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는 맨 마지막에 있는데, 쭉 내려가 보세요ㅋ 헉헉 길다
by진중권
ㅡㅡ음침한 적화 야욕에는 자유한국당-바른정당-국민의당이 따로 없다.
ㅡㅡ국민이 mb아바타라고 받아들였으니 안철수는 mb아바타 인정?
북에서 지령을 받은 건 아닐 테고, 아마도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으로 만들어야 산다고 믿는 모양이다. 평소에는 투닥거리는 이 세 당이 올림픽 적화라는 공동의 대의 앞에 거룩하게 하나가 되었다. 북한이라면 이를 가는 보수야당들이 지방선거에서 살아남기 위해 올림픽을 '평양올림픽'으로 만들어 김정은에게 헌납하려 드는 역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는 다시 없다. 그동안 보수 야3당이 시연했던 올림픽 적화 개그 3종 세트를 보자.
홍준표, '평양' 올림픽을 빛내다
먼저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의 개그. 그는 제 입으로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으로 규정했다. 황당한 것은,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몸으로는 그 개막식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그가 정말 진지하게 평창올림픽이 평양올림픽이라 믿었다면, 절대로 그 자리에 나갈 수 없었을 게다. 아니, 안보를 최우선으로 아는 보수당의 대표가 북한의 체제선전장이 된 '평양' 올림픽에는 대체 뭐 하러 참석하는가? 북한체제의 우월성을 인증해주려고? 아니면 김정은 동지의 위대한 영도력을 찬양하러? 다른 사람은 몰라도 홍 대표만은 그 자리를 마다할 줄 알았는데, 기어이 처음부터 끝까지 구경하다 나오셨다. 하긴, 그 표 가격이 장 당 백만 원이 넘는다더라.
제 입으로 '평양올림픽'이라 침 뱉어놓고 그 자리에 가려니, 좀 그랬던 모양이다. 참석의 변을 내놓았다. 그런데 그 변이란 게 환갑을 넘기신 연세에 어울리지 않게 앙증맞다. 한반도기 때문에 태극기를 못 내거니, 자기들이라도 가슴에 태극기 배지를 달고 참석해야겠다는 것이다(이런 종류의 개그는 대한민국에서 오직 허경영씨만 할 줄 아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쩌나, 아무튼 한반도기만 나부끼는 현장에서 내 가슴에 홀로 태극기 휘날리겠다는 야무진 계획에 그만 차질이 생기고 말았다. 개막식이 시작되자마자 대형 태극기가 들어오고, 취타대의 반주에 맞춰 레인보우 합창단이 애국가를 제창했다. 그때 현장에 있던 김여정과 김영남은 기립을 했다고 한다.
개막식 현장에는 유승민-안철수 대표도 참석했다. 카메라에 잡힌 두 사람은 합당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사이가 매우 좋아 보인다. 이분들도 사실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는 분들이다. 지금과는 다른 보수를 하겠다더니, 자유한국당의 올림픽 적화 사업에는 두 분이 대표로 계신 당들도 함께 했기 때문이다.
바른정당은 남북한 팀이 개막식에 한반도기 든다고 "평양 동계올림픽이냐"고 빈정대 바 있고, 국민의당도 마식령 스키장에서 훈련한다고 이러니 "평양올림픽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고 논평한 바 있다. 올림픽이 적화가 됐으면 야당 대표로서 책임을 지고 보이콧을 해야지. 붉은 올림픽, 평양 올림픽에 가서 희희낙락하는 건 또 뭔가?
오보에 근거해 트위터에 글 올린 하태경 의원
얼마 전 '김일성가면'이 포털사이트 실검 1위에 올랐다. 이번에 내려온 북한응원단이 응원소품으로 김일성 가면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는 '오보'가 낳은 해프닝으로 밝혀졌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에서 '최고 존엄'의 얼굴을 응원소품으로 사용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란다. 알고 보니 그 가면은 '휘파람'이라는 노래를 위한 소품이었다. 즉, 그 가면 속의 얼굴은 역사적으로 실존한 인물이 아니라 노래 가사에 나오는 가상의 존재라는 얘기다. 하지만 기자는 이런 기초적인 사실의 확인도 없이 일단 기사부터 써 재꼈다. 오보를 낸 기자도 한심하지만, 그보다 더 저질은 이미 '오보'로 드러났음에도 여전히 이를 '논란'이라 표기하는 기자들이다.
