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근 몇 달 만에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더니 자극적인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로 진열되어 있더군요.
뭐지? 갑자기 식민지 근대화론이 인기인가? 이 시국에? 해서 한번 사 봤습니다. 이게 큰 화제가 된 줄은 나중에 알았네요.
내용이 굉장히 충격적입니다. 단순한 친일 서적 그 이상입니다. 중간에 제가 문장을 맞게 읽고 있는 게 맞나 몇 번이나 의심하면서 보았습니다.
대체 어쩌다 이런 주장이 나왔지? 하면서 자세히 살펴보면 근대사를 다루는 것 치고 근거로 드는 1차 사료가 굉장히 빈약하더군요. 예를 들어..
이 챕터는 김낙년이라는 분이 쓴 것인데 근거가 본인이 쓴 책 4권(...)입니다. 다른 챕터들도 대체로 저런 식이 많고요. 더 파고든다면 저 책까지 사서 1차 근거가 어디서 왔는지 살펴볼 수도 있겠지만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더군요.
그래도 책 자체는 일독을 권합니다.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좀 다른 의미로.
아래는 요약입니다. 불쾌할 수도 있으니 주의를.
- 일본이 토지조사사업으로 문맹인 조선 농민들의 땅을 강탈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당시 농민들은 토지 조사를 반겼다.
근거 : 조선에서는 조선 후기까지도 3년마다 호적을 신고했는데, 주기적으로 호적을 신고할 만큼 똑똑한 조선 농민들이 토지 신고를 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아, 물론이죠. 우리 위대한 조선 농민들의 문맹률이 0%였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아니겠습니까.)
- 일제강점기 때 한국인에 대한 즉결처분이나 집단학살은 있었던 적이 없다.
근거 : 당시 일본 경찰법에서 즉결처형이나 학살을 금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났을 리가 없다.(아 그럼요.)
('아리랑' 같은 책을 언급하며 일제의 만행에 대한 과장이 심하다며 까고 있는데, 과장이 있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즉결처분이 아예 일어나지 않았다'는 본인의 주장에 대해서는 거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 독도는 일본 땅이다(!)
근거 : 조선의 여러 지도와 역사서에서 울릉도 옆에 우산도가 있다고 하여 사람들이 이를 독도라고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책이나 지도에 기술된 우산도는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환상의 섬'이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은 섬이었다. 전부 116장의 지도에 우산도가 그려져 있으나 지도마다 우산도의 위치가 제각각 다른 것이 그 증거다. 추가적으로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두 섬이 '거리가 멀지 않고 날씨가 좋으면 서로 보인다'고 적혀 있다. 두 섬이 가까우면 서로 보이는 것이 당연한데 굳이 '날씨가 좋으면'이라는 단서를 붙인 것이 우산도가 상상의 산물이라는 방증이다. 조선 후기에 등장한 '석도'라는 이름 역시 독도가 될 수 없는데, 하나의 섬이 '석도'와 '우산도'라는 두 가지 이름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까는 우산도는 독도 이름이 아니라면서요)
또한 1906년, 당시 조선 정부는 독도가 일본에 편입되었다는 사실을 보고받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는 당시 조선이 독도를 자신의 영토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강력한 증거이다.(암 그럼요. 절대 1905년에 을사조약을 체결해서 외교권을 박탈당했기 때문이 아니죠. 고종이 잘못했네요.)
- 일본은 쌀을 '수탈'한 것이 아니라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수입'한 것이다. 일본에 쌀을 수출함으로써 조선 농민들이 가장 큰 이득을 보았다.
근거 : 당시 쌀이 시장 가격에 따라 거래된 자료가 남아 있다. 당시 일본 내 쌀값 하락을 이유로 조선 쌀 수입을 제한하려 하자 [동아일보]에서 조선의 쌀 값 하락을 이유로 이를 반대하는 사설을 냈던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농민의 생활이 빈궁했던 것은 일본에 쌀이 반출되었기 떄문이 아니라 미개한 조선시대 지주제의 잔재 때문이다.
(이는 대체로 사실이지만, 수출상이 아닌 농민들이 과연 그 시장 가격에 따라 정당한 대가를 지급받았는가에 대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은 빠른 경제 성장과 근대화를 이루었으며, 그 과정에서 조선인들도 일본인들과 거의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
근거 :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에 법적으로 명시된 차별이 거의 없었다. 만약 조선인을 차별했다면 조선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네?) 그리고 일본과 한국 간의 관세가 폐지되어 일제강점기 동안 GDP 대비 수출액이 거의 산업화 시대 급의 성장률을 보였다.(아, 수출 많이 해서 참 기쁘네요.) 국민소득 역시 연평균 4.9%나 증가했는데, 이는 일본인과 조선인을 합친 통계이긴 하지만 일본인은 소수이기 때문에 무시해도 괜찮다.
- 위안부는 전부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성매매였다. 이 과정에서 강제성은 없었으며 종군 위안부 여성들은 높은 위험성을 대가로 큰 돈을 벌었다.
근거 : 성매매는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있었고, 이후에도 있었으며, 6.25 당시 한국군에도 있었고 미군에도 있었다. 그리고 일제시대 때 인기가 많던 위안부 여성들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며 본국으로도 거액의 돈을 송금한 사실이 있다. 일본군의 위안부 여성들은 고작 하루에 6명 정도밖에 상대하지 않았다.('고작'?) 여성을 고리대금으로 속박하거나 식사/생필품을 터무니없는 가격에 제공하여 성매매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하는 일이 있...기는 했는데 신경 쓸 수준은 아니다. 한 달에 2번이나 외출이 가능했다는 것이 그들이 자유로웠다는 증거다.
