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늘 황우석 교수가 난자 윤리 논란으로 인해 줄기세포허브 소장직 등의 공석에서 사퇴하고 '백의종군'하기로 공식적 입장을 밝혔다. 황 박사를 존경하고, 한국 과학의 발전을 바라는 한 시민으로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황우석 교수가 법을 어기거나 뚜렷한 윤리 규정을 어긴 것이 아닌만큼 이번 일이 '황교수 죽이기' 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이 문제가 황우석 교수 개인의 문제가 아닌 생명 공학을 둘러싼 우리 사회 전체, 나아가 세계적 문제이니 만큼 이 일이 더욱 투명하고 윤리적인 생명 공학의 발전을 위한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많은 네티즌들 역시 황우석 교수를 지지하고 나섰다. 이는 훌륭한 과학자에 대한 당연한 지지이다.(나 역시 난치병 치료와 과학 발전을 위해 황 교수의 연구가 지속되어야 하며, 거기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네이버 인터넷 설문조사 결과에도 황 교수 사퇴 반대가 90%를 넘어 황 교수에 대한 네티즌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황우석 교수와 관련된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며 한가지 의문스러운점이 생겼다. 당연히 '황 교수님 힘내세요' 또는 '이번 일이 생명공학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혹은, '우리모두 뜻을 모아 황 교수를 지지합시다' 라는 내용이 주류를 이룰 줄 알았다. 아니 그래야 정상이 아닌가? 놀랍게도 MBC나 민노당을 욕하거나, 황교수를 시기하는 일부X 들에 대한 욕설이 태반이었다. 그것도 논리적 반박이 아닌, '이 죽일 X새끼야' 식의 직설적인 욕설이.
'네티즌들이 이리 MBC를 욕하는 것을 보니 PD 수첩이 무언가 잘못한게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MBC 홈페이지에 들어가 다시보기를 클릭했다. PD 수첩의 내용은 황 교수의 연구에 대한 윤리 의혹을 제기한 것이었다. 확실히 MBC측의 보도가 황 교수에게 불리한 것은 사실이었다. 나쁘게 말하자면 의도적인 흠내기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의 '묻지마 고발' 이나 '한탕주의' 식 저널리즘은 마땅히 지양하여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비판은 당연하며 정당한 것이다.
그런데.... MBC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네티즌들의 의견들은 황당함을 넘어 충격이었다. 여기 몇 가지를 직접 올린다. 구체적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MBC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시기를....
'MBC 보도에 잘못이 있다.' 뭐 이런 의견은 당연한 지적이다. 'MBC 규탄과 황 교수 지지를 위한 촛불집회를 열자' 이것 역시 괜찮은 생각이다. '공개수배 민족의 반역자 한학수' 이건 좀 감정적인데. 'MBC 보지 맙시다' 그렇게까지 잘못했나? '싸잡아 다 화형시켜야 되' 이건 좀 심하지 않나요? MBC에 대한 비판, 아니 욕설은 PD 수첩을 넘어섰다. 'MBC에 광고하는 기업 제품 불매운동을' 'MBC 니 놈들이 뭐 잘하는 게 있다고'. PD 수첩이 잘못된 내용을 방영했다면 그 잘못을 지적하고 고칠 것을 요구하는 게 옳은 일 같다. 왜 MBC가 쌍욕을 먹고 관련 PD들이 매국노가 되어야 하는가. 그리고....'진중권 X새끼' '민노당 매국노' 어! 진중권하고 민노당이 왜 나오지? 나는 또 민노당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문제는 민노당이 이번 문제에 대해 '황 교수가 확실히 책임을 져야 하고, 이 일을 계기로 생명 윤리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브리핑을 한 데서 시작되었다. 민노당 홈폐이지에 달린 덧글도 예술이다. '당신들의 편협한 자세를 진보라 할수 있느냐' 이 정도는 신사다 '다음 선거에서 두고보자' 는 식의 협박은 물론 '민노당 X새끼' 식의 마구잡이식 욕설도 섞여 있었다. 가끔 '그래도 이런식으로 욕은 하지 말자' 는 식의 글이 올라오는데 올라오자마자 역시 욕설로 덧글이 달린다. 네이버 토론방에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불길이 종교계까지 붙었다. '기독교 개X들' 이런식으로.... 진중권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에서
'조국을 위해 진실을 덮어라...지금이 무슨 1930년대 나치 독일입니까? 아니면 여기가 북조선의 애국언론입니까? 애국질, 너무들 쉽게,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는 것같네요. 이제 정신들 좀 차리시지요.'
이런 말을 했다 졸지에 매국노가 되어버렸다.
네티즌들의 의견을 종합하자면 다음과 같다.
