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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억수같이 비가 오는 날, 외할머니에게 연락이 왔다. 당장 동물병원에 가자는 것이다. 다급한 마음에 외갓집으로 향했다. 엄마는 무슨 일이냐며 물었지만 답할 시간이 없었다.
할머니의 집은 300미터도 안 되는 거리인지라 매우 가까웠다. 할머니가 급하게 앞좌석에 탔다. 뭔가를 품고 계셨는데 갈색무늬 고양이였다. 어떤 나쁜 놈들이 고양이를 해치려고 돌을 세게 던져 다리가 부러졌다고 했다. 할머니가 나갔을 때, 그들은 서둘러 도망가고 고양이만 위태롭게 서있었다. 비가 무섭게 내리는 날, 어디로 가지도 못하고 서럽게 울어만 대는 것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수의사는 고양이의 다리를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수술해도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할머니는 벌벌 떨고 있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괜찮다고 위로 했다.
일단 수술을 하는 동안 할머니를 모시고 식사를 해야 했다. 당장 우리집으로 갔다. 할머니께서는 걱정이 되어 제대로 먹지 못하셨다. 엄마는 오지랖이 넓다고 비아냥댔지만 나는 할머니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생명을 살린다는 행위가 선(善)을 권한다는 의미로 보람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나 훗날에 알게 되었다. 녀석이 아니었으면 나는...
“휘건아, 병원에서 전화왔어. 수술이 잘 끝났다네?”
할머니를 모시고 다시 병원으로 갔다. 의사의 말로는 주인이 있는 고양이라고 했다. 이미 중성화 수술을 했고, 목걸이도 있으니 말이다.
눈물을 머금으며 계산을 했다. 그렇게 수술비와 약값이 비쌀 줄이야. 외갓집으로 고양이를 데려갔다. 할머니와 나는 녀석의 주인을 찾아주기로 했다. 녀석의 사진을 찍었다. 어디서 발견했으며 현재 상태에 대해서도 서술했다. 마을 게시판이나 전봇대에도 붙이고 면사무소 홈페이지에도 올렸다.
우리 마을이라고 하면 오십 가구 정도 사는 작은 마을이다. 충남 시골의 작은 마을 아니겠는가? 마을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가축이 몇 마리인지 웬만해서는 다 안다. 하지만 고양이를 키우는 집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다녔다. 하지만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주인한테 병원비와 사료 값을 받으려고 했는데, 울컥거림이 가시질 않았다.
결국 할머니께서 녀석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주인이 나타나면 돌려주면 되니까 말이다. 할머니는 녀석을 비 오는 날 발견했다고 하여 우비라고 불렀다. 우비 녀석은 참 똑똑했다. 할머니 앞에서 강아지는 명함도 못 내밀 애교들을 보여줬고, 내 앞에서는 지가 주인인냥 굴었다. 녀석은 외갓집의 넘버 투가 자신이란 걸 나에게 각인 시켰다. 이후 나는 녀석의 충실한 집사가 되었다.
2
우비의 다리상태를 보러 병원에 갔다. 의사의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오른쪽 뒷발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꽤 호전되었지만 여전히 뒷발을 쓰지 못하고 절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병원비로 울컥하던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녀석이 좋아하는 통조림을 잔득 사서 주었다. 할머니는 녀석을 안으며 괜찮다고 위로하셨다. 녀석도 자신의 처지를 아는지 풀이 죽어 있었다. 필히 엄마가 알게 된다면 나에게 정신나간 놈이라고 했을 것이다. 당장 어플리케이션으로 고양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이며 음식이며 모조리 구매했다. 어차피 여자친구도 없는 몸... 우비녀석의 기분이라도 좋게 해주고 싶었다.
녀석은 내가 산 장난감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얌채공부터 잠자리 장난감까지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밝아졌는데, 그 모습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녀석 때문에 외갓집에서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어쩌다보니 엄마나 이모, 삼촌도 와서 녀석의 재롱에 즐거워했다. 녀석이 우리 가족들을 알아보는데 전혀 낯을 가리거나 위협을 가하지 않았다. 교육을 잘 받은 훈련견 보다 더 사람을 잘 따랐다.
