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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차단 상태
    카라빠돌이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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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라빠돌이님의 댓글입니다.
    번호 제목 댓글날짜 추천/비공감 삭제
    21 진실을 알던 모르던 달라지는건 없습니다. [새창] 2014-09-23 17:23:14 0 삭제
    뭔소린지 모르겠어요.
    직관의 영역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잇는것은 반대명제를 끌어오지 않는다.
    이게 뭔 말입니까.

    그 직관이란게 뭔대요.
    뭔 인류공통에 정신이 있나보죠?
    프로토스처럼 정신의 교류를 통해 공동적 정신가치가 만들어진답니까.

    그건 정확히 "님의 직관"에 불과합니다. 개개인의 각기 다른 직관에 불과하단말이죠.
    아니 이 당연한것조차 토론이 필요합니까?
    20 진실을 알던 모르던 달라지는건 없습니다. [새창] 2014-09-23 17:18:58 0 삭제
    lastlaugher/
    사고 실험 모릅니까?

    이혼할 수 없다면은 가정이에요. 사고실험에서 흔히 하는 가정말입니다.
    이 가정이 잘못됬다. 오만이다. 뭐 이러면 애 당초 사고실험이 가능이나 한겁니까?

    뭔 말인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참인가. 참이 아닌가는 이혼할 수 없다고 가정할때 사람은 듣는가 아닌가 입니다.
    뭔 소린지 이해조차 안됩니다.

    라플라스의 상자 또한 사고실험에 불과한데요.
    지금 님이 말씀하시는건 "라플라스의 상자따위를 왜 가정하는데?"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에요.
    난 태도나 가치관을 말한적이 없습니다.

    당연히 전제되는것이 "이혼할 수 없을때"인겁니다.
    늦둥이는 책 읽는것을 좋아한다.가 왜 책 읽는걸 좋아하는데요?
    그 이유를 밝혀야죠.

    위에 이혼할 수 없을때는 하등중요하지도 않은 예시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논의는 인간의 미지에 대한 반응 이에요.
    거기서 영향을 미칠 수 있을때. 즉 자기 삶에 생존부분에서 유리하게 작용시킬 수 있을때엔 미지를 알고자 하고
    미칠 수 없을때에. 생존부분에 개입할 수 없을때엔 미지속에 있으려고 한다는게 이 글의 요지 아닙니까.

    여기서 왜 저런 쓸따구없는 예시를 계속말하는겁니까.
    저건 그냥 예시라구요.

    늦둥이는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왜 가 없잖아요.
    주장에 왜 그런지가 없지 않습니까.
    그걸 예시로 들고 늦게태어났을때 무엇이 다르니까. 가 있어야죠.

    도대체 뭔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제 글을 이해조차 하고 있는겁니까?
    당연한 직관이라면서 말씀하시는데 그 당연한 직관이 님하고 나랑 달라요.
    그건 개인간에 세계관이 다를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님은 저보고 독선적이다 오만하다고 하는데 님이 지금 님의 직관을 위해서
    내 직관을 강제하고 있는것은 보이지가 않습니까?

    나도 직관이 있고 님도 직관이 있고
    저는 거기서 이런 예시를 들어가며 이에 대해 다른 의견을 구하는겁니다.
    내가 조카에게 하는 말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요. 이 생각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의견을 밝히라는 뜻이죠.

    사고실험을 하는데 사고실험에 전제가 틀렸다고 하면 사고실험이 성립이나 됩니까?
    19 진실을 알던 모르던 달라지는건 없습니다. [새창] 2014-09-23 13:46:56 0 삭제
    lastlaugher/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가능한겁니다. 라는 말이 왜 거침이란 말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글쓰기를 못보신거 같습니다. 저는 글을 짦게 쓰려고 ~다. ~가 이렇게 썼습니다.
    예전식으로 쓰면 [이혼할 수 없다면 배우자는 불륜사실을 알고싶어하지 않는다]라고 썼을겁니다.
    많이 순화된거에요.

    그리고 이게 왜 독선적이고 오만한 태도입니까.
    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이혼할 수 없다면 배우자는 불륜사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라는 명제 아닙니까.
    이 명제가 참인가. 거짓인가를 논한다고 하면 그건 이해가 됩니다.

    아니다.
    배우자의 성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이혼할 수 없다해도 진실을 알고자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면서 자신도 어떤 명제를 가정하여 설명하면 됩니다.


