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랑 저는 원래 사이가 좋지 못했어요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다가 IMF 때 크게 부도가 났는데 엄마 몰래 사채빚도 끌어 쓰고
그것때문에 온 가족이 매일 빚쟁이들한테 시달리고
나중에는 온 집안에 압류 딱지가 붙더라구요
엄마는 그걸 어린 저한테 전부 털어놓고 아버지 욕을 하고
저를 혼낸다던가 하는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푸시곤 했어요
엄마가 정신적으로 굉장히 약하신 분이거든요
그 이후로도 아버지는 그때 사업이 부도난 게 충격이었는지
한 일년남짓을 집에서만 보냈던 것 같아요
엄마는 매일 나가서 돈을 벌어오구요.
아무튼 그때의 기억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아버지는 책임감 없고 능력없는 주제에 돈쓰는것만 좋아한다, 불쌍한 우리 엄마 등골을 빨아 먹는다'
라는 생각이 남아있어서 아버지 말이라면 무조건 반항하고
소리지르고 당신은 아버지도 아니라고 몇번을 그렇게 못을 박았네요
그리고 지금은 극복했지만 제가 좀 심각하게 대인공포증, 시선공포증을 겪었는데
정말 딱 한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버지에게
"사실 저 다른사람이랑 있으면 막 불안해요. 심장이 쿵쿵 뛰고 식은땀이 나고 숨이 잘 안 쉬어져요. 사실 지금 아빠랑 있는데도 진짜 불안해요"
라고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어요
아버지가 그냥 듣고있다가 쓱 일어나서 방문을 닫고 나가시더라구요
그 다음에 거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안하시더라구요
전 그때 진짜 크게 상처받았어요.
내가 진짜 이상하구나, 아빠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니까 아예 상대도 안하고 나가버리는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쓰면서 지금 생각해 보니까 아버지가 내가 자신이랑 있는게 불편하다는 말을 돌려서 한거라고 생각 했을 수도 있겠다 싶네요
아무튼 그 일 이후로 아버지에 대한 불신감은 극에 달해 갔고
아버지와 사사 건건 부딛혔으며 어머니만 제 소중한 부모님이었습니다.
그러다 삼년 전에 일이 터졌습니다
집에 분위기가 심각하더라구요
엄마가 바람을 폈다구요
바람핀 남자의 부인이 아빠를 찾아와서 난리를 쳤대요
둘이 노래방도 가고 치맥도 먹고 카톡한 증거도 있대요
그래서 제가 엄마랑 따로 얘기를 해 봤더니 엄마 말이 그냥 진짜 친구사이래요
진짜 만나서 얘기만 하는 친군데, 아빠가 너무 과민 반응을 하는거래요.
그 당시에 제가 생각했을때도 우리엄만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아빠가 사업 부도나고 그런 상담을 할 친구가 한명도 안남은 우리 아빠가
저를 잡고 술한잔 같이 하재요
그래서 술마시면서 제가 얘기했어요
"아빠, 엄마를 그렇게 못믿어요? 엄마가 그럴 사람이예요? 아빠가 너무 과민반응하는것 같아요."
결국 아빠는 그냥 없던일로 하기로 했어요.
사실 이게 제일 마음에 걸려요 이걸로 아버지가 많이 상처받은건 아닐까?' 하는거요
지금 생각해 보니 제가 진짜 어떻게 그렇게 무신경 한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싶어요
사실 제일 위로받아야 할 사람은 바람핀 엄마가 아니라 아빠가 아니였을까 하고요.
거기서 엄마편을 드는게 아니었는데, 그것때문에 아버지가 아직 저에게 마음을 못여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아빠가 과민반응을 한게 아니였을지도 몰라요. 진짜 바람이었을 지도 몰라요. 저한테 얘기 못한게 많을지도 몰라요.
저는 아마 아버지가 사업이 망하고 난 이후 단 한번도 아버지의 딸이 아니였을지도 모릅니다.
정신이 불안정 할 때 아버지가 저를 죽이려고 한다는 망상에 항상 빠져있었고
아버지를 경멸하고 증오했었고 아버지에게 어떻게 하면 상처를 줄 수 있을까 하고 아버지 얼굴을 볼때마다 생각했어요.
진짜 아버지 가슴에 못박힐 말을 많이 한 걸 알고있어요
아버지는 어릴때 유복하게 자랐고 언제나 친구도 많았었대요
지금은 아버지 용돈 모아서 갖고싶은 바지 하나를 사고 좋아하세요
그 많았던 친구들은 아버지 사업이 망하자 뒤도 안돌아 보고 연락을 끊었대요
자신만만 하던 아버지가 지금은 굉장히 작고 초라하고 사회에 적응하는것도 힘들어 하세요
아직도 친구는 만들지 못했어요
저도 이제 나이가 이십대 후반 가까이 되고 모났던 성격도 둥글게 되고
저도 제가 힘들었던거 훌훌 털어버리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성숙하니까
안보이던게 보이네요
잘못한거 밖에 안보여요
이제 아버지한테 정말 잘해드리고 싶은데
아버지는 가끔 제가 먼저 마음을 열어보여도 절대 제가 자신을 좋아하고 살갑게 여길리가 없다고 생각하는거 같아요
절대 저에게 마음을 여시지 않으시네요
제가 좀 더 따듯한 말을 많이 하고 살갑게 군다면 가능하겠지만
저도 전에 저지른 일이 많아 도저히 시도하기가 힘드네요
오글거리기도 하구요
뭘 어떻게 관계를 개선해 나가야 할 지 모르겠어요
아버지는 절 포기한듯 싶은데ㅠㅠ
잘해드리고 싶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