완전히 적응을 한 것 같아서 녀석을 데리고 산책을 데리고 나온 날이었다. 녀석이 다리가 불편하기 때문에 품에 안은 상태로 다녔다. 그런데 걷다보니 마을사람들도 꺼리는 밤나무 아래에 있는 흉가로 가고 말았다. 꽤 오래전, 일가족이 누군가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곳으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할머니가 누누이 가지 말라며 당부한 곳인데, 뭔가에 홀린 듯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더욱이 우비녀석이 그 집을 향해 ‘그르렁’거렸다. 그러더니 내 품을 뛰쳐나가 날카롭게 울어댔다. 녀석이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구는 모습을 처음 봤다.
“캬오오오오오옹... 캬오오오오오옹...”
순간 녀석이 내 허벅지를 발판 삼아 내 품에 풀쩍 안겼다. 그리고 당장 도망가라는 듯 앞발로 내 뺨을 쳤다. 서둘러 녀석을 안고 냅다 달렸다. 갑자기 오싹한 기운이 온 몸을 뒤덮었다.
할머니 집으로 재빨리 들어가 대문을 잠갔다. 녀석이 이상했다. 자꾸 대문을 보며 그르렁 댔다. 상상력은 공포심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고 했던가? 그 집에 있던 무언가가 우리를 쫓아왔다고 생각하니 숨이 턱하고 막혔다. 녀석은 앞발로 다시 내 얼굴을 탁하고 쳤다. 집으로 들어가자는 의미 같았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할머니가 우비의 상태를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다. 나는 혼날까봐 산책 나갔다가 대형견을 만나서 놀랬다며 거짓말 했다. 그날 밤, 우비는 잠도 안 자고 현관문 앞을 어슬렁댔다. 문제는 고것이 나 역시 방에 못 있게 하여 거실에 함께 있었다.
3
녀석은 불을 못 끄게 했다. 불을 끄려고 하면 온갖 성질을 다 부렸다. 집사니까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다. 그날 나도 모르게 그곳으로 발걸음을 향한 것이 실수였다. 평소에는 기분 나빠서 가지도 않는 곳인데, 왜 그랬을까? 우비녀석은 뭔가를 느끼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밤 12시, 녀석은 여전히 잠도 안자고 현관문 앞에 있었다. 그걸 보자, 차마 잠을 잘 수 없었다. 하지만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눈이 감길랑 말랑 할 찰나, 현관문이 흔들렸다. 누군가가 현관문 손잡이를 잡고 마구 흔드는 것 같았다.
“철커덩... 철커덩... 철커덩...”
아무생각 없이 내가 누구냐며 말하려고 하자, 우비가 냉큼 뛰어올라 또 다시 앞발로 내 얼굴을 쳤다. 아차, 이 시간에 누가 현관문을 열겠나? 어리석었다. 필히 반가운 손님은 아닌 것 같았다. 당장 핸드폰으로 현관 앞에 설치 해놓은 시시티비를 확인했다. 할머니의 안전때문에 가족들이 달아놓은 것이었다.
“....!”
온 몸에 닭살이 쫙 돋았다. 현관문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필히 사람이라면 센서에 반응하여 전구에 불이 켜졌을 텐데...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우비녀석이 갑자기 창문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번에는 거짓말처럼 창문이 흔들렸다. 마치 당장 창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올 것만 같았다. 녀석은 더욱 그르렁 댔다. 불편한 다리로 당장이라도 공격을 할 것처럼 자세를 낮춰 잡았다.
무서웠다. 집밖에 그것이 귀신이라고 생각하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 역시 창문에서 눈을 때지 못했다. 계속 집중을 했다. 창문에 사람형상 같은 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확실하다고 말 할 수 없지만 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우비는 필사적이었다. 계속해서 덜컹이는 창문을 매섭게 노려봤다. 그러더니 성치 않은 다리로 도움닫기를 하여 창문을 퍽하고 쳤다. 그리고 모든 힘을 짜내어 사납게 울어댔다. 놀랍게도 더 이상 창문이 흔들리지 않았다. 녀석이 외갓집 거실과 할머니방과 다른 방을 돌아다녔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행여나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감시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할머니가 잠에서 깰까봐, 걱정스런 마음에 문을 조심히 열었다. 다행이 깊은 잠을 자고 계셨다.