    간단하잖아요.
    명제를 가정하지도 않고 "사람은 다양하니까 관점에 따라 태도에 따라 다른거야" 뭔말입니까.
    그건 뭔 말이에요

    사람의 호불호. 관점과 태도를 논하는겁니까. 여기가?
    당연히 누군 장미좋아하고 누군 백합을 좋아하겠죠. 그건 당연한거에요.
    그런 호불호. 관점. 태도와
    장미란 무엇인가. 장미란 빨간것이다. 이런 명제를 만들어 논하는것하고 헷갈리시는 겁니까.
    이러면 아니다. 장미는 빨간것만 있는게 아니다. 이렇게 말하며 다른 명제와 예시를 들면 되요.

    당최 장미는 빨간것이다라는데 왜 호불호.관점.태도가 나옵니까.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18 종교인이 욕망이 거세된게 아닙니다. 오히려 욕망이 엄청커요. [새창] 2014-09-23 13:33:15 1 삭제
    자비가 없다는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대자대비.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아주 중요한 깨달은자에 특징입니다.
    석가모니의 설법은 대비. 큰 슬픔에서 나온거에요.

    이게 아주 중요한겁니다.
    깨달음을 이룬자가 깨닫지 못한자를 보고 "난 얻었는데 젠 못 얻었네"가 아니에요.
    깨달음이 단순히 앎 이었다면 석가모니가 중생제도를 수 없는 설법으로 돌려말하면서 해줄리가 없습니다.

    자신이 얻은걸 타인에게 알려 줄수가 없구나. 아직도 전도몽상한 망상속에서 사는구나.
    이게 석가모니가 크게 슬픈 이유입니다.
    불교에선 모든것이 깨달음에 이루고자. 혹은 이루게 하려는 방편에 불과합니다.

    석가모니가 얻은게 뭡니까.
    석가모니가 얻은건 실로 세상에 괴로움이란 없단겁니다.
    근데 우리에게 괴로움이 없습니까. 그게 아니죠. 향상성을 유지하려는 삶은 붕괴될 수 밖에 없기에 거기서 괴로움이 나옵니다.
    거기서 빠져나오게 하려는. 전도몽상한 생각속에서 빠져나오게 하려는게 석가모니의 모든 설법에 근원입니다.
    그래서 선사중에 한분이 한 말이 수행을 왜 하느냐라고 묻자.
    밥 먹고 싶을때 밥 먹고 자고 싶을때 자려고. 라는 말이 나온겁니다. 그래서 평상심이란 말이 나온거에요
    다시 말하면 생각을 꾸며내지 않는것이 붓다의 단계인겁니다. 그래서 변한건 아무것도 없는데 괴로움은 사라진거에요
    17 종교인이 욕망이 거세된게 아닙니다. 오히려 욕망이 엄청커요. [새창] 2014-09-23 13:17:13 2/4 삭제
    lastlaugher/
    그건 사성제 팔정도가 나온뒤에 이야기지요. 불교에 욕망이 어떻게 없습니까.
    그건 다 중관사상들 후대 불교에 투신한 정말로 머리가 비상한 이들이 만들어낸 깨달음을 표현하고자한 논리적 방법입니다.
    사성제 팔정도가 석가모니 사후에 백몇년이 지나고 만들어진것을 아셔야 할겁니다.
    금강경에 있는 법상에 비법상에 집착하지마라. 비법상에 집착해도 곧 법상으로 떨어진다고 하죠. 다 깨달음의 경지를 나타내고자한 방편들입니다.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서 아주 강력한 상상을 초월하는 욕망이 순수한 마음. 이 순수함이란 얼마나 순수한가 하면 "내가 찾을 수 있다"라는 마음입니다.
    아무도 모르는데 출가할때에 석가모니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고 대다수 불교에 진실로 투신한자들은 다 저런 순수한 마음에 발심을 일으킵니다.
    이걸 원시불교에선 순수한 마음. 대승에선 불성이라고 말하죠.그래야만 존재의문과 생사의문앞에서 찾아나서는 겁니다.
    그런 원력이 없으면 안해요.

