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찍고 있는 사진작가가 유태인임을 알게 되자 그를 노려보는 괴벨스의 모습(1933)
괴벨스는 나치의 선전부장으로 히틀러의 오른팔이기도 했다.
히틀러에 대한 믿음, 아니 신앙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었고, 히틀러에 대한 신앙을 종교로 승화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히틀러에 대한 독일국민들의 열광과 복종을 이끌어낸 인물이다.
물론 유태인학살과 그 전에 벌어진 자국민학살에도 관여한 것으로 악명이 자자한 인물이기도 하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나치는 유태인학살을 자행하기 전에 자국민 중 중증장애인이나 정신지체아들을 먼저 학살했다.
우월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약물주사를 놓아 안락사 시켰던 것인데, 위대한 게르만인종의 혈통을 우월하게 또 순수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상적이지 못한 유전자들을 걸러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실 유태인 학살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
위대한 아리안족, 또는 게르만족이 살아갈 순수한 땅, 자신들의 '생활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더러운 인종들을 자신들의 땅에서 쫓아내야 했다.
문제는 이들을 버릴 곳이 없었다는 것. 그냥 두자니 마치 무좀처럼 신경에 거슬리고,
놓아주자니 영국과 미국으로 건너가 그들을 도와주거나 자신들을 공격할 것이 뻔했던 것이다.
그래서 내놓은 생각이 마다가스카르 작전. 유태인들을 모두 모아 아프리카 옆에 있는 마다가스카르 섬에 보내버리자는 것이다.
물론 연합군의 포위망을 뚫고 저 먼 곳까지 유태인들을 보내버릴 수단이 없었기에 계획은 폐기되었고, 학살이 시작되었다.
‘난 유태인을 죽일 거야. 아 즐거워라. 난 살인광이거든.’ 하고 작심하고 죽인 것이 아니라,
치워버리려다 보니,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학살을 선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생학... 과학의 비정함이 광기와 만날 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그렇게 벌어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 모든 일을 주도한 괴벨스에게는 그만한 자격이 없었다는 점이다.
히틀러도 그 자신이 유태인의 핏줄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외할아버지가 유태인이어도 유태인으로 분류되어 아우슈비츠로 끌려갔다.
요즘은 미국도 친가 외가 합해 4대 위로 흑인이 있으면 눈으로 보기에 아무리 백인이어도 흑인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위의 사진에 나온 괴벨스 또한 자신이 소아마비로 한 쪽 다리를 저는 열성인자였다.
기준을 적용하기에 따라서는 그 자신도 병원에 끌려가 안락사 당해야 할 인간이었던 것이다.
유태인학살과 자국민학살은 바로 그런 인간들에 의해 자행되었다.
자신들이 내세운 기준에 맞춰 보자면 그 자신이 자격 미달인 인간들에 의해 자신들과 같은 인간들이 수천, 수백만 명씩 죽어나간 것이다.
전체주의란 그런 것이다. 엄격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그 자신마저도 옥죌 기준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 드는 것이 전체주의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감추고, 가능케 하는 것은 단 하나, 힘이다. 힘이 있는 자는 말하고, 힘이 없는 자는 들어야 한다.
힘의 종류는 다양하다. 돈이나 지위, 명예도 힘이고, 과거를 정의하거나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도 힘이다.
괴벨스가 가진 힘은 독일국민들에게 미래를 제시하고 믿고 따르게 하는 힘이었다.
위의 사진을 다시 한 번 보라. 유태인에 대한 엄청난 증오, 그 증오만큼 거대한 애국심... 엄청난 포스가 느껴지지 않는가?
우리는 위대한 아리안족의 후손 게르만족이다. 우리는 순수 게르만족으로만 이루어진 이상향을 건설할 것이다.
우리는 제1차세계대전으로 잃어버린 독일의 자존심을 되찾고, 독일국민에게 안정된 직장과 가정을 되찾아 줄 것이다.
1930년대... 나치는 빵 한 조각 먹기 힘든 사람들에게 밝고 빛나는 미래를 약속했고, 삶에 찌든 독일국민들은 나치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들은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에 굴복했다.
괴벨스는 나치의 주장을 독일국민들에게 선전하고 각인시키기 위해 폴크스엠펭어, 즉 국민라디오를 전 국민에게 무상으로 나눠주었고,
폴크스엠펭어를 받아든 독일국민들은 닥치고 이들의 주장을 들어야 했다.
라디오는 공짜였지만, 라디오의 특성상 말하는 자와 듣는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흘러나올 말이란 뻔하지 않았겠는가?
