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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차단 상태
    LeniTells님의
    개인페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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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niTells님의 댓글입니다.
    번호 제목 댓글날짜 추천/비공감 삭제
    245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3-09-28 21:57:07 0 삭제
    뭐 당신말대로면 엔하쪽 5.18 민주화운동이나 또는 국정원 여론조작 부분도 '신뢰'할수 없는거네요.
    244 식민지 근대화론이 완벽하게 헛소리인 이유 [새창] 2013-09-28 21:55:03 2/11 삭제
    그게 맞는데요.

    님의 글에서 간단하게 말하면

    신민회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신민회는 안창호 선생님 등이 중심이 되어 세워진 비밀결사로 국외 항일 투쟁의 중심이 된 신흥 무관 학교를 설립하는 등의 항일 투쟁을 했던 단체이기도 합니다.
    이 신민회의 가장 핵심적인 활동 목표가 국권 회복 및 공화 정체의 국가 건설이었습니다.
    그러나 1911년 105인 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해산됩니다.
    그 후 1910년대 국내 비밀결사였던 대한 광복회. 김좌진 , 박상진 등이 주요 인물로 역시 공화제를 목표로 하는 항일 단체였지만 일본에 의해 진압됩니다.
    그 뒤 대한 국민 의회나 임시 정부등의 항일 단체들의 공통적인 목표는 공화 정체 국가 건설이었다고 해도 틀린말이 아닙니다.
    이 단체들을 모두 진압하거나 그렇기 위해 시도했던 것은 누구일까요?? 당연히 일본입니다.



    신민회 있음->신민회는 공화주의정 지향!->일본이 없앰->고로 일본이 민주주의 늦춤.
    대한 광복회->일본이 없앰

    이렇게 말하셨는데 원래

    간단히 신민회가 공화주의정 지향이라서가 아니라 일본이 민주주의에 어긋나게 탄압한 부분을 강조를 하시거나

    또는 30~40년대나타난 비민주주의적 또는 반 민주주의적 행동을 비판하셔야 좋을거 같고요.

    경제부분

    경제를 볼까요.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상회사 등을 설립한 것은 일본과 청 상인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특히 광무개혁 때 많은 회사와 은행등을 설립하면서 발전을 이루는가 했지만,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이후 화폐 정리 사업에 의해 조선의 은행과 회사 자본이 아작나버립니다. 그 후 회사령에 의해 철저히 탄압받습니다. 일본에 의해 강제적으로 얻어진 빚을 갚기 위한 국채 보상 운동 등도 일본에 의해 무산되구요.
    조선 병참기지화 운동에 의해 많은 공장들이 세워지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은 그냥 착취당하는 노동자로 전락할 뿐이었죠.

    우선 간단한 역사적 사실을 보면 회사령은 1920년에 폐지됩니다. 평양메리야스 공장,경성 방직 공장과 같은 민족기업이 나타납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9년이라서 전혀 관계 없을 뿐만 아니라 국채에 관련된거라서 민족경제 부분엔 전혀 관계 없어요.

    또한 경제적인 부분은 은행령라든지 회사령 폐지로 인한 일본자본 침투라는 부분을 비판을해야합니다.





    문물에 대해서도 광무개혁이 일본에 의해 무산되고 경원선 착공을 위한 서북 철도국도 일본 때문에 무산되고 맙니다.
    또한 새로운 사상, 문물에 대한 발전되고 근대적인 지식과 이에 대한 교육도 일제에 의해 철저하게 탄압받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대학 설립 운동이 일제에 의해 무산되었구요.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서 큰 만세 운동이 3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가 위에서 적었던 3.1 운동입니다.

    두 번째가 6.10 만세운동입니다.
    발단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일본의 교육적 억압에 대해 학생 조직이었던 조선 학생 과학 연구회의 조선인에게도 더 나은 교육을 하라는 요구에서 시작된 운동입니다.

    세 번째가 광주 학생 운동입니다.
    역시 발단은 일제의 식민지 차별 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이었습니다.