모집할 때 평범한 간호 업무라거나 하는 식으로 '약간의 속임수'를 쓰거나, 아버지에게 돈을 주고 딸을 사오는 등 약간의 마찰이 간혹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사소한 일들은 신경쓰지 말자. 전방에 있던 위안부들은 간혹 끔찍한 일을 당하곤 했는데, 전쟁은 원래 끔찍한 것이고 옆에 있던 일본군들도 끔찍한 일은 많이 당했으니 역시 별로 신경써 줄 이유는 없다. 그들은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을 선택했을 뿐이다.
일부 강제로 위안부에 끌려갔다는 진술들이 있는데, 이는 기억의 왜곡과 거짓 진술에 의한 것이므로 교차검증이 불가능한 이상 역사학자인 나는 이를 사료로 인정하지 않는다.
(저자 분 가족에게 꼭 '하루에 고작 6회'의 '자발적 성매매'를 '고작 2년'간 경험시키고 저자 분께서 옆에서 지켜보도록 하고 싶네요. 참고로 이 챕터를 서술한 것은 책의 메인 저자인 이영훈 씨입니다.)
- 일본 패망 직전의 수 개월을 제외하고 강제징용은 존재하지 않았다.
근거 : 당시 일본은 조선 노동자들의 로망이었으며, 당시 조선 노동자들은 일본에 건너가기 위해 밀입국도 서슴지 않았다. 일본으로 건너간 숙련된 조선인 광부들은 조선 노동자보다 훨씬 높은 임금을 받은 것은 물론 일본 순사 초임의 4배나 많은 봉급을 받았다.(기본급 이외의 수당들까지 포함한 것인지는 모르겠음.) 심지어 당시 일본 광부들이 조선 광부가 일은 더 못하면서 자기네들보다 더 많은 돈을 받는다고 항의한 일도 있다. 임금이 체불되거나 '강제 저축'당하는 일이 간혹 발생했으나 이는 일본 노동자들에게도 발생한 일이니 무시해도 괜찮다.
(역시 일부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광복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 남았던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광부 이외의 직종에 대한 언급이 없고, 자발적 징용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넘어 '강제 징용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 육군특별지원병과 학도지원병에는 강제성이 없었고 오히려 엄격한 선발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조선 청년들은 이를 출세를 위한 기회로 여겼다.
근거 : 당시의 기록에 의해 명확.
(마찬가지로 사실이나 일제강점기 후반에 이루어진 강제징병에 대한 이야기는 실수였는지 살짝 빼먹었네요. 앗쿵!)
- 박정희 당시 이루어진 한일청구권협정에서, 일본은 오히려 한국에게 돈을 받아야 할 입장이었으나 크게 인심을 써 3억 달러나 지원해 주었으며, 여기에 더해 엄청난 양의 차관까지 제공해 준 혜자 협정이었다.
근거 : 당시 일본인이 한국에 남기고 간 재산이 22억 달러였으며, 한국이 일본에게 받아야 할 청구액은 한국 측 추산 7억 달러, 일본 측 추산 7천만 달러였다. 식민 지배 동안 한국인이 받은 물질적, 정신적 고통은 일제가 남기고 간 재산 22억 달러와 퉁치고(네?), 당연하지만 둘 중 일본 측 추산이 맞으니 우리가 받을 돈은 7천만 달러가 맞다. 하지만 여기서 일본이 크게 인심을 내 3억 달러를 무상으로 지원해 주기로 한 것이다.
(와, 정말 고맙네요. 일본이 이렇게 착한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다들 뭐하세요? 유니클로 매장으로 안 가고.)
- 일본이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서 한반도 곳곳에 수천 개의 쇠말뚝을 박았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다.
(이건 맞는 말이고요.)
- 고종과 민비는 국제정세를 읽지 못한 무능한 암군이었다. 러시아에 의존한 것은 쉴드가 불가능한 최악의 선택이었다. 을사조약 역시 고종이 맺은 것이며 을사오적들은 오히려 조약의 내용을 조금이나마 조선에 유리하게 고쳐 보려고 애썼다.
(뭐 이것도 얼추 맞는 말이긴 한데.. 을사오적들이 그 이전과 이후에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찾아보기 귀찮았는지 언급하지 않더군요.)
- 박정희는 한일청구권 협정 이후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돈을 배상했다.
근거 : 당시 박정희는 [청구권자금의 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강제징용 도중 사망한 피해자의 유가족들에게 무려 25억 6천만 원을 전달했다. 이는 일본에게 받은 배상금 3억 달러의 1.8%밖에 안 되긴 하지만,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에게 체불당한 금액(미수금)과 거의 일치한다. 사망에 대한 보상금과 체불금은 의미가 조금 다르다는 것은 나도 아는데, 사망한 사람이 체불금을 받을 이유는 없으므로 여기에 대해 태클을 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선동이다.(무슨 소리인지 이해는 안 되는데 정말 책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3줄요약
1. 위안부는 자발적 성매매였으며
2. 일본은 조선을 무료로 근대화시켜준 데다 돈까지 주었고
3. 독도는 일본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