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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차단 상태
    LI르VrLr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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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르VrLr님의 댓글입니다.
    번호 제목 댓글날짜 추천/비공감 삭제
    1879 본질에 대하여 [새창] 2019-07-21 11:26:42 0 삭제
    선(禪)수행에 대한 오해 -
    많은 특정 종교 및 수행 단체들이 (한때 국내에 열풍을 일으켰던 단학 ㅇㅇ 등등)
    다리틀고 앉아서 참선하는것을 선 수행이라고 구라치며 많은 사람들을 속여왔다

    마조도일의 글로 (글로 적는것이 어불성설이지만 - 게시판 자판으로 달리 할 수 잇는게 없어서..)
    이유를 대신합니다

    “평상심이란 조작을 하는 마음이 없고(無造作),
    맞다 틀리다 분별하고 따지는 마음이 없으며(無是非),
    좋아하는 것을 취하고 싫어하는 것을 버리려는 마음도 없다(無取捨).
    평상심 그 자리는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분별도 없는 것(無凡無聖)이니,
    - 바로 지금 그 마음으로
    걷고 서고 앉고 눕고 (일하고 밥먹고 똥싸며) 근기에 따라 만물을 대함에 다함이 없음이
    곧 도이다 (只如今行住坐臥應機接物盡 是道).” -마조도일-
    1878 본질에 대하여 [새창] 2019-07-21 10:36:25 0 삭제
    초기 소승불교에서부터 대승불교까지
    연역 귀납적으로 기술되고 고찰된 방대한 팔만사천 법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만 앞이 말과 뒤의 말이 다른 뒤집기의 연속입니다

    그 방대한 분량의 철학서 뭉태기를 다읽고 체득하기엔 몹시나 머리쥐나는 일입니다
    더구나 저러한 불교철학서들을 모두 수레바퀴 또는 방편이라 부릅니다
    그때 그때 뜻과 상황에 맞게 타고 가다가 필요치 않으면 다른수레로 갈아 타야 한다는 융통성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화엄경도 그중 하나입니다
    무척이나 복잡하게 분석적으로 기술된 매뉴얼 -즉 교설들이 머리 쥐나게 하지만 그 교설을 강요하진 않습니다
    (타고 가다가 버려야할 경전들이기 때문입니다)

    변화 발전되지 않으면 굳어져 썩어간다는 불교 철학 특징답게 금시대까지도
    변화를 거듭하며 전개되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복잡한 매뉴얼의 대승불교 교종 장황설를 뒤업은 불교가 등장합니다
    바로 선(禪)불교 입니다
    발생지 인도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당나라에서 태동되어 한반도 까지 흘러와
    북동아시아에서 꽃피운 후기 불교가 선이라 불리웁니다

    조사선 이라고도 불리는 선불교는 언어적 설명도 분석도 탐구도 모두 생략한채
    직관적 인식으로 단박에 체득하라는 태도를 지닙니다

    선의 수행법은 지구인 60억 이라면 60억가지 방법론이 있다고 말해도 허언이 아닌 셈입니다
    기향님이 말씀하신 개별성이 무시된 화엄을 비롯한 대승불교의 교설들의 문제점을 뒤엎은 철학인 셈입니다

    붓다의 설법이나 말이 아닌 붓다가 전하고자 한 뜻을 직시하자는 태도로 시작된
    선은 말이나 문자로 설명하는 순간 선이 아니므로 그 내재된 뜻을 적지못하고 댓글을 마칩니다
    1877 두 가지 철학 [새창] 2019-07-21 01:28:54 0 삭제
    삶의 질곡이라 불리는 때론 처참하고 때론 고통스러운 길을 걸으며
    살아 남기위해 몸부림 치는 과정에서
    도피처와 허영심이라는 방편이라도 의존해 자기세뇌를 하며 견디며 버티며
    삶을 살아낸 사람을
    철학을 머리로 이해한 사람이 아니라
    체득한 사람이라고 칭한다
    1876 참나를 찾아서,의심의 끝은 어디인가,코기토,산은 산이다. [새창] 2019-07-21 00:53:57 0 삭제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
    성철스님의 법문으로 유명해진 이 구절은
    사실 청원유신(靑原惟信) 선사의 법어에 등장한다.
    더 근원을 올라가면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의『완릉록(宛陵錄)』에서 그 첫 모습을 보인다

