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올리려 했더니 아이폰 맹이라 올릴 수가 없네요.
아기를 낳고 지금까지 밥을 계속 해먹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밥상이 아니었어요.
더군다나 반찬까지 해먹는다는 것은 꿈 같은 일.
미역국을 곰솥으로 한솥 끓여 밥만 말아먹기 일쑤고, 어떤 국이나 찌개를 해도 한솥을 해서 먹곤 했어요.
가끔 서방이 보내주는 소고기를 먹을 때면 고기맛과 쌈을 싸먹는 그 풍미와 시간을 음미하며 먹고 싶지만 현실은 싸늘히 식은 고기와 밥.
밥을 먹으려다가도 아기가 보채면 아기부터 챙겨야 하는 게 엄마라는 존재의 의무이자 권리니까요.
오늘은 간만에 아기가 낮에도 별로 보채지 않고 왠지 피곤하기는 하지만 컨디션은 괜찮아서 아기가 밤잠을 잔 후, 작업에 들어갔어요.
일단 냉장고 청소부터 한 뒤 남은 채소들을 싹싹 긁어서 두부고추장찌개를 끓이고, 찌개가 끓는 동안 콩나물을 씻어서 얼른 볶았어요.
이 두 가지 음식만으로도 정말 행복한 밥상이었어요.
아기를 낳기 전에는 밥 먹는 속도가 조금 느린 편이라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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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젓가락 씨, 나를 선택해주세요. 호박볶음보다 내가 더 맛있다는 걸 몰라요? 나 계란말이에요. 계란말이!
- 어머, 어디서 무정란 주제에 매끈하고 애띤 나한테 그런 소릴 해? 젓가락 씨, 이쪽이에요, 이쪽
- 참, 왜 저렇게들 호들갑이람. 어차피 젓가락 씨는 나한테 오게 돼 있어. 나는 마성의 스팸이니까.
- 아, 나도 주인이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느라 정신 없다고! 조용히 좀 해!
뭐 이런 시트콤을 혼자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밥을 먹었는데 지금은 그냥 흡입이에요. 흡입.
아이를 낳고 나면 입맛이 바뀌어서 안 먹던 음식도 먹게 된다고들 하는데 내가 생각했을 때는 입맛이 변하는 게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서 안 먹던 음식도 먹게 되는 게 맞다고 봐요.
찌개나 국에 들어간 고기 안 먹고, 생무는 좋아 해도 익은 무는 싫어 해서 소고기무국을 참 좋아 하지만 고기도 무도 안 먹어서 오로지 국물만 먹던 사람이거든요. 아가를 낳고 나니 이젠 있으면 먹어야 해요. 재료도 조리방법에 맞게 선택하곤 했지만 이젠 그런 것도 없어요. 미역국 끓일 때도 구이용 소고기를 넣고 끓이고, 안 먹던 익은 무도 이제는 먹어요. 어묵탕을 했을 때 처음 먹었는데 먹을만 하더라고요. 채소를 워낙 먹지 못하니 익은 채소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먹었어요. 고추장찌개에도 무를 넣었고 그 무도 먹고 있어요.
혼자 살 때 안 먹으면 안 먹었지 먹을 때는 제대로 집밥을 만들어서 먹곤 했는데 다시 그렇게 먹을 수 있는 날이 언제일까 싶기만 해요.
아기를 가진 뒤 집밥이 더 땡겨서 작은 반찬 하나까지 하나하나 다 만들어 먹고, 짜투리 반찬들은 몇 가지 재료를 더 만들어서 서방과 양푼에 비빔밥을 해서 된장찌개를 먹곤 했는데 요즘 제일 먹고 싶은 게 그런 양푼비빔밥이에요. 모든 재료들을 다 내가 만들고 내 손을 거친.
요리게를 보다 보면 먹고 싶다는 생각보다 '아, 저렇게 살 수 있어서 다들 부럽다' 이 심정이에요.
앞으로도 종종 요리게에 들리면서 염장 당하고 갈 테니 맛있는 음식과 손수 만든 음식들 많이 많이 올려주세요.
언젠가 때가 되면 하나하나 기억했다 혼자만의 보복으로 다 만들어 먹고 먹으러 다니게요. ^_____________________^
다들 해피 추석되시고 조카들에게 아끼는 물건들 강탈 당하거나 망가지게 되는 일 없이,
화목하고 퇴색된 명절이지만 친척들 끼리 얼굴 붉히더라도 웃느라 얼굴 붉히게 되기를 바라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