    이 세개는 뭐라고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1894년 동학을 중심으로 하여 전라도 지방에서 농민들이 신분제 타파와 봉건적 인습 폐지 등을 목표로 운동을 벌입니다.
    다들 아는 동학 농민 운동이지요. 이 농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 진압한 것이 일본입니다.
    그 후 정부에서는 농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자주적 근대화를 위해 교정청이라는 개혁 기구를 설치합니다만
    일본이 경복궁을 불법 점령하면서 무산되게 됩니다.
    그 후 1차 갑오개혁에서 사회적으로 큰 개혁이 있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1차 갑오개혁은 청일 전쟁 중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나마 일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이루어 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후 신분제도의 단순 제도적 철폐 뿐만 아니라 실제 백성들의 의식에 있어서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운동들이 일어납니다.
    근대 계몽을 위한 신문 등이 발행되고 학교가 설립됩니다만, 일본의 신문지법과 사립학교령 등에 의해 다 폐간되고 폐교되고 탄압받습니다.

    근대적 의식 확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1919년 3.1 만세 운동 이였습니다.
    3.1 운동을 통해 우리나라는 중세로의 복고라 할 수 있는 복벽주의를 완전히 청산하게 되며 3.1 운동이 불씨가 되어 국가 곳곳에서 진정한 평등사회 건설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됩니다. 백정 차별 철폐를 위한 형평운동, 어린이, 여성의 차별 철폐를 위한 여성, 어린이 운동등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3.1 운동은 항일 투쟁임과 동시에 근대화를 위한 우리 민족의 자주적 투쟁이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일본에 의해 혹독하게 진압당합니다.
    -----------------------
    이것도 아까와 같이 3.1이 평등운동이라서가 아니라 일본이 했던 행위중에서 평등성에 위배 되는 부분을 비판을 해야합니다.
    243 식민지 근대화론이 완벽하게 헛소리인 이유 [새창] 2013-09-28 21:15:22 3/9 삭제
    논리학도 인문학이에요. 'ㅅ'
    242 식민지 근대화론이 완벽하게 헛소리인 이유 [새창] 2013-09-28 21:15:07 3/11 삭제
    1 인문 사회과학부분에서 '반증'을 씁니다 'ㅅ'
    241 식민지 근대화론이 완벽하게 헛소리인 이유 [새창] 2013-09-28 21:07:27 3/17 삭제
    어.... 이건 논리학적으로 말이 반박이라고 할수 없는거에요.

    어떠한 사실을 반박을 할때 포퍼의 방식인 반증을 합니다.

    즉 X->Y를 성립하지 않게 하려면 X-> not Y에 대한 예시가 있어야합니다.

    하지만 이글은 X->Y를 반박하려고 할때 A->B다라는 전혀 관계 없는 지문을 가져온거에요.

    즉 일본이 했던 행위에서 반박을 하셔야합니다.;; ('ㅅ')
    240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3-09-28 21:03:36 0 삭제
    음... 엔하위키가 공신력이 없으니까

    그쪽에 5.18 부분도 공신력이 없겠네요.
    239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3-09-28 20:56:56 0 삭제
    말을 할때 '부분긍정'이라는게 있어요.

    논리학적으로 거절을 하는데 임팩트 있게 거절하는건데.

    형식은 (상대의 괜찮은 부분,어떤 이유로 거절

    이런 형식으로 해봐요.
    238 일제강점기 미화 논리 전제 - '한민족은 안 된다.' [새창] 2013-09-28 01:27:46 0 삭제
    지만원씨는 좀... 논리학 개론정도 읽고 오셨으면 좋겠는데 안읽음. ㅋㅋ

    기본적으로 연쇄에 의한 오류를 시작해서 ..ㅋ
    237 화염차 개깩기 [새창] 2013-09-28 01:24:44 0 삭제
    초반에 저그는 화염차 막으려고 진화장 심시티합니다.
    236 네이버와 다음에 '마가렛 대처'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새창] 2013-09-27 21:44:40 0 삭제
    마가릿 대처같은 경우는 경제위기를 극복한 여인 vs 빈부격차를 악화시킨 여자 둘로 나뉘는데요.