    너무나 뻔한 이야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 초딩도 안다
    선지식을 만나 산과 물의 상호작용과 솟아오르고 낮은곳으로 흘러내리는 이치를 알아들으며
    더이상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 우리들 인생사 삶의 모습을 상징화한 깊은 뜻이 시각화 된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인생사, 잡사, 희노애락 ,생로병사를 겪으며 실전인생을 경험해 보고나니
    그냥
    '산은 산이며 물은 물이다 "
    더할것도 보탤것도 뺄것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
    진짜 그 모습
    지금 여기 발딛고 선 이 자리의 바로 나
    수식도 포장도 구라도 없는 진짜 나
    진짜 나를 알아가는길 ......

    평상심시도 (平常心是道)
    1875 본질에 대하여 [새창] 2019-07-19 12:20:45 0 삭제
    불교 철학하면 일반적인 선입견으로 관념적 이고
    실체도 없는 무형의 관념을 통해 초월에 이르고자하는 방편이다 라고 오해가기 쉬운데
    그런 시각은
    산에 오르는길을 비교하면 도정에 불과 합니다

    입산 초기엔 무거운 짐을 하나둘씩 벗어야 가볍게 정상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소승적 도정인 벗고,버리라는 태도는 정상에 오를때 까지 입니다
    산의 정상에 속하는 반야. 금강 - 공 . 초월 - 등의 몹시도 "관념"적인 봉우리를 관합니다
    큰 한숨 몰아쉬고 충분히 쉰 뒤
    곧 하산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하산길 그것이 화엄 사상입니다
    화엄을 통해 하산길에서 만나는 들꽃 나무 바위 동식물 그리고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

    즉 눈앞에 보이는 있는그대로의 세계상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어울려 살아가고자 하는
    받아들이고 취하고 살아가라는 실천철학의 태도가 등장합니다
    발딛고 선 지금 여기 물질계의 한가운데서 지헤롭게 살아가는 방편을 논한 것이 화엄 사상입니다
    화엄세계 - 모양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고 빛깔도 다르지만 함께 어울려
    현상계를 아름답게 장엄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세계에 속한다

    물질세계를 완전히 받아들이고 취하되 이전의 산에 오르기전의 방식이 아닙니다
    그 내용을 아래 아주아주아주 간략하게 발췌해 봅니다 (7처8회34품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용어들이 한문으로 의역 내지 음역 되어 있어 어려워 보일뿐,
    고대 선지식들이 현상세계를 다양하게 고찰한 철학서 -화엄사상-입니다

    화엄사상의 철학적 구조는 법계연기(法界緣起)이다.
    즉, 우주의 모든 사물은 그 어느 하나라도 홀로 있거나 일어나는 일이 없이
    모두가 끝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의 원인이 되며,
    대립을 초월하여 하나로 융합하고 있다는 사상으로, 화엄에서 가르치는 무진연기(無盡緣起)의 법칙이다.
    사법계(四法界)·십현연기(十玄緣起)·육상원융(六相圓融)·상입상즉(相入相卽) 등은
    이 무진연기를 설명하는 화엄사상의 골자이다.

    사법계란 현상과 본체와의 상관관계를
    사법계(事法界)·이법계(理法界)·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 등
    넷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사물이 제각기 한계를 지니면서 대립하고 있는 차별적인 현상의 세계를 사법계라 하고,

    언제나 평등한 본체의 세계를 이법계라 한다.

    그러나 현상과 본체는 결코 떨어져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어서,
    항상 평등 속에서 차별을 보이고 차별 속에서 평등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를 이사무애법계라 한다.

    다시 나아가 현상, 그것도 각 현상마다
    서로서로가 원인이 되어 밀접한 융합을 유지한다는 것이 사사무애법계이다.