우비는 한동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경계했다. 얼마나 긴장을 하고 초조했던 걸까? 해가 뜨는 줄도 모르고 집을 지켰다. 그러다가 완전히 아침햇살이 집에 들어와서야 할머니의 품속에 뛰어들었다. 일어난 할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자 애교의 눈웃음을 지으며 이내 잠들어 버렸다. 밤새 공포에 떤 줄도 모르고 할머니는 아침을 먹자고 하셨다.
아침을 먹으며 할머니께 마을 흉가에 대해서 물었다. 도대체 무엇이 있기에 가지 말라는 것인지 말이다.
4
조금 전까지 아침햇살이 비췄는데, 할머니께서 흉가의 비밀을 말하려고 하자, 구름이 몰리고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졌다.
“오늘 서울에 검진 받으러 나는 날인데, 비가 온다냐? 아무튼 그 집말이여...”
그러니까 60년 전, 우연히 그곳에 들어간 사람들에 의해 무서운 진실이 밝혀졌다. 본래 흉가는 박종대란 사람이 살았던 곳이다. 문제는 이 박종대가 뭔가에 씌었는지 자신의 가족들을 죽이고 자기도 목을 매어 자살한 것이었다. 그날부터 그곳은 귀신의 집으로 불렸다. 어떤 무당이 그곳을 태우려고 불을 붙였지만 이상하게도 검게 그을릴 뿐 모습은 검게 남아 있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이 집을 가리려고 나무나 풀을 심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꼭 가지 말라고 하면 가보는 사람들이 있다. 술 먹고 가는 사람, 담력을 시험하겠다며 객기를 부리는 사람, 귀신의 실체를 밝혀보겠다는 사람, 길을 잘못 든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의문사 당했다. 그곳을 가겠다고 해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었다. 마치 박종대의 저주라고 해야 하나? 왠지 밤에 찾아온 남자가 박종대란 귀신이라 생각하니 밥알이 넘어가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다. 어젯밤의 일을 말했다가 왠지 혼이 크게 날 것 같았다.
아침부터 외삼촌이 할머니를 모시러 왔다. 할머니께서는 검진을 받고 외삼촌 집에서 주무시고 올 예정이었다. 그래서 우비를 우리집에 데려가야 했다. 그런데 이놈이 계속해서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문제는 나 역시도 집에 못 가게 했다. 현관문 근처만 가면 그르릉 대며 노려봤다. 하는 수 없이 할머니 집에 있기로 했다. 할머니가 서울에 가시자 우비가 담요가 있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나도 전날 밤에 시달리는 바람에 피곤해서 잠들어 버렸다.
얼마나 잤는지 모르겠지만, 우비 녀석이 앞발로 얼굴을 툭툭 치기에 눈을 떴다. 사방이 캄캄했다. 밤 10시, 이상하게 고요하고 조용했다. 집에 전화를 하고 문단속을 했다. 그리고 우비와 함께 할머니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불안함과 공포심에 자꾸 현관문을 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벨이 울렸다. 서둘러 나가 인터폰을 확인했다. 할머니였다. 분명 자고 온다고 하셨는데, 하루 만에 돌아오셔서 의외였다. 대문을 열려고 버튼을 누르려고 하는데, 우비녀석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설마...?”
나는 당장 외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분 탓인지 그날따라 신호음이 길었다. 한참 신호음이 지난 뒤, 외삼촌이 받았다.
“사... 삼촌... 혹시.. 할머니...”
외삼촌이 하품을 하며, 할머니께서 주무신다고 했다. 검진이 피곤하셨는지, 저녁을 드시고 바로 눈을 붙이셨단다. 조심스레 전화를 끊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그게 어디 마음 같아야 말이지. 우비를 조심스레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지 않자, 계속해서 벨을 눌렀다. 보통 문을 열지 않으면 밖에서 이름이라도 부르는데, 그러지 않고 계속 벨만 누르는 것이 이상했다.
“띠잉~똥, 띠잉~똥, 띠잉~똥...”
