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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차단 상태
    살아갈수있나님의
    개인페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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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갈수있나님의 댓글입니다.
    번호 제목 댓글날짜 추천/비공감 삭제
    30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4-09-17 01:33:42 0 삭제
    이 문제를 공론화시킨 사람으로서 반성의 의미와 해명의 의미가 담긴 말을 적어야 하는데 백수의 핑계일지도 모르겠으나, 입장 정리해서 내일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짧게 결론만 글을 적어보면 저도 오유 짧게나마 글 쓰면서 사람들과 논쟁하고 싸워보고 오늘 오전에는 숲속의당나귀님에게 안좋은 말도 했지만
    이 정도의 깨끗하고 합리적인 공론의 장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저도 막나가는거겠죠.
    예전 PC통신 시절 진짜 시덥지 않은 것 가지고 싸우면서 이야기하고 화해했던 그 풋풋함을 여기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네요.
    바쁘셔서 글을 못 적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 사건을 통해 잠시라도 떠나신다면 안타까울 것 같습니다.
    서로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공감가는 부분은 같이 공감하고, 21세기에 다시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좋았고, 제 생각과 글쓴이님의 생각이 비슷하다면 같이 있으면서 좀더 티격태격하면서 씨익 하고 웃었으면 좋겠네요.
    내일 다시 평소와 같이 장문의 글을 적어서 입장정리를 하겠지만 결론은 바쁘시더라도 빨리 돌아오셨으면 좋겠고, 이 사건 때문이라면 같이 활동하면서 인연 또는 악연을 지속했으면 좋겠습니다. 내일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29 국가란 무엇인가. 돈이란 무엇인가. [새창] 2014-09-17 01:16:43 0 삭제
    글쓴이가 글을 쓰는 방식을 보니 유추를 잘 쓰는 것 같군요.
    글 사이사이 거대관념이란 개념이 의인화, 생물체화 되어서 작동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네요.
    리처드 도킨스의 밈이론도 문화의 유전자성? 문화를 살아있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생명체 개체를 기준으로 보던 기존 생물학을 유전자 기준으로 보면서 나타난 발상의 전환이었죠.

    이전에 적은 처세술 글도 대충 훑어봤는데
    글쓴이 글 쓰는 방식을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안좋게 보는 사람은 뭐 이런 글쓰기가 다 있냐 할 수 있는 방식, 좋게 보는 사람들은 글쓴이의 솜씨를 속칭 '천재들이 글을 쓰는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제가 대충 들은 바를 적어보면 보통 글 흐름이 A는 B, B는 C... 이런 방향으로 나간다면 천재들이 글 쓰는 방식은 A는 Z, Q는 V, X에서 C를 도출해내는 방법 등등 이런 식으로 간다고 할 수 있죠.
    어떤 의미에서 천재들의 글쓰기는 불편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아무도 하지 못한 고정관념을 깬 시도 그 자체가 대단한거죠.

    천재들의 글쓰기로 유명한 사람은 철학계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천재성을 러셀이 발견해서 철학계로 끌고 온 것이겠죠. 그러나 그의 저서는 정말 읽기 난해하죠. 심지어는 자의식 과잉인 비트겐슈타인이 자신의 연구성과를 남들에게 안 알려주기 위해 일부러 난해하게 적었다는 평가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기존 철학자들의 연구성과를 공부하면서 자신의 후기 철학이 바뀌었다는 말도 있죠.

    제 인생이야기를 또 하면 저를 만나는 사람들이 저를 평가하는 말이 어딜 갔다놔도 입만 살아서 먹고 살 사람이라고 합니다. 어떤 주제의 이야기가 나와도 몇분간 이야기하다보면 제가 아는 주제로 말을 바꿔서 이야기해버린다는거죠. 제가 많이 안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제 주제로 끌어가버리고 사람들도 따라오는거라고 합니다. 속칭 사기, 기만술이죠. 제가 많은 것을 알고 있진 않지만 이 글을 보충할 수 있는 내용은 지난번 글에 잠시 언급했던, 동시대인과 패러다임의 전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글쓴이가 설명한 방법이 막스 플랑크가 설명했다는 이론이 만들어지고 패러다임으로 자리잡는 과정으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설명을 다른 언어로 하신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런 글을 볼 때 마다 느끼는 생각은 세상은 넓고 대단한 사람은 많다는 것입니다. 글쓴이가 뭘 하시는 분인지는 모르겠으나, 뭐 보나마나 저보다는 더 잘나가시는 분이란 것은 맞겠죠. 아무튼 선천적으로 뛰어난 기법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이렇게 계속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정말 글쓴이가 뭘 하시는 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업종이 아닌 다른 업종에서 일하신다면 정말 안타깝기도 합니다.
    이런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본 자료의 습득이죠. 자료를 어떻게 습득하는 방법만 아신다면 실력 확 늘어서 학계에 이름 남기실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트겐슈타인도 이전 철학에 대해 잘 몰랐을 때 가장 천재성을 발휘했고, 이전 철학을 공부하자 천재성이 죽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천재성이 죽은 것보다 겸손이 생긴 것일수도 있죠.

    이 글만 봐서는 글쓴이가 무엇을 하시는 분인지 모르겠으나 선천적으로 특출난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지 고정관념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으나, 고정관념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스승님은 가끔씩 제 가설을 들으시고는 웃으시면서, 그러면 자료를 찾아서 읽도록 하자고 말씀하십니다.
    가설에 대한 근거를 찾아야 하는거죠. 그러다보면 제 가설 중 쓸만한 부분도 나오고 쓰레기 같은 부분도 나와서 제 자신이 어이없어 하기도 합니다.
    자료를 찾는 능력은 어차피 후천적 습득을 통해서만 가능한 이야기니 중요한 것은 글쓴이가 가지고 있는 선천적 능력 같습니다.

    천재인 듯한 분의 글을 봐서 시기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봤습니다.
    28 자유란 무엇인가 [새창] 2014-09-16 17:40:49 0 삭제
    별다른 자료없이 혼자의 생각으로 여기까지 온 것입니까?
    내용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대단하시네요.

    물리학자로 알려지고 고양이 나부랭이로 잘 알려진 슈뢰딩거도 고양이 이론을 통해서 양자역학을 설명했지만,
    제가 잘 못 이해할 수 있는데 설명을 읽으면 읽을수록 철학에 대한 화두를 물리학으로 풀어쓴 것 같더군요.
    검색해보니 슈뢰딩거 자신이 철학서적을 썼다고도 하는데 올해 안에는 읽고 싶습니다. 즉, 슈뢰딩거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소리죠.
    여기에 가끔씩 나오는 비트겐슈타인도 공학도였다고 하죠. 그러다보니 비트겐슈타인이 처음으로 적은 글이 기존 주류철학계에 안주하고 있는 그 당시는 유명했겠으나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철학자의 이론을 부셔버린거라고 합니다. 즉,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누군가 100쪽 안팍으로 정리한 기본서 하나 달랑 읽었단 소리죠.

    사실 제가 남의 글 항상 까내리는 사람인데 아래 글에 제 능력이 다 소진된 것 같아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는 비판보다도 옳든 틀리든 별다른 자료 인용없이 이런 과정으로 결론을 내는게 신기해보이기까지 합니다.
    뭐 자료란 것이 꼭 인용각주를 달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 삶을 통해 배운 것이 자연스럽게 글에 녹아들어 갔을수도 있죠. 그러나 큰 인용없이 한 호흡에 이런 글을 쓴다는게 대단해서 똑같은 말 반복해서 찬사를 보냅니다.

    찬사만 한다는 것은 제 성격도 아니고 뭔가 딴지를 걸기 위해서 이렇게 떡밥을 주욱 깔아놓은거겠죠.
    숲속의당나귀님은 지겨운 글이라고 평가했으나, 전 저보다 잘 쓴 글 같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사실 제가 글 요약을 못하므로 저에 대한 비교 자체가 모욕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능성도 보이는 글 같고요. 가능성 운운하니 제가 뭐라도 되어서 평가하냐고 어이없으실 수 있지만, 뭐 길가던 사람도 그런 말 할 수 있는거 아닌가요. 글의 내면에 이질적인 느낌이 들어 뭔가 있어보이는 착각에 제가 빠졌을 수 있죠.
    글쓴이의 답글을 보다보니 생명공학 전공하셨다고 하고 생명공학 관점에서 글을 쓰시더군요.
    원 글에서는 생명공학적 느낌은 일부러 쏙 빼려고 하신 것 같고요.
    전 단지 안경돼지백수, 즉 사회의 실패자에 불과하지만, 숲속의당나귀님께서 제 글에서 말씀하신 독자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면, 정작 그분의 요청을 제가 거절했죠.^^;
    생명공학적 관점과 이 철학, 혹은 정치철학적 관점의 혼합?? 교류?? 통섭이라고 부르는 것 같던데 이런 방식의 글을 쓰진 않더라도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제안해봅니다. 굳이 제 말을 들을 필요는 없고, 지나가는 사람 이야기라고 흘려들으셔도 상관없는데, 가능성이 있어보여 그냥 한말씀 드립니다.