    이 사사무애법계는 화엄사상의 특징을 나타낸 것으로,
    일반적으로 중중무진(重重無盡)의 법계연기라고 하며,
    그 특징적인 모습을 열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 10문은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은밀현료구성문(隱密顯了俱成門) 등으로서 십현연기문이라고도 한다.

    동시구족상응문이라 함은 현세에 과거와 미래가 다 함께 담겨 있음을 뜻하고,

    제법상즉자재문은 현상계의 모든 사물이 서로 차별하는 일이 없이 일체화되고 있다는 말이다.

    또, 하나[一]는 하나의 위치를 지키고 다(多)는 다의 면목을 유지하는 가운데,
    하나와 다가 서로 포섭하고 융합한다는 것이 일다상용부동문이다.
    이때 하나가 없으면 다가 없으며, 하나가 있으면 일체가 성립한다.
    모든 것이 홀로 고립된 것이 아니라 하나로도 되고 십으로도 되고 일체로도 된다는 것이다.
    이에 근거하여 화엄에서 가르치는
    일즉일체(一卽一切)·일체즉일(一切卽一)·일즉십(一卽十)·십즉일(十卽一)의 논리가 전개되는 것이다.

    또한, 모든 현상의 각각에는 총상(總相)·별상(別相)·동상(同相)·이상(異相)·성상(成相)·괴상(壞相) 등
    여섯 가지 모습이 함께 갖추어져 있고,
    전체와 부분 또는 부분과 부분이 서로 일체화되고 있다는 것을 전개시킨 것이 육상원융의 이론이다.

    『화엄경』에서 설하는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는 현상계와 본체,
    또는 현상과 현상이 서로 대립하는 모습을 그대로 지니면서도
    서로 융합하여 끝없이 전개되는 약동적인 큰 생명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 연화장세계에서는 항상 『화엄경』의 중심불인 -태양같은 항성의 불교명칭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대광명을 비추어 모든 조화를 꾀하고 있다.
    『화엄경』은 우주의 질서를 미적으로 표현한 경전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통일국가의 상징이기도 하다.
    화엄의 가르침은 서로 대립하고 항쟁을 거듭하는 국가와 사회를 정화하고,
    사람들의 대립도 지양시킴으로써 마음을 통일하게 하는 교설이다.
    - 하략 -
    1874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9-07-19 11:29:06 0 삭제
    결론 :
    인간은 모두가 알다시피 잡식성 포유류입니다
    지구환경과 자연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다면 골고루 잡식을 하는게 가장 합당합니다
    단편적 신념에만 심취하여 - 동물만 아끼고 보존하면, 자연은 부조화가 일어나는 결과를 초래하며
    미세단위 생태계 지킴이인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들에게도 몹쓸짓이 됩니다
    인간과 자연
    함께 더불어 같이 오래오래 잘 살아가려면 인간이 먹을수 있는 모든 생명체를 골고루 뜯어먹고 잡아먹기를 권장합니다
    가끔 세균(유산균 같은)도 먹어주는 센스 ~
    1873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9-07-19 11:02:15 0 삭제
    [먹이그물]
    먹이 사슬 또는 먹이 연쇄는 생태계 내의 종 간의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인 먹이 그물을 일차원으로 나타낸 것이다.
    유기체들은 그들이 섭취하는 유기체에 생물군계나 에너지가 전달되는 방향으로 화살표로 연결된다.
    이로부터 에너지가 생산자로부터 소비자(종속영양생물)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먹이사슬 또는 먹이그물은 연결된 그림만을 의미하며,
    '먹이 네트워크' 또는 '생태 네트워크'는 굵기를 달리 하여 전달되는 영양분이나 에너지의 양을 나타낸다.
    먹이사슬은 특정한 동물이나 식물이 과밀하게 늘어나는 것을 막아주어
    동물과 식물들이 살아가는데에 중요한 부분이다.