벨소리가 사람을 미치게 하는데, 여간 짜증나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나와서 인터폰을 확인했다. 눈을 의심했다. 인터폰 앞에는 할머니가 아닌,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게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웃고 있었다.
당장 경찰서에 전화를 하려고 전화를 들었다. 그런데 순간 뭔가 ‘빠직’하면서 모든 불이 꺼졌다. 정전이라 생각했다. 더욱 놀란 것은 핸드폰마저 전원이 나가버렸다. 그리고 대문이 열리면서 닫히는 소리가 ‘쾅’하고 났다. 놀라서 주저앉아 버렸다.
우비는 위험을 느꼈는지, 계속해서 그르렁 거렸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바보처럼 눈뜨고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렸다. 터벅터벅 투박한 발걸음 소리에 남자가 걸걸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캄캄한 상태에서 청각만 열렸다. 어느새 현관문 앞까지 왔다. 등골이 오싹했다. 왜냐하면 현관문 앞에 서있는 누군가가 억지로 웃음을 참으려는 듯 마른웃음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크크크크... 어혀 문 열어, 다 알고 왔으니까 말이여.”
남자의 목소리에 우비가 더욱 격하게 반응을 했다. 남자가 문을 두드리자, 우비가 달려들었다. 녀석이 날을 세우며 울어댔다.
“고양이 새끼가 저번부터 거슬리게 하는데 말이여, 콱 죽여 버려야 아갈을 다물지?”
우비는 더욱 거세게 울어댔다. 나는 당장 일어나 서랍에서 초와 라이터를 찾았다. 현관을 비추자 유리로 된 부분에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나는 그가 박종대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호.. 혹시... 당신이 박.. 종.. 대에요?”
남자는 깔깔깔 웃어댔다.
“그려, 나가 박종대여... 그러니깐 말이여, 어서 문을 열지?”
정말 무서웠다. 이를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아무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정전에 핸드폰이 먹통이 되니, 미칠 노릇이었다. 하지만 우비는 털을 바짝 세우며 현관에서 고함을 질러댔다. 날카롭게 울어대니, 박종대란 작자도 짜증이 났는지 빠르게 창문 쪽으로 달려왔다.
“쨍그랑!”
부엌에 있는 창문이 깨지며 낫이 집 안으로 쑥하고 들어왔다. 그것을 보자, 나도 소리를 질렀다. 당장 우비를 끌어안고 할머니 방으로 향했다.
“도망쳐봤자, 소용없다니까 그러네?”
박종대가 창을 완전히 깨트리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이러다가 죽겠단 생각에 당장 달렸다. 그러나 순식간에 들어온 귀신한테 덜컥 옷깃을 잡혔다. 힘이 어찌나 센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바로 그때, 우비가 뛰쳐나와 귀신의 얼굴에 달려들었다. 발톱을 세워 공격을 하니 귀신도 별수 없었다. 그 덕에 나는 빠져 나와 도망치려고 했다. 박종대는 우비에게 짜증이 났는지 냅다 우비를 던져 버렸다. 우당탕탕 소리에 걱정이 됐다. 우비는 나를 향해 도망가라는 듯 울어댔다. 하지만 도망갈 수 없었다. 우비를 두고 갈 수 없었다.
박종대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촛불에 비친 그의 표정이 무서웠다. 그렇게 무서운 얼굴은 처음봤다.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당장 날카로운 낫으로 나를 찌를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우비가 귀신이 들어온 부서진 창밖으로 나려고 하는 것을 목격했다. 하지만 뭔가 문제가 생긴 듯 움직임이 더뎠다. 다리가 성치 않은 우비라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간을 끌고 싶었다.
“이.. 이봐유, 박종대씨... 왜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여? 내가 뭘 잘못했단 말이어요?”
박종대는 더욱 심하게 웃어댔다.
“하하하하하... 죽는 마당에 가르쳐 주지. 자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주 큰 죄를 지었지...?”
인정 할 수 없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로 말할 것 같으면 법 없이 살아도 한 점 부끄럼 없이 사실 분들이었다. 나는 그 죄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박종대는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옛날에 말이여, 너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내 집에서 들어와서 살았단 말이지. 그러면 고마운 줄 알고 기꺼이 목숨을 내어주면 되는데 말이여? 무당년들을 데리고 와서 아주 난리를 쳤단 말이여? 이런 육실헐... 생각하면 할수록 열 받네?”
