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항상 모기향 타는 냄새만 가득하던 옆방에서 평소와는 다른 냄새가 배어나오고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냄새일까? 퍽 익숙한, 고소한 냄새인데..' 잠시 생각해보니 양념이 잘 버무려진 소불고기의 냄새였습니다.
비루한 고시원에서 소불고기 굽는 냄새가 찾아온 것은 퍽 오랜만의 일이기에 좀처럼 쉽게 기억나지 않았나 봅니다.
일을 마치고 고시원에 돌아오면 늘상 저녁도 채 자시지 않고 잠에 들던 옆 방 아저씨께서 소불고기를 굽다니, 아마도 무척이나 좋은 일을 맞이하신 모양입니다. 서로를 적당히 무시하는 것이 예절인 고시원의 분위기 상, 몇 번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지만 평소 참 점잖으신 분이셨기에, 좋은 일을 맞으신 거라면 축하한다는 말이라도 한 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 분이 방에서 나오실 때 저도 잠시 방에 나와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봐요'라고 여쭙습니다.
"아, 애엄마랑 딸애가 호주에 간 지가 오래전인데, 이제 조금만 있으면 한국으로 온다고 하네요. 허허"
평소 멀쩡하게 직장에 다니시는 분이 왜 이런 빈곤한 건물에서 지내시는지 늘상 궁금해오던 차였는데, 이분이 소위 기러기 아빠였다니, 맘이 조금 서글퍼집니다. 하지만 이내 조금만 있으면 가족들이 다시 모이게 될테니 마냥 슬프다고 할 일만은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칩니다. 다시금 웃으면서 '아, 축하드려요.' 한 마디를 건냅니다.
축하한다는 말에 잠시 머쓱해하시던 아저시께써는, 이제 가족들도 돌아오고 해서 제대로 된 집을 구했다며 이제 내일이면 햇수로 4년이 넘은 고시원 생활을 마무리하고 가족들과 함께 살 집으로 떠날 거라고 합니다. 그러시더니 갑작스레 생각난 듯, 이제 방을 비워야하니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을 좀 나눠주고 싶다고 하시며 다시 방에 들어가십니다.
내심 '행여나 소불고기 남은 거라도 좀 주시지 않을까'라는 철딱서니 없는 생각을 하며 그 아저씨를 기다렸습니다. 방에서 나온 아저씨의 손에는 500원 어치 콩나물 한 봉지와 소주 2병, 쉰 냄새가 심하게 나는 김치 조금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면서 한 마디 하십니다. '참.. 이런 것들만 줘서 참 미안해요. 학생'
자식을 가르치려고 당신은 이런 음식들이나 먹으시면서, 심지어 때로는 피곤에 절어 그것조차 먹지 못하시면서 4년 간, 이 곳에서 참 열심히도 사셨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2년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 아저씨의 거친 손등과 깡마른 손목을 보니, 다시금 맘 한 켠이 먹먹합니다. 지난 2년 동안 말 몇 마디 나눠보지 못했지만, 이젠 이 아저씨가 얼마나 고운 마음으로 얼마나 외로운 하루를 버텨오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다시금 방 안에서 소불고기 냄새가 배어 나옵니다. 고시원 근처 정육점에서 유통기한 아슬아슬한 고기로 만든, 한 근에 5500원에 팔던 그 소불고기였을 겁니다. 이제 가족들과 함께 살 보금자리를 마련해놓고, 돌아올 가족들을 기다리는 아저씨께서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소불고기를 구우셨을지 차마 짐작할 수도 없습니다. 다시금 축하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방에 돌아와 축축한 매트리스 위에 드러 눕습니다.
그때까지도 소불고기의 향기가 방 안을 즐겁게 휘젓고 돌아다닙니다. 방향제를 뿌리면 금방이라도 이 손님들을 내쫒을 수 있겠지만, 어제 저녁, 누군가에겐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음식의 냄새였을 이 냄새를 좀 더 즐기고 싶어집니다. 결국 그 냄새와 함께 잠에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