    짧은 시간에 생각나는 것은 생명에 대한 철학적 관점... 이런... 또 푸코하고 아감벤 이론이군요...
    생명의 정치화, 인권과 생명의 관계 등등 요즘 많은 철학자들이 심도깊게 논의하는 내용인데요.
    이들의 논의는 철학 또는 정치학으로 보는 생명공학이잖아요.
    그런데 글쓴이는 이것을 생명공학으로 보는 철학으로 접근할 수 있죠.
    똑같은 말인 것 같은데 엄청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모르지만 글쓴이 전공에서도 이런 세부전공이 있지 않나요?

    아무튼 글쓴이 글에서 이상한 향기가 나서 그냥 지껄여봤습니다.
    자주 오셔서 좋은 글 남겨주시면 재미있게 읽겠습니다.
    27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4-09-16 12:45:43 1 삭제
    캬캬 저를 비난하신 e^iπ=-1님이시군요.

    e^iπ=-1님과 거의 유사한 주장한 학자도 몇명 있는걸로 아는데 전 한명 밖에 모르네요.
    줄리언 제인스의 "의식의 기원"인데요.
    미국에서 공부하시는 것 같은데 원제는 "The Origin of Consciousness in the Breakdown of the Bicameral Mind"에요.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서도 잠시 나와서 흥미로운 이론이라는 평가를 받았죠. 긍정적 의미의 평가는 아니었어요.
    이 책의 내용은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하는 깜짝 놀랄 이야기에요. 제 수준이 낮아 저만 모를 수도 있지만 아마 보시면 도발적인 주장이라 깜짝 놀랄거에요. 전 이 분야는 처음 접하는 것이어서 이 이론이 통용되는 이론인지, 이 사람 개인의 이론인지 잘 몰라서 놀랐거든요. 지금도 이 책 말고는 이 분야의 다른 책을 읽진 않았지만 말이죠.
    그래서 깜짝 놀라시라고 내용 요약 안하겠습니다.

    이 사람도 결론 부분에 과학의 종교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어요. 흥미로운 이야기인 것은 사실이에요.
    추천합니다.
    26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4-09-16 12:37:12 0 삭제
    숲속의당나귀님 예전 글을 이제야 읽어보니 어느정도 학식이 되시는 분 같은데 이런 글을 적으셨군요.
    그래도 전 "안 팔아요!" 로 응수하겠습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제가 책을 발행한다면 숲속의당나귀님 의견에 대해 고민해보겠습니다.
    초심자를 대상으로 하는 책은 강의하는 것처럼 100% 구어체로 적을까 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책을 발행한다면 경제적 관점의 세상 속에 들어간단 소리니 숲속의당나귀님 의견도 일리가 있죠.
    소비자의 요청사항이니깐요.

    숲속의당나귀님이 보시기에 독자를 신경쓰지 않은 제 글이 단지 공공장소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사람과 유사해보이겠지만,
    지금 제 수준으로는 아직 독자의 관심과 필자의 의도를 다 잡는 글까진 못 미쳤나 보네요.
    강의하면서 좀 더 갈고 닦아 보겠습니다.

    장래의 소비자의 의견 감사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안 팝니다."
    25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4-09-16 12:10:08 0 삭제
    늦게 잤는데 일어나긴 했네요.

    일단 숲속의당나귀님의 요청에는 응하지 않겠습니다. 그 이유로는

    1. 글이란 것은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소통방식이다. 이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읽는 사람이 불편하다면 쓰는 사람에게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읽는 사람의 요청에 쓰는 사람이 부합할 수 없는 사정일 때, 무리하게 읽는 사람의 요청을 따를 필요는 없다. 그 자체로 쓰는 사람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능력이나 수준이 이것 밖에 안되고, 이 상태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하면... 미래에는 좀 더 능력이 향상되어서 더 짧고 간결하게 쓸 수 있겠지만 지금 당장 미래의 능력을 빌려올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보면, 쓰는 사람의 능력이 읽는 사람의 요청과 접점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읽는 사람에게 좀 더 다가와줄 것을 쓰는 사람이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위와 똑같은 논리로 읽는 사람이 쓰는 사람의 요청에 부합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다면, 이건 총체적 난국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된다.

    2. 내 과오는 인정한다. 2~3년 안에 강의를 할 수 있어서 내 머릿속에 있는 지식 전부를 구어체로 바꾸고 그에 따라 강의를 하는 연습을 계속해왔다.
    그래서 아주 긴 내 글을 그나마 읽은 소수의 사람이 있다면, 문어체의 글을 쓰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99.9% 구어체로 글을 쓴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글로 보면 양은 많지만 이 글의 양을 천천히 보다보면, 30분에서 1시간 정도 되는 강의를 할 수 있는 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미셀 푸코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 녹음한 것을 사람들이 구어체 그대로 책으로 만든 것과 같은 작업을 나 혼자 하고 있었던 거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나 자신이 그 강의안을 읽고 마음 속 깊이 느낀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동어반복적 구절도 많고, 짧은 한자어로 쓸 것을 길게 풀어쓴 것도 많다.
    안타깝게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말하면 개선하고 싶지는 않다. 공부하면서 가장 안타깝게 여겼던 부분이 책이 너무 문어체로 적혀있어 한번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나마 두세번 곱씹어보면 이해할 수 있는데 한번에 와닿지 않다보니 내 지식의 천박함을 1초에 몇번씩 마주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안좋았다. 그래서 난 어려운 내용이면 어쩔 수 없지만 남들의 설명보다는 이해하기 쉽게 해보자 다짐하고 여러가지 방법을 찾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이 방법이다.

    3.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은 지식구조의 대격변을 일으켜버렸다. 책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시기에 두뇌의 역할은 일종의 색인, 인덱스, 책 뒤에 단어 정리가 되어있어 그 단어를 찾고 싶을 때는 뒤쪽을 펴서 페이지를 찾아가면 볼 수 있는 것, 다시 말하면 색인 역할을 한다. 색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 머릿 속에는 어떤 이론과 이론에 대한 간단한 설명, 그리고 그 내용이 있는 대략적인 위치를 기억한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드나 하나의 책을 읽고 그 책의 주요논점을 간단한 색인화해서 머릿 속에 정리한다는 것은 위대한 능력이다. 책 표지만 봐도 대략적인 내용이 뭔지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이 작업이 반복되어서 쌓이다보면, 머지않아 학계 어떤 한 부분의 거장이 될 수 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알고 구체적인 내용을 1분도 안되어서 찾을 수 있는 능력. 석박사 학위 나부랭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스페셜리스트 또는 제너럴리스트가 되는 작업의 기본은 바로 이 작업이라고 나는 추천한다.
    그러나 컴퓨터의 발달은 이런 두뇌의 역할이 필요없어지는 결과를 야기했다. 궁금하면 즉시 단어만 입력하면 찾을 수 있다. 궁금증이 해소되면 기억할 필요없이 지식은 사라진다. 또 다시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즉, 두뇌의 기억기능을 컴퓨터와 인터넷이 대신하는 상황이 되었다. 인간은 기억을 할 필요가 없다. 일종의 진화, 컴퓨터와 인간이 한 몸이 되는 진화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변화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인터넷 댓글에는 "글 길어서 패스~", "3줄 요약 좀." 하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 대해서는 먼저 인터넷의 발달로 기억을 할 필요가 없는 진화한 새로운 시대의 인간이 구질구질한 글을 쓰는 진화하지 못한 구시대의 인간을 조롱하는 의미로 사용할 수 있다. 그들이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점을 일종의 우월감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로는 이런 진화의 결과로 정말 긴 글은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증거일 수 있다. 인간의 활동 거의 모든 것이 자극과 그에 대한 반응, 이 작용이 반복되는 피드백 작용을 통한 능력의 향상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미 긴 글을 읽고 고민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작용을 인터넷의 발달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월감이고 뭐고 이 능력 자체가 없는 것이다.