    깨달음은 간단하게 위에도 말했지만 욕망의 끊어짐입니다.
    모든 생존욕이 단 하나에 몰렸을때에 그것이 끊어지는순간에 모든것을 아는것이 깨달음입니다.
    공하다. 무아다. 뭐 이런거 말입니다.
    그건 깨닫지 못한 우리가 깨달은 이를 볼때 찾아낼 수 있는 특징들. 즉 감상문에 불과해요
    실제로 깨달은자가 자신이 공하다. 나는 무아다. 라고 생각할것 같습니까.
    그게 금강경에서 말한 비법상입니다.
    16 종교인이 욕망이 거세된게 아닙니다. 오히려 욕망이 엄청커요. [새창] 2014-09-23 10:11:30 1 삭제
    2시99분/
    그것이 어떻게 발현되느냐 차이겠죠.
    십자군 전쟁에선 에티오피아 기사들이 스스로 발벋고 성지탈환을 위해서 참전했습니다.
    근데 십자군은 나중에 가선 콘스탄티노플 털고 하는 등에 그야말로 "야만의 탐욕"을 제대로 보여주죠.
    1차 십자군은 그나마 종교적 열의가 강했다고 봅니다.

    독선적인것은 순수하고 추악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분도 그런 방향을 맞아서 잘된거죠.
    만약에 저런분이 10세기에 태어나서 십자군을 교황이 선포한다면 따라나서지 않았을까요?

    석가모니의 제자중에 한명은 살인자였습니다.
    왜 살인자가 되었냐면 그의 스승이 그를 질투하여 그에게 절대적 진리를 얻는법을 알려준다고 했죠
    그러고선 그 방법이 사람을 죽이는것이라고 거짓말합니다.
    그는 순수하게 절대적 진리를 얻고자하는 열망으로 사람을 죽이고 다녔습니다.

    아주 중요한거에요.
    왜 종교인에서 사도 광신도도 나오고 성자도 나올까.
    이래서 불교에 제1의 마음이 의심입니다.
    기독교에 제1의 마음이 사랑인것과는 매우 다르죠.

    사랑이 절대적인 사랑이 되면 되겠지만 절대적이 되지 못했을때에.
    나의 진리와 신은 사랑하되 너의 진리와 신은 사랑하지 않는다가 되는거죠.
    그렇게 말하는게 아니라 그렇게 마음속에서 신과 진리에 사랑을 하면서 다른 진리와 신은 사랑하지 않는다 가르는겁니다.
    나중에 가선 다른 진리와 신을 미워해야 자신의 진리와 사랑를 더 사랑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걸 바로 "사랑받고 있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는거죠.

    불교는 아예 다릅니다.
    석가모니 자체가 의심병이 나서 수행한 사람이고 깨달음 직전엔 의심나서 고행조차 버리고 우유죽을 먹은 사람입니다.
    그 우유죽을 먹자 석가모니를 따르던 5제자들이 그를 모욕하며 바로 떠나버렸죠.
    그럼에도 석가모니는 이번엔 반드시 얻으리란 마음으로 선정에 들어갑니다.
    이게 내가 불교를 따르는겁니다.

    남이 나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것도 대신 죽어주는것도 아닙니다.
    석가모니가 출가할때 "이 왕국과 가족이 나에게 답을 줄 수 있는가? 나는 답을 찾아야겠다"라고 출가하죠.

    그래서 불교도에겐 자신이 따르는 진리. 즉 깨달음이야 말로 의심의 가장 제1대상입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네이버 지식인인가요.
    나에게 묻기를 "기독교의 신도 볼 수 없고 깨달음도 볼 수 없다. 그럼 깨달음이 있다고는 어떻게 확신하나?"라고요
    그러자 제가 기뻐서 바로 답글을 달았습니다.
    "맞아. 확신못해."
    "불교도가 제일 먼저 의심하는게 바로 그거야. 깨달음이란 실존하는가. 또한 실존한다해도 내가 도달할 수 있는가. 그걸 맨 첨부터 의심해"라고 했죠.

    아직도 의심하고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지요.
    그래서 불교가 외부에 힘을 투사하지 않는겁니다.
    사랑은 단계가 낮으면 타인에 대한 미움이 나오지만 의심은 단계가 낮아도 그 절대끊어지지 않는 사슬이 자신의 몸을 옭아메기 때문이죠.
    그래서 불가 수행자가 타인을 때려죽이는일이 거의 없는겁니다.
    의심안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대신에 남에게 뭘 베풀수도 없습니다.

