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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사는 인적 드문 공원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진혁은 아직 오지 않은 것 같았다.
차안에서 담배를 태우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자니 곧 후드를 깊게 눌러쓴 진혁이 차문을 두드렸다.
그리곤 말없이 조수석 문을 열고 김형사의 옆에 앉았다.
많이 야윈 진혁의 얼굴을 보고 김형사는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밥은 먹었냐?”
결국 김형사는 흔하다 못해 식상한 말로 침묵을 깼다.
상황에 안맞는 말인지도 몰랐지만 진혁은 그 말이 썩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처음 만났을때도 그걸 물어보셨었죠. 옛날생각 나네요.”
진혁의 말에 김형사는 기억을 더듬었다.
원체 정신이 없는 상황이어서 무어라 말했는지는 기억할 수 없었지만
그날 어린 진혁의 모습만은 생생히 떠올랐다.
눈앞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살해당한 10살 꼬마의 눈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죽음이란 것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였는지는 모르지만
그 어린 아이는 슬퍼하며 우는 대신 눈에 핏대를 세우며 범인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웠던 김형사는 친척에게 맡겨진 진혁을 자주 찾아가곤 했었다.
혹시나 엇나가지는 않을까... 나쁜 선택을 하지는 않을까
늘 가까이서 진혁이 마음잡는 것을 도왔다.
다행히 진혁은 남부럽지 않을정도로 훌륭하게 자라주었다.
시간이 지나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진혁이 27살이 된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져오고 있었다.
정확히는 진혁이 수배를 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계속 연락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제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진혁의 전화가 몇 달만에 처음으로 받은 연락이었다.
둘만 조용히 만나고 싶다 이야기 하는 진혁에게 할말이 많았지만
김형사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전화는 끊겼다.
김형사는 입을 다물고 재차 담배를 꺼내어 물었다.
여전히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이번엔 진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물어볼게 많으시겠죠? 하지만 저도 할얘기가 많아서요.
먼저 제 얘기부터 들어주세요. 뭐 어차피 듣다보면
묻고 싶은것들은 대부분 해결될거에요.
조금 길지도 모르지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천천히 들어주세요.”
진혁은 크게 한숨을 쉬며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요 어릴때부터 아저씨를 엄청 존경했어요.
나쁜 사람 잡는 멋진 사람이었잖아요.
도둑도 잡고 강도도 잡고 저희 부모님 죽인 놈도 잡고....
처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어린 제가 슬퍼하기도 전에
엇나가지 않도록 잘 돌봐주시고 했으니 얼마나 좋았겠어요.
당연히 그때부터 장래희망이 경찰이었죠.
뭐 결국 경찰이 되진 못했지만요.”
확실히 진혁은 김형사를 보며 경찰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김형사는 조심스레 반대의사를 밝혔다.
김형사의 말이라면 절대 거스르지 않던 진혁은 조금 아쉬움을 느끼며
다른 직업을 찾기로 했고 열심히 공부하여 학교 교사가 되었다.
김형사는 선생님이 되었다며 당당히 찾아온 진혁이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처음엔 왜 경찰이 되는걸 반대하시나 싶었어요.
뭐 오래 몸담고 계셨으니 힘들 다는걸 알아서 그러셨을수도 있긴 한데
최근들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대충 알겠더라구요.
아저씨는 절 너무 잘 아셨던 거죠.
전 감정조절을 잘 못하니까.
특히나 범죄자새끼들은 사람 취급 안할거 뻔히 아시니까.
그래서 말리셨던 거죠?”
이번에도 김형사는 입을 다물었다.
진혁의 말이 맞았다.
처음부터 그런 성향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모님의 죽음 이후 진혁은 범죄에 대해 과할 정도로 민감했다.
화가 날만한 사건사고 기사라도 봤다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바람에
진혁을 키워준 친척 집에서는 뉴스조차 함부로 틀지 못할 정도였다.
때문에 김형사는 진혁이 경찰이 되는걸 바라지 않았다.
감정적인 진혁이 경찰이 된다면 수많은 범죄와 사건을 접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게 분명했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진혁을 위한 조언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니까 이게 또 좋더라구요.
애들 돌보는게 적성에 맞았나봐요.
그런데 역시 걸리는것들이 있었어요.