박종대의 말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것이 분명했다. 손자인 내가 자신의 집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는 것을 발견하고 화가 치밀어 온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 집에서 나왔지... 이히히히... 귀신놈들이 나가지 말라고 날 붙잡았지만 분노를 육십년 넘게 가진 지금에서 나를 이길 자는 아무도 없지. 이히히히히... 너무 아쉬워하지 마러... 어차피 그때 말이여, 내가 너네 엄마의 목을 졸라 죽였더라면 애초에 너도 안 태어났으니께, 말이여. 오히려 운이 좋은 것이여...”
무서웠다. 그러면서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이, 귀신과 사람을 구별법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은 어둠 속에서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지만, 귀신은 어둠 속에서도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종대는 진정 귀신이었다. 날카로운 낫을 높이 들고 당장 나를 찌를 것 같았다. 태생부터 겁쟁이인 나는 어쩔 수 없이 귀신에게 죽음을 당한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귀신새끼, 집념이 장난 아이네? 아이고 아저씨요... 듣자 하니, 살아있을 때도 니는 악인이었다.”
전혀 안면이 없는 경상도 지역의 사투리를 쓰는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외부 조명에 비친 남자는 우비를 안고 있었다. 박종대는 남자를 보자 많이 놀란 듯 보였다. 온 몸을 떨어댔고, 땀이 비가 오듯 흘러내렸다.
“저.. 저... 굉이새끼... 아주 죽여버렸어야 하는데...”
남자가 주문을 읊어댔다. 아무래도 귀신을 퇴치하는 주문 같았다. 박종대가 그만하라며 고함을 고래고래 질렀다. 그러더니 이내 무릎을 털썩하고 꿇으며 구토를 해댔다. 토사물 냄새가 온 집을 뒤덮었다. 매우 역겨웠다. 어느새 남자는 부적하나를 귀신에게 붙였다. 그러더니 코를 톡 쏘는 탄내가 다시 진동했다. 박종대는 고통스러워하다가 소리를 꽥꽥 질렀다.
“이게 뭐여... 육시럴... 내가 말이여... 다시.. 복수.. 복수... 하러 올 것이여... 그때는 네놈 가족 전부 죽일 것이여, 각오혀... 이런 육시럴!!!”
갑자기 집에 전기가 들어왔다. 형광등이 껌뻑거리며 켜졌고,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핸드폰 역시 저절로 켜졌다. 남자는 우비를 조심히 내게 주었다.
“다리를 저는 고양이가 자신을 따라오라고 해서 왔더니, 일이 이렇게 되었네요. 실례 많았습니다...”
남자는 인사만 꾸벅하고 나가려고 했다. 그런 남자를 잡았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려고 했다. 하지만 애써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그러더니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켰다. 누군가가 누워있었다.
“저 사람... 아까 그 귀신한테 빙의 된 사람인 것 같은데요. 경찰에 신고 해가지고 데리가라 하면 될 겁니다. 아참, 그런데요. 그 귀신 조만간에 또 올 것 같은데 말이죠? 나중에 가족들이랑 한번 상의 해보세요...”
남자는 서둘러 나갔다. 우비도 지쳤는지, 할머니 침대에 올라가 곯아떨어졌다. 뒤늦게 경찰을 불러서 남자를 데려가라고 했다. 나 역시 피곤해서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아침에 할머니가 왔다. 모든 일을 사실대로 말했더니, 소스라치게 놀라셨다.
더욱 신기한 것은 박종대에게 빙의 된 남자가 우비에게 돌을 던지던 남자 중 하나였단 사실이었다. 할머니가 경찰서에서 남자의 얼굴을 보자, 한 눈에 알아봤다. 믿기지 않는 일의 연속이었다. 멀지 않아 나는 할머니 집에서 나와 우비를 구해준 남자를 한 번 더 만나게 되었다.
귀신의 장난 : 고양이와 남자 끝
시간에 쫓기고, 컨디션 난조로 어색한 부분이 많지만 시간이 나는 날, 수정해서 다른 플랫폼에서 보충하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언제나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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