이 쉰 떡밥을 먼저 덥석 문 것은 재미있게도 바른정당이었다. 하태경 의원이 이 오보에 근거하여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북한 응원단이 대놓고 김일성 가면 쓰고 응원하네요. 여기가 평양올림픽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한국대통령이 얼마나 우스웠으면 김일성 가면을 감히 쓸까요? 문 대통령이 현장에 함께 있었는데도 김일성 가면 응원을 하지 않았습니까? 평양올림픽의 말로를 봅니다."
이렇게 호기 있게 질러 놨는데 신문사에서 오보임을 인정하고 문제의 기사를 내려 버렸다. 결국 그 주장의 토대 자체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 경우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실수를 인정하고 자신의 가벼운 처신에 대해 사과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하태경 의원, 순순히 사과를 하지 않는다.
"통일부 발표처럼 미남의 얼굴에 불과하다고 해도 그 미남이 김일성을 연상시킨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 못한다. 북한에서 최고의 미남 기준이 바로 김일성이기 때문이다."
누구를 "연상"시키는 것 자체가 죄라는 것이다. 어이가 없다.
개막식 직후에 인터넷에 떠돌던 또 한 장의 사진을 보자. 저 사진이 보여주듯이 인면조의 얼굴이 격투기 선수 김동현을 "연상시킨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인면조의 모델이 김동현이라는 결론이 나오는가.
우리 모두 둘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 우연한 유사성을 그냥 '놀이'로 즐길 뿐이다. 그런데 우리 하태경 의원, 평범하지가 않다. 범상한 구석이 있다. 그에게는 유사성이 곧 동일성의 증거다.
"'김일성 연상가면'을 평창올림픽에서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도록 조치하는 것이 이 문제를 가장 생산적으로 매듭짓는 길이다."
자, 앞의 첫 번째 사진으로 돌아가 보자. 그걸 보고 일베 회원들이 송해 선생이 북한의 간첩이라고 푸닥거리를 한다고 하자. 그 옆에서 하 의원은 "'인민무력부장 연상 MC'를 대한민국 방송에서 더 이상 기용하지 못하도록 조치하는 것이 이 문제를 가장 생산적으로 매듭짓는 길"이라고 말할 것인가? 그럼 송해 선생님이 얼마나 황당하시겠는가. 그러므로 "이 문제를 가장 생산적으로 매듭짓는 길"은 하태경 의원이 그 입을 다무는 것이라고 본다.
내 눈에 김일성이면 김일성이 맞다?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이야 원래 바탕이 그러니 그렇다 쳐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국민의당의 태도다. 이 비이성적인 푸닥거리가 벌어지던 지난 2월 11일 국민의당은 <북한응원단의 '김일성가면' 응원은 대단히 부적절하다>라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정부는 '김일성가면' 응원에 대해서 김일성이 아니다 하면서 방어하기에 급급하다. 우리 국민과 언론이 보기에 '김일성가면'으로 인식하면 '김일성가면' 인 것이다."
국민과 언론이 '김일성 가면'으로 인식하면 '김일성 가면'인 것이다? 심오하다. 일체유심조, 거의 원효대사다. 아니면, 안철수 대표가 좋아하는 4차산업혁명의 마법일까. 아무튼 이 궤변을 그대로 국민의당의 얼굴이신 안철수 대표에게 적용해 보자.
지난 대선 때 안철수 후보는 토론에 나와 이렇게 물었다. "제가 MB 아바타입니까?" 국민의당의 논리대로라면, 안철수는 MB 아바타가 맞다. 왜 우리 국민과 언론이 보기에 'MB 아바타로 인식하면 'MB 아바타'이니까. 얼마나 황당했던지, 보다 못한 정의당에서까지 국민의당을 비판하는 논평을 냈다. 기자가 오보를 시인하고 신문사에서 기사를 냈다면 오보에 기초한 그릇된 논평에 사과를 해야 한다. 그런데 적반하장이다.
"북한측의 사실해명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김일성을 연상 시키게 하고 다수의 언론에서 같은 인식을 가지게 했다면 분명 북한의 선전, 선동이 일정부분 성공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하기에 충분하다."
아니, 애먼 그림을 억지로 김일성 얼굴이라 우기며 북한응원단에서는 의도하지도 않은 선전·선동을 열심히 대신 해 준 게 누구던가? 바로 자유한국당·바른정당·국민의당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 "선전·선동이 일정부분 성공했다"니, 이들의 죄가 결코 작지가 않다.
