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한쪽에서는 "순수한 스포츠 행사에 정치가 개입해 선수들의 출전권을 박탈했다"며 단일팀 구성을 비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우리나라 아이스하키팀이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고려한 산물인데, 남북 화해와 세계평화를 위한 정치 이벤트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옹호한다.
이미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는 것으로 상황은 일단락됐지만, 구체적인 사실들을 꼽아보며 이번 논란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동계올림픽에는 개최국 자동 출전권이 없다. 가장 큰 논란 중 하나가 우리 선수들이 고생해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었는데, 북한 선수들 일부가 무임승차하면서 우리 선수들의 권리를 빼앗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 출전하는 아이스하키 종목 나라의 현황을 보자.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 출전국 |
A조: 미국(1위), 캐나다(2위), 핀란드(3위), 러시아(4위) B조: 스웨덴(5위), 스위스(6위), 일본(7위), 대한민국(개최국, 23위) |
▲2017년 여자 아이스하키 세계 랭킹. 빨간색 네모 안의 나라가 이번 평창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출전국이다. 우리 나라를 제외한 평창올림픽 출전국들은 모두 세계 10위 이내 국가들이다. 그런데, 동계올림픽에는 규정상 올림픽 개최국 자동출전권이 없다.ⓒ 국제아이스하키연맹
이들 출전국의 세계랭킹은 국제아이스하키연맹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세계 22위인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다른 출전국은 모두 세계 랭킹이 10위 안의 나라다. 현재 세계 랭킹 7위인 독일이 출전하지 못한 이유는 일본과의 마지막 출전 자격을 건 예선전에서 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올림픽 개최국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세계 랭킹, 그러니까 순수한 실력으로만 보면 우리나라가 평창올림픽에 출전하는 것 자체가 이상해 보인다. 올림픽 개최국은 자동으로 출전권을 가진다는 특혜 조항이 있으면 논란이 줄어들겠지만 그런 것도 없다.
동계올림픽에는 하계올림픽과 달리 개최국이라고 자동으로 출전권을 주는 것이 아니다. 특히, 동계 올림픽 최고 인기 종목인 아이스하키의 경우 개최국 자동출전권은 2006년 토리노 올림픽을 끝으로 없어졌다. 2010년 캐나다 밴쿠버 올림픽, 2014년 러시아 소치 올림픽에서는 개최국의 자동출전 여부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캐나다와 러시아는 어차피 아이스하기 세계 최강국이기 때문에 개최국 자동출전과 상관없이 랭킹에 의해 출전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8년 평창올림픽의 개최국 자동출전 여부는 문제가 된다. 세계 랭킹이나 예선전을 통해서는 우리나라가 아이스하키 출전국에 들어갈 가능성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동계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개최국 없는 올림픽이라는 오명은 올림픽 흥행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 올림픽위원회와 아이스하키연맹은 세계 올림픽위원회, 국제아이스하키연맹과 협의를 통하여 조건부로 올림픽 출전권을 받게 됐다. 외국인 코치나 귀화 선수 영입, 시설 투자 등을 통한 우리나라의 아이스하키 기량 향상이 그 조건이었다. 일각에서 이야기 하는 남북 단일팀 구성은 그 조건에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어쨌든 우리나라의 평창올림픽 아이스하키 출전은 우리나라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실력으로, 흔히 스포츠에서 말하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얻어낸 것이 아니라 '정치적 고려'에 의해서 가능해졌다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설명인 것 같다. 그렇다고 선수들의 노력을 폄훼하자는 것이 결코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란다. 이는 2014년 러시아 소치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출전국의 세계랭킹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출전국 |
Group A – 캐나다(1위), 핀란드(4위), 스위스(3위), 미국(2위) Group B – 러시아(5위), 스웨덴(6위), 독일(7위), 일본(9위) |
2014년 당시 소치 올림픽의 여자 아이스하키 8개 출전국은 러시아를 비롯하여 모두 2014년 랭킹 기준 세계 10위권 내의 나라들이었다. 우리나라는 20위권 밖, 정확하게는 24위라 자력으로 올림픽 출전은 불가능했다. 누구도 이를 부정할 수 없다.
국제아이스하키 연맹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연도별 세계 랭킹에서 재미있는 사실이 몇 개 보인다. 우리나라가 출전권을 갖는 것이 확정된 2014년 기준 우리나라 여자 아이스하키 팀의 세계 랭킹은 24위인데, 기량 향상을 위한 노력을 조건으로 평창 올림픽 출전권을 얻은 후 4년이 지난 지금,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세계 랭킹은 22위로 그닥 상승하지 못했다(물론 우리나라가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에 들어간 것에서 알 수 있듯 스포츠에서 최종 성적이 세계 랭킹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스포츠는 스포츠가 가지는 감동이 있다).