    일단 깨달아서 내 문제 해결해야 남에 문제를 해결해주죠. 자기 일도 벅찬사람이 남의 짐까지 어떻게 들겠습니까.
    그래서 종교에도 장단이 있어요.
    불교는 각자들만이 세상에 무주상보시를 행할 수 있고 나머진 전부 의심에 얽메여 거기서 수행해야 됩니다.
    기독교는 그에 들어온지 1년도 안된자조차 타인을 위해 사랑을 베풀 수 있죠. 대신에 미움이 형태를 띠고 올라오는것도 감수해야 합니다.
    15 아편전쟁같은 허위는 좀 벗어버립시다. [새창] 2014-09-23 09:43:15 0 삭제
    4표차로 의회를 통과한걸로 압니다.
    3명만 더 반대측에 표를 던졌다면 아편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겠죠.
    그 정도라도 좀 이야기라도 했어야 된다는겁니다.

    전쟁에서 이용하는 명분이야 다 개소리인건 부정할 수 없지만 세상에 아편이 문화상품이란 논리는 어떻게 나온답니까.
    영국은 국가 멸망할때까지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이런 "더러운 나라"로 찍혀서 두고 두고 오체분시를 겪어야 되요.
    요즘 국기에 대한 충성이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고 하는데 자유롭고 정의로운건 개떡같은 소립니다.

    단지 남에거 삥뜯을 힘이 있고 내 지갑이 개한테 털려서 삥뜯어야 된다면 완곡하게 돌려서 "돈 없어. 너 땜시"로 말했으면 합니다.
    이걸 말하면 "야만인"이라서 만들어낸 논리가 "아편 문화상품. 영국인도 하지"라는 개떡같은 소리에 불과했어요.
    대한민국이 좀더 힘을 손에 쥐고 약소국과 조약하거나 할때 이런 개떡같은 개소리만 안했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그게 그나마 현실에서 바랄 수 있는 가장 이상적 국가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14 진실을 알던 모르던 달라지는건 없습니다. [새창] 2014-09-22 23:26:08 0 삭제
    lastlaugher /
    뭔소리에요.
    조카가 11명입니다. 큰 조카가 군대갔다온애구요. 첫째누나 조카둘이랑 많이 이야기해요. 이런 이야기.
    좀 그런 헛소리는 안하셨으면 합니다.
    13 진실을 알던 모르던 달라지는건 없습니다. [새창] 2014-09-22 20:35:22 0 삭제
    lastlaugher/
    그건 제가 혼자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간단해요.

    회의론자가 밥먹을때조차 "이 밥이란게 있는걸까?"하면서 밥을 먹습니까. 그럼 굶어 죽어요.
    혼자 문답을 하는데 "내 답이 틀렸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면 생각이 진행이 될수가 없어요.

    자문자답을 하려면 어느순간에 문에 대한 답을 결정을 지어야 됩니다.
    그런 뒤에야 그 다음 문제로 넘어가죠.
    그럼으로 당연히 전체적 그림에 대한 불확실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1순위는 내 생각을 보여주기 위한것이지만 2순위는 내 조각품이 여신상이 맞는지에 대한 비교검증을 위한것이에요.
    그래서 내가 원하는건 남의 여신상이면서 동시에 남의 눈으로 본 내 여신상과 그의 여신상의 차이입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차이점과 내가 볼때 그의 여신상과 내 여신상의 차이점.
    이 두가지 견해를 비교검증하면 내가 여신상을 조각한거지. 남신상을 조각한건지 알 수 있는것입니다.

    자문자답을 하기 시작하면 이런 특질을 가질 수 밖에 없어요.
    별로 어려운거 아닙니다. 다른분들도 자문자답을 몇년을 하다보면 금방 이렇게 됩니다.
    12 진실을 알던 모르던 달라지는건 없습니다. [새창] 2014-09-22 20:07:23 0 삭제
    숲속의당나귀/
    제가 불교도인데 어떻게 그 초월적 가치를 부정하겠습니까.
    그러나 초월적 가치가 있다는것도 망상에 불과합니다.

    깨달음이 무엇이냐고 조카가 물어봐요.
    그럼 제가 간단하게 답하죠.
    너가 너무나도 바라던것이 있다. 이것을 얻기 위해 숨도 조절하고 먹는것도 조절하며 자는것도 조절한다.
    그래서 얻기 위해 더욱 노력하다가 극한에 이르러서 그것에 대한 바람이 모두 벽에 막혀 끊어지는것이지.
    그럼에도 이젠 단 하나만 남는것이다.

