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주아아빠? 언제? 병원은 어딘데?”
갑작스런 부고소식에 질문을 따발총처럼 쏟아내곤 서둘러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몇 년 만의 만남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붙어 지내던 우리가 고등학교 진학 후 점점 뜸해 지고 오늘이었다.
택시에서 내리니 시연이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고3. 수능준비로 옆에 앉은 친구에게도 신경 쓰지 못하고 지내는 요즘 이었다.
각자 다른 고등학교로 가게 된 우리에겐 각자 삶의 목표가 있었고, 충실히 오늘을 살아내고 있었다.
연기자가 꿈이라는 시연이는 연기학원과 악기레슨, 보컬학원까지 섭렵 중이었고, 호텔리어가 꿈인 주아는 수능공부에 매진하며 영어 과외를 하고 있었다.
그저 대학가는 게 목표인 내가 공부에 매달린 것과 다른 그들의 꿈이 부럽기도 하고, 자격지심도 들어 연락을 피했던 탓도 있었다.
“갑자기 어떻게 된 거야? 넌 또 왜 이렇게 말랐어?”
날 발견하고 한달음에 달려온 시연이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손가락까지 앙상하게 말라 웃을 때 패이던 보조개가 작은 표정에도 선명하게 보였다.
“심장마비시래. 요즘 사업이 조금 힘들어 지셔서 무리를 하셨다나봐. 나도 자세한건 몰라. 그냥 요 앞에서 어른들끼리 하시는 얘기 주워들은 거라서...”
벌써 눈이 빨갛게 충혈 된 시연이는 금세라도 눈물을 떨굴 것 같았다.
“안 돼. 우리가 울면 주아가 더 힘들어 할지도 몰라.”
장례식장 조문은 처음인 우리였기에 한달음에 가고픈 마음과 달리 몸은 쭈뼛거리며 망설이고 있었다.
짧은 단발머리에 흰색리본을 단 핀을 아무렇게나 꽂고 검정색 상복을 입고 앉아있는 주아 옆엔 올해 열 살이 된 남동생 상주가 기대있었다.
다가가 아는 척 하기도 미안할 정도로 지치고 힘든 모습이었다.
꽤 크게 사업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화환이며 손님들의 수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입구 구석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우리를 지나쳐 한 무리의 남자들이 들어가 꽃을 놓았다.
주아와 남동생은 힘겹게 일어나 그들을 맞는 인사를 하고는 그들이 내미는 인사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들이 떠나고 다시 주저앉으려는 주아의 눈이 빤히 우리를 향했다.
그 눈빛에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와 입을 틀어막았다.
시연이도 내 팔을 부르쥐었다.
우리는 그 때 감정이 연결되어 있었다고 느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옥상계단을 내려와 부엌뒷문을 열면 재래식부엌과 입식부엌의 중간쯤 되는 부엌이 나온다.
바닥과 벽면은 5백원짜리 동전만한 네모난 타일이 촘촘히 열을 맞춰있고, 입식부엌모양의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역할을 하는 연탄보일러도 예외 없이 타일을 두르고 있다.
어슴푸레한 백열등이 부엌의 쓰임새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며 앞문을 열면 사람 두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지나갈 만큼의 복도에 부엌보다 더 짙은 어둠이 차있다.
서늘하지만 음산하진 않은 복도를 따라 십여 걸음을 옮기면 양쪽으로 방들이 나온다.
몇 번째인지 모를 방 앞에 연등이 걸려있다.
한쪽 미닫이문이 열려진 채 앉아있는 뒷모습이 익숙하다.
옷 위로 드러난 어깨의 뾰족한 뼈가 안쓰러워 조용히 신을 벗고 들어가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아빠....”
눈이라도 마주치면 왈칵 울음이 쏟아질 것 같아 힘없는 등에 고개를 묻었다.
“아프지마... 아빠가 약도 못 사주는데 아프지마...아프...지...마......”
아빠의 등이 눈물로 젖어가고 있었다. 아빠의 어깨도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
손을 뻗어 아빠 손을 잡으려는 순간 눈이 시려웠다. 퀭한 엄마의 두 눈이 빨갛다.
며칠을 앓았는지 수능이 끝나고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수능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엄마의 차안에서 잠든 기억이 마지막 이었다.
엄마말로는 주차장에서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 살펴보니 열이 펄펄 끓고 있어 그길로 바로 응급실로 갔다고 한다.
응급실에서 여러 검사를 거쳤지만 특별히 이상이 없어 입원을 해야 하나 집으로 가야하나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내가 살풋 깨어나 잘 들리지 않는 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엄마, 집에....집에 가자.”
집에 온 뒤에도 내리 잠만 자는 바람에 사흘을 꼬박 침대에서 보낸 거라고 들었다.
그렇게 걱정을 시킨 것이 거짓말처럼, 개운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샤워를 하러 들어가는 내 뒤통수를 보는 엄마는 기가 막혔나 보다.
“엄마 속 시커멓게 된 거 네가 책임져!”
샤워를 하려고 고개를 드니 빙글 하고 욕실이 돌았다.
아무래도 몸이 전 같진 않은 모양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샤워를 마치고 나와 보니 식탁에 죽 한 그릇이 올려져 있었다.
“일단 물 한 모금 마시고 천천히 먹어. 언제 일어날지 몰라 매일 끓여 뒀는데 다행이다.”
엄마는 말끝에 울음을 삼키셨다.
“엄마, 미안해. 걱정 많이 했지?”
“네가 미안할 게 뭐 있어. 그동안 공부하느라 힘들어서 그랬던 건데...끝까지 잘 견뎌줘서 고맙고 일어나줘서 더 고마워.”
말없이 엄마 손을 꼭 쥐니 눈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누워있는 동안 아빠를 만나고 왔단 말은 하지 말아야겠다.
황망하게 아빠를 보내고 슬퍼할 겨를도 없이 채무자들에게 시달리며 해결하려고 애쓰던 엄마에게 아픈 기억을 되돌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삼촌이라 부르고 큰아버지라 부르던 타인들은 아빠 장례식장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좋은 관계도 돈이 있어야 가능한 거라는 걸 알아버렸다.
어린 주원이가 자세히 알지도 못한 채 이른 철이 들은 게 속상해서, 아빠 그늘에서 성당봉사만 하시던 엄마가 억척스럽게 변하는 게 안타까워서, 이 악물고 공부했다.
자는 시간도 아껴서, 먹는 시간도 아껴서, 지독하게 공부했다. 나의 수능시험은 그렇게 처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