    우선 전자의 경우는 잉글랜드쪽 입장에서 그렇고

    글래스고나 에든버러같은 북부광산지대인 스코틀랜드쪽과 벨파스트같은 아일랜드 지방에서는 대처 비판쪽이 많죠.

    그리고 영국은 우리나라 정치처럼 정치적인 부분에서 무조건적 비판 또는 찬양은 하는 경우는 그닥 없어서

    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한건 칭찬을 받지만 복지부분이나 영국급식(!)을 형성한 경우,그리고 민영화는 많은 비판은 합니다.

    특히 민영화 부분에서 많이 까였는데 철도민영화와 물민영화 두부분에서 많이 까였습니다. 철도같은경우는 지금도 까이고 있고

    물민영화같은 경우 대처 정권을 h20정권이라고 비난을 했습니다.

    하지만 포틀랜드 전쟁의 승리와 저효율->국유화->고임금=>고복지 이렇게 이어지는 영국병을 극복해서 칭찬도 많이 받았습니다.

    고로... 맘대루 생각하세요. ^^
    235 근데 갑자기 궁금해진게 잇는데염. 환단meat관련 질문입니당. [새창] 2013-09-27 20:25:56 0 삭제
    솔직히 환단고기는 역사학이 아닌 논리학적 관점에서도 충분히 반박이 가능한지라.;;
    234 '[김성민의 중국어세상] 1 중국의 역사' - 킬링타임용 동영상 [새창] 2013-09-27 20:13:35 1 삭제

    동영상 오른쪽 클릭한후에 소스코드 복사

    html상태로 바꾸고 올리세요.
    233 [충격] 항일 시인 윤동주,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이랍니다, [새창] 2013-09-27 17:51:38 0 삭제
    이 부분을 말해보면 조선족이라는 개념은 1945년 이후 중국땅이 공산화 된 이후에 지칭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윤동주 시인 가족은 해방된 후 종교적 이유로 남쪽으로 다 내려왔습니다. 윤동주시인의 재종형제도 한국에 살아있죠. 하지만 중국땅에 남았던 조선인들도 있죠. 고로 그런사람들을 조선족이라고 칭하는게 맞다고 생각하고 시벌 짱깨새끼들.
    232 [충격] 항일 시인 윤동주,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이랍니다, [새창] 2013-09-27 17:51:22 0 삭제
    위에 있는 어떤분이 이상한 식민사관 어쩌구 저쩌구 하셔서 말합니다.

    조선 숙종 때, 몇몇 조선사람들이 백두산 일대의 무인지역에 넘어가 살던 것이 청과 조선 양국간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에 청과 조선은 관리를 파견해 두 나라의 국경을 확실하게 정하기로 했음다.

    두 나라는 백두산을 기점으로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두만강이 두 나라의 국경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장에 파견된 조선측의 주요 관리들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백두산에 오르지 않았고, 결국 청의 관리 목극동이 혼자서 현장 답사를 하고 비석을 세웠다. 그런데 목극동은 물의 지류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고 저게 두만강이겠거니 하고 대충 눈여김만 하고 비석을 세웠고 사건의 시발점이 됩니다

    우선 접반사 박권이 치계하기를,
    “총관(목극등)이 백산(백두산) 산마루에 올라 살펴보았더니, 압록강의 근원이 과연 산 허리의 남변(南邊)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미 경계로 삼았으며, 토문강의 근원은 백두산 동변(東邊)의 가장 낮은 곳에 한 갈래 물줄기가 동쪽으로 흘렀습니다. 총관이 이것을 가리켜 두만강의 근원이라 하고 말하기를, ‘이 물이 하나는 동쪽으로 하나는 서쪽으로 흘러서 나뉘어 두 강(江)이 되었으니 분수령(分水嶺)으로 일컫는 것이 좋겠다.’ 하고, 고개 위에 비를 세우고자 하며 말하기를, ‘경계를 정하고 비석을 세움이 황상의 뜻이다. 도신과 빈신도 또한 마땅히 비석 끝에다 이름을 새겨야 한다.’고 하기에, 신 등은 이미 함께 가서 간심(看審)하지 못하고 비석 끝에다 이름을 새김은 일이 성실하지 못하다.’는 말로 대답하였습니다.” - 숙종실록 51권, 38년(1712) 5월 23일.