세상엔 죽어 마땅한 쓰레기 들이 널려있었으니까요.
내가 가르친 애들이 그런 쓰레기들한테 무방비하게 노출되는게 싫었어요.
아주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제가 움직이기로 한거죠.”
거기까지 들은 김형사는 더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다고 사람을 잡아죽여?
한둘도 아니고 네명씩이나?”
진혁은 전혀 동요없이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이해해요. 아저씨 입장에선 옳지 않은 일일지도 모르죠.
그런데 제 생각은 달라요. 제가 죽인 놈들 중에서 쓸모 있는 놈은 아무도 없었어요.
언젠간 다시 범죄를 저지를 놈들 뿐이었거든요.
제가 그놈들 잡아 죽여서 몇 명이나 행복해졌을까요?
열명? 스무명? 어쩌면 백명이 넘을지도 몰라요.
그 정도로 답이 없는 놈들이니까.
아 그리고 아저씨한테만 솔직히 말하면....”
진혁은 살짝 소리를 낮추고는 작게 속삭였다.
“네명이 아니라 일곱명이에요.”
김형사는 이제 분노보다는 허탈함을 느꼈다.
십년이 넘도록 가까운 곳에서 지켜봐 왔건만 진혁의 이런 생각을 알아채지 못했다.
심지어는 엇나갈지도 모르는 어린 아이를 옳은길로 인도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김형사였다.
“잘 생각해 보세요. 제가 죽인 놈들이 어떤 놈들이었는지...
죄없는 사람 죽이고 숨어살던 놈.
범죄 저질러 놓고 솜방망이 처벌만 받은놈.
남들 등골 빼먹으며 호의호식 하던놈.
전부 죽어 마땅한 놈들이에요.
그 새끼들이 반성하고 새사람이 될까요?
아뇨. 절대 아니죠. 그렇다면 답은 뻔하잖아요.
전부 죽여버리는거에요. 단체로 어디 지옥에나 쳐박혀서 지들끼리 잘 살라죠 뭐.”
확신에 찬 진혁의 얼굴을 보며 김형사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진혁의 정의관은 명백하게 어긋나 버린 것 같았다.
“네가 아주 크게 잘못생각하고 있어.
그건 잘못된거야. 그런것들은 너는 물론이거니와 누구도 함부로 판단해선 안돼.
개인이 판단하고 심판할 수 있는 그런 가벼운 문제가 아니란 말이지.
그럴 자격이 없어. 그래.... 없고 말고.
네가 하는건 지나치게 감정적인 짓이야.”
그렇게 입을 연 김형사가 진혁을 설득시키기 위해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진혁은 김형사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뇨. 더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이미 다 알고 있거든요. 아저씨가 무슨말을 하실지.
아저씨 정의관이라든가 신념같은건 어릴때부터 몇백번이나 들어왔으니까.
어린애였던 제가 저희 부모님 죽인놈한테 복수하고 싶다고 방방뛰던 그때부터요.
그래서요? 저희 부모님 죽이고 감옥에 갔던 그놈은 착한놈이 되었을까요? 아닐걸요.
그냥 적당히 조용히 있다가 형마치고 홀가분하게 나왔겠죠.
감옥에서 10년이든 20년이든 아무리 오래 쳐박아놔도 소용없을 거에요.
천성이 변하지는 않겠죠.
아니 변한다 쳐도 달라질건 없어요.
그놈이 착해지고 진심으로 뉘우친다고 해서 죽은 저희 부모님이 살아올까요?
아니요. 절대 아니죠. 그러니 전부 치우는게 맞아요.
아저씨는 아저씨 방식이 있겠죠.
그건 존중해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같은 놈들도 있어야 해요.
죽어 마땅한 놈들이야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러니까 절대 자수 안할거에요.
제 힘 닿는데까지 잡아 죽여서 저같은 불쌍한 꼬마가 더 안생기게 할거에요.”
김형사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쥐고는 깊은 한숨을 뱉어냈다.
이제와서 자수하라고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체포를 해야 할까?
하지만 그것조차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오랜시간 자식처럼 생각했던 진혁이었다.
아니 실제로 김형사에겐 자식이 없었으니 진짜 아들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수갑과 권총역시 두고 온 것이다.