어쨌든 우리나라 여자 아이스하키팀의 세계 랭킹이 2017년 기준으로도 여전히 20위권 밖이라 평창올림픽 다른 출전국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데, 북한과는 순위 차이가 3개 정도밖에 나지 않는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는 22위, 북한은 25위다. 북한이 형편없는 실력으로 우리나라 선수들이 애써 얻은 올림픽에 무임승차한다고 주장하기는 좀 어렵다.
아이스하키 특성상 남북단일팀은 우리에겐 특혜, 다른 출전국엔 핸디캡이다. 다른 구기나 단체 종목과 아이스하키의 가장 다른 점은 선수 교체다. 정식 국제 규정으로 따지면 축구는 출전 선수 11명에 교체 인원 3명까지만 가능하다. 한번 교체된 선수는 그 경기에서 다시는 그라운드에 설 수 없다. 반면 아이스하키는 전체 엔트리 23명에, 출전 선수는 6명인데, 축구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선수 교체에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 때나 횟수나 인원 제한 없이 교체가 가능하다. 그러니까 혼자서 15분씩 45분을 전부 뛰든 1분씩 뒤든 규칙상으로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이스하키가 육체적으로 워낙 힘든 경기라서 한번 경기장에 들어가면 2분 이상을 뛰기가 힘들기 때문에 수시로 선수를 바꾼다. 수시로 선수를 바꾸지만 워낙 힘든 경기라 체력이 금방 바닥난다. 물론 무엇보다 팀워크가 중요한 아이스하키에서 한 번도 훈련을 함께 한 적이 없는 선수들을 불과 경기 몇 주 앞두고 투입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에 대해 비판하는 시선들도 적지 않다(관련기사 : 선수단에 '통보'된 '남북단일팀', 이런 이유로 비판받는다).
이번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은 기존의 우리 선수 23명에 북측 선수 12명이 더해져 최종엔트리는 35명이고, 이 중에서 북한 선수는 경기당 3명 출전하는 것으로 확정 발표되었다. 그러니까 일각에서 악의적으로 보도하는 것처럼 우리 선수 3명이 출전권을 박탈당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출전권은 그대로 유지되고 추가로 북측 선수들이 뛰게 된 것이다.
조금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에 외국인을 선임하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귀화 선수까지 받아들인 입장에서 추가로 북측 선수 몇 명을 더 받아들이는 것을 보도하면서 '무임승차', '특혜', '기존 선수 출전권 박탈' 등의 표현을 쓰는 건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우리가 눈감은, 스포츠에 정치가 개입한 사례
스포츠에 부당한 정치적 압력이 작용하여 스포츠 자체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스포츠와 정치를 그렇게 칼로 무 자르듯이 양분할 수 있을까, 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따져볼 일이다.
정치가 개입해 스포츠를 망친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서방 진영의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이다. 1980년 미국을 비롯한 많은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라는 '정치적 이유'로 모스크바 올림픽이라는 스포츠 행사를 전면 보이콧했다.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이 이렇게 결정하니 우리나라도 따라서 불참을 선언했다.
4년 후엔 소련이 미국의 남아메리카의 섬나라인 그라나다 침공과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에 대한 항의로 미국에서 열린 LA 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했고, 북한과 동독을 비롯한 많은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뒤를 따랐다. 그나마 중국과 루마니아 등 몇몇 사회주의 국가들이 참가한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스포츠를 통한 세계 평화의 증진이라는 근대 올림픽의 모토에 비추어 정치적 사건을 이유로 올림픽에 불참하는 것은 정당화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우리나라가 미국을 따라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 한 것에 대해서 반성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스포츠에 대한 부당한 정치적 개입을 비판할 자격이 생긴다.
1988년 서울에서 열린 올림픽은 모스크바와 LA에서 정치적 이유로 반토막났던 올림픽이 온전히 다시 하나로 된 점에서 스포츠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동서 화해나 냉전종식의 결과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세계사적 공헌일 수도 있다.
