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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상구 아부지! 애가 나올 것 같아요”
추석날 아침, 차례상을 차리다 진통을 느낀 만삭의 여자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남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조상 모시는 데는 끔찍한 제주도 출신인데다 벌써 20년 가까이 군인으로 살며 월남전을 두 번이나 다녀 온 이 답답한 인사에겐 통하지 않을 걸 알지만 그래도 자기 새끼가 나오려는데 뭔가 조치를 해주겠지 하는 아주 단순하지만 절박하기도 한 마음을 담아 슬쩍 떠본 것이다.
“조상님들 모시는데 부정 타게! 참아!”
역시나 투철한 군인정신을 강조하는 것 같은 남자의 대답이 돌아왔다. 한두 해 당하는 일도 아니지만 만삭에 진통까지 느끼다보니 그동안의 서러움에다 강원도 양양에 계시는 부모님 생각까지 더해져 서러움이 올라왔는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차리던 차례상을 마저 차리는 여자였다.
“야! 조상님 앞에서 눈물을 흘려? 안 그쳐?!”
여자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차례상을 차리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나오려는 아이를 무슨 수로 막을 수 있으랴. 한계를 느낀 여자는 지갑을 들고 병원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야! 거기 안 서?!”
“전 병원에 가서라도 낳을래요!”
“너 집에 들어올 생각하지마!”
화가 솟구친 남자는 말대꾸를 하며 뛰어가는 여자를 향해 촛대를 집어던졌다. 촛대는 정확히 여자의 뒤통수에 떨어졌고 이내 시뻘건 선혈이 뚝뚝 떨어졌다. 여자는 자신의 뒤통수에서 피가 흐르는지도 모른 채 그저 아픈 뒤통수를 부여잡고 병원을 향해 내달렸다. 그러나 이미 머리가 삐져나오기 시작한 아이는 여자에게 조금의 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병원을 향해 내달리던 여자의 눈에 길가의 굴뚝이 보였다. 여자는 앞뒤 잴 것 없이 굴뚝을 부여잡고 힘을 쓰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온몸의 힘이 탁 풀리며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어서 아이를 수습해야 하지만 온몸의 힘이 빠진 여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넋을 놓고 아이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맹일(명절)날 아침부터 이게 뭔 일이고?”
여자와 아이를 발견한 건 차례를 지내러 이웃의 친척집에 가던 동네 아주머니였다.
“야야~ 이기 무신일이고? 와 여서 얼라를 낳았노?”
당황한 아주머니는 되는대로 이말 저말을 내뱉으며 구경만 할 뿐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다.
“니 여 쪼매 있어봐라. 내 가서 느그 남편 데불고 올게”
아주머니는 그렇게 자리를 벗어났고, 잠시 후 맨발로 달려온 남자의 손에는 가위와 실이 들려 있었다. 1973년 추석날 아침, 나는 해운대의 어느 골목 굴뚝 아래서 그렇게 태어났다.
* 상구는 가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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