독일국민은 우수한 게르만족이다.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열등한 인자를 청소해라.
네 가족(정신지체아)과 네 이웃(유태인)을 박멸하라. 너는 살아남은 자, 선택받은 자이다. 이제 너희에게 우수한 게르만족의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나치의 욕망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독일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는 좁은 독일을 벗어나 영토를 확장해야 했고, 확장한 영토를 순수하게 정화시켜야 했다.
나치는 자신들의 이상을 위해, 폴란드, 체코 등 동유럽국가들,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발틱국가들은 물론
러시아를 포함한 슬라브족의 땅을 침공했고, 이 땅의 불순한 인종들을 모두 청소했다. 이들은 실제로 유태인 못지않게 많은 수가 학살당했다.
이 모든 걸 가능케 했던 것은, 힘이었다. 그 어떤 당위성이나 정당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게르만민족의 우수성을 실현시킬 총과 대포와 탱크와 전투기가 있었기에 일어난 일에 불과했다.
내가 먹고 살기 위해... 할 수 있으니... 해냈던 것이다.
(우수운 것은 이들이 슬라브족에 비해 자신을 우수한 민족으로 상정한 것과 달리
프랑스인이나 영국인을 자신들과 더 우수하거나 동등한 민족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왜? 자신들보다 발달된 정치, 경제 체제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쯧~ 겉으론 위너를 지향하지만, 이 얼마나 루저 같은 마인드인가?)
할 수 있으니 해야 한다는 말은 힘이 있으니 지배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역겹다.
하지만 더 역겨운 것은, 힘도 없으면서 힘 있는 자의 편에 서서 힘없는 자를 깔아뭉개려는 자들을 볼 때다.
아이러니는 괴벨스 같은 힘 있는 자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힘없고 소소한 우리들 자신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와 보통사람들의 차이는 단지 힘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요즘 벌어진 혹 벌어지는 일은 그 한 예이다.
어떤 노인이 편의점에 들어와 담배를 사면서 큰 소리로 투덜거렸단다. 세월호 때문에 국고가 모자라서 담배 값이 인상되었다는 것이다. 헐~.
국가가 망해도 세월호 때문이라 할 판이다. 현재 국가제정의 악화는 줄푸세만 없애도 정상화될 수 있다.
하지만 노인에게 그런 것은 상관없다. 노인은 그저 큰 소리로 외치고 싶을 뿐이다.
누군가에게 담배값이 오른 책임을 지워 단죄하고 싶을 뿐이다. 하루 2000원이면 될 것이 4000원이 되었다.
가뜩이나 얇은 주머니는 더욱 홀쭉해 들어갈 것이고, 앞으로는 담배 한 개비마저 부들부들 떨며 피워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화를 낼 수도 없다. 과거 막걸리 보안법을 경험했던 자신이 아닌가?
막걸리를 마시다 박정희가 정치를 잘 못해서 먹고 살기 힘들다고 말했는데, 대통령 비판했다고 보안법위반으로 징역을 살았던 남자의 이야기...
이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신화이자, 실화였다. 그리고 지금 현재 그 시절이 다시 되돌아 온 듯하다.
대통령이 나서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도를 넘어섰다고 하자 공안검찰들이 나서서 사이버수사대를 만들어 검열한다고 난리다.
함부로 뭐라 할 수도 없는 세상... 노인은 만만한 대상을 찾는다. 그가 찾았는지, 누군가 그에게 속삭였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는 외친다.
세월호 유족에게 50억을 퍼주느라 담배값이 올랐다~!!!
힘 있는 자는 그 힘을 효과적으로 투사할 대상을 찾는다. 당연 약자다.
한 대 쳤는데, 한 대 맞는다면 채면이 구겨진다. 면을 세울 수 없고, 장이 될 수 없다.
힘 있는 자에게는 한 대 맞고 찌그러질 상대가 필요하다. 그래서 강하면 강할수록 약자를 찾게 된다.
한 대 쳤는데, 그대로 찌그러지면, 다른 이들도 알아서 수그리기 때문이다.
괴벨스가 장애인이나 유대인, 슬라브민족을 꼽았다면, 지금 현재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은 세월호, 노무현, 전라도를 꼽는다.
약자로 지정된 대상에게 무자비한 정의를 실현한다. 그럼으로써 이 사회에 누가 힘 있는 자인지를 알린다. 알아서 기라고 말없이 명령한다.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아서 말하고 행동하게 만든다. 그래, 북한보다 좀 더 스마트하긴 하다.