    먹이 사슬의 분류 dum (1971)
    포식연쇄(捕食連鎖,predatic chain): 식물-1차 소비자-2차 소비자로 차례로 먹혀가는 연쇄
    기생연쇄(寄生連鎖,parasite chain): 1차기생자-2차기생자-3차기생자로 이어지는 연쇄
    부생연쇄(腐生連鎖,saprophytic chain): 죽은유기물-미생물로 이어지는 연쇄
    하지만 위와 같은 3가지 연쇄는 각각 독립적인 체계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고
    생태계 속에서 상호 복잡한 관련성을 맺고 있다.
    이와 같은 먹이 사슬의 복잡한 관련성이 거미줄과 같이 상호연결되어 있는데,
    이 복합계를 먹이 그물이라고 한다.

    먹이사슬이나 먹이연쇄는 1차원적 -일방향적 구조를 일컫으며
    먹이그물은 - 상호영향을 주고 받는 3차원 다중 방향 구조를 일컫습니다
    실제 자연계는 먹이그물이라 칭하는게 훨씬 더 자연현상계에 가깝습니다
    채식이나 육식만 고집하면 자연 생태계는 - 반드시 문제가 일어나게 되는 - 상호 그물형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최근 알려져 있습니다
    1872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 세상의 실체(개인적인겁니다) [새창] 2019-07-19 00:13:40 0 삭제
    빅뱅이후 창조라 불리는
    물질화 현상 (빅뱅이후 중수와 우주먼지가 열과 바람을 일으키며 뭉쳐서 산화작용을 지속하며 단단하게 물질화 되는)
    그 현상이전으로 돌아가 다시 출발하라고 주장하며
    붓다 자신만이 아니라, 지상의 모든 인간존재는 본디 너나 없이 누구나 그 곳에서 부터 마음자리을 두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2천5백년전의 썰이,
    21세기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신박하고 심오한 이유는 무었일까요?
    1871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 세상의 실체(개인적인겁니다) [새창] 2019-07-18 23:44:19 0 삭제
    붓다.부처 : 고타마 시타르타라는 인간존재가 거듭나 진여(眞如 )에서 온 자
    진여 : 우주 만유의 차별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참되고 한결같은 의지를 가리키는 불교용어입니다
    붓다의 다른 지칭으로 "여래" 라고도 합니다 진여에서 온 자라는 뜻이 됩니다

    돌연변이라는 표현이 재밌습니다
    자연법과 환경에 순응하며 ,우주원리와 사이클의 법칙에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다수 인류의 도의적 인간존재의 덕목(?)을 정면으로 깨부수고
    우주법칙이 형상화 되기 이전 "본래 청정심" " 중도의 자리"를 되찾아
    만유법칙이 현현되기 이전의 상태로 부터 지구별에 저절로 온 자가 되라고 주장하는
    괴랄한 돌연변이라는 표현이
    맞는 말 처럼도 들립니다 ~

    여여즉여 (如如卽如)
    1870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 세상의 실체(개인적인겁니다) [새창] 2019-07-18 10:10:03 0 삭제
    사족: 작성자님의 글과 문장 구사방법과 단어들이 완전히 다른 탄트라불교 시를
    유사한 사유라고 한 이유는 여성성을 완성형으로 본 관점과
    진짜 자신을 찾으라는 메세지 때문입니다
    고대 선지식들은 여성을 대지의 어머니 - 즉 생산과 풍요를 담당하고 운행하는 자연법에(地) 가깝다고 보았고
    남성성을 불안하게 흔들리며, 무형의(天) 완성형 가치에 몰입추구하며 진화중인 미완성 형태로 보았습니다
    비유를 들자면 카톨릭의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같은 상징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남성여성 구도보다, 틸로빠시의 마지막 구절에 나오듯 어머니와 아들의 구조로 이해합니다

    아울러
    불교윤회론은 전생 내세를 논하는 비틀어진 윤회론이 아닙니다
    그런태도는 힌두교(브라만교)의 윤회론이며
    생로병사 성주괴공하는 즉 삶과 죽음에 영향받는 모든 운명적 존재를
    현실이라는 윤회의 수레바퀴속에 살아간다라고 표현합니다 (근본불교에선 내세따위를 거론하지도 않습니다)
    영속성을 가진 개별영혼의 존재를 운운하면 브라만교 외도라고 호통치던
    붓다의 세계관에 무슨 전생내세 윤회론이 등장하겟습니까
    불교철학은 " 살아 숨쉬는 지금 여기 이곳에서 " 가 가장 중요한 철학적 화두입니다
    1869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9-07-18 09:14:55 0 삭제
    [신과 인간 - 운명론과 변화론]

