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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넓은 우주에 인간들만 있다고 말하는 건 이기적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리고 이 말은 어느 날 돌연 증명되었다.
인간이 찾아가는 것이 아닌 외계인이 먼저 인간에게 찾아오는 것으로 외계인의 존재가 증명되었다.
찾아온 외계인들은 인간들의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그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자비롭게 웃었다. 총을 맞아도 미사일을 맞아도 심지어 화학 무기를 맞아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인간들이 지쳐갈 때쯤 외계인들은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정복을 위해서 온 게 아닙니다. 우리들은 죽지 않으며 영원의 시간을 살아왔고, 여러 행성에서 살다 왔습니다. 우리는 그저 여러분들과의 공존을 원합니다.]
외계인들의 요구는 간단했다.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인간과 공존하는 것.
지구에 사는 인간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요구였다. 애초에 외계인들을 죽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외계인들의 수가 지구에 살기에 너무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지나가다 외계인과 마주쳐도 전혀 이상하지 않게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일부 사람들은 외계인의 불사 능력을 질투하며 영생을 누리지 못하는 자신들에게 분노했다.
"씨발... 왜 너는 죽고, 망할 외계인 놈은 사는 건데!“
버스 전복 사고로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잃은 인간 박재현은 인간 그녀의 장례식장에서 사고에서 살아남은 외계인을 원망했다. 그는 술을 미친듯이 마시며 죽을 생각까지 했다.
"더러운 외계인 놈들 전부 다 내가 죽여버릴 거야.“
박재현은 여자친구를 죽인 버스기사의 음주운전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가 평소에도 싫어하던 외계인에게 원망을 퍼부었다. 그는 외계인을 죽여버리겠다고 결심했고, 외계인의 뒤를 밟으며 조사했지만, 끝끝내 외계인의 약점 같은 건 찾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못 알아낸 건 아니었다.
1. 외계인은 식사를 하지 않는다.
2. 사랑 같은 감정이 없는 것 같다.
3. 2.와 비슷하게 욕구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4. 외계인은 잠을 자지 않는다.
알아내면 알아낼수록 외계인을 죽일 수 없다는 결론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박재현은 포기하지 않았다. 박재현의 외계인을 죽이겠다는 마음은 점점 집착이 되어가고 있었다.
"저기, 괜찮으세요?“
길한복판에 앉아서 머리를 박박 긇는 박재현에게 한 외계인이 말을 걸었다.
박재현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앞에 서있는 새파란 피부의 외계인을 보았다.
'망할 외계인 놈... 왜 내 앞에 있는 거야.‘
박재현은 외계인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그때 버스 전복 사고가 났던 버스의 번호와 똑같은 번호를 가진 버스가 지나갔고 박재현의 머릿속에 한 가지 계획이 떠올랐다.
"아, 괜찮습니다. 그런데 혹시 괜찮으시다면 전화번호...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박재현은 외계인에게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없다고 알아냈지만, 지금은 자신이 알아낸 모든게 틀렸기를 바라며 외계인에게 작업을 걸었다.
"네, 좋아요.“
박재현의 바람대로 박재현이 처음에 알아낸 모든 것이 틀렸다. 그가 외계인은 이렇다.라고 생각한 모든 것이 틀렸다. 외계인에게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었고, 마침 이 외계인은 박재현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거면 죽일 수 있을까? 아냐 이런 걸로 죽겠어? 그래도 죽을 만큼 아프겠지, 나처럼.‘
박재현의 사악한 계획은 외계인 그녀와의 연애로 시작되었다. 인간 박재현은 외계인 그녀와 같이 영화도 보고 유명한 식당에도 갔다. 다른 사람들의 눈빛이 상당히 그에게 따갑게 다가왔지만 박재현은 개의치 않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 짓을 하면 죽일 수 있어.‘
박재현은 외계인 그녀와 만날 때마다 조금만 더 남았다고 생각하며 버텼다. 그러나 외계인 그녀와 만나면 만날수록 그의 표정은 점점 변해갔다.
'나중에 해도 상관없어. 어차피 이 외계인 죽지도 않을 건데 천천히 해도 상관없을 거 아니야...‘
이제 박재현은 다른 사람들의 눈빛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따가워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날이 찾아왔다. 자신이 예전에 사랑했던 인간 그녀가 그리워지는 그런 날이.
'애초에 죽이려고 만난 거야, 외계인 놈들은 전부 죽어야 마땅해! 난 괜찮을 거야...‘
박재현은 결심했다. 오늘 되갚아주겠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을 느끼게해주겠다고.
아무 죄 없는 외계인 그녀에게 원망을 퍼부어주겠다고.
"내가 사실 말이야. 너를 만난 건...“
오늘 외계인 그녀와 만나 끝을 내려고 했다.
"잠시만!“
외계인 그녀는 박재현의 말을 끊었다. 외계인 그녀도 박재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이다.
"나, 비록 당신에게 외계인이지만 당신을 사랑해요. 나는 잠을 잘 필요도 음식을 먹을 필요도 감정을 느낄 필요도 없어요. 감정은 이미 전부 느꼈으니까. 그래도 내가 당신과 함께 했던 이유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외계인 그녀는 그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오늘 그와 만난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 박재현은 외계인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미안, 그만 말해줘. 솔직하게 말할게. 나 외계인이 싫어. 같은 일을 해도 인간은 죽고, 아버지는 죽고. 같은 사고를 당해도 인간은 죽고... 항상 외계인만 사는게 끔직하게 싫어. 이제 더 이상은 못하겠어."
박재현은 미리 준비한 대사를 말하고 눈물을 참았다.
외계인 그녀는 박재현의 손을 잡고 작은 상자 하나를 건네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외계인이랑 함께한다는 건 쉬운 게 아니지. 그래도 이건 가져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고통을 박재현은 두번째로 느끼게 되었고, 외계인 그녀는 느끼지 않았다.
"미안..."
외계인이 아닌 자신을 죽인 것 같은 기분에 박재현은 외계인에게서 도망치듯이 멀리 도망쳤고, 그때 달려오던 그 버스는 또다시 한번 사람을 죽이게 되었다. 버스와 충돌해버린 박재현은 차가운 땅바닥에 쓰러져 점점 의식을 잃어갔다.
그런 와중에 박재현의 눈에 자신이 들고 있던 작은 상자가 망가져서 안에 있는 반지가 보였다. 그리고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외계인 그녀가 있었다.
그러나 박재현은 눈을 감았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소월아...“
...
”이제 죽은 거야? 인간은 다른 행성의 존재보다 더 쉽게 죽네.“
외계인은 박재현의 품 안에 있는 작은 상자에서 반지를 빼냈다.
그러고는 반지를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밟아버렸다.
”영원히 사니까 이런 사랑도 재미없네. 나를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과 사귀면 조금 재미를 볼 줄 알았는데...“
외계인들은 마음을 읽었다.
그래서 처음 왔을 때 인간들이 아무리 공격해도 인간들이 겁먹었음을 알았으니 딱히 큰 걱정도 하지 않았고, 다른 행성들처럼 최대한 천천히 망하기를 기대하며 이곳에 찾아왔다.
”인간들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이런 개같은 영생 따위를 믿고, 항상 남탓하고 그냥 너희들은 화를 내고 싶은 거 뿐이잖아. 그게 니들한테 결국 상처가 되는데 알고도 계속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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