    4. 분명 인터넷의 발달은 긍정적인 기능을 낳은 것은 사실이다. 10대들의 활발한 정치참여가 이 인터넷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발달해왔다는 평가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3에서 적은 나의 논리는 단지 나이먹은 사람이 젊은 사람을 고정관념에 쌓여 안좋게 보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지혜로 승화시키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다면, 이 활발한 정치참여가 어떻게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한 설명은 난 아직 듣지 못했다. 자칭 보수든, 자칭 진보든 단지 활발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장기판에 졸 정도로 이용해서 어떤 두뇌를 쓰는 사람이 자기 정치싸움에 쓰고 버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우리 선조들이 신분의 모순점을 '탈춤' 등의 유희를 통해 그냥 툴툴 털어내듯이, 인터넷도 이 사회의 모순점을 휘발성있게 털어버리고 그 모순에 다시 적응해가는 사람으로 만드는 작업을 행할 수 있다. 예전과 달리 지식과 기술은 발전해왔지만 우리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학계에서 종말론 비슷한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고 그들은 항상 학계 다수에게 비판받아왔지만, 그 명맥이 이어져오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상황 때문일 것이다.

    5. 불행히도 자본주의의 발달도 여기에 기여했다. 비경제적인 것에도 경제적 척도를 통해 적용을 하는 신자유주의의 이론은 세상 모든 것을 경제적 척도로 환산하고, 경제논리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글을 쓰는 사람은 판매자, 글을 읽는 사람은 소비자, 손님은 왕이다란 논리, 그러니 당당하게 3줄 요약을 요구한다.
    물론 글을 쓰는 사람은 한명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읽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마디로 아쉬운 존재다. 그러나 이 논리는 "안 팔아요!"라고 하는 판매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호모 에코노미쿠스'에게 안판다는 것은 경제적 합리성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내가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글을 요약하고 정리하는 것은 내 호의란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 읽기 싫으면 안 읽으면 된다. 마우스 휠 넘기는 고통을 나에게 줬다고 따질 수 있다. 이 논리는 옆에 있는 가족들에게 "내 공기를 왜 네가 빼앗아가느냐!"라고 하면서 쓰길 바란다. '호의가 반복되면 권리인 줄 안다.' 이 말은 여기서도 쓸 수 있을 것이다.

    6. 내 글을 훑어보고 자본주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했는데, 불행히도 내 글 처음부터 자본주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건 정말 큰일이다.

    이런 이유로 숲속의당나귀님 요청은 거절하겠습니다.

    제 글이 사회통념을 벗어나서 긴 것은 사실이지만 뭐 안 읽으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제가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잖아요.
    소수의 사람이 제 글에 공감해주고, 또 소수의 사람이 제 글을 그대로 봐주면서 반론을 제기해주시면 그것으로 만족해요.

    별로 제 이야기 궁금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내용 알고 싶으시면 앞에 적었던 답글 아랫부분에 제 주장의 요약을 두가지 적었네요. 그것도 안 읽으셨나 보군요.
    24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4-09-16 03:13:22 0 삭제
    헐... 글 쓰고 나니 글 쓰는 중간에 lastlaugher님이 글 올리셨는데
    제가 쓴 글이랑 논거가 같군요. 한발 늦었군요.^^;
    23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4-09-16 03:12:08 1 삭제
    리플이 정말 많이 달린 글이네요. 그런데 글에 대한 답글보다 답글에 대한 반박, 재반박, 재재반박 이런 구조로 이루어진 것 같은 느낌이네요.

    이번에는 정말 짧게 써볼께요. 제가 설명한다기 보다 글쓴이에게 화두를 던지는 느낌으로... 평소의 글과는 달리 엄청 읽기 불편하게 적어볼께요.
    예전에 적은 글들은 쉽게 적는다고 수다쟁이가 쉴새없이 떠드는 글이라 오히려 길어서 읽기 불편했지만 이젠 정말 설명 잘 안하고 질문 몇개 툭툭 던지듯이 하면 글이 짧아지겠죠.

    글쓴이께서 자본주의가 자유와 평등을 가져왔다고 하시고 세계평화를 도모한다는 주장을 인정하면 노벨평화상 감이라고 놀라워하셨는데
    이거 자칭 우파의 기본 원리입니다. 이게 새로운 논리가 아니라 경제학계의 오스트리아 학파나 시카고 학파에서 계속 주장하는 이야기에요.
    대표적으로 우리가 잘 아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과 밀턴 프리드먼의 '자본주의와 자유'에 지겹게도 적혀있는 이야기에요.
    즉, 신자유주의 이론의 기본 바탕이에요.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이 2차 세계대전 끝나기 전에 초판이 나왔을꺼에요.
    대처 전 영국총리가 신자유주의 이론을 밀어붙이는 말을 하면서 사람들 앞에 들고 나왔다는 책이 바로 이 '노예의 길'이라고 하죠.
    제가 여기 활동한 지는 얼마 안되었지만 제가 적은 글에 약간씩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단히 소개했죠.

    비판적 글읽기를 안하면 이 사람들 말이 다 맞아보여요. 그런데 약간 책의 내용과 거리를 둬서 읽어보면 세상 최고의 궤변을 맛보게 되죠.
    그래서 지난번 글에 언급했는데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프리드먼의 '자본주의와 자유'를 번역한 사람이 서울대 법대 졸업한 판사와 판사출신 변호사고 번역자 서문인지 후기인지 극찬을 하면서 이런 책이 왜 아직까지 번역이 안되었는지 한탄하고 있는데 전 이 정도 식견밖에 없는 사람들이 법조계에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한탄했었죠. 이런 말하면 웃긴데 하이에크는 점잖은 척 하려는게 글에 보이는 것 같은데 프리드먼은 정말 노골적이어서 그 책 1장하고 2장 읽고 비록 연구를 위해 필요하다곤 하나 내 돈내고 이딴 책을 사서 읽고 있는 제 자신이 역겨워 헛구역질이 나와서 화장실로 뛰어간 적이 있었네요.
    그리고 글쓴이는 노벨상을 줘야된다고 극찬하신 것 같은데, 이 사람들 비록 경제학 이론이긴 하지만 이런 생각을 바탕에 깐 경제학 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 다 받았습니다. 그래서 전 안경돼지백수이긴 하나 노벨상에 대해 공신력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그 주요 이유가 바로 이 사실이죠.

    우리가 신자유주의 이론이나 자본주의 이론하면 생각나는 것, 뭐 학술적이고 뭐고 다 떠나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게 '낙수효과'잖아요.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은 과감하게도 경제의 '낙수효과'와 동일한 논리로 자유의 '낙수효과'를 주장하고 있어요.
    이거 학계에 발표된 이야기는 아닐꺼에요. 제가 어떻게는 학계에 기록으로 남겨볼까 했는데 지금 하고 있는 주제에서 약간 벗어나서 못했죠. 그런데 이런 게시판에 글쓰면 이미 다 공개되어서 제가 나중에 이런 내용의 글을 쓰더라도 표절의혹 받겠죠. 제 본명으로 쓴 글이 오유 안경돼지백수 나부랭이가 쓴 글을 표절했다는 식이겠죠. 지난번에 메슬로우의 욕구이론의 역해석으로 통치이론의 민낯을 까발릴 수 있다고 적었는데 그것도 학계에 발표된 것이 아닐껀데... 어느 누구신가 쓰고 계시더군요. 제가 뛰어난 사람이라서 학계가 논의도 하지 않은 것을 발표하는 것은 아니에요. 이런 식의 일종의 근거가 빈약한 밑도 끝도 없는 주장을 하면 학계에서 다 공격 들어와요. 여기 게시판의 글보다는 점잖겠지만 그래도 공식기록이 남는 것으로 융단폭격을 당해버리니 겁먹을 수 밖에 없죠. 몇달 전에 자료 찾다가 들뢰즈의 이론에 대해 철학박사 논문을 쓴 분이 자기 박사논문을 요약해서 학술지에 실은 것을 봤어요. 정확하게는 생각이 안나는데 그 글 주제 자체가 '들뢰즈의 이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대는 요즘 잘나가시는 슬라보예 지젝님'이었어요. 지젝의 학문하는 태도가 영 글러먹어서 쓰레기 글을 양산한다. 그러니 나처럼 정확하게 이론을 공부하고 글을 써야한다. 지젝보고 좋다고 떠드는 철학 쥐뿔도 모르는 놈들아. 모두 X잡고 반성해라. 이런 내용이었어요. 이걸 점잖게 썼지만 생각보다 노골적이어서 읽는 제가 식은 땀이 다 나더군요. 그러다보니 저도 여기에나 그런 이론을 쓰고 있는거겠죠. 즉 학계에 몸 담거나 몸 담겠다 하는 사람들 머릿속에는 어마어마한 이론이 있어요. 단지 근거가 좀 빈약해서 남들이 보기에 시시한 사람들처럼 보이는거죠. 뭐 일부는 시시한 사람인데 있어보일려고 연기하기도 하지만요.