덕산제과 왕돌이와 김일성 가면
젊은이들에게 앵그리버드를 던지던 안철수 대표의 당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걸까? 아무튼 그 당의 논평 중에 재미있는 구절이 있다.
"북한이 '김일성가면' 응원으로 북한의 체제선전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수준 높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집단지성을 무시하는 아주 저급하고 유치한 놀음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북한이 김일성 가면으로 북한의 체제 선전을 했다고 우기는 것이야말로 "아주 저급하고 유치한 놀음"이 아닐까? 그거야말로 "집단지성"이 아니라 집단광기가 아닐까?
이쯤에서 디지털 시대를 무색케 하는 이 집단광기의 고전적 예를 보자. 내가 초등학교 때 동네 근처에 덕산제과라는 회사가 있었다. 그 회사에서 생산하는 '과자'를 놓고 난리가 난 적이 있다. 과자의 이름은 왕돌이. 왕은 김일성을 의미하고, 덕산은 김일성이 태어난 곳이다. 파일럿은 북한 괴뢰군의 조종사다. 가슴의 옷깃이 화살표처럼 아래를 향하는데 이건 '남침'을 의미하며, 벨트의 버클은 남침용 땅굴을 암시한다. 승리의 'V'가 하필 왼손이다. 이거, 수상하지 않은가? 이런 식으로 당시에 아이들 사이에서는 왕돌이가 간첩이 설립한 회사이며 과자봉투에 김일성의 지령이 담겨 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 덕산제과 왕돌이 사건이 이번 '김일성 가면 소동'의 원형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긴 하다. 40년 전 '덕산제과 왕돌이' 사건이 철없는 아이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에 불과했다면, 이번의 '김일성 가면' 사건은 다 자란 어른들 사이에 사실로 믿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와 달리 달리 이번에 일어난 집단 히스테리극의 주체는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었다. 가면 속의 얼굴이 김일성이라는 소문을 내고 퍼뜨린 것은 천진한 아이들이 아니라, 언론사 기자, 국회의원, 심지어 자유한국당·바른정당·국민의당 등이었다. 이 가공할 정신적 퇴행이 나를 아찔하게 한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문제는 '유사성'을 '동일성'의 근거로 여기는 전근대적 의식이다. 합리주의·이성주의가 없었던 중세인들은 유사성은 곧 동일성이라 믿었다. 그 시절 사람들은 남자의 턱에서는 정말로 풀이 자라고, 사슴의 머리에서는 실제로 나무가 자라며, 사람의 얼굴에 7개의 구멍이 있듯이 하늘에도 7개의 구멍(행성)이 있다고 믿었다.
그 시기에는 비유가 논증이고, 은유가 증명이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마지막 중세인을 형상화한 작품이 바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1605년). 거기서 돈키호테는 철저히 '유사성=동일성'의 원칙에 따라 풍차는 거인으로, 양떼는 군대로, 하숙집 딸은 레이디로 간주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돈키호테는 이미 '광인'으로 등장한다. 17세기 이후에 '유사=동일'이라는 사고는 광기, 즉 착란증으로 간주된다.
유사가 동일인 것은 아니다. 우연히 닮았다고 격투기 선수 김동현이 인면조의 모델인 것도, 우연히 닮았다고 국민 MC가 북한 인민무력부장인 것도 아니다. 적어도 17세기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사고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시대에도 여전히 '제1광수, 제2광수, 제3 광수....' 운운하며 유사성을 근거로 광주 민주화 항쟁의 참가자들이 남파된 북한군 특수부대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의 '김일성 가면' 소동은 우리 사회에서 이런 중세적 멘탈리티가 몇 명의 얼간이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언론사 기자, 국회의원, 유력 정당들마저 이 가공할 지적 퇴행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21세기다. 제발 육갑들 좀 그만 떨자.
덧붙이는 글 ㅡㅡ 보수 야3당은 지금 이 시간에도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으로 둔갑시킬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자유대한을 사랑하는 이 땅의 애국시민들은 보수야당들의 가증스런 올림픽 적화야욕을 분쇄해야 한다.
이들은 앞으로도 사사건건 온갖 트집을 잡아 끝없이 방해를 하려 들 것이다.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 만들어 북에 상납해야 다가올 지방선거에서 살아남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제 막 시작된 동계 올림픽. 저들이 아무리 방해를 해도 반드시 성공적으로 치러내야 한다. 저들의 적화공작을 극복하고 기필코 평화올림픽을 만들어야 한다.
1줄요약은 마지막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