    즉 가장 북쪽의 첫번째 갈래 = 두만강의 최초의 원류과 달리, 강의 원류가 땅속으로 들어가 속으로 흐르다가 도로 솟아나는 물은 첫번째 갈래의 북쪽 10여 리 밖 사봉(沙峰)밑에 있어 두만강의 원류와 다른 물이었다. 근데 목극등이 ‘이것이 곧 토문강(土門江)의 근원이라.’고 하고, 다시 그 하류를 찾아보지 않고 육지로 해서 길을 갔기 때문에 마치 두 지류가 같은 지류인 양 취급되었고, 이를 기준으로 정계비가 세워졌지요..

    이에 따라 조선은 경계를 알리는 푯말을 세웠는데, 재확인 차원에서 이번에는 하류까지 내려가는 답사가 이루어졌는데 여기서 거대한 사건이 터집니다.

    신이 여러 차사원들을 데리고 청차가 이른바 강의 수원이 도로 들어가는 곳이란 곳에 도착하자, 감역(監役)과 차원(差員) 모두가 하는 말이 ‘이 물이 비록 총관이 정한 바 강의 수원이지만, 그때는 일이 급박하여 미처 그 하류를 두루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푯말을 세우게 되었으니 한 번 가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이 허(許)와 박(朴)【거산 찰방 허양과 나난 만호 박도상이다.】 두 차원을 시켜 함께 가서 살펴보게 했더니, 돌아와서 고하기를, ‘흐름을 따라 거의 30리를 가니 이 물의 하류는 또 북쪽에서 내려오는 딴 물과 합쳐 점점 동북을 향해 갔고, 두만강에는 속하지 않았습니다. 기필코 끝까지 찾아보려고 한다면 사세로 보아 장차 오랑캐들 지역으로 깊이 들어가야 하며, 만약 혹시라도 피인(彼人)들을 만난다면 일이 불편하게 되겠기에 앞질러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대개 청차(목극등)는 단지 물이 나오는 곳 및 첫 번째 갈래와 두 번째 갈래가 합쳐져 흐르는 곳만 보았을 뿐이고, 일찍이 물을 따라 내려가 끝까지 흘러가는 곳을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본 물은 딴 곳을 향해 흘러가고 중간에 따로 이른바 첫 번째 갈래가 있어 두 번째 갈래로 흘러와 합해지는 것을 알지 못하여, 그가 본 것이 두만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인 줄 잘못 알았던 것이니, 이는 진실로 경솔한 소치에서 나온 것입니다. … (중략) … 대저 목책이 끝나는 곳은 바로 국경의 한계가 나누어지는 곳입니다. 두 나라의 경계를 정하는 일이 얼마나 중대한 일입니까. 그런데 한 두 차원의 뜻만으로 조정에서 알지도 못하는 물에다 강역을 제멋대로 정했으니, 이는 마땅히 징치하여 강토에 관한 일을 중히 여김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강의 수원에 관한 한 가지 일은 또한 묘당(廟堂, 의정부)으로 하여금 보다 좋은 대로 잘 처리하게 하소서.”하니, 임금이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하라고 명하였다. 영의정 이유가 연석에서 아뢰기를,
    “목차(목극등)가 정한 수원은 이미 잘못된 것인데, 차원들이 감사에게 말하지도 않고 평사의 지휘도 듣지 아니한 채 멋대로 푯말을 세웠으니, 일이 지극히 놀랍습니다. 청컨대 잡아다 추문하고, 감사도 또한 추고하소서.”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 숙종실록 52권, 38년(1712) 12월 7일(병진)