    : 댓글이 길어져서 지루해 지는 걸 방지하고자 한줄 요약식으로 적습니다

    1. 아브라함계 유일신론 - 야훼.알라등 유일신의 창조법칙아래 인간존재는 운명적으로 지배되어있다

    2. 다신론 - 유럽켈트족이나 일본 인도등의 다신및 정령의 힘에 기대어 인간존재의 길흉화복을 구복한다

    3. 이신론 - 빅뱅이후 우주의 법칙과 운행원리를 신성한 의식 (Universe is Conscious)이라고 이해하며
    인간존재는 그 법칙들에 의해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주로 뉴에이지 과학자. 초월명상 추종자들이 주장하는 이론에도 자주 등장한다
    (-인류가 관측한 우주법칙은 걸음마 단계여서, 현시점의 은하계같은 우주의 극히 일부의 원리이며
    아직은 알려지지 않은 우주법칙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산재해 있으며 양자물리학에 의해 뉴튼역학이 뒤집히듯
    새로운 이론이 관측되면 우주법칙 자체가 다르게 인식되는 허점도 내포되어있다)

    4. 범신론 - 불교.도교등에서 추구하는 세계관 - 지상의 모든 사물에는 법 또는 도라고 불리는 원리가 있으며
    인간존재는 거기에 지배받고 살고 있으나 -
    a),도교에선 수련을 통해 원리를 다스리고 도술로 작용원리를 부릴수 있다고 설하며
    b),불교에선 해탈에 이르면 법칙에 영향 받지않는 완전히 대자유를 실현할 수 있다고 설한다

    5. 무신론 - 신성한 존재나 원리는 없으며 인간존재의 자유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인간존재는 운명지어진 것인가? 변화되어가는 존재인 것인가?
    1868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 세상의 실체(개인적인겁니다) [새창] 2019-07-18 06:50:31 1 삭제
    작성자님이 적은 글들과 유사한 사유의 - 1000년전 지구별에서 살다가 간 탄트라불교 수행자의 구전으로 전해지던 시가 있어 발췌합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상위자아라 표현하신, 본질 마저도 완전히 넘어서라는 불교철학다운 무한에 대한 시입니다

    - 마하무드라 노래 TILOPA'S SONG OF MAHAMUDRA - (틸로빠-Tilopa, A.D. 988 - 1069)

    수냐(空)는 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마하무드라여, 수냐의 굽이침이여.

    무한에 뿌리박은 이 동사의 현재형이여

    노력도 없이, 그 어떤 인위적 노력도 없이

    관계의 이 오랏줄 끊어 버릴 때

    아아, 그 순간 바로 그 순간 절대자유를 얻는다

    수냐로 되돌아가려는가? 허공을 보라.

    본래대로 살고자 하는가? 마음을 주시하라.

    거기 모든 차별은 무너지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있나니.

    구름이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뿌리도 집도 없는 것.

    본질(마음)에 떠다니는 사념들도

    이와 마찬가지다.

    일단 본자리로 되돌아가게 되면

    이 모든 차별은 지워지나니.

    갖가지 모양과 빛깔을 하고 물방울들이 형상을 이루어 본질의 하늘에 떠다니고 있다.

    그러나 본질은 그 빛깔과 모양에 물들여지지 않는다.

    이 모든 짓이여, 울고 있는 천차만별이여,

    본질로부터 떠오르는 물거품인 걸

    그러나 본질은 결코 착함이나 악에 물들여지지 않는다.

    이 밤의 긴 어둠은

    떠오르는 태양을 가릴 수 없다.

    생로병사(生老病死), 성주괴공(成住壞空), 생주이멸(生住異滅)하는 윤회의 길고 긴 수레바퀴도

    마음의 찬란한 빛은 결코 부수지 못한다.

    언어로써 공을 설명하지만

    공은 결코 언어 따위로 표현되어지지 않는다.