“자격이 없다고 하셨나요?”
진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심판할 자격이 없다고 하셨지만 제생각은 달라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전 충분히 자격이 있어요.”
김형사는 가만히 진혁을 바라보았다.
어린시절 눈앞에서 부모가 살해당한 소년.
그 소년에게는 심판할 자격이 있을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김형사 조차 명확하게 대답하기 힘들었다.
진혁은 이어서 말했다.
“아저씨가 말씀하셨죠. 저희 부모님 죽인놈. 그놈은 제대로된 벌을 받을거라고.
내가 사사로이 복수해서는 안되는거라고.
아저씨 말대로 제법 중형을 받기는 했는데 솔직히 만족스럽지 못했어요.
어떻게든 제가 직접 잡아 죽이고 싶었죠.
물론 전 아저씨 말대로 복수하러 가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꾹 참았죠.
그래도 마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서 슬쩍 알아봤어요.
그놈이 징역 마치고 나와서 어떻게 사는지...
그런데 그놈 출소하고 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죽었더라구요.
비루하게 살다가 단칸방에서 목매달고 자살이라니...
그 난리를 쳐 놓고 결국 그따위로 죽어버린 거에요.
무슨 이유로 죽었는진 모르지만 반성의 의미는 아니겠죠.
하등 도움 안되는 쓰레기 새끼...
진작에 죽었으면 저희 부모님도 잘 살아계셨을텐데..
아니 하다못해 제손으로 죽였어야 했어요.
그 쓰레기 같은 놈을 제손으로 죽여버렸어야 했다구요.”
진혁은 진심으로 분노 하고 있었다.
김형사 역시 이를 악물고 화를 삭혀냈다.
물론 김형사가 화를 내는 이유는 진혁과는 조금 달랐다.
“그때 확신할 수 있었어요.
저런놈들은 다 잡아 죽이는게 맞겠구나.
그게 옳은일이구나.
무슨 사고를 치기 전에 싹다 치워 버려야 겠구나.
그래서 되는대로 나쁜 새끼들을 찾으러 다녔죠.
그리고 다 죽였어요.
생각보다 일찍 들키는 바람에 고생 좀 하겠지만 후회는 없어요.
제가 굳이 아저씨한테 이런 이야기를 한 이유는
적어도 아저씨는 아셨으면 해서에요.
이해해 주시진 않더라도 제가 확신을 가지고 옳은일을 하고 있다는걸 말씀드리고 싶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에요.
어릴때부터 돌봐주신 존경스러운 분이니까.
제가 할말은 여기까지에요.”
김형사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진혁은 김형사가 자신을 체포할거란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완전히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늘이 지나면 진혁과 김형사는 완전한 남이 되는 것이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아저씨. 그럼...”
진혁이 차에서 내리려 하자 김형사는 진혁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품안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들고는 진혁에게 건넸다.
“어디가서 굶고 다니지 마라.”
“.... 감사합니다.”
진혁은 군말없이 봉투를 챙겨 넣었다.
진혁이 사라지고 한참동안 김형사는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자격이라...”
그의 얼굴에선 지독한 후회의 감정이 잔뜩 비추어 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혁을 놓아준것에 대한 후회도
설득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도 아니었다.
김형사는 몇 년전의 일을 떠올리며 후회를 하고 있었다.
몇 년전 그날.
“오랜만이지? 이새끼야.”
김형사가 노끈으로 한 남자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니가 감옥에서 호의호식하는 동안 참느라 뒤지는줄 알았다.
진혁이는 벌써 선생님이 됐는데
난 그때 봤던 10살짜리 꼬마애 얼굴이 아직까지 생각나서 밤에 잠도 못자.
알아? 넌 살자격도 없어 이새끼야. 그냥 뒤져!”
얼마안가 축늘어진 남자의 시체를 매달아 자살로 꾸민 김형사는 아직도 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이를 갈고 있었다.
수많은 사건을 담당했지만 유독 진혁의 일만은 마음을 추스르기 어려웠고
경찰이 절대로 해서는 안될 짓을 저질러 버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오래도록 참고 있던 진혁을 폭주하게 만든 것이다.
“자격이 없는건 나였지... 내가 뭐라고...”
김형사는 새로 담배를 하나 꺼내 물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By. neptun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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