    그 실현하고자할 방법이 단 하나만 남았을때에 그것조차 의심되서 더 찾는거야.
    그러다가 그 바람조차 딱하고 끊기는거지.
    그러면 그 순간에 인간이 보는것이 깨달음이다.

    내가 숫타니파타에서 아주 좋아는 구절이 있습니다.
    붓다란 내일을 바라지 않는자.
    믿는것이 없는자.
    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붓다를 설명하는 아주 간단한 설명이자. 가장 좋은 예시입니다.
    더 이상 내일을 바라지 않고 그 무엇도 믿지 않는자. 그것이 바로 붓다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모든것을 믿고 동시에 모든것을 바라는자라고 할 수 있겠죠.
    그 모든걸 뛰어넘은 있다 없다는 인식을 초월한곳에 있는것이 붓다입니다.
    어떻게 초월했냐고요.

    초월하지 못함으로 그는 초월했습니다.
    11 진실을 알던 모르던 달라지는건 없습니다. [새창] 2014-09-22 19:59:28 0 삭제
    lastlaugher/
    글을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주식이 30%오른다는걸 알게되면 그 주식을 사겠죠. 그 주식이 30% 내린다는걸 알면 그 주식을 팔겁니다.
    개인이 매수매도하는게 주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 어디에 써있습니까.
    그것이 개체의 생존에 유리하다면 그 미지를 알고자한다는 뜻이죠.
    그때에 미지가 공포로 작용한다는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답을 주자면 제가 조카에게 한말을 해드리죠.
    물고기를 너가 잡아먹는다고 생각해보자.
    그 물고기의 뼈는 너에게 필요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 뼈가 없으면 그 물고기가 헤엄쳐 다닐 수 있는가?
    그리고 물고기가 원래에 너에게 잡혀먹힐려고 태어났는가?

    원래 말하는 식이 그렇습니다.
    그건 물고기에게 뼈와 같은거에요.
    위에도 말했지만 내가 글을 쓰고 싶어서 쓰지. 남을 위해 쓰는게 아닙니다.
    물고기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살아가지 남의 밥상위에 한점 고기가 되기 위해서 살아가는게 아니듯 말입니다.

    예전에 일들이 생각나는군요.
    정말로 수 없는 토론장에서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거기에 가장 재미있는 부류가 나중에 격론을 가다가 결국 마지막엔 "너가 글을 쓴게 너의 욕망이잖아!"라고 말하는겁니다.
    그러면서 "너 때문에 이 모든일이 시작된거야. 이 소모적인 논쟁이 시작된거야" 이러는 사람이죠.

    내가 거기서 하는 말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내가 무슨 힘이 있냐고요.
    그대가 세상에 내 글이 없다고 여기면 내 글은 없는겁니다. 그대의 세계에서 나는 축출된거에요.
    내 글을 가치 없다고 생각하면 내 글은 가치가 없어지는겁니다.

    그렇게 "절대적 권한"은 글쓴이에게 있는게 아니라 독자에게 있는겁니다.

    난 도대체 그말을 수 없이 듣지만 당최 뭔말인지 아직도 10년동안이나 이해가 안됩니다.
    제가 쓴글이 무슨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금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혹은 세상에서 제일 강한 힘인 명예를 가지고 있나요.
    아무것도 없는거에요.

    이 글은 내가 창조했지만 이 글이 세상에 쥐뿔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단 뜻이죠.
    오직 그걸 결정하는건 글을 읽는 사람이에요.
    10 진실을 알던 모르던 달라지는건 없습니다. [새창] 2014-09-22 14:07:11 0 삭제
    솔의소리/
    인간은 존엄해질수도 있고 비참해질수도 있습니다.

    글이 나타내고자 하는 바는 양면이 동시에 존재하고 미지가 공포로 작용하기도 미지가 안식으로 작용하기도 한단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 미지를 떠난적이 있습니까.
    고대나 지금이나 우리의 존재가 무엇인지 알수나 있습니까.

    2시99분/
    제가 저번글에도 말했지만 전 세계관을 만든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언어란 한계성을 가지는겁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모든 이에겐 자신의 자아세계관이 곧 진리입니다.
    당연히 자신의 가정을 진리처럼 이야기하지. 그럼 거짓으로 이야기 한답니까.