    다시 자유의 '낙수효과'로 돌아가서, 하이에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의 상대적 자유의 차이, 즉 상대적 불평등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쿨하기 인정해요.
    그런데 반박근거를 든 것이 다른 체제 속에서는 이 정도 자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자본주의니깐 이 정도나마 누릴 수 있다고 하죠.(노예의 길 162~163쪽.)
    즉, 이 말은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사회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욕할 때 주로 쓰는 "너희들이 좋아하는 북한에 가면 이미 너희들 다 죽었어!"의 고상한 표현이죠. 실제로 책 읽으실때 이런 느낌이 안드신다고 하면 오히려 문제일 수 있어요.
    제가 토할뻔한, 제가 소시오패스로 생각하는 프리드먼은 한술 더 뜨죠. 지난번 적은 글에서는 메카시즘으로 해고된 공무원은 공산주의였으면 굶어죽었을껀데 자본주의 사회여서 장사를 해서라도 먹고산다고 자본주의 만세를 했다는 글 적었습니다.(자본주의와 자유 54쪽.) 그 다음 페이지에 프리드먼님께서 위대하신 말씀을 하십니다. "흑인, 유대인, 외국 출신자 등 소수 집단이 이런 혜택 가장 많이 누려놓고서는 너희들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운동을 해!!!! 배은망덕한 놈들!!!!"(앞의 책, 55쪽.) 프리드먼의 이 책이 1962년에 나왔는데 그 당시 활발했던 흑인 인권운동은 프리드먼의 눈에는 '배부른 빨갱이 새끼'의 짓으로 보였단거죠. 지금 제가 인용한 말들은 직접 이들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 아니에요. 이 말의 속뜻을 제가 구어체로 바꿔본거죠. 그런데 생각보다 프리드먼은 노골적이라 문어체 글로 어떻게 이런 내용을 대놓고 적을 수 있었는지 놀랍긴 해요.

    글쓴이가 이 답글을 안 읽고 다른 분들만 읽으실 것 같다는 느낌은 들지만 글쓴이가 제 글을 읽는다면 황당하실꺼에요. 글쓴이 본인은 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전 자유에 대한 이야기로 글쓴이를 비판하고 있거든요. 완벽한 논점이탈로 보일꺼에요.

    그런데 제가 한 이야기가 글쓴이의 글과 영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에요. 신자유주의 이론의 주장은 경쟁체제로 성장하면 자유가 증진되고, 자유의 낙수효과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거든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서는 꿈도 못꿀 것을 겪는다는거죠. 그들이 평등을 주장하는 이야기에요. 이 자유의 낙수효과로 예전에는 자유를 못 누렸던 분야에 대해서도 자유를 누리면서 평등하게 된다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죠.
    이 말이 안 와닿으면, 돈이 없으면 스마트폰 일부 사람만 가지는데 경쟁체제로 성장해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면 다 스마트폰 가지겠죠. 물론 부자는 더 좋은 스마트폰 쓰겠지만, 자유가 증진되고 낙수효과를 통해 모두가 스마트폰을 가지는 것으로는 평등한거죠. 그들은 이런 식으로 설명해요.

    이제 글쓴이 글과 연관있는 내용 써볼께요. 글쓴이는 자본주의가 평등을 가져왔다고 했죠. 맞아요.
    이 자본주의,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 이론을 경제학이 아닌 통치학으로 바라본 사람이 제가 맨날 인용하는 미셀 푸코죠.
    맨날 똑같은 이야기 반복해서 눈에 눈꼽이 껴 눈이 안보이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푸코는 이 이론을 통치학으로 바라보는 과정을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를 통해 3년간 강의해요. 그래봤자 1주일 2시간 13주 과정이 1년이에요. 그러면 2*13*3 78시간이군요. 2년차에 하루 강의 빼먹었으니깐 76시간, 그리고 첫해 강의는 마지막 2시간만 이 신자유주의 비판의 서문을 당겼으니 24시간 빼면 52시간 강의했군요. 짧네요.
    제 글쓰는 것도 푸코를 따라가는지 신자유주의 비판한다고 두근거렸던 사람에게 2년을 그냥 날려버려요. 그런데 뭐 더 중요한거 설명해서 그냥 놔두죠.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논하면서 신자유주의 이론이 인간을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바라보는 것을 찾았어요. 이거 예전 글에 몇번은 반복해서 적었는데... 또 적으면 지겨울껀데... 어차피 제 글에 다들 별다른 관심없으니 또 적어볼께요. 적는 저는 지겹지만, 보는 분들은 이거 길어서 잘 안읽잖아요.
    어차피 처음에 적었던 짧게 적는다는 약속도 어긴 마당에 그냥 가봅시다.

    인간을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본다는 것, 모든 인간을 경제적 합리성을 가진 사람으로 보고 대우한다는 거에요. 뭔가 평등해보이지 않나요?
    바보도 있고 멍청이도 있고, 뛰어난 사람도 있고,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는데 다 똑같이 본다는거에요.
    그런데 푸코는 이것을 위와 같은 의미로 바라보는 것에 대해 경계해요. 똑같은 말 계속 반복하면서, 지겹게도 반복하면서 이것은 단지 이 기준에 맞춰서 사람을 보겠다는 기준점 제시에 불과하다는거죠.(생명관리정치의 탄생 352~353쪽.)
    일단 푸코 설명이 아닌 제 설명으로 가볼께요. 예전에 성선설 성악설 글을 누가 적었을 때 제가 답글로 인터넷 유머 "남자든 여자든 그게 뭐가 중요해요? 맛만 좋으면 되지."라고 하면서 선하든 악하든 상관없이 부려먹는 것이 중요한 이론이라고 어떻게 잘 부려먹기 위해서 선한지 악한지 논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이것도 똑같아요.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이론은 인간을 이 기준에 놓고 보겠다. 이 기준에 놓고 부려먹어 보겠다는 선언인거죠.
    기준에 미달이 되면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교육을 하기도 하고 말 안들으면 감옥보내겠다고 협박하기도 하죠.
    영 말을 안듣는 녀석이 나오면 그냥 오랫동안 감옥에 보내버려요. 그리고 말은 하죠. "우린 옛날처럼 널 찢어죽이진 않잖아! 살려는 주고 밥도 주잖아!"
    모든 인간은 '호모 에코노미쿠스'라고 했는데 '호모 에코노미쿠스'이지 못한 사람은 항상 나오죠. 그게 현실이니깐요.
    신자유주의 이론은 이 현실을 외면해요. 그리고 동맹관계에 있던 다른 이론의 학자들이 여기에 대해 설명을 하죠. 신자유주의는 단지 어시스트만 하고 다른 이론이 골을 넣는 완벽한 공조체계죠.

    글쓴이의 원글만 보면 큰 문제가 없을 수 있어요. 그러나 글쓴이의 답글에 글쓴이의 심리가 다 나와버렸죠.
    '자본가 입장'이 바로 그거죠. 네, 맞아요. 자본가 입장에서는 남녀가 중요한게 아니에요. 부려먹을 수 있으면 그만이죠.
    남녀보다 그 일에 적합하냐가 더 중요하겠죠. 그 적합성의 논의에는 업무의 종류나 강도 등 기본 논의와 싸게 부려먹을 수 있느냐의 우리 모두를 눈물짓게 하는 내용이 있겠죠.
    남자에게 적합한 일이나 남자 인력이 부족하고 여자 인력이 많으면 싸게 여자 인력 쓰겠죠.
    그런데 그 평등 속에 글쓴이가 말한 '자본가'는 들어가나요?
    글쓴이는 평등을 말했지만, 글쓴이의 심리, 심층심리 속에는 신자유주의 이론가가 주장했던 자유론이 그대로 들어가있어요. 그래서 제가 먼저 신자유주의 이론이 보는 자유에 대해서 길게 적은거죠. 글쓴이는 평등을 이야기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느껴졌거든요.
    위에 답글 적으신 분들 다 맞는 말 하신 것 맞아요.
    솔직히 제 생각을 말하면 전부 다 맞는 이야기를 하시는데 세부적인 조정에서 약간 오류가 나서 그것 때문에 이렇게 답글이 많은 글이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다른 분들의 답글보다 글쓴이의 원글과 글쓴이가 쓴 답글이 문제에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이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어요.
    글쓴이가 말한 것과 거의 흡사한 이론이 이것도 제가 잘 인용하는 사람인데 조르조 아감벤이에요.
    글쓴이는 딱 조르조 아감벤이 말한 이론과 거의 흡사한 방식으로 이야기하죠.
    "우리 모두는 '호모 사케르'로서 평등하다."
    이 말 아감벤이 직접 한 말이 아니라 제가 요약한 말입니다. 함부로 인용하지 마세요. 근데 이 말 의외로 관용어구라 제가 모르는 사이 다른 사람들이 블로그 같은데 써먹었을꺼에요.
    '호모 사케르'가 안 와닿으면 간단하게 '레 미제라블' 생각하면 되요. 소설을 생각해도 좋고 단어만 생각해도 좋죠. 우리는 비참한 인간으로서 평등하죠.

