안 아내가 챙긴 캐리어 가방을 정리한 후 정확히 새벽5시에 모두 집을 나섰다.
아침6시. 아내 친구들과 아이들을 만난 곳은 인천공항 출국장. 출국수속을 마친 후 가볍게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아내와 딸아이, 그리고 그 친구들은 괌으로 향했다. 남편들만 빼고.
사실 몇 달 전부터 이날이 오기만을 기다렸었다. 남편, 아빠 그리고 남자로서 너무 속 보이는 말 같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던 나에겐 황금연휴나 다름없었다. 여름휴가 같은 일주일이라는 시간. 혼자 여행이라도 갈 듯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계획이라도 짜야할 것만 같았다.
그들을 보내고 들어온 집에는 아침부터 내리는 비 때문인지 냉기가 완연했다. (오늘은 회사 국경일이었다.) 거실 여기저기 흩여져있는 장난감과 인형들. 그리고 아내가 돌아온 듯 안방에 걸려 있는 옷가지. 아직 그들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호랑이 없는 굴에 아직 여우는 왕이 아니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사위 굶을까 챙겨주신 장모님의 반찬으로 아침을 챙겨먹고 TV를 켰다. 백만 년 만에 처음 본 주부 프로그램부터 제목만 듣다 보지 못한 철 지난 드라마까지. 아이 키우며 포기했던 아침 방송을 생전 처음 본 눈빛으로 한 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간만에 리모컨으로 채널 돌리기를 시도하던 중 내 처지와 비슷한 프로인 ‘나 혼자 산다’를 보며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간 곳은 커피전문점. 나는 카페에 앉아 노트북 켜놓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며 작은 행복을 느끼는 자칭 오캄족이다. 평소 회사나 집에서 틈틈이 시간을 내 작업을 했지만 오늘 하루, 이 시간의 주인공은 나야 나. 그러나 자리를 잡고 미간을 찌푸리며 꽤 집중을 했지만 기나긴 오후 시간을 버티기엔 다소 무리였다. 여기저기 좀 쑤시며 일어나 몸을 움직이라는 신호가 왔다. 다시 집으로 향하는 길. 비는 아직도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나 홀로 들어온 집. 손발만 씻고 팬티바람에 방과 거실을 돌아다니며 냉장고 음식을 마구 꺼내먹었다. 결혼 후 사라진 줄 알았던 나의 본능이 어디선가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평소 꺼려했던 빵집에 들러 빵을 샀고 금기해야할 라면도 꺼내 내 눈치도 보지 않고 흡입했다. 이런 게 자유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동안 내 스스로 채웠던 마음의 족쇄를 조금은 풀어준 셈이었다.
TV를 켜고 저녁 뉴스까지 보다보니 나의 하루가 다 지나간 기분이었다. 아쉽지만 주말을 하루 앞둔 내일을 위해, 정해진 기상 시간을 위해, 풀어진 마음을 그대로 둘 순 없었다. 일상의 끈을 다시 조여 내일 하루를 잘 버텨야 한다. 그 하루를 잘 버티면 오늘보다 조금은 더 느슨해진 나를 선물 할 것이다. 이것도 내가 나에게 주는 작고 확실한 행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