    제 세계관을 보고 제 진리를 보면 "너의 세계관은 이거야? 나의 세계관은 이거야! 너의 진리는 이거네? 내 진리는 이거야!"라고 하면 됩니다.
    가령 명제란 같겠죠.
    저 위에 보이는 "닭장속에 지성을 가진 닭. 말을 못하고 탈출 가능성도 제로인 상황에 닭에 대하여"에 대해 자기 결론을 내놓으면 됩니다.

    독자를 대하는 태도라.
    뭘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글을 쓰는건 내 생각을 보여주는겁니다.
    그건 마치 조각가가 나무를 가지고 여신상을 조각한뒤에 보여주는것과 마찬가지에요.
    "봐 여신상이야"라고요.

    그럼 상대도 "이게 더 이쁘지. 이게 내 여신상이야"하면서 나오는겁니다.
    글세요.
    마치 독자를 대하는 태도라는것은 독자의 요구에 맞춰서 글을 쓰란 말 같군요.
    이렇게 말하는 어법조차 내 조각품에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조각을 한 이유는 내가 조각하고자한 욕구 때문이지. 독자에게 보여줄려는게 아니에요.
    그건 2순위죠. 완성이된 조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고 싶어하는 욕구에 불과합니다.
    그 2순위를 부정할순없겠죠.

    근데 독자에게 보여주기위해서 글을 쓴다?
    조각품을 보여주기 위해서 조각했다.
    그럼 그게 조각품이기나 한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사람은 자기욕구 때문에 살지. 남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서 사는게 아니에요.

    남이 조각품을 봐주길 바라는 바람에서 조각하는건 그저 사회적 명예욕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제1원인이 이거면 그건 조각품이 아니라 자기 사회적 욕구를 충족하고 싶어하는 수단에 불과해요.
    그게 조각품이 아니더라도 그것이 글이던 그림이던 소설이던 상관없이 어느것이던 사회적 욕구를 조각보다 더 충족시킬 수 있다면
    그날로 조각을 버리고 바로 글쟁이가 되던가. 그림쟁이가 될겁니다.

    그게 아무것도 아닌거에요.
    9 진실을 알던 모르던 달라지는건 없습니다. [새창] 2014-09-22 00:03:58 0 삭제
    글세요.

    밑에 누군가 사육당하는 가축이란 비유를 하더군요.
    간단하게 정말로 양계장에 닭이 지성을 가지고 자신이 얼마 뒤에 자신이 잡혀죽는지도 알게 됬다고 해보지요.
    그 닭에게 탈출할 방법이 제로라고 해봅시다.
    그럼 그 닭은 거의 미칠겁니다.

    많은 곳에서 그런 가정을 하죠.
    사람이 자신이 죽을날을 알게되면 어떻게 될까.
    대다수가 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미칠거라고 어디선가 이야기하죠. 자주 회자되는 사고실험일겁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거기서 버틸 수 있는 인간은 죽는날을 알게되기전부터 이미 죽음을 알게되고 마음깊이 받아들인자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만이 그저 다시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겠죠.

    대다수는 미지의 보호를 받으면서도 미지를 공포라고 이야기하던가. 미지를 싫어하죠.
    근데 감당할 수 있는자는 미지를 공포스러워 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으며 보호받는다 생각치도 않습니다.
    그런 사람만이 진실과 진리앞에서 제 정신을 유지하고 자기 얼굴 바로앞에 진실이 다가와도 놀라지 않습니다.
    그러한 경지에 들어간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나도 못하고 거의 힘든경지에요.
    그 경지는 뭐냐.
    이미 미지의 공포속에서 걸어나왔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겁니다.
    미지의 공포속에서 들어갔다 나오지 못하면 진리앞에서 견디지 못합니다.
    8 글세요. 인터넷에서 관심받고자 글을 쓰는걸가요. [새창] 2014-09-19 17:24:16 0 삭제
    lastlaugher/
    그건 상대가 한가지 극단만이 있다고 생각할때에 보여주는거죠.
    그에게 다른 극단을 보여줌으로서 양극단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겁니다.

    이건 상대가 그렇게 할때 내가 선택해서 보여주는것이고요.
    실제로 상대가 없을때에 나는 어떠한가.
    즉 상대의 독선을 깨트리기 위한것이 아닐 경우엔 고집스러운 내 만의 것이 있죠.

    그럼 조카가 묻습니다.
    "이런 이런 약점이 있는데?"라고요
    그럼 제가 바로 즉각적으로 환호성을 치면서 말하죠
    "맞아! 그게 약점이야. 원래부터 알고 있었지. 그럼에도 난 이걸 택했어. 이 강점이 더 좋으니까" 이렇게요.