    자본주의가 평등에 기여한 것이 맞죠. 지금 '기여'란 말을 중립적인 뜻 그 자체로 보느냐, 긍정적인 의미를 가져야 되느냐 이 논의가 여기 답글이 길어진 이유 중 하나잖아요.
    그런데 기여란 말을 중립적으로 보았을 때, 중립적으로 보아야겠지만, 정말 슬픈 일이 발생하죠.
    강간범죄는 성윤리에 기여를 한다는 말도 인정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거든요.
    방탕한 성생활을 했던 여자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는 아무 남자랑 막 자요. 그러다가 방탕한 여자란 사실을 아는 남자들이 어차피 더럽고 쉬운 여자라고 생각하고 집단 강간을 해버려요.
    그 후 여자는 정신이 무너져버리죠.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자신의 삶을 돌이켜봤을 때 자신이 소중한 성을 너무 막 썼다고 생각해서 후회하죠.
    네, 맞아요. 완전 막장드라마보다 더 개연성없는 이야기에요.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만든 별 설득력 없는 이야기죠.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만 보면 강간이 없었다고 하면 이 여자는 자신의 성관념에 대해 별 생각을 안했겠죠.
    강간이 있은 덕분에 성관념에 대해 돌이켜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거죠.
    제가 억지 이야기를 했지만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우리 인터넷에 많이 돌아다니잖아요.
    '이명박 전 대통령 요정설', '박근혜 대통령 요정설'도 이와 유사하지 않나요? 이 분들이 우리의 자유와 평등을 마구 빼앗아줬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와 평등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이야기 아닌가요?
    이와 유사한 논리잖아요.
    부려먹기 위해서 '평등'하게 대했죠. 자원을 다 빼앗기 위해서 일본이 우리를 근대화시켜줬죠. 중립적인 의미인 기여를 사용하면 일본이 우리 근대화에 기여한 것이 맞죠. 그런데 정말 슬퍼지죠.
    이 이야기는 위에 답글 다신 분들은 다 하신 이야기에요. 길게, 그러나 저보다 짧게 글을 쓰시면서 제가 설명했던 기여의 중립적인 의미와 그 결과를 다 설명하셨어요.
    그런데 글쓴이는 이 기여에 대한 기준이 제대로 세워져있지 않아요. 단지 자신의 허술한 논리가 뒤집어지지 않기 위해서 '기여'란 단어로 후퇴한거죠.
    글쓴이가 기여를 중립적인 의미로 봤다면 원 글의 '노벨평화상' 이야기는 안 나와야 했어요.

    철학게시판을 눈팅만 하다 최근 들어 글을 썼다고 몇번 말했는데
    며칠 상황을 보니, 철학 전공자와 철학 비전공자와의 다툼이 있는 것 같네요.
    물론 철학 전공자 vs 철학 비전공자로 나누는 것이 이 사건의 단지 한 측면에 불과하긴 해요.
    철학 전공자가 보기에 비전공자는 근본도 없이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처럼 보이고
    철학 비전공자가 보기에 전공자는 학문에 진입장벽만 높이 쌓아서 들어가기 힘들게 하는 것처럼 보이죠.
    참고로 전 철학 비전공자고, 지난번에 누가 커피콜라카페인 님의 철학공부방법론을 링크하셔서 들어가서 봤더니
    저처럼 푸코를 공부한 사람은 '지적 주화입마'를 입은 사람이라고 단적으로 말하시더군요.
    저를 노리고 이야기하신 것은 아니지만 제가 그렇게 된 것은 사실이죠.
    푸코와 니체를 워낙 가볍게 접근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은데
    전 철학공부를 현대부터 근대, 중세 순으로 보통 공부방법론과 달리 거꾸로 가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
    아마 이걸로 논쟁하기 시작하면 평행선만 달리고 해결 하나도 안되는 것을 보게 될 것 같네요.
    그러나 커피콜라카페인님을 싫어하진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커피콜라카페인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철학계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거든요.
    지금 떠올랐는데, 역사게시판도 보면 주류역사학을 따르는 사람과 주류역사학에 벗어난 시각으로 역사를 다루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잖아요.
    오유는 주류역사학파가 강한 것 같더군요.
    제가 중학교때 환단고기를 거의 외울 정도로 본 적이 있어서 역사학계 논쟁을 보니 예전 생각이 나더군요.
    제가 거의 모든 면에서는 유행에 늦는데 환단고기는 거의 유일하게 유행이 빨랐던 것 같아요. 빨리 잘 벗어났죠.
    그러다보니 제가 역사학은 잘 모르지만 주류역사학파가 다른 학파를 볼 때 근본도 없는 것이라고 보는 점은 당연하지만, 모두 뭉뚱거려서 환빠로 보는 것 같더군요. 사실 모두 환빠는 아니거든요. 전 아주 오래전 환빠였지만요.
    그런데 비주류역사학에서도 들을만한 것은 있어요. 원래 그렇잖아요. 진실과 거짓이 적절하게 버무러져야 설득력을 가지잖아요.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눈이 중요한거죠.
    주류역사학에서는 아직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나 자료가 없으니 과학적인 방식으로 모른다고 했는데, 비주류에서는 그걸 조심성없이 막 다루고 있죠. 주류의 눈에는 기가 차 보이죠. 비주류에서는 진실이 뻔히 있는데 보이지가 않냐고 주류를 한심하게 보죠.

    니체에 대한 철학의 태도도 그렇죠.
    니체에 대해서 기존 철학계는 조심스럽죠. 기존 가치관을 별다른 근거없이 그냥 글자 몇단어로 다 부수고 있으니깐요. 조심스럽게 연구하고 접근해들어가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읽기 쉬워서 사람들이 막 다루죠.
    기존 철학계에서는 니체의 내용속에서 위험한 내용도 뻔히 보이는데 니체빠들은 '니느님'하면서 난리나죠. 이런 사태와 관련해서 한국에서 책 몇권이 나왔잖아요.
    비전공자 입장에서, '지적 주화입마'를 입은 사람의 입장에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면
    비록 전공자 입장에서 볼때 한심해 보이기도 하겠지만
    이 한심함 속에도 열정과 진심이 담길 수 있다는 생각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전공자보다는 적을 가능성이 크겠죠. 사람의 능력은 한계가 있고, 한가지 일만 파고 들어가는 사람보다 두가지 이상 일을 하는 사람이 한분야에 대해 노력을 적게 할 가능성이 크잖아요.
    물론 철학게에 있는 모든 비전공자들에게 그런 생각을 하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비전공자인 제가 봐도 말도 안되는 내용이 많거든요. 그런데 이것은 비전공자의 가벼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인터넷 게시판의 특성상 워낙 쉽게 글을 올릴 수 있는 분위기여서 별 생각도 안하고 글을 올리는 것일 수도 있죠. 철학게 뿐만 아니라 다른 게시판 전체의 문제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저도 그런 사람들에 대한 장문의 반박글 많이 적었고요.
    이런 전공자와 비전공자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다가, 닉네임을 언급하지 않는 인터넷 관행상, 그런데 전 글쓰면서 닉네임 다 적어버리는군요.
    닉네임을 언급하지 않은 비판의 뉘앙스가 담긴 글을 보고 갈등이 좀 커진 가능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이건 사건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제 감정이에요. 그 글 보고 제가 깜짝 놀랐거든요. 분노보다도 '나도 찌그러져 있어야겠구나.'하는 자괴감이 들더군요.
    그런 감정이 이 신자유주의 이론으로 중무장한 글쓴이의 글에 '기여'란 단어의 뜻을 해석하기 위한 수많은 답글로 터져나온 것 같습니다.
    글쓴이의 글에 허점이 다 보이는데 허점에 대한 지적보다 '기여'의 뜻에 대한 지적이 더 많이 나온게 근거라고 생각하네요.

    하...... 짧게 쓴다고 했는데 또 몇시간을 쓰냐......