문제는 이 덕분에 그저 당하기만 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 속에서 살길을 찾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어둠이 무서워 자신을 어둠과 동화시키고, 악이 무서워 자신을 악과 동화시키는 사람들...
이들은 두려움이 무서워 스스로 두려운 존재가 되려 하고, 폭력이 무서워 스스로 폭력을 행사하려 한다.
힘있는 자가 세월호, 노무현, 전라도를 욕하면 자신도 이들을 욕함으로써 자신을 힘있는 자와 한 편이라고, 자신이 약자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려든다.
마치 배고픈데 빵을 주겠다니 히틀러에게 충성하고, 불안한데 유태인을 잡아 족치라니 괴벨스에게 충성했던 당대의 독일인들처럼 말이다.
(슬프게도 현실에서 이를 목격한 곳은 소위 말하는 대형교회였다. 약자를 갈굼으로써 자신들의 친목을 강화하는... 지금 생각해도 참... 퉷~!)
고노무 호두과자에는 노알라가 떡 하니 박혀있다. 그렇게 씹어먹고 싶었나?
참 두려운 세상이다.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면, 앞으로 이런 상황은 더욱 강화될 것 같다. 우울할 뿐이다.
하지만 한 가지 까먹고 있는 게 있다. 이 사회는 민주주의에 기반하고 있고, 또 하나 법치주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반동이 와도, 봉건시대로 회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얼마 전 고노무 호두과자를 만들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욕보이던 인간이 자신을 비판하던 네티즌들을 고소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어제던가? 다들 무혐의로 풀려났고, 오히려 이들이 자신을 고소했던 고노무 호두과자 측을 무고죄로 고소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다. 법대로 하면 될 일이다. 물론 법대로 안 되는 것도 많은 게 우리 나라다. 법 위에 계신 분들이 수두룩한 게 우리나라다.
하지만 그들이 일베들(로 대표되는 이러한 인간들)까지 굽어보시지는 않는다. 법을 넘어서는 존재는 자신들로 충분하다.
아무리 일베들이 그들과 동화되려 해도, 그들은 일베들이 자신들과 같아지기를 허락하지 않으신다.
힘 있는 자는 일베를 결코 자신과 동등하거나 동일하다고 보지 않는다.
일베는 힘 있는 자의 편에 서서 약자를 괴롭히지만, 정작 그 자신도 약자에 불과할 뿐이다.
일베들이 그 사실을 까먹고 선을 넘을 때, 그들은 버려지게 되어 있다.
일베들은 무조건 두려움에 빠져 힘 있는 자들의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 하며, 힘 있는 자 코스프레를 할 뿐, 그 어떤 실제적인 힘도 없다.
그들이 선을 넘을 때, 그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법의 심판일 뿐이다.
그래서 측은하다. 어버이연합이나 엄마부대를 볼 때마다 참 짠하다. 화염병을 던진 고3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늙어 죽을 때까지 두려움에 빠져 힘 있는 자들의 놀이개로 소모되다니... 그렇게 자기 자식들의 미래까지 말아먹다니...
사실 아무리 힘 있는 자들이 전횡을 벌여도, 거기에 호응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그들은 별다른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잠깐 권력을 휘두르다 무너질 뿐이다.
어? 그럼 우리 사회는 왜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이지?
그렇다.
두려움에 빠져 가만히 있는 것도 모자라,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학교와 군대와 사회를 거치며 비현실적인 현실을 현실로 학습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왜 이 세상엔 정의가 없냐며 낙담하다... 스스로 비현실적인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오랜만이라 조금 횡설수설 했는데...
암튼 우리가 두려움에 빠질 때, 두려움에 빠져 힘 있는 자들의 헤게모니에 동화될 때, 이 땅에도 전체주의가 시작될 것이다.
오랜 실직과 배고픔 속에서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외치는 히틀러에게, 유태인에 대한 증오를 외치는 괴벨스에게 빠져
그들을 찬양하고 그들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그들이 가리키는 대로 전쟁을 벌이고 학살을 자행했던 독일인들처럼 말이다.
아니길 바란다면 힘을, 비현실적인 현실을 쫓기보다 스스로 생각하길, 스스로 반성하길 멈추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의 힘이 미약하다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 억지로 채 게바라가 될 필요도 없다.
우린 다 필부 아니던가? 필부로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다행아니던가?
낙담하고 포기해서... 스스로 자기 자신을 놔버리지만 않아도, 어둠에 동화되지만 않아도 대단한 일을 한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