    양 극단을 다 알게 되면 사람들은 허무주의자가 될거라고 생각하던가.
    혹은 양 극단을 때에 따라 자신에게 보여주는자를 신념이 없거나 고집이 없다고 생각하죠.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독선적인 면모를 깨려고 양자를 동시에 다 보여주는거구요.
    실제론 양 극단을 다 알게되면 자신의 천성과 심층의식과 표층의식이 상호간에 아주 복잡 유기적으로 작용하여
    오랜 숙고를 하게 됩니다.

    그러다 택해요. "난 이게 더 좋아"라구요.
    왜 좋냐고 말하냐면 양 극단은 원래 똑같은 무게를 가지고 있습니다.
    뭐가 더 거대하다던가 무겁다던가 옳다던가 이런게 없어요.

    한 극단이 반대편 극단에 약점을 물고 반대편 극단이 이 극단에 약점을 물어서 끝이 안납니다.
    이걸 선택이라고 전 부르지 않습니다.
    선택은 표층의식이 하는것이고 선택이라기 보다 그렇게 양자를 오래 이해하고 감정으로 느끼고 그러다 보면
    자신의 마음이 더 움직이는쪽이 생기고 나중에 가서 아예 자신의 마음이 그쪽에 스며듭니다.

    그러면 거의 거기서 떠나지 않습니다.
    내 조카마냥 혹은 다른 이들마냥 약점을 공략하면 오히려 기뻐하죠.
    그럼에도 나는 따른다. 다 안다. 다 알지만 난 이곳에 있다가 됩니다.

    모를때는 내 극단은 옳고 다른건 다 없다가 되고요
    조금 알때엔 내 극단이 옳고 저 극단은 그르다가 됩니다
    어느정도 알게 되면 내 극단에 강점이 많고 약점이 적으며 저 극단이 강점이 적고 약점이 많다고 되죠.
    거의 알게 되면 양 극단 모두가 공히 약점과 강점을 동시에 가진다가 되겠죠
    다 알게 되면 난 여기에 있다가 됩니다.
    7 글세요. 인터넷에서 관심받고자 글을 쓰는걸가요. [새창] 2014-09-19 10:01:15 1 삭제
    2시99분/
    천성이 먼저겠죠. 제 천성은 의심인데 의심이 나면 저는 가만히 생각합니다.
    저는 천성론자라 천성이 먼저라고 말합니다. 천성이 많은것을 좌우한다고 하지요.

    그럼 비슷한 천성이 비슷한 발현을 보이는가 하면 그건 많이 다릅니다.
    건물을 짓고 싶다는게 천성이라면 그 건물을 어떻게 지을까는 대다수가 심층의식이 좌우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건물에 세밀한 부분들은 또 표층의식이 좌우하겠죠.

    제가 저 사례를 꼽는건 제가 오직 "사무실"에서만 그런단겁니다.
    집에서나 다른곳에서 저렇게 안합니다.
    오히려 어머니가 꾸짖듯이 둔감한 수준으로 혹은 걱정없는 수준으로 신경을 안쓰죠.

    당연히 천성이 매우 우위에 있습니다.
    그러나 천성이란 마치 목 마른 아이가 물을 찾듯이 다니다 우물을 보고 뛰는것과 같고
    심층의식은 우물에서 어떻게 물을 퍼낼까라고 보면 됩니다.

    심층의식이 두레박으로 푸자. 펌프로 푸자. 우물에 내려갔다 오자. 이렇게 결정을 한다는것이죠.
    표층의식은 이것이 결정되고 난 뒤에 그 실현에서 관여하는겁니다.
    즉 심층의식이 두레박으로 푸자라고 하면 두레박을 찾고 줄을 찾고 그런 형태를 띤다는것이지요.
    근데 사람들은 이것조차 표층의식이 결정지었다고 생각합니다.

    천성론을 펼쳐서 천성이라고 말하면 어느때는 받아들이고 어느때는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많지만
    심층의식론을 펼쳐서 이렇게 말하면 "나는 바보가 아니다. 당연히 내가 가장 좋은걸 결정하지. 생각하는 내가!"라고 말합니다.
    아니란 거죠.
    아닙니다.

    심층의식이 큰 가지를 결정지으면 표층의식이 잎사귀를 만들고 열매를 맺을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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