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조선상고사에 관한 댓글을 보고 따로 글을 올리겠습니다.
조선상고사에 따르면 신채호 선생은 고조선의 수도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평양의 옛 이름이 왕검성이고, 신라의 선사에 대해서도 평양은 선인 왕검이 도읍했던 곳이라고 하였고, 위서에서도 2천년 전에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나라를 세웠는데, 나라의 이름을 조선이라 하였다. 이라고 하였으니 (중략) 왕검=임금설 주장
조선 상고에 조선의 글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러나 이는 아무런 증거가 없는 말이니, 최초에 한자를 썼을 것은 사실이다. 대개 토지가 중국과 붙어 있으므로 양 민족은 역사 기록이 있기 이전부터 서로 왕래가 있었을 것이며, 한자의 수입도 역사 기록 이전의 일임이 명백하다.
또 이전의 역사에서는, 단군이 처음 평양에 도읍하였다가 뒤에 구월산으로 옮겼고, 그 자손에 이르러서는 기자를 피하여 북부여로 갔다고 하였으나, 이 또한 황당무계한 망설이다. (중략)
그러나 구월산은 황해도 문화현에 있는 산인데, (중략) 구월을 아사달이라 망증하니, 어찌 가소로운 일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신채호 선생은 고조선의 첫 도읍을 평양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평양이 한반도의 평양이 아니라면 따로 어디의 평양인지 얘기했겠으나 그에 대한 말은 조선상고사 전체에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구월산 역시 황해도라고 비정하고 있죠.
그 이후 만주에 있는 다른 도읍들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지만, 첫 도읍이 평양이라는 것은 어디서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보시다시피 한자의 수입 역시 신채호 선생이 주장한 것이죠.
[조선 상고에 조선의 글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러나 이는 아무런 증거가 없는 말이니, 최초에 한자를 썼을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일제는 "만선불가불론"이라는 시점으로 "조선도 부여도 만주도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고 했습니다. 일제가 단군의 영역을 대동강 유역 뿐이라고 했다면 있을 수 없는 말이죠.
일제는 단군을 부정하지 않고 단군을 이용해서 일제가 한반도, 만주를 차지하는 것을 정당화하려고 했습니다. 때문에 단군을 일본의 신화와 연결시키려고 했죠. 단군을 부정하는 일본인도 있지만, 걔네는 일본의 신화도 부정하며 일본의 역사 역시 줄였습니다. 왜곡했다 하더라도 자기 나라와 똑같이 한 것이죠. 얘네는 주류가 아니었습니다.
일제의 역사왜곡은 고대가 아닌 근대였습니다. 니네가 "만주'를 잃은 후로 니네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남에게서 얻어 먹기만 하였다. 이것이 일제의 역사 왜곡입니다.
지금 고조선의 수도를 평양이 아닌 다른 곳으로 보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반도"에 고조선의 수도가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죠. "만주"는 잘 살고 넓고 아름다운 땅이고, "한반도"는 못 살고 좁고 더럽운 땅이니까요. 이것을 우리 뇌 속에 심은 게 일제입니다.
반대로 생각해야 됩니다. 고조선이 그 넓은 만주 대신 평양에 도읍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론 평양에 도읍했다는 것은 아직도 학계에서 최고의 논쟁거리 중 하나입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만주의 그 넓은 땅을 점령했는데 정작 장수왕이 평양으로 도읍을 옮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구려가 만주 대신 한강을 차지하는 데 그렇게 노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구려의 쇠퇴는 한강을 잃은 이후입니다. 이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반도에 있었던 백제는 만주와 한반도에 걸친 고구려보다 오히려 인구수가 많았습니다. 이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반도가 그만큼 살기 좋았다는 것입니다. 그 넓은 만주보다도요. 그렇기에 고조선도, 고구려도 만주 대신 한반도에 집중했던 거죠. 신라, 고려, 조선이 그만큼 못 살았으면 한반도를 뛰쳐나와 만주로 가려고 했겠죠. 하지만 반대로 요, 금, 청 등 만주에 살던 애들이 한반도로 오려고 했습니다. 한반도가 만주보다 잘 살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 대한 정복 전쟁은 확실한 방어선 확립을 위해 (광개토대왕의 정복, 로마의 정복, 중국 국가들의 정복), 자기보다 잘 사는 나라를 뺴앗기 위해(원, 요, 금, 청 등 유목 민족의 정복), 지도자 개인의 욕심에 의해(임진왜란, 중국 정복 군주들, 기타 여러 서양의 군주들)로 나눠집니다. 조선은 압록강-두만강을 방어선으로 확정했고, 거기까지 영토를 늘렸습니다. 만주로 가지 않은 것은 만주가 조선보다 잘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도자 개인의 욕심을 이루기 위한 정복은 조선 때는 백성들을 위해서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조선이 그런 나라였으니까요. 이것이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 남은 이유입니다. 지금이야 다르죠. 만주에서도 옥수수가 들어오면서 농업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농업보다는 상공업이 발달하고 만주에서 석유가 발견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의 잣대로 농업 중심인 그 때를 평가할 순 없죠.
일제의 왜곡은 대륙에 대해서가 아닌, 한반도가 못 살았다는 것입니다. 고조선과 구구려에 있어서 한반도는 노른자, 가장 살기 좋은 땅이었고, 발해 멸망 후 우리 민족이 만주를 잃었고 저도 이게 정말 아쉽지만, 가장 살기 좋은 한반도는 끝내 지켜냈습니다.
현 학계에서 고조선의 수도에 대해서 요령설, 평양설, 요령->평양 천도설로 나뉘고 있습니다. 만주에 수도가 있었을 거라는 가능성은 아직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고조선의 수도가 평양, 대동강 유역에 있었다는 것이 왜곡이 될 순 없습니다.
참고로 신채호 선생은 일제도 이병도도 최남선도 현 학계도 부정하는 기자동래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역사 왜곡일까요?
역사는 역사를 위하여 역사를 쓰는 것이고, 역사 이외에 무슨 다른 목적을 위하여 쓰는 것이 아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사회의 유동상태와 거기서 발생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쓴 것이 역사이지, 저작자의 목적에 따라 그 사실을 좌지우지하거나 덧보태거나 혹은 바꾸고 고치라는 것이 아니다.
가령, 모호한 기록 중에서 부여의 어떤 학자가 물리학을 발명하였다든지, 고려의 어떤 명장이 증기선을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문자가 발견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신용할 수 없는 것은, 남들을 속일 수 없으므로 그럴 뿐만 아니라, 곧 스스로를 속여서도 안 되기 떄문이다.
- 조선상고사, 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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