MBC PD 수첩, 민노당, 진중권, 종교계 - 이들은 황 교수를 음해하는 악의 세력이며 국민의 이름으로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
여기서 한가지 묻고싶은 것이 있다. 도대체 그 많은 네티즌들 중 몇 명이나 PD 수첩을 보았으며, 몇 명이나 민노당 공식 브리핑을 다 읽어 보았고, 몇 명이나 황 교수의 해명글 전문을 보았을까? PD 수첩 시청률은 5%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인터넷으로 보았다는 말인가? 민노당 공식 브리핑 조회수 역시 2500을 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서 민노당을 욕할 근거를 얻은 것일까?
민노당 공식 브리핑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관련 당사자가 책임질 것' 과 '생명 관련 연구가 윤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지 황 교수를 비난하는 내용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비판이지, 일부 네티즌들고 같이 근거없이 쌍욕을 쓰는 비난을 한 게 아니다. 오히려 황 교수의 연구에 차질이 생기는 것에 유감을 표하고 있다.
MBC PD 수첩이나 진중권 씨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다. 생명 관련 연구에 윤리 논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를 비판하는 시각 역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당연한 일이다. 이게 왜 역적이 되어야 하는가?
네티즌들이 이들을 욕하는 주된 이유는 '국익에 방해된다' 거나 '난치병 환자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등이다. 난치병 환자들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당연히 황 교수의 연구로 새 삶을 찾기를 바랄 것이고 그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만 '국익을 위해서' 라는 주장은 한번 비판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줄기세포 연구가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윤리 문제 제기를 '국익' 의 이름으로 틀어막으며 연구를 강행하는 것이 진정 국익을 위한 길인가? 세튼 박사의 결별이나 '네이처' '사이언스' 지의 반응 등의 경우를 보더라도 윤리적 의혹이 생기면 국제적인 비판은 물론이고 심하면 '논문 취소' 당할 가능성도 있다. 만약 '논문 취소' 나 '국제적 고립' 등의 결과를 낳는다면 이건 오히려 국익을 저해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가 줄기세포 연구에서 앞서 있지만 연구를 효과적으로 진행하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이런 사실을 간과해서는 않된다.
그리고 네티즌들이 말하는 '국익' 이란 무엇인가? 줄기세포 연구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 아닌가? 윤리 문제를 일으키면서까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가?
황 교수 본인도 본의 아니게 논란을 일으켜 죄송하다 인정하였으며, 국민여러분의 비판을 달게 받겠다 하였다. 참으로 겸손하고 존경받아 마땅한 태도다. 그런 황 교수가 과연 네티즌들의 마구잡이식 '매국노 처형'을 지지할지 의문스럽다.
[ 현재 저희들이 수행하는 연구는 매단계마다 세계 최초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저희 연구진들은 눈덮힌 들판에 처음 발자국을 남기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현재 법규정이나 윤리항목에 비추어 볼때 과거 저희들에게 깊은 통찰이 부족했던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윤리와 과학은 인류문명을 이끌어가는 두 수레바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연구는 윤리의 테두리 속에서 진행되어야 하겠지만 현실은 앞서가는 과학을 뒷받침하는 윤리규정이 마련되지 못하는 예가 드물지 않습니다. 저희들의 연구도 그와 같은 경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저희들의 2005년도 사이언스 논문은 국제적 윤리기준에 부합되도록 생명윤리학자들의 도움도 받았고 검증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환자유래 줄기세포주 확립에 성공한 나라는 저희밖에 없으며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를 보유, 공급할 수 있는 나라도 저희밖에 없습니다. 줄기세포 연구가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변함없이 성원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번의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응하여 냉정하고 신중하게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뼈아픈 교훈을 얻었습니다 ]
- 황 교수의 기자회견문 중 -
황 교수의 말대로 현실이 앞서가는 과학을 따라잡지 못해 생긴, 어쩌면 불가피한 갈등이다. 그리고 황 교수는 이런 갈등의 죄없는 희생양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명윤리 문제는 언젠가는 겪어야 할 문제가 아닌가? 그리고 겪어야 할 문제라면 이번 일을 계기로 과학과 윤리가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한다.
설사 MBC 나 민노당, 진중권씨에게 잘못이 있다 해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앞으로 나아갈 올바른 대안을 제시하는 게 성숙한 네티즌들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이 죽일 매국노들, X 새끼들' 식으로 감정적이고 무분별한 비난과 욕설을 일삼는 것은 비이성을 넘어 [광기] 에 가깝다.
네티즌들이 욕설과 비방을 넘어 이성적인 비판을 하기를
그리고 황 교수님의 연구에 차질이 없기를
한국 과학의 미래가 밝기를
바라며 부족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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