    아무튼 제가 하고 싶은 결론은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논점은 '기여'의 단어 뜻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이론으로 중무장한 글쓴이의 논리입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만 제 글을 읽으시고 글쓴이는 제 글 안 읽으실 것 같은데, 보통 이런 논리에 빠지시는 분들이 제가 환단고기에 미쳤던 중학교 시절과 마찬가지로 독서를 별로 안하신 분들이 잘 빠집니다. 조금만 비판적 글읽기를 해도 궤변이 다 보이는 글이거든요.
    그리고 글쓴이가 글을 안 읽으셨다는 근거가 답글 다신 분에게 '좌파쪽 책으로 편중되게 읽은 것이 아니냐?'고 되물어보셨죠. 글쓴이가 좌파라고 지칭한 쪽의 이론은 이미 2차 세계대전 시기부터 갈고 닦았던 글쓴이가 우파라고 지칭하는 이론에 대한 비판으로 나온 것입니다.
    글쓴이가 우파라고 말한 이론이 좌파라고 말한 이론보다 우리 사회 저변에 공기처럼 인식도 못할 정도로 깔려있는 것이거든요. 그러니 좌파라고 말한 이론이 맹렬하게 비판하는거죠.
    그런데 이런 흔한 이론을 가지고 글쓴이는 '색다른 이론'이라고 하셨죠.
    그 말은 누구한테 책을 편중되게 읽었느니 어쨌느니라고 평가할 정도로 책을 그렇게 많이 안읽으셨다는 자기 고백이 됩니다.

    제 군대시절에 2년간은 대령 비서 겸 전대(공군은 연대가 아니라 전대입니다.) 행정담당, 1년간은 복지시설관리담당으로 있었습니다.
    비서 겸 행정담당으로 있었을 때 제 밑에 있었던 병사가 일본대학 다니는 녀석이었는데, 자기 자신이 엄청 뛰어나다고 자부심이 대단한 녀석이었죠. 그러다가 이야기해보니 머리가 텅텅 비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걘 그 사실을 인정을 안하죠. 자긴 대단한 사람이거든요. 자기 불리할 때는 영어와 일본어를 하면서 도망가더군요. 영어는 학창시절 배운다고 하더라도 속어 들어간 구어를 빨리 말하면 "하우두유두, 아임파인땡큐앤유" 하는 사람이 못 알아듣잖아요. 그렇게 자긴 어학을 많이 아니 지적이다. 이런 논리로 도망가더군요. 어학이 지식과 지혜로 가는 열쇠는 되지만 그 자체가 지식과 지혜는 아닌데 말이죠. 이야기하다보니 진중권을 모르더군요. 제가 어떻게 진중권을 모를 수 있냐. 모르는 것은 상관없으나 오늘부터 이름만은 외워놔라고 하니, 대령주관 회의에 들어갈 차하고 과자 준비하면서 자기 후임한테 이상한 듣보잡가지고 아는 척한다고 뒷담화를 까더군요. 전 화를 내면서 "뒷담화는 해도 되는데 최소한 들리지 않게 해라.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냐!"라고 했죠. 그 후 전역 때 애가 너무 막나가서 그냥 절교했습니다. 징계 안준 것만 해도 어딥니까. 뭐 누구에게 징계 준적은 없지만요. 그래도 뭐 전역 잘하더군요. 걔가 전역하고 약 3개월 후에 진중권 교수가 SNL에 나오더군요.

    왜 또 인생이야기를 했냐면 글쓴이가 이 병사랑 똑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모를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사기꾼같죠.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하면 됩니다. 내일 더 많이 안다는 간접증거니깐요. 그런데 모르는 것을 바탕으로 상대를 왜곡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예의는 아닌 것 같습니다. 최소한 자료가 부족하니 왜곡해서 해석을 해보겠다고 언급은 해야합니다. 그래야 설명하더라도 말에 대한 신빙성은 낮아지고 읽는 사람들이 알아서 판단할 수 있는거죠.
    어차피 우파와 좌파가 통용되는 단어라 그대로 쓰는 것 그 자체는 별 문제가 안되는데, 글쓴이가 책을 많이 읽었다면 우파, 좌파를 나누는 통념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고 쓰는게 주저하게 됩니다. 저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글쓴이보다는 많이 읽은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전 우파, 좌파 나눌때 '자칭', '속칭' 등의 단어를 붙입니다. 설명하면 이 글이 더 길어지니 다음에 기회될 때 쓰죠. 일단 제 독서와 사색의 결과로 이 사회통념 기준이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럼 글쓴이는 그 일본학교 병사처럼 "그건 네 생각에 불과한 것 아니냐?"라고 반론을 제기하겠지만, 앞으로 책을 읽다보면 알게 되실 것입니다.

    짧게 쓴다고 한 글이 또 몇시간 작성 분량이 되는 긴 글이 되었는데 전 항상 긴 글을 쓰지만 이 글 속에서

    1. 평등을 묻고 있지만 신자유주의 이론으로 중무장한, 정작 책은 별로 읽지 않으면서 남 책 편중되게 읽는다고 비판하는 글쓴이에 대한 안타까움과

    2. 이 허술함 그 자체의 글쓴이의 글보다 철학전공자와 비전공자의 싸움으로 진행되어버린 답글의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하...... 내일 어떻게 일어나냐......
    22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4-09-13 01:58:07 1 삭제
    이거 말이 단단히 꼬였네요. 결론적으로는 자유연상님 말에 동감해서 굳이 답글 달 필요는 없는데 자유연상님 글에 보충의견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주세요.

    자유연상님 설명처럼 글쓴이가 본문에서 도덕의 사전적 정의를 옮겨적은 다음 문장 "근데 외적 강제력을 갖지 않는다는 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건데"라는 말에서 실수를 하고 있습니다.
    도덕과 법률의 차이가 잘 안 와닿으면 '예의'란 개념을 가져와서 도덕보다 좀 더 약한 의미로 사용해보겠습니다.
    전 못생겼습니다. 그리고 제 몸에서 냄새가 납니다. 그래서 길을 걸어다니면 길가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죠.
    그러나 사람들은 저보고 씻어라, 성형수술 해라고 법률적 강제를 할 수는 없죠. 강제한다고 해서도 해결이 안되는 총체적 난국이란 저의 현실이 슬프게 하는군요.
    그러나 저의 생김새나 행동은 남에게 피해를 줍니다. 길가는 사람들에게 시각, 생화학테러를 가했죠. 그러나 이것을 하지 말아야 할 외부적 강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못생긴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안씻고 다니면 제 주위에는 없는 사람이 더 없어지겠죠.
    그렇기 때문에 글쓴이가 말한 외적 강제력이 없다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가정은 틀렸습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나 본인의 자유와 상대방의 자유를 비교해서 어느정도 감수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거죠.
    피해를 주지만, 불편함을 주지만 감수할 수 있고 감수해야하는 사회의 약속이 예의와 도덕이라고 할 수 있겠죠.
    상대방의 권리에 단지 제한만 준다면 합법이지만 부도덕일 수 있는 것이고, 상대방의 권리를 제한을 넘어서 침해를 준다고 하면 불법이자 부도덕이죠.

    글쓴이가 표현한 문장은 A는 B다. 란 명제가 나왔다면, 이 명제를 바탕으로 B는 C다. 이런 형식으로 진행되어야 하는데 B를 가지고 다시 A를 부셔버리는 행동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글쓴이의 주장은 껄끄럽지만 제기한 문제의식은 맞는 것 같습니다.

    도덕은 법률적 강제가 없죠. 그러나 사실적 강제는 있습니다. 어겼을 때 연장자에게 꾸지람을 들을 수도 있고, 주위에 사람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처우를 받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도덕적인 행동을 해야되는 경우가 발생하죠.
    자신이 그런 대우를 받지 않기 위해서 자신은 원하지 않지만 사회가 원하는 행동을 한다는 것은
    자기가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사회가 원하는 행동을 하는 법과 구조가 똑같습니다.

    법은 무엇일까요? 강제력이죠. 금지한 행위를 하였을 때 형사처벌 또는 민사상 손해배상을 할 수 있게 하죠.
    즉, 폭력입니다. 합법적인 폭력인거죠.
    즉 법의 행위는 폭력이지만 합법적이라는 정당화 과정을 거치는거죠.
    도덕은 무엇일까요? 일종의 약속이죠. 금지한 행위를 하였을 때 합법적 권리는 없지만 사실적으로 비난할 수 있게 하죠.
    이것도 폭력입니다.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폭력인거죠.
    도덕도 행위는 폭력이지만 사회의 암묵적 동의라는 정당화 과정을 거쳤죠.

    도발적인 내용이긴 하지만 철학계에서는 어느 정도 논의되는 이야기고, 슬라보예 지젝이란 철학자가 '폭력이란 무엇인가'라는 단행본을 통해 논의한 적도 있는 이야기입니다.
    얼핏 생각나는 이야기가 어떤 관리가 피카소에게 와서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담은 게르니카를 그리는 모습을 보고 '왜 이런 그림을 그리느냐!'고 따지자
    피카소는 도리어 '당신들이 이렇게 만들었잖소!!'라고 따졌다고 하더군요.
    많은 사람들은 반정부시위나 집회 등을 보고 폭력시위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그 집회를 막는 의경들, 폭력이죠. 집회에 나온 사람들을 체포하는 것, 폭력이죠. 그들을 처벌하는 것, 폭력이죠.
    이런 구조적 폭력에 대해서는 합법성이란 정당화에 가려 폭력이라는 행위성조차 망각합니다.
    법을 폭력과 정당화라는 요소로 나누어서 보았을 때, 우리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상당수 요소는 폭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폭력적인 세상 속에서 얼마나 우리는 정당화하며 살아가는 것이고, 심지어는 자기기만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법의 폭력성, 도덕의 폭력성 논의는 우리 사회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주는 하나의 도구입니다.