    마음이여. 눈부신 빛이여 라고 우리는 말한다.

    그러나 마음은 모든 언어와 상징을 넘어서 있다.

    마음이여. 텅 빈 이 거울이여,

    모든 것이 텅 빈 그 속에 있고.

    텅 빈 그것은 모든 것 속에 스미어 있다.

    인위적인 동작은 필요치 않다. 휴식하라.

    입을 굳게 다물고 침묵으로 남아 있으라

    마음을 비워라. 무념으로 생각도 비워라

    텅 빈 대나무처럼 몸의 긴장을 풀어라.

    주지도 받으려 하지도 말고 마음을 편안히 가져라.

    마하무드라의 경지는 집착이 없는 마음과 같다.

    이같이 갈고 닦아 때가 오면

    깊은 잠에서 깨어나 중도상의 붓다를 이루리

    만트라의 암송과 바라밀다의 실천.

    경전의 독송과 계율의 엄수

    학교의 교육과 성전의 비밀 가르침을 통해서는

    결코 본연의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

    마음이 어떤 욕망으로 가득차서

    목적을 찾는다면

    그것은 오직 빛을 가릴 뿐이기 때문이다.

    탄트라의 수행자가 아직도 분별심이 있다면

    그는 삼매의 정신을 위반하는 자로 남는다

    모든 행위를 그치고 모든 욕망을 버려라.

    사념들이 밀려왔다 밀려가도록 내버려 두라.

    바다의 물결이 밀려왔다 밀려가듯이

    한 곳에 정착하지 않는 것을 비방하지 않고

    무차별의 원칙을 비웃지 않는 자는

    바로 탄트라의 본질을 파악한 자다.

    갈망을 버리고

    그 어느 것에도 집착이 없는 사람은

    그는 성전의 진짜 의미를 터득한 자다.

    마하무드라 속에서 모든 원인과 결과의 법칙은 소각된다.

    마하무드라는 이세상의 감옥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다.

    이것이 위대한 진리의 빛이다.

    이를 믿지 않는 자는 관계의 바퀴에 물려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힘들어진다

    길가는 도정에서 불안과 의혹 슬픔의 늪을 헤매게 된다.

    진리를 갈구하는 자는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스승의 가르침을 믿어야 한다.

    스승의 축복이 마음 깊이 스며들 때

    해탈은 그대 수증에 있다.

    아아. 이세상의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한낱 슬픔의 싹일 뿐

    옅은 가르침은 무상한 행위로 이끄나니

    그대는 오직 진실한 가르침만을 따라야 한다.

    상대적인 생각을 초월하는 것은 높은 견해요

    마음의 산란을 정복하는 것은 황제다운 수행이다.

    정해진 수행법이 없는 길은 모든 붓다의 길이요

    이 길을 가는 자는 붓다의 본질이라 불리는 中道床(중도상)에 이른다.

    이세상은 덧없는 것이다.

    꿈이여 환영이여 그 물질의 본질은 무한의 비형상이다.

    모든 인연을 끊어버리고 혈족관계에서 마저 벗어나라.

    욕망과 원한의 오랏줄을 끊어버리고

    자신의 깊은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 나를 찾으라.

    인위적인 조작이 없이

    여유롭고 자연스러운 상태에 머물 수 있다면

    머지않아 마하무드라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추구하여 얻을 것 없는 그 경지를 얻게 될 것이다.

    나무의 뿌리를 자르면 잎들은 마를 것이다.

    마음의 뿌리를 잘라 버리면 성주괴공하는 윤회는 끝날 것이다.

    램프의 불빛은 순간적으로

    영겁의 어둠을 몰아낸다.

    마음의 강한 빛은 번쩍이며

    무지의 베일을 태울 것이다.

    마음에 집착하는 사람은

    참된 진리를 볼수없다.

    수행에만 매달리는 사람도

    참된 진리를 발견하지 못한다.

    마음과 수행 너머의 진리를 알려면

    마음의 뿌리를 깨끗이 잘라 버리고

    적나라한 자기 모습을 보라.