    요약하면 목극등이 잘못 잡은 물길이 멀리서 두만강으로 합해지는 것도 아니고 두만강과는 전혀 상관 없이 저 멀리 만주인들의 땅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고조선 정부에서는 분명히 이 상황을 국경선이 잘못 정해진 상황으로 파악하고, 청과의 외교 마찰도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섣불리 푯말을 박았던 차원들이 취조당하는 등 사단이 일어난 것으로 보이지 만 실록에는 이 기사 이후에 벌어진 일에 대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고 이 사실을 확인한 후 취조당하는 사람이건 조선 조정이건 일관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목극등이 정한 (두만강이 아닌) 수계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며, 이것의 수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두만강으로 들어가는 지류 중 어느 것을 국경으로 정해야 하나' 정도만이 추가적으로 논의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강희제가 말하길

    "장백산(백두산)의 서쪽은 중국과 조선이 압록강을 경계로 하고, 토문강은 장백산에서 동쪽으로 흘러나와 동남 방향으로 바다로 들어가, 토문강의 서남은 조선에 속하고 동북은 중국에 속하니, 역시 강으로 경계를 삼고 있다. 단지, 압록강과 토문강 등 두 강 사이 지방은 다 알 수 없다." - 청사고 526권

    이외에도 조선 후기 어전회의 기록을 보면 당시 조정 중신들은 두만강이 국경이라고 인지하고 있었고, 당시 불법 침입 한 조선인들을 강제 송환했다는 기록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 등, 한국에서 보유한 대다수의 지도에는 간도가 누락되어 있고요.
    ------------------------------------------------------------------------
    근대로 오면서 조선인들이 혼란한 국내 사정을 피해 간도로 불법 이주해 살면서 두 나라간에 다시 영토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월경하는 인원이 하도 많아지자 결국 조선은 두만강 너머의 국경에 멋대로 지계를 발급하고 월경을 인정해주기로 했습니다.

    청에 입장에서는 이 지역에 계속 살던 조선인들을 인정하고 대신 청의 백성으로 귀화시키려했지만, 조선에서는 이것을 막고 청과 다시 국경 교섭을 시작합니다. 조선과 청은 몇 번의 감계회담을 갖는데, 청은 두만강이 국경이니 그 원류를 밝혀 국경을 정하자고 했고, 조선은 비석에 새겨진대로 토문강을 국경으로 정하자고 주장한다. 그런데 조선측의 주장대로라면 만주지역이 죄다 조선 땅에 들어가게 생겼으니 당연히 청이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결국 회담은 결렬되고 만다. 이후 국경이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은 곳을 제외하고 청은 두만강 유역에 관리를 파견하여 이 지역에 대한 권리를 행사했다.

    그런데 1890년대 청일전쟁의 패배로 청이 급격하게 쇠퇴하면서 대한제국은 간도 지방을 다시 찾아오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1902년 대한제국은 간도 관리사를 파견해 현지인들에게 세금을 징수하기 시작한다. 당연히 대한제국과 청은 다시 외교분쟁이 붙었고 이는 러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잠시 중단된됩니다. 한편으로 대한제국은 1902년 러시아와 공동통치협약안을 작성하여 간도에 손을 뻗쳐 보려고도 했는데, 러시아 입장에서는 의화단 사건으로 만주에 파병하는 바람에 손가락을 빨게됩니다.

    1905년 일본은 간도를 한국땅이라고 인식하고 간도땅을 한국땅이라는 자료를 모으지만 꿀광이였던 만주 철도 부설권 때문에 간도하고 철도 부설권을 바꿔먹는 간도협약이 일어납니다.

    일제때는 아니까 왠만한건 생략하고요.

    세계 2차대전이 끝나고 소련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북한 정규군을 만주지역에 파견 시켰습니다. 그로인해서 김일성은 기고만장해서 결국 6.25전쟁을 터트립니다. 하지만 고박을 맞는 바람에 결국 중공군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고 그 힘으로 전쟁을 휴전하게 됩니다. 결국 북한의 국력은 추락하고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바람에 간도를 내줍니다.

    고로 요약하면

    간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학적 근거는 글쎄?
    231 원 게시글이 삭제되었습니다. [새창] 2013-09-26 01:42:18 1 삭제
    1시간 40분 짜리니까...

    대충 10번까지 만들면 끝이겠네요.

    만드는대 개당 평균 3시간 반잡고 하면

    어... 35시간 걸리겠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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