    그런데 글쓴이는 좀 안 좋은 말로 소 뒷걸음치다가 쥐잡듯이 이 논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글쓴이도 정작 피해의 개념을 저처럼 행위 또는 결과의 의미로 쓰신 것이 아니라 이 의미에다가 합법이란 요소를 더해서 합법적인 피해는 피해가 아니라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그러다보니 자유는 무제한이라고 하는 느낌으로 쓰신 것 같군요.
    정작 글쓴이가 피해의 개념을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의 개념처럼 행위+정당화로 바라보시다가
    정작 도덕은 정당화를 제외한 행위의 개념으로 바라보신 것 같군요.
    이렇게 단어의 뜻의 정의에 대해 혼동을 가지면서 글을 쓰시다가 큰 논점을 잡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21 방법서설_4부 [새창] 2014-09-13 01:13:52 0 삭제
    lastlaugher님께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셨네요.
    논리의 흐름을 보니 푸코의 초기작 '광기의 역사'에서 데카르트의 기본 명제가 광기, 즉 미친 사람을 인간으로 배제한 선언으로 본 것과 유사한 것 같아요.
    때마침 참고할 것이 있어서 컴퓨터 앞에 광기의 역사를 놔뒀는데 여기 쓰네요. 인용해볼께요

    진리의 영속성 덕분으로 사유가 오류에서 벗어나거나 꿈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광기로부터 사유를 보호하는 것은 진리의 영속성이 아니라, 미칠 가능성의 부정이다. 광기의 불가능성은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 생각하는 주체의 본질이다. 누구나 "회의의 어떤 근거"를 찾기 위해, 자신이 꿈을 꾼다고, 또는 자신이 꿈꾸는 주체와 동일하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진리가 여전히 꿈의 가능조건으로 나타난다. 이와 반대로 사유를 통해서조차 미쳤다고 가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광기는 바로 사유의 불가능 조건이기 때문이다.

    꼭 데카르트가 선언해서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사회상과 지식의 발전수준이 데카르트에게 그런 말을 하도록 했을 수가 있죠.
    단지 데카르트의 입만 빌려서 나온거라는 표현도 가능하겠네요. 그러나 이 선언을 기준으로 미친 사람들에 대한 사회의 처우가 달라졌다고 푸코는 주장하죠. 비정상인의 배제 말이죠.

    lastlaugher께서 철학책은 잘 안 읽으셨다고 했는데, 글 한두문장 보고 여기까지 사유하시는 것을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푸코 전도사이긴 하지만 고대 중세 철학보다 니체로부터 시작해서 푸코, 아감벤 등 이런 쪽을 공부해보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일이 잘 풀려야 니체를 본격적으로 공부해보는데... 인생이 꼬여서...

    암튼 할 일 하다가 깜짝 놀라 글 남겨봅니다.
    20 칸트의 <세계 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이란 논문을 보려고.. [새창] 2014-09-10 21:35:14 0 삭제
    원신연 석사가 칸트의 이 논문을 가지고 석사 논문을 썼네요.
    석사 논문이니 찾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정작 읽으면 쉽게 읽으실 수 있을 듯 합니다. 페이지도 얼마 안되네요.
    학교 도서관 컴퓨터 잘 찾아서 출력해보세요. 아님 국회도서관까지 가야 하네요.

    정말 검색어도 글쓴이가 말한 칸트 논문 제목 그대로에요.
    19 현 정부나 여당이 추구하는 우리나라의 모습은? [새창] 2014-09-10 14:47:14 0 삭제
    제 생각도 답글 다신 분들과 마찬가지로 이념적, 사상적으로 보면 안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본능적으로 봐야하죠.
    본능이라고 설명하면 유전자적 본능이 아닌 학습으로 익힌 부분이 혼재되어 있어 무엇이 본능이고 무엇이 학습인지 구분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거 다 따지기 전에 그냥 우리가 단순히 본능이라고 생각하는, 이 모든 것이 혼재되어있는 그 본능인 듯 합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점이 강조되었죠.
    그때도 지금처럼 아무것도 안하던 시기여서 인터넷 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이회창 후보도 그때 다시 출마한다고 해서 기사가 나온 것을 보니 이회창 후보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더군요. 본인 출마하는 말에 기독교 단어가 막 묻어나왔어요.
    그런데 이회창 후보가 대선후보로서 대세였던 시기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란 말 또는 그에 따른 마케팅이 없었던 기억이 났네요.
    그 당시에는 기독교를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이 마이너스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 있어서 그에 따랐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정작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였던 시기도 기독교 신자가 우리나라에 40%라고는 하지만 이미지가 확 좋아지진 않았거든요.
    지금처럼, 예전처럼 항상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는, 비슷했던거죠.
    마이너스라고 하더라도 강행돌파한 결과, 별다른 피해가 없었던 것이 밝혀졌죠. 뭐 복합적 요소이기 때문에 여기서만 문제를 찾으면 안되긴 하지만요.

    어린 시절에 '야니'라고 하는 뉴에이지 음악가의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그 당시 그 사람 포텐 막 터진 시기였거든요. 지금은 음악적 역량이 끝난 것 같더군요.
    그래서 학교 친구들에게 마구 추천을 했더니 기독교 신자 친구들은 그냥 대수롭지도 않게 "그거 사탄의 음악이잖아."라고 하고 절 무시하더군요.
    그 당시는 인터넷이 몇몇 사람들만 썼고 전 썩 잘사는 집안이 아니라 못썼는데 몇 년 뒤에 그 말이 기억나서 인터넷에서 대충 찾아보니
    기독교의 이념은 하나님을 통한 구원만 인정하는데 뉴에이지 음악은 구원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고 해서 명상을 통한 구원도 추구한다는 설명을 봤었죠.
    그러다가 백수로 살아가고 있는데 '유 레이즈 미 업'이란 노래가 나오더군요. 좋은 노래이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다 느꼈다시피 기독교적 구원의 느낌을 받았어요. 기독교에서도 자주 쓰는 것도 목격했죠. 뭐 이 목격은 저만 한 것이기 때문에 확실한 예시로 쓰긴 그렇지만 일단 이야기 해봅니다.
    그런데 원곡자인 시크릿가든이 뉴에이지 음악을 한다는 인터넷 글을 봤네요.
    물론 야니도 뉴에이지 음악가인지 아닌지 논란이 크고 본인도 뉴에이지 음악가로 말하지 말아달라는 부탁도 했어요. 시크릿 가든이 뉴에이지 음악가인지 아닌지, 뉴에이지라도 자신들만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없는지, 야니보다 더 관심이 없어서 전 잘 모르죠.
    그런데 사람들이 뉴에이지 음악이라고 부른 음악에 대해서는 '사탄의 음악'이라고 하더니 '시크릿 가든'의 노래는 좋다고 쓰더군요.
    분명 그들이 야니와 반젤리스와 장 미셀 자르 등의 음악가들과 시크릿 가든의 비교, 대조 과정을 거쳐서 나온 결론은 아닐껀데요. 오히려 저보다 더 편견에 가득찬 단편적 지식으로 평가를 했을 가능성이 더 큰데요. 그 편견에 가득찬 단편적 지식을 바탕으로 하면 이런 현실이 안나와야 하는데 나와버린거죠.

    이번에 리메이크되어서 나온 '로보캅'도 약간 껄끄러운 구성, 편집 등 감독 능력이 아쉽다는 생각은 했지만 노골적으로 신자유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이 나오더군요. 신자유주의 체제 비판이 로보캅 내용의 전부였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가 만들어지고 전 세계에 퍼지게 한 것이 신자유주의 자본이죠.

    나르나르님의 분류를 보면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네요.
    신자유주의 - 경쟁체제 구축해서 내가 잘 먹고 잘 사는것 / 반공주의 - 평등한 공산주의 만드는 것 막아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 / 철학적 보수주의 및 엘리트 주의 - 권력 모두에게 주지 않고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 / 보수적 개신교 - 내가 천국가서 잘 먹고 잘 사는 것
    전부 생존, 본능과 관계있는 이야기죠.
    오히려 그들은 생존하기 위해 자신의 이념과 다른 것도 집어삼키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리죠.