긍정적 영향, 부정적 영향을 떠나 스포츠에 정치가 개입한, 어쩌면 스포츠와 정치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1960년대 우리나라 축구가 그 일례다. 1963년 아시아축구연맹(AFC)은 정기총회에서 북한의 가입 문제를 논의했는데 박정희 정권은 북한의 축구협회 가입을 막기 위해 외교적 로비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 최근의 사건은 2012년 영국에서 있었다. 축구 종주국이라 자부하는 영국은 자국에서 열리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 단일팀을 꾸려서 출전하기로 한다. 1960년 로마올림픽 이후 52년만의 사건이었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즈로 나뉘어 국제 대회에 참가해왔는데 관행을 깬 것이다. 다분히 정치적인 이 결정에 대해서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는 끝까지 반대하여 결국 웨일즈와 잉글랜드 선수로 구성된 영국 단일팀이 출전했다.
보기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우리 시각으로 보기에 부정적인 것도, 긍정적인 것도 있다. 가장 최근에 스포츠에 정치가 부당하게 개입한 대표적인 사례는 북한 축구와 관련 사건이다.
지난 연말 일본에서 동아시아 축구대회가 열렸다. 남북을 포함하여 중국과 일본 등 4개국이 참가하였는데, 여자부에서는 북한이 우승을 차지했다. 그런데, 우습게도 북한은 이 대회에서 우승하고도 상금은커녕 참가비도 받지 못했다. UN 대북제재 때문이었다. 핵과 미사일 등을 이유로 정치적으로 북한을 반대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스포츠 대회에서 우승 상금도 주지 않는 것은 뭐라고 변명을 해도 옹졸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부당한 정치적 개입이다. 수많은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스포츠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정치적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다.
분명한 것은 정치와 완전히 절연된 순수한 올림픽이라는 것은 없다. 순수하게 올림픽이 스포츠 행사에만 그친다면 올림픽을 할 이유가 없다. 순수한 스포츠 행사가 되려면 모든 종목에 개최국 자동 출전을 비롯한 프리미엄을 없애야 하며, 나아가 종목별, 국가별 와일드카드나 쿼터 같은 것도 없애야 한다.
올림픽은 순수하게 운동 실력으로 출전이 보장되는 순수 스포츠 행사가 아니다. 처음 생길 때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올림픽 헌장(Olympic Charter)의 기본 이념과 제1장 제1조 제1항을 보자.
▲올림픽 헌장 일부 발췌. 올림픽이라는 것 자체가 태어날 때부터 순수한 스포츠 행사가 아니라 스포츠를 통한 세계 평화 증진과 인간 존엄 실현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가진다는 것은 올림픽 헌장에도 있다. 과연 평창올림픽도 서울올림픽처럼 그렇게 기억될 수 있을까?ⓒ 국제올림픽위원회
올림픽 헌장(Fundamental Principles of Olympism) |
2. The goal of Olympism is to place sport at the service of the harmonious development of humankind, with a view to promoting a peaceful society concerned with the preservation of human dignity.(올림픽 이념의 기본 원칙 2. 올림픽 이념의 목표는 스포츠를 인간의 존엄성 보존과 관련된 평화로운 사회 건설을 증진하기 위해, 인류의 조화로운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1 Composition and general organisation of the Olympic Movement 1. ... The goal of the Olympic Movement is to contribute to building a peaceful and better world by educating youth through sport practised in accordance with Olympism and its values. (올림픽 헌장 제1장 제1조 제1항 ...... 올림픽 운동의 목표는 올림픽 이념과 그 가치에 따라 실행된 스포츠를 통해 젊은이들을 교육함으로써 평화롭고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
올림픽 헌장에 의하더라도 올림픽은 순수한 스포츠 행사가 아니라 이를 통하여 세계 평화의 증진과 인간 존엄 등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는 정치적 성격을 가진다. 올림픽은 순수한 스포츠 행사이니 랭킹 순으로만 출전하고, 그것만을 위해 운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우리나라부터 개최국 프리미엄으로 받은 출전권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주장을 하지 않는다. 개최국이 실력이 좀 모자라더라도 정치적 고려로 출전권을 주어서 올림픽을 좀 더 성대하게, 의미 있게 치르는 것도 올림픽 정신의 구현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논란이나 한반도기와 아리랑을 앞세운 공동 입장에 대해서 거부감을 보이는 것은 올림픽과 올림픽 정신에 대한 오해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크게는 올림픽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악용하려는, 정치권의 의도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88서울올림픽이 동서 냉전 때문에 반으로 쪼개진 올림픽을 다시 하나로 만드는 세계사적 기여를 한 것을 자랑스러워하듯, 2018년 평창올림픽이 그리 되기를 바란다.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이 냉전시대 마지막 대결장으로 남아있는 분단국의 대화와 화해의 시발점이 되고, 나아가 전 세계 핵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그래서 스포츠를 통한 세계평화와 인간존엄성 증진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실현하는 장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