    이같이 모든 차별에서 벗어난다면

    여유롭고 자연스럽게 될것이다.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고

    자연스러운 상태로 남아 있거라

    마하무드라는 모든 수용과 거절을 넘어선 경지이다.

    무한자의 본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므로

    그 누구도 그것을 방해하거나 더립힐 수 없다.

    태어나기 그 이전의 세계의 머물러 있으라

    모든 형상은 그 자신의 원소 속으로 분해되며

    의지와 자부심은 형상없는 본질속으로 사라져 버릴 것이다.

    최고의 가르침은

    상대개념을 초월하는 것이다.

    최고의 행동은

    모든 것의 근원을 분별과 애착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최고의 성취는

    바램을 버리고 내재성을 깨닫는 것이다.

    깨달음의 처음 단계에서 수행자는 그의 마음이

    폭포처럼 추락하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중간에는 강물과 같이

    마음은 고요하고 평화롭게 흐를 것이다.

    마직막에 가서 마음은 드넓은 바다가 된다.

    아아, 마침내 비형상과 형상이라 불리는 속성을 이루는, 아들의 빛과 어머니의 빛이

    이 바닷속에서 하나로 합칠 것이다.

    (-이 음유시의 번역은 의역 오역이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
    1867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9-07-02 00:11:14 0 삭제
    작성글에서 논하고자 한 명제의 오류는
    하나 - 현상계의 생성 소멸원리를 인격신 곧 유일창조주라 부르는 인격존재에 대입시키므로 많은 비약과 억측이 생기게됩니다
    둘 - 우주와 현상계는 지금 이순간에도 끊임없이 변화중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고대 유일자가 이미 고정화 정형화시킨 이후로 그것이 완벽한 모든것이라는 주장이 커다란 억지가 됩니다
    변화하고 변화하며 달라지는 삼라만상 시공의 흐름을 멈추어 있다라고 생각하는 오류라 할 수 있습니다
    1866 예술잡담 1- 예술과 철학의 차이 [새창] 2019-06-19 02:27:54 0 삭제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되는 게시글입니다

    미술 혹은 에술은 선사시대, 고대 동굴벽화에서 보이듯 삶의 현장을 있는그대로 일찌감치부터 표현해 왔습니다
    철학은 삶의 구조적 특성이나 원리를 분석하고 논리적 대응체계를 마련하는 방편으로 실현되어 왔습니다

    실재와 관념
    존재론과 인식론
    이 양갈래 사이에서 기원전부터 추구해온 인간정신의 결과물이 현대 문명이자 인간사회입니다
    이 두 부분에 기여해온 철학과 에술은 배다른 쌍둥이 같은 것이라는 개인적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한시대에 (시대의 유행처럼)
    에술은 종교의 하수인 이었고
    에술은 문학의 하수인 이었고
    에술은 철학의 하수인 노릇을 해오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에술의 본질은 " 미 즉 - 아름다움에 대한 절절한 감흥 "입니다
    그리하여 자연적이거나 인위적인 감동의 종합현상입니다

    에술이
    종교를 등에 업거나
    문학만을 베이스로 삼거나
    철학을 이용한다고 해도
    결국
    에술의 본질은 "절대 미" 입니다
    그것은 결코 간섭할 수 없는 절대미 입니다

    철학과 미술은 배다른 쌍둥이 형제 처럼 상호 협치 반목하며
    인간의 정신적 감성적 물리적 영역을 기름지게 꽃 피우는 위대한 인간 행위추구의 결실들 입니다

    낙타님이 말씀하신 바
    현대에술이 철학의 하수인 역할을 하거나 철학을 이용하거나 ( 행위의 본성이라 불리는 피와 땀은
    포기하고 잔머리 가득한 사변만 내세우는 )
    그러한 행위는
    에술의 본질. 본성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어린아이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어리석은 방황과 시행착오를 통해 본질은 더
    비온뒤 굳어지는 땅처럼 단단하게 자리 잡을 거라 여겨집니다

    철학과 에술 모두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여전히 미완성인
    (인간사 인류사의 삶과 죽음이라는 과정중에 나타나는)
    위대한 놀라운 현상들이니까요 ......

    진흙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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