    아까 '유 레이즈 미 업'에서 나온 기독교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오면

    뉴에이지는 하나님의 구원이 아닌 다른 구원도 인정한다. 그러므로 사탄의 음악이다.

    시크릿 가든은 뉴에이지 음악이다.

    즉 시크릿 가든의 유 레이즈 미 업도 사탄의 음악이다.

    이런 논리가 나와야 하고,

    이 논리의 전제조건 '뉴에이지 음악이 무엇이냐'가 편견에 가득차고 습자지보다 더 얇은 지식에서 나왔다면
    보통 지식인의 논리는 전제조건의 수정과 이 논리에 대한 전면 폐기가 되는거죠.
    그러나 그들은 이런 보통의 과정이 아니라 단지 좋아보이는 곡만 선별적으로 흡수해버린거 잖아요.
    아직도 다른 뉴에이지 음악을 사탄의 음악이라고 하는 사람도 존재할 것 입니다.

    이념적으로 따진다고 하면 자칭 보수정권이 강력한 대통령제를 선호하다가 자발적으로 의원내각제로 하자고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을 설명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저보다 딴지일보 기사가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설명했던데, 이는 박근혜 대통령 이후 얼굴마담으로 내세울 인물이 없는 여당과 문재인, 박원순, 안철수, 안희정, 정동영 등 인적자원이 넘치고도 넘치는 야당의 상횡에 대해 어차피 국회의원 선거는 당만 보고 뽑는다는 국민의 의식수준을 이용해서 정권을 지속적으로 대를 이어서 장악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하면 그 의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첫 번째 예시인 이명박 전 대통령과 기독교와의 관계는 이 글과 안 맞는 예시 같네요. 뭐 그래도 써먹어봐야죠.
    지금 제가 근거는 말 할 수 없지만, 즉 연구가 덜 되었다는 뜻입니다. 제 머릿 속에 떠오른 가설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될 때 보수집단에서 국민들을 대상으로 많은 실험을 한 것 같아요. 우리가 선거나 정치에서 편견으로 가졌던 법칙을 하나씩 하나씩 깨보며 권력장악을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실험해본거죠. 이명박 전 대통령 당선 자체가 지금 곰곰히 생각해보면 놀라움의 연속이잖아요? 지금 대선유력 후보로 김무성 국회의원이 부각되는 것도 이 실험의 결과를 2014년에 응용하는 것으로 보이더군요.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의원내각제로 개헌하려는 자칭 보수정권의 문제제기는 애교로 보이는군요.

    결국 또 헛소리만 잔뜩 적었지만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자칭 보수정권에 대한 분석으로 무언가 대승적 관념의 것을 추구한다, 무슨 이론에 따라 움직인다는 가설은 더 혼란스럽게 만들 것 같아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느낌이 들어버리지만 '본능'이란 관점에서 적용한다면 오히려 해석이 잘 되는 것 같군요.
    우리가 아는 본능에는 만들어진 본능도 있으니 그 본능을 국민에게 계속 주입하면서 아군을 늘리고 그에 권력의 영구기관을 만들어버리는거죠.

    이건 정말 여담인데 lastlaugher님이 아메바도 아니고 생각이 있을 것이라고 표현한 말이
    아이작 에를리히란 학자가 사형이 살인범죄를 줄인다는 논문을 발표했을 때 썼던 논리랑 똑같네요.
    사람이 아메바도 아니고 어떤 인간도 먼지만큼의 경제적인 합리성에 따라 자기가 죄를 저지르면 처벌을 받는 이런 비교대조, 이익형량과정을 할 수 있다는거죠. 그렇기 때문에 범죄를 단념시킬 수 있는 중형이 필요한거래요. 신자유주의가 형사정책을 적극적으로 개정한 시작점이 되었죠.

    역시 전 명확한 결론없이 글만 잔뜩 남깁니다.
    18 여러분은 성악설 성신설중에 뭘믿나요 [새창] 2014-09-07 23:45:41 0 삭제
    인터넷 게시판은 익명성을 보장하여 오프라인에서는 소심해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쉽게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또한 그런 이야기가 모여있는 곳이기도 하죠.
    그런 자신감이 모여 이야기가 이어져 나가고 그 이야기가 쌓여가고 있는 곳이죠.
    물론 잘 못 된 과정이 일어나거나 잘 못 된 결론으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터넷 게시판에는 그런 과오조차도 남아있어, 다시 돌이켜보았을 때 반성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글 하나하나가 우리가 살아가는 성장과정이고, 역사인거죠.
    흐릿해져가는 기억 속에서 자기합리화를 해나갈 때,
    인터넷 게시판에 남겨놨던 자취는 사실은 이러하다는 것을 까발려주는 민망하지만 좋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성선설, 성악설은 우리가 윤리나 도덕을 배울 때 거의 처음 배우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수학책 집합과 명제만 폈다 덮었다 해서 그 부분만 시커멓게 되는 것처럼 그나마 잘 알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죠.
    그러다보니 자주 이런 논쟁이 철학게시판에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 게시판 초짜긴 하지만 며칠 전에도 이 논쟁은 있었고 많은 분들이 답글을 써주셨죠.
    저도 답글 달긴 했습니다.

    자신의 질문을 익명공간 속에서 털어놓는 것은 중요한 권리입니다.
    그러나 시사게시판 등 인기게시판과 달리 하루에 글 몇개도 안 올라오는 이 곳에서 검색 한번 해보는 것도 해결방법 중 좋은 예시라고 생각합니다.

    글 몇개 안 올라오는 곳이라서 그런지 인기게시판과 달리 이 곳은 집단지성의 결과물을 보관해둔 서재같은 느낌이거든요.
    그러니 소모성있는 글처럼 동어반복적인 답이 잘 안나와요.
    짧은 글이라도 하나하나가 글쓴이의 영혼이 담긴 글이거든요.
    그 영혼을 다시 표현하기 힘든가봐요. 저도 비슷하지만요.

    며칠 전에 똑같은 질문이 있었고 다양한 답변이 있었다는 말 답글로 안다시길래 제가 총대매고 글 올립니다.
    검색해보시면 좋은 답변 많이 있을 것입니다.
    17 철학과논문주제 [새창] 2014-09-06 14:52:16 1 삭제
    이거 내 할일 해야하는데 이 주제에 필 받으니 미치겠네요.

    주제 쓸 것 없으면 "신자유주의 경쟁체제와 그 대안인 동학의 생명사상" 이렇게 쓰면...... 졸업논문을 벗어나 박사논문도 가능할 것 같네요.
    솔직히 제가 말한 이 주제는 오버에요.
    신자유주의가 뭔지에 대한 정의부터 알쏭달쏭이거든요. 신자유주의의 경향과 그 결과물은 있는데 무엇이 신자유주의냐 라는 것을 적긴 힘들어지죠.
    학계의 이야기와 실제 사례와 다른 점도 있고요. 물론 학계가 자기 책임 안질려고 눈 감은 부분에 대해 실무계에서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점도 있어요.
    만일 이렇게 주제를 잡는다면 동학의 생명사상은 쉽게 정리할 수 있는데 신자유주의를 정리하려고 시간과 노력을 다 들일 것 같아요.
    푸코 전도사인 저는 푸코의 강의안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속의 신자유주의 정리를 추천하겠지만 이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이전 강의들인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와 "안전, 영토, 인구"를 다 읽어야 하거든요. 그것만 해도 미치죠.

    그러면 제가 말한 주제랑 비슷하게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하나 발굴하고 그 대안으로 동학의 생명사상을 제시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럼 목차도
    1. 서론
    2. 현대 사회의 문제점 정리
    3. 그 대안으로 동학의 생명사상
    4. 결론

    논문 다 썼습니다.

    축하드립니다.
    16 철학과논문주제 [새창] 2014-09-06 14:37:21 1 삭제
    이걸 안적었는데 시간 여유가 충분하다고 하면,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쓰는 법"이랑
    다치바나 다카시의 "지식의 단련법" 추천합니다.

    글을 어떻게 쓰느냐에 대해 고민할 수 있어요.
    뭐 여기에 나와있는 내용 중 일부를 제 말로 옮겨쓰면
    "네가 네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네 생각에 불과하니 헛된 자신감 따위 품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 정리부터 제대로 해라.
    정리가 잘 안되어있으니 네가 잘 모르는 것이고, 네가 잘 모르니 너만 잘났다고 생각하는거다. 근데 너말고 다른 사람도 다 너처럼 생각한다. 총체적 난국이지."
    이분들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적진 않았는데 사례를 보면 다 이런 사람들뿐이네요.

    여유있을 때 읽으면 좋아요.

    제 스승님께서 추천해주신 책인데 스승님